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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발랏 Sanballat

작성자soul|작성시간24.11.18|조회수145 목록 댓글 0

산발랏 Sanballat             

 

히)'싼발라트 סנבלט ; 아카드어로는 '신 - 우발릿'(Si-n- uballit)으로서 "신(Sin, 월신을 의미함)이 생명을 주었다"는 뜻이 있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 방해한 사람들의 지도자였다. 그는 호론사람(Horonite)으로 불리워졌는데, 이는 그가 에브라임의 벧 호론(Beth - ho - ron)지역이나 모압의 호로나임(Horonaim) 지역에서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이 자신의 통치 지역인 사마리아 지역의 주민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감소시키고, 사마리아인들의 반발이나 페르시아 통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될까봐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에 대하여 업신여기고 비웃으며(느 2:19; 4:1-3), 살육하기도 하고, 해하기도 하며(6:1-4, 10-13), 유다 사람들로 하여금 페르시아에 대항하여 모반하도록 음모를 꾸미는 방법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하였다.

 

이집트의 엘리판티네에서 온 편지(Elephantine papyn) 에는 '들라야'(Delaiah) 와 '셀레먀'(Shelemiah)라는 산발랏의 아들들이 등장한다. 이 두 아들의 이름은 여호와(Yahweh)라는 글자의 단축형의 결합으로 되어 있다. 이는 산발랏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맏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로 인해 다수의 사마리아 종교 집단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 사마리아 사람) 유다의 대제사장의 손자인 엘리아십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없는 동안 산발랏의 딸과 결혼했는데(13:28, 이로 보아서 산발랏이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을 반대했다고 해서 유대 공동체와의 관계를 끊어 버리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일 때문에 느헤미야는 돌아오자 그를 도시에서 추방해 버렸다(28-29)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사마리아 성전은 당시 사마리아의 통치자였던 산발랏과 유대 대제사장의 아들, 또한 동생으로 알려진 산발랏의 사위였던 므낫세(Manasses)의 지휘하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산발랏은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과 관련된 인물이다. 따라서 이 산발랏은 느헤미야 시대 보다 훨씬 뒤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사람리아 공동체와 그 공동체의 기원에 관한 사마리아인들의 논쟁에 기초를 두고 있는 요세푸스의 기록은 느헤미야 시대의 산발랏과 같은 이름을 가진 후대 사람과의 사이에서 많은 혼동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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