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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선교사 귀츨라프와 고대도 이야기

작성자고재봉|작성시간24.06.09|조회수126 목록 댓글 0

독일선교사 귀츨라프와 고대도 이야기        

귀츨라프 선교사가 도착하여
복음을 전한 섬이 고대도인가 원산도인가
논의가 활발하지만 우리가 바라 보는 것은
그 옛날 독일 선교사가 정식 신학교 선교학 교육을 받고
이 먼 아시아 끝 동남아시아까지 왔다가
가난하고 외로운 대한민국 섬에 와서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들의 글을 보면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지금도 갖다 준 감자 씨앗의 감사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보령 대천 해수욕장 근처에 가시게 되면
귀츨라프 선교사에 감사한 마음으로라도
한번쯤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방문을 권합니다.

 

독일 출신 목사이자 선교사인
칼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 )는
1832년 조선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그는 독일 프로이센제국 프릿츠에서 기독교 가정의 외아들로 출생하여
베를린 선교대학에서 요한네스 에니케에게 사사를 받고
신학공부을 마치고 동양 선교에 헌신하기로 결심하여
네델란드 선교회의 파송으로 인도네시아,
싱가폴, 태국, 중국에서 독립선교사로 활동하였습니다.

 

1828년 태국을 방문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방콕에서 태국어로 신약성경 전체와 구약성경 일부를 번역하는 등
언어에 천재성을 가진 귀츨라프는 모국어인
독일어와 영어, 화란어, 태국어, 중국어,
일어에도 능해서 이들 언어로 저술과 번역 활동을 하였습니다.
​
1831년 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동안
그의 아내는 쌍둥이 딸을 출산하는 과정에서 태아와 함께 사망하는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정을 멈출수 없어
1831년 6월 3일부터 12월 13일까지 6개월간
중국연안을 다니며 선교 활동을 하였습니다.
​
귀츨라프는 2차 선교여행으로 마카오에서
영국 동인도회사의 용선 계약인 507톤의 범선 로드 에머스트호에
선의(船醫)와 통역관 자격으로 동승하여
조선을 찾아와 통상을 요청한 최초의 서양 선박과 선교사입니다.
​
귀츨라프는 1832년 2월 26일부터 9월 5일까지
마카오에서 출발하여 중국 연안을 돌며 선교활동을 하다가
7월 17일 조선에 들어와 황해도 몽금포항에 정박하였으며,
7월 21일 외연도, 7월 22일 녹도, 7월 23일 불모도를 거쳐,
7월 25일 고대도에 도착하였습니다
'고대도안항 이양선도박(古代島安港 異樣船到迫)'이라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일치합니다.
​

 

고대도에 도착한 귀츨라프는
고대도 관할 홍주목사 이민희를 비롯한 관리들을 만나
통상을 청원하는 서찰과 국왕 순조에게
진상품으로 지도, 천문 과학도서, 모직물, 망원경,
유리그릇과 한문으로 된 신구약완역성경 '신천성서(神天聖書)'등
26종의 서적을 전달하며 통상을 요청하고
조정의 회신이 올 때까지 20여 일 머물며
고대도를 거점으로 원산도와 내륙까지 선교를 하였습니다.
​
고대도에 머무는 동안 빈궁한 주민들의 삶을 목격하고
감자를 전해주며 감자 재배법을 비롯하여
야생포도 생산과 포도즙 제조법을 가르쳤으며
60명의 주민들에게 감기치료약을 나눠주며 의술을 베풀고,
한글 자모를 익혀 한글로 주기도문을 번역하며,
전도지를 나눠주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조정에서는 외국과의 통상을 불허함으로
귀츨라프는 고대도를 떠날수 밖에 없어
8월 17일에는 제주도 연안에 도착하여
일본, 조선, 중국, 만주을 잇는 동아시아 선교 거점으로
제주도의 선교역할을 기술하기도 하였습니다.
​
귀츨라프는 1832년 11월 '중국의 보고 '라는
잡지에 '한글에 대한 소고'를 발표하여
한글을 세계에 최초로 소개하였습니다.

<귀츨라프의 글>
​
"나는 받겠다는 사람에게는
전도문서를 곁들여 복음서를 주었는데
그들은 관심을 가지고 보겠으며 잘 간수하겠다고 하였다.
나를 슬프게 한 것은 그 후 관리들이 책이나
그 외 무엇이든지 받으면 안된다고 금지시킨 것이다
그래서 단추 하나도 받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이 내리기 전에 이미
많은 관리와 서민들이 생명의 말씀을 받았다.(중략)...
​
조선에 파종된 하나님의 진리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없어질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주님께서 예정하신 때에 푸짐한 열매를 맺으시리라.
가장 낮은 서민들도 글을 읽을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알 때 아주 재미있었다.
​
그들은 다른 종교가 들어오는 것을
질투하리 만치 편협한 것 같지 아니하였다.
이 나라에는 종교가 거의 없는 것이 명백하여
우리는 용기를 내어 복음을 전파할 궁리를 하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쇄국정책을 거두어
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실 것이다."

 

칼 귀츨라프(1803~1851)는
1866년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보다 34년,
1884년에 영국인 의료선교사 알렌보다 52년,
1885년 입국한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 보다 53년이나
이 땅에 최초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주기도문(신천성서 1823년, 순조왕에 진상한 성경,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여 전파하였습니다.
귀츨라프는 감자 씨와 함께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고
고대도가 최초의 재배지역이 되었던 것입니다.
귀츨라프는 서양 근대 의술을 베풀었고
최초로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등
그의 최초의 업적은 선교 외에도 많습니다.
칼 귀츨라프 선교사는 동북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1851년 48세의 나이로 홍콩에서 생을 마치고
홍콩 외국인선교사 묘역에 잠들었습니다.
​

 

​<귀츨라프 기념공원 귀츨라프의 7가지 업적>
​
1. 최초로 한국에 온 개신교 선교사
2. 최초로 한글로 주기도문 번역 시도
3. 최초로 한문 성경과 한문 전도서적의 전달
4. 최초로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체계적으로 소개
5. 최초로 서양 감자 파종
6. 최초로 서양 선교사로서 서양 의술을 베풂
7. 동북아시아를 위한 최초의 세계적 선교전략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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