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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휴머니즘(Christian humanism)

작성자고재봉|작성시간24.08.05|조회수76 목록 댓글 0
기독교 휴머니즘(Christian humanism)             

휴머니즘은 인간의 가장 높은 이상과 업적 그리고 가능성에 기초를 둔 하나의 생활철학이다. 이교적인 형태의 휴머니즘은 대개 유신론 또는 하나님 중심의 관념들과 대치된다. 이교적인 휴머니즘에서는 인간이 만물의 중심이요, 척도가 된다. 그러나 기독교휴머니즘에서는 두개의 관점, 즉 인간 중심적인 관점과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이 조화롭게 통합되어 있다. 기독교적 휴머니스트는 신앙의 표준으로 인간 내부의 선함을 평가한다. 인간을,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되어 영생을 얻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 중 가장 고귀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인간 삶의 고유 가치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부여받게 되는 새로운 능력과 존귀함에 초점을 둔다. 오직 기독교에서만 휴머니즘이 궁극적으로 좌절과 절망에 이르지 않는 방향으로 지향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휴머니즘이란 용어는 1300년에서 1600년 사이에 유럽에서 일어난 세속적인 학문의 부흥운동인 르네상스 당시의 몇몇 학자들에 관해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학자들은 그들의 신앙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이교적인 고전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화합시키고자 했다. 사실상 휴머니즘은 용허화 되기 오래전부터 존재한 하나의 기존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로부터 오늘날까지 내려오면서 기독교사상 속에는 휴머니즘의 하나의 중요한 흐름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1. 초대교회 : 사도행전에 기록된(17:22-34) 아덴 시민들에게 행한 사도 바울의 이야기는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수세기 전의 그리스인들의 문화인 헬레니즘과 기독교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에 대한 인식을 보여 준다. 이러한 유사성은 로마제국 동부의 헬레니즘적인 도시들에서 기독교의 초기 전파를 용이하게 해주었다. 전 역사를 통해서 기독교와 인류문화는 호혜적으로 번창해 온 경향이 있다. 이들 헬레니즘 문화권에 속하는 도시들에서 기독교는 이미 고도로 발달된 하나의 문화 속에서 빠른 속도로 뿌리를 내렸다. 그 후 서유럽에서 기독교는 본래의 야만적인 문화가 중세시대 후기의 위대한 고딕문명으로 발달하도록 효모의 역할을 했다. 교회의 많은 초기 교부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문학에 대해 조예가 깊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고전적 학문의 용어로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함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유스티누스(100?-165년)는 소크라테스(주전 470?-399년)와 헤라클레이토스(주전 6-5세기) 같은 그리스도 이전의 철학자의 인생관이 놀랍게도 근본적인 기독교의 인생관과 일관되고 있음을 알아냈다.

유스티누스 이후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s of Alexandria; 150?-220?년)와 다른 신자들도 마찬가지로 이들 위대한 그리스의 철학자들에게서 신의 가르침을 깨우쳤다. 2세기 말엽 리용(Lyons)의 이레네우스는 그리스도가 인간의 성품과 인류문화에 있어서 가장 원숙한 모든 것을 끌어 모아 일신시켰다고 보았다.

2. 중세적 통합 : 신앙과 이성, 은총과 자연의 위대한 통합은 중세의 기독교 사상가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년)의 저작에서 성취되었다. 아퀴나스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아리스토텔레스(주전 384-322년)의 철학과 통합했다.

중세적 통합의 완전한 휴머니즘적인 의미는 중세시대 말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1265-1321년)이 걸작 [The Divine Comedy](신곡)에서 명백해졌는데 [신곡]은 지옥에서 연옥으로 또 천국에서 행하는 상상적인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행의 시작 무렵의 단테의 안내자가 되어준 사람은 그리스도 이전의 라틴 시인인 버질(Vergil; 주전 70-주후 19년)이었다. 지상과 천국을 잇는 다리는 아퀴나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었다.

3. 르네상스 : 단테는 역사의 두 시대가 서로 분리되는 분기점에 서 있었다. 페트라르크(Francesco Petrarch; 1304-1374년)의 시로서 르네상스 혹은 세속적 학문의 부흥운동이 시작되었다. 교육받은 유럽인들은 중세의 신학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그리스도 이전의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적인 업적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휴머니즘'이란 독특한 말이 하나님 중심의 학문에서 인간 중심의 학문으로 변화함을 나타내기 위해 당시 처음으로 공식적인 용어로 사용되게 되었다.

고전작품에서 표현된 순수하게 인간적인 이상들은 기독교의 가치관과 융화될 수 있는 것이었으나 르네상스 시대의 휴머니스트들은 대부분 그 둘을 융화시키고자 시도하지 않았었다. 전형적인 르네상스 학자는 기독교인이며 또한 휴머니스트였지, 기독교 휴머니스트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신앙과 학문을 별개의 생활범주로 간주했다. 사적으로는 초자연적인 힘과 영적인 진리의 탁월함을 고백하면서 공적으로는 출세, 문학적 혹은 예술적 기교, 또는 자연적인 아름다움과 같은 세속적인 이상에 최상의 가치를 두었던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고에 있어 이러한 이원성은 종교를 여타의 생활과 단절시키는 당시의 세속주의에서 나타나는 역할을 배출함으로써 이후의 서구사상 전반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4. 르네상스 시대의 기독교인들 : 기독교정신이 투철한 르네상스 시대의 몇몇 학자들은 고전적인 학문의 부흥운동을 기독교인의 생활을 풍성하게 할 목적으로 이용하고자 하여 다양한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들은 마땅히 기독교휴머니스트라고 불리어져야 할 것이다. 기독교휴머니스트라는 용어의 사용에 대한 역사를 엄밀하게 따져볼 때 사실상 그러한 르네상스 학자들이 최초의 기독교휴머니스트들이었다.

(1)토머스 모어 : 르네상스 시대의 학문을 자신의 신앙과 조화시키고자 노력한 기독교학자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사람은, 헨리 8세를 영국 국교회의 우두머리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영국의 정치가 토머스 모어(1478-1535년)였다. 모어의 [Utopia](유토피아)는 자연이치에 전적으로 기초들 둔 이상적인 사회를 묘사한 풍자적인 이야기였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기독교적 양심에로의 부름이었다. 요컨대 모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선한 이교도들이 그가 살던 시절의 기도교국인 영국 사회보다도 오히려 더 훌륭한 사회를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모어의 동료 순교자인 피셔(1469-1535년)도 또한 이교도들의 고전의 연구가 기독교인의 생활을 배제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생활에 공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고자 노력했다.

당시의 교황으로 있던 니콜라우스 5세는 열광적으로 아무런 제한도 없이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였다. 니콜라우스에게서 휴머니즘적인 학문과 세련된 취향은 기독교의 겸손과 비 이기심 그리고 도량과 합류되었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그의 사랑은 인간의 영광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자의 영광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2)에라스무스 : 르네상스 시대의 기독교휴머니즘의 강점과 약점은 당대의 가장 유명한 휴머니스트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9?-1536년)의 생애에서 예증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신부이자 학자인 에라스무스를 의심스러운 가톨릭 신자로 평하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 무지하고 비열한 성직자들과 수도승들에 대한 그의 조롱과 신학적인 사상에 대한 지나친 비평은 적어도 조금은 그가 살던 시대의 교회의 몇몇 실제적인 오류를 제거해 보고자 하는 진지한 바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성직자들의 연구와 배움을 통해서 초기의 기독교가 부활되기를 바랐다. 프로테스탄트적인 종교 개혁가들과는 달리 그는 교회의 연합을 깨뜨리지 않고 교회의 연합 안에서 부활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에라스무스는 신약성경의 비평적인 희랍어 원문을 출판했고 또 그 원문의 라틴어 번역판도 만들어 냈다. 그는 또한 그리스와 라틴의 교부들에 대한 새로운 편집 판들을 저술하기도 했다.

신약성경의 원문의 새로운 고찰을 통해 교회의 개혁에로 접근한 또 다른 한 사람의 휴머니스트는 프랑스 신학자인 쟈크 르페브르 데타플르(Jacques Lef-evre d'Etaples; 1450?-1537년)이다. 그가 제시한 많은 진술에서 비록 경솔하고 이단적이기는 했지만 르페브르 데타플르는 자신의 신앙에 충실했고 자신의 학문을 통해서 공헌해 보고자 성실히 노력한 사람이었다.

5. 현대 :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경과 그들의 완전성에로의 가능성에 대한 낙관론이 현대의 교황들에 의해 거듭해서 선언되어 왔었다. 교황 피우스 11세는 젊은이들의 기독교 교육에 대한 회칙인 [Divini illius Magistri](신적인 교사, 1929년)에서 진실 된 기독교인이라면 이 세상에서의 모든 행위를 부인하지 않고 이들을 초자연적인 세계와 조화시킨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피우스 11세는 말하기를 "진실 된 신자는 이처럼 인생에 있어서 단순히 자연적인 것을 고상한 것으로 높이며 또 그것을 위해 영적이고 영구적인 것을 위해서와 마찬가지로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질서 속에서 새로운 힘을 확보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유사한 휴머니즘적인 주제가 교황 피우스 12세(1939-1958년 재위)의 전 재임기간에 침투되어 있는 휴머니즘은 보편적으로 주목되었고 또 음미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한 교황 요안네스의 따뜻한 배려와 또 교회 내부적인 문제는 물론 외부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그의 정직한 평가는 여러 분야의 다수의 비기독교 신자들의 존경을 받았다.

파리의 대주교인 엠마누엘 카디널 수하드(1874-1949년)는 자신의 목회서신인 [Essor ou declin de l'Egglise](오늘날의 교회, 성장이냐 쇠퇴냐?)에서 제반 인간사에 있어 교회가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데 대한 문제를 토론하였다. 그는 현대사회에 대한 적절한 기독교적 접근에 관한 폭넓은 개요를 성정하였다.

그의 서신은 현대 기독교휴머니즘의 고전적인 표현으로 여겨지게끔 되었다. 극히 중대한 기독교휴머니즘에 대한 방침이 마리땡(Jacques Maritain)의 [True Humanism](진정한 휴머니즘: 1938년 불어로부터 번역됨)과 반(Gerald Vann)의 [On Being Human](인간적인 것에 대하여, 1933년)에서 도슨(Christopher Dawson)의 여러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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