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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St. Augustine)의 고백록

작성자고재봉|작성시간24.08.11|조회수412 목록 댓글 0
어거스틴(St. Augustine)의 고백록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의 죄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통회했는데, 이때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듣게 되었다. “톨레레게(tollelege, 집어서 읽어라), 톨레레게(tollelege, 집어서 읽어라)”라는 노랫소리였다. 그는 성경책을 펴서 단번에 눈이 닿는 곳을 읽기 시작했다. 로마서 13장 13절~14절 말씀이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죄를 해결 받은 것이다. 주후 386년 여름, 그의 나이 32살 때였다. 이같은 회개는 지난 30여 년 동안 아들을 위해 기도한 모니카의 눈물의 결실이었다." - 본문 중에서 -
 
​1. 어거스틴의 생애
 
  어거스틴이 태어난 것은 지금부터 약 1600여 년 전인 AD 354년 11월 13일,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였다. 오늘날의 알제리 연안 도시인 아나바에서 남쪽으로 약 96km쯤 내려가면 소우크 아라스라는 곳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로마인들이 라틴어로 '타가스테'로 이름을 지어 부른 도시였다.

  어거스틴의 아버지는 파트리키우스였고 어머니는 모니카였다. 아버지 파트리키우스는 지위가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자기 읍에서 세금징수의 책임을 맡은 관리 생활을 하면서 조그마한 농장을 경영하던 이교도였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는 어렸을 때부터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주일날의 예배 참석은 물론 금식기도와 교회의 주요 행사에 참여하는 등 신앙생활을 해 온 사람이었다. 그녀는 현세보다 내세에 더 관심이 있었으며, 자기보다 남을 더 사랑했고 언제나 자기를 절제하는 조용한 금욕생활을 좋아했다.

  어거스틴은 6살이 되었을 때 고향 타가스테(Thagste)에 있는 모범학교에 입학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라틴어를 좋아했고 헬라어를 잘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선생님이 매를 때리는 것 때문에 공부에 흥미를 잃고 방종 하는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타가스테 지방에는 로마처럼 커다란 노천극장이 있었고, 사냥하며 즐기는 유흥과 오락 시설, 그리고 목욕탕과 유원지 등이 많이 있었다.

  어거스틴은 15살이 되든 해 상급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마다우라로 갔다. 마다우라는 타가스테로부터 남쪽으로 32km 떨어져 있는 도시였으며, 이교의 신전과 신상이 많은 도시였다. 그가 마다우라의 학교에서 공부한 것은 주로 문학과 수사학이었다. 이 두 가지의 학문은 아버지 파트리키우스의 말처럼 당시 사회에서 출세하기 위해 필수적인 학문이었다. 어거스틴은 이 두 가지 학문에 대해, 훨씬 후에야 깨닫지만, 하나님만 섬기도록 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문학과 수사학 교과서의 내용은 대부분 고대의 신화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마다우라에서 지낸 생활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가정의 형편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며 그는 고향 타가스테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때부터 그는 소망을 잃었다는 생각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날마다 불량한 친구들과 공중목욕탕에서 지냈으며 정욕에 사로잡혀 있었고, 재미 삼아 도둑질을 하며 지냈다.

어거스틴의 방탕한 생활이 계속되고 있던 동안 어머니 모니카는 눈물의 기도를 계속했다. 아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싶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없었다면 틀림없이 어거스틴은 죄악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소망을 잃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있던 어거스틴은 17세 때(AD 371년) 카르타고로 가서 다시 공부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친구이며 국제적인 변호사였던 로마니아누스가 어거스틴의 학비를 지원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무렵 어거스틴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BC 104-43)가 지은 「홀텐시우스(Hortensius)」라는 책을 읽고 크게 감동했다. 이 책의 내용은 무엇보다도 음행을 경계하여 주었고, 절제 없는 부도덕한 생활을 경계하여 주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값지게 얻은 것은 신을 생각하도록 만들어준 일이었고, 나아가서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게 배웠던 하나님을 생각하도록 만들어준 일이었다.

  어거스틴은 카르타고에서 진리를 갈구하다가 마니교(Manichaeism, 摩尼敎)에 빠지게 되었다. (19세~28세) 마니교는 마니라는 사람이 가르치기 시작한 종교로,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조로아스터교에 근거를 두고 불교와 기독교, 유대교 등의 가르침을 혼합시킨 것이었다. 당시 이 종교는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대단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카르타고에서 공부한 지 4년 만에 그는 수사학 교사가 자격을 얻었다. 그때 나이 21살이었다. 그는 고향 타가스테로 돌아갔으나, 어머니의 환대를 받지는 못했다. 그가 마니교도였기 때문이며, 어머니의 허락을 받지 않고 동거하던 여자와 그녀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동행했기 때문이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해마다 5월 4일을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특히 이날 부르는 노래는 모니카의 눈물을 주제로 그 가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무렵 어거스틴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가장 친한 친구가 중병을 앓다가 죽은 것이었다. 그 친구는 어거스틴과 같은 타가스테 출신이었으며 동갑이어서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그러던 그 친구가 중병을 앓고 눕게 되자 어거스틴에게서 전도 받은 마니교를 버리고 어릴 때 믿었던 기독교로 돌아가 세례를 받은 뒤 죽게 된 것이었다.

  절친한 친구가 죽은 뒤 어거스틴은 슬픔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르타고로 갔다. AD 376년, 당시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카르타고로 온 어거스틴은 수사학을 계속 연구하는 한편, 학생들을 가르치며, 로마와 밀라노에서 온 유력한 인사들과 교제하였다.

  어거스틴은 마니교의 선생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는 파우스터스를 만난 이후로 마니교를 버리게 된다. 그는 카르타고에서, 이곳을 방문한 파우스터스를 만나게 되었는데, 어거스틴이 질문한 것에 대해 파우스터스가 답하는 것을 듣고는 마니교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AD 383년 어거스틴은 로마로 가서 수사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의 로마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심한 열병을 앓으면서 거의 죽을뻔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운데 한 가지 기쁜 것은 고향 친구이며 로마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있던 알리피우스를 만나게 된 사건이었다.

  로마에서 뛰어난 수사학자로 활동하던 어거스틴은 로마의 시장인 심마쿠스와 교제를 나누게 되었고, 그의 추천을 받아 밀라노로 가게 되었다. 밀라노에서 그는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만나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이때부터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의 설교는 명연설이었으며 큰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누구에게나 자애롭게 대하는 훌륭한 인격과 그러면서도 위엄있는 태도 역시 큰 감동을 주었다. 어거스틴은 이곳 밀라노에서 어머니 모니카를 모신다.

어거스틴은 밀라노에서 많은 가족을 거느리게 되었다. 어머니가 밀라노로 올 때 혼자 온 것이 아니라 형님과 형수, 그리고 13살 난 그들의 아들까지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당시 동거녀와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가족은 모두 일곱 명이 되었다. 이러한 공동생활은 어거스틴 말년에 그가 수도원 운동을 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수도원 생활이란 곧 그와 같은 공동생활이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의 어머니가 그에게 결혼을 권유했을 때 그는 이미 다른 여자와 동거 중인 상태였고 아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동거는 부모님의 동의를 받지 못한 것이었으며, 결국 어머니의 뜻에 따라 동거 중인 여자와 헤어지고 다른 사람과 정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혼을 하고 2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어거스틴은 자신의 정욕 때문에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이런 일을 저지르면서 부끄러워하고 고민하였으나 중단하지는 못했다. 이처럼 정욕 때문에 몹시 번민하고 있던 어거스틴의 삶에 여전히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또 다른 번민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수사학자로서 어린 황제를 칭송하는 연설문을 쓰는 일이었다. 당시 황제는 14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암브로시우스(Ambrosius)의 스승인 심풀리키아누스로부터, 기독교를 반대하다가 결국 기독교로 개종한 빅토리누스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또, 폰티키아누스로부터 사막의 수도사 안토니우스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의 죄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통회했는데, 이때 아이들의 “집어 읽으라(톨레레게, tollelege)”는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듣게 된다. 그는 성경책을 펴서 단번에 눈이 닿는 곳을 읽기 시작했다. 로마서 13장 13~14절 말씀이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죄를 해결 받은 것이다. 주후 386년 여름, 그의 나이 32살 때였다. 이같은 회개는 지난 30여 년 동안 아들을 위해 기도한 모니카의 눈물의 결실이었다.

  회심한 어거스틴은 수사학자로서 황제에 대해 글을 쓰던 작업과 직업적으로 제자를 가르치던 일을 관뒀고, 정혼을 했던 여자와도 파혼함으로써 관계를 정리했다. 그리고 그는 카시키아쿰 지방으로 옮겨 기도와 성경 말씀 묵상으로 시간을 보냈으며 저술 활동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이곳에서 5개월을 보낸 뒤 밀라노로 돌아와 스승 암브로시우스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어거스틴의 나이 33살 때 어머니 모니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더 이상 오스티아에 머물 수 없어 로마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기독교의 모든 문물과 순교자의 무덤들을 둘러보았다. 이후 고향 타가스테로 돌아간 그는 재산을 정리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의 집은 수도원으로 고쳐 수도 생활에 들어갔다. 이 수도원은 훗날에 ‘어거스틴 수도회’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그의 나이 38살이었던 주후 391년에는 힙포의 감독 발레리우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힙포교회의 성직자가 되었으며, 후에 감독이 되었다. 힙포의 감독이 된 어거스틴은 수도원을 힙포로 옮겼으며, 마니교 지도자와 공개토론을 함으로써 마니교의 허구성을 알렸다. 또, 교회 내에서 해 왔던 잘못된 일들을 개혁했다. 그때까지 교인들은 순교자나 성자들을 기념하는 날에 그들의 무덤에 음식을 차려놓고는 큰 잔치를 베푸는 잘못된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금지한 것 등이다. 어거스틴은 자신이 일으킨 수도원 운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정신을 이상적으로 추구하고 싶어 했다. 공동재산을 강조했고, 먹고 마시는 일에 절제하기를 원했으며, 남을 함부로 비난하지 말라고 했다. 또, 검소한 옷차림과 구제를 권면했다.

  그의 저술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고백록』이었는데, 이 책은 성직자 생활을 시작한 397년경부터 쓰인 것으로 자신이 내적으로 치렀던 여러 가지 정신적 싸움을 표현했다. 어거스틴의 말년 무렵에 로마제국의 멸망의 길을 치닫고 있었다. 고트족의 로마 침입에 이어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침공해 살인과 고문, 방화를 일삼으며 이 일대를 휩쓸고 다녔다. 그는 끝까지 힙포를 지키며 하나님께 이 도성을 지켜달라고 간구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76세, 주후 430년이었다.
 
​2. 고백록 요약
 
제1권 어린 시절
 
  내 어렸을 적의 죄란 무엇이겠습니까? 언제나 마구 보채면서 탐욕적으로 젖가슴에 매달렸던 일 아닙니까? 자기에게 해로운 것을 기어코 보채는가 하면, 슬기로운 어른들과 자애로운 부모에게까지 고집을 피우고 앙탈을 부렸던 짓을 두고 어찌 그것을 어렸을 적의 일이라 하여 잘할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린이를 두고 순결하다고 하는 것은 그 지체가 여리다는 것뿐이지, 그 마음 바탕까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소년기에 나는 워낙 글쓰기와 읽기, 익히기 등이 모자랐기에 계속 매를 맞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여! 그때 내게 실력이 모자랐던 것은 주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과 기억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투기장과 연극장 등 너무 노는 일에만 한눈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보다 실력이 나은 자는 부러워하였지만, 실력이 뒤진 자는 예사로 얕잡아 보았습니다. 더구나 나는 부모님의 물건을 몰래 훔쳐내기까지 했습니다. 헛된 욕심이 그런 일을 저지르도록 만들었지만, 어떤 때는 친구들에게 그것들을 나눠 주면서 으스대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2권 사춘기의 분요함
 
  나는 돌이켜 내 지난날의 잘못들, 그리고 육체와 영혼의 부패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져 버렸던 나를 주님은 받아들이셨고, 허다한 욕망 속에서 파묻혀 버렸던 나를 주님은 친히 불러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내게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런 충고를 무시했습니다. 내가 가졌던 희망은 주님께 가는 천국이 아니었고, 오직 학문에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나는 도적질을 사랑했습니다. 무엇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불의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감미로운 것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으며, 조금도 흠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것으로서 빛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진리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3권 마니교(Manichaeism, 摩尼敎) 신자가 되다.
 
  나는 다시 카르타고에서 학생 시절을 보내며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었습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비참하게도 관능적인 대상과의 접촉에서 얻어지는 욕정에 내 몸을 불태우는 일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사학 학교에서는 상당한 우등생으로 대우를 받게 되면서부터 전보다 거드름을 피우고 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무렵 나는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읽게 되었는데, 나는 이 책을 반복해 읽으면서 불멸의 예지에 대한 애끓는 갈망이 일어났으며, 주님 앞으로 돌아가도록 나 자신을 힘차게 일으켜 세웠습니다. 참다운 예지는 주님 안에만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성서로 마음을 돌려 그 본질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려 했으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육체에만 잡혀있는 수다스러운 말쟁이들(마니교)의 손에 잡히었습니다. 나는 마니교인들의 말에 따라 아브라함과 이삭, 모세 등 의인들의 행동을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들이 주님의 영감을 받아 말했던 예언까지도 짓밟아 버렸습니다. 나의 어머니 모니카는 죽어가는 나의 영혼 상태를 목도하면서 주님께 간청했고 주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제4권 마니교의 늪에서
 
  내 나이 열아홉부터 스무 살까지 9년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 욕심에 휩싸여 스스로 시험을 받고 또 남을 시험하는 일을 하는 자들이었으며, 스스로 속임을 받고 또 남을 속이는 일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나는 수사학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한 여자와 육욕을 채우기 위한 동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점성술에 취하기도 했으며 고향 친구의 죽음을 겪으면서 비참한 심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5권 마니교와의 결별
 
  나는 거의 9년이나 마니교를 추종했으나 그동안 혼란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파우스투스를 한 번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질문에 답변이 궁색해질 때마다 마니교도들은 으레 그를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차에 그를 만나게 되었으나 나의 갈증은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말이 달콤했던 것뿐이었습니다. 나는 로마의 시장 심마쿠스를 통해 밀라노의 수사학 선생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주님의 경건한 종으로 알려진 암브로시우스를 만났습니다. 마니교 파우스투스의 구변은 이단의 거짓 교리를 담고 있었으나,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는 사람을 구원할 진리를 담고 있었습니다.
 
제6권 정신적 방황이 계속되다
 
  내가 진리를 찾는 일에 방황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믿음이 굳센 어머니가 내 곁에 와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든 현몽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나는 암브로시우스를 존경하면서 그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독신 생활이 내게는 어렵게 보였습니다. 아무리 탁월하다 해도 많은 유혹이 있을 텐데, 어떻게 싸우고 있을까? 역경에 부딪히면 어떤 위로를 받게 될까? 나는 그런 일들을 겪어 보지 않았기에 짐작조차 못 해 본 일이었습니다. 나의 죄악은 늘어만 갔습니다. 나는 그동안 동거해 왔던 여자를, 결혼에 지장이 된다는 이유로 내 곁에서 떼어 놓았습니다. 그녀는 두 번 다시 남자를 알지 않겠다고 주님께 맹세하면서 자기가 낳은 자식을 남겨 두고선 아프리카로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나는 또 다른 여자와 동거를 하게 되었는데 이도 역시 정식 결혼이 아니라 육욕의 노예 생활을 계속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제7권 플라톤주의의 영향
 
  악하고 죄 많던 내 청년기는 이미 지나가고 장년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 무렵 나는 플라톤 학파의 서적들을 통하여 무형의 진리를 탐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진리를 보이는 창조물을 통해 깨우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성서, 그중에서도 사도 바울의 서한들에 심취하였습니다. 주님의 능력은 주님을 알게 하고 모실 수 있도록 만들 뿐 아니라, 길이 멀어 허덕이는 자를 붙들어 이끌어 주기까지 합니다.
 
제8권 회심을 위한 마지막 싸움
 
  나는 세속 생활에 싫증이 나 있었고 돈과 명예, 허욕에도 벌써 진절머리가 나 있었습니다. 주님의 감미로운 맛과 주님 집의 아름다움을 절감하고 나서는 더욱더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여자에게만은 끈질기게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번민을 하면서 심신이 피로해져 갔습니다. 나는, 궁중 시위로 같은 고향 사람인 폰티키아누스의 권고를 받아들여 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나 자신은 추악하고 더럽고 참혹한 상처투성이였는데 일부로 모른 척했던 것입니다. 깊은 자성을 통해 나의 비참한 모습이 드러나게 되자, 눈에서 소낙비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때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있었습니다. “집어 들고 읽으라”는 노래였습니다. 나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성경을 펴들고 첫눈에 띄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롬 13:13) 그 순간 내 가슴에선 칠흑 같은 어둠이 걷히고 거룩한 기쁨이 넘쳤습니다.
 
제9권 세례를 받음
 
  나는 수사학 교수직을 버리고, 다시는 내 몸을 더럽히지 않으리라 결심했습니다. 나는 내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밀라노로 갔습니다. 내 아들은 그때 15세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재능에 있어선 귀중한 아들이었습니다. 나는 아들과 함께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성례에 참여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그녀의 나이 56세, 내 나이 33세 되든 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녀의 영혼은 육체에서 풀려난 것입니다. 그녀는 내게 “어디를 가더라도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제10권 내적인 성찰
 
  사람들은 나의 고백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저들은 내 병을 조금도 고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설혹 그들이 내 사정을 다 듣더라도 정작 사람의 사정은 그 사람의 속에 있는 영밖에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주님을 찾는 것은 영원한 생명 안에서 내 영혼이 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주여! 나를 정욕의 수렁에서 끌어내어 주소서. 맛있는 것을 먹고자 탐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름다운 모양과 고운 색깔로 인해 내 영혼이 흐려지지 않게 하소서. 지식과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안목의 정욕을 채우려 하지 않게 하소서.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허영심을 버리게 하소서.
 
제11권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 이전의 시간을 상상하면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하나님께서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을 하셨는가에 대해 어느 누가 의문을 가진다면, 그는 마땅히 그런 잘못된 의문에서 깨어나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길고 긴 시간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주님이 마련한 것이며, 주님께서 만들지 않은 시간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을 적엔 ‘그때’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모든 과거와 미래까지도 다 포함하는 영원이라는 현재로서 현존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12권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천지’의 뜻
 
  본래 땅은 공허하여 아무런 모양이나 생김새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모양이 없는 것에서 모양을 만드셨고, 우리가 경탄해 마지않는 거대한 것들을 지으셨습니다. 실로 기묘하기 짝이 없는 우주, “빛이 있으라” 하신 그 이튿날에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낮은 듯 높고, 적은 듯 풍성하니, 원컨대 모든 이가 알아듣고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허탄한 것은 버리고 진리만을 갈망하기 원한다면 진리의 샘물이신 주님만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제13권 창조주 되신 삼위일체의 하나님
 
  성부 되신 당신께서 우리 지혜의 근원 되신 당신의 “지혜로”(시 104:24)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당신의 ‘지혜’는 당신께로부터 났으며, 당신과 동등하시고 당신과 똑같이 영원하시니, 곧 성자이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영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2)라는 말씀을 통해 성령을 발견했습니다. 보소서! 내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나이다.
  나는 당신을 잊었어도 당신은 나를 잊지 않으셨나이다. 이제 내가 당신을 부르오니,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내가 부르기 전에 당신은 먼저 찾아오사 갖가지 방식으로 말씀하셨나이다. 당신이 내 모든 죄과를 도말하사 당신을 배반한 내 손을 벌하지 않으셨음이니이다. 내가 무슨 선을 행하든지 당신은 그에 앞서 나를 도우셨으니, 이는 내가 행한 선으로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에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었나이다.
 


참고문헌
 
성 어거스틴.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 김광채 역 개정판;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4.
성 어거스틴. 『참회록』 오병학, 임금선 공역 개정판; 서울: 예찬사, 2006.
오병학. 『어거스틴』초판; 서울: 규장문화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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