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정경화과정, 외경, 위경, 사해 두루마리 사본
신구약 중간기의 문헌들
유대인들에게 히브리 성경은 토라(율법), 느비임(전기 및 후기예언서), 케투빔(성문서 집)으로 구분됩니다. 이것은 24권으로 되어 있는데 표준역에 의하면 39권입니다. 이 히브리 성경은 영감을 받은 책이며 <정경> 대접을 받은 책들은 “부정한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책들이었습니다. 이는 율법서와 예언서와 성문서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히브리 성경의 일련의 책들은 ‘정경화’에 대한 찬반양론이 계속되었는데 힐렐학파와 샴마이 학파사이에 아가서와 전도서를 두고 의견이 충돌하였습니다. 결국 AD90년 얌니아 회의에서 힐렐 학파의 의견을 받아들여 아가서와 전도서를 정경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AD.90년 얌니아 회의는 구약은 24권 표준역으로는 39권을 정경으로 정하는 매우 중요한 종교회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 표준역 39권과 신약 27권 사이인 신구약 중간기에 유대인들이 또 다른 많은 문서를 남겼습니다. 신구약 중간기에 유대인들이 남긴 문서들은 크게 외경과 위경과 사해 두루마리 사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경
먼저 <외경>을 살펴 보겠습니다. 외경은 본래의 히브리어 성경 외에 따로 첨가된 자료들이라 하여 개신교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본래 의미는 ‘감추어진’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해 ‘가짜’라는 뜻도 됩니다.
현재 개신교는 구약 39권과 신약27권 즉 66권을 정경이라 합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신약은 27권으로 개신교와 같지만 구약은 39권에 7권의 외경이 더해져 46권을 사용함으로 가톨릭의 성경은 66건이 아닌 73권입니다. 그렇다면 개신교와 가톨릭의 성경이 이러한 차이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이것의 열쇠가 바로 외경(가톨릭의 제2의 경전)입니다.
| 가톨릭성경 | 구약 46권(외경7권 포함), 신약27권, 신구약73권 정경 |
| 개신교성경 | 구약39권, 신약27권, 신구약66권 정경 |
70인역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은 처음에는 모세오경만을 번역했으나 200년에 걸쳐 점차 히브리어로 된 39권 성경이 다 번역되고 거기에 후대의 15권이 더해져 BC50년까지 54권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70인역이 헬라제국 전역으로 퍼지게 된 것입니다. 유대 본토에서는 여전히 히브리어 성경을 사용했지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이미 사어가 된 히브리어 성경보다는 헬라어로 된 70인역을 주로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성경의 경전문제(왜냐하면 70인역은 매우 가지 있는 작업이었지만 히브리어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책들이 있고 배열순서도 히브리어 성경과 다르기 때문에)를 가지고 성경학자들이 AD90년에 얌니아(예루살렘 부근의 지역)에 모여 이 문제를 가지고 토의 했습니다.
이 얌니아 회의의 결정은 아가서와 전도서를 포함한 구약성경은 39권이고 헬라어로 된 15권의 후기문서는 정경으로써 자격이 없다는 것을 천명하고 이들을 정경에서 제외시킨 것입니다. 얌니아 회의를 통해 정경에서 제외된 15권의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1957년 영어 개역 표준성서에 실린 각권의 명칭입니다.
| 1.제일 에스드라 2.제이 에스드라 3.토비트 4.유딧 5.에스더 부록 6.지혜서 7.집회서 8.바룩 9.예레미야의 편지 10.아자리야의 기도와 세 젊은이의 노래 11.수산나 12.벨과 용 13.므낫세의 기도 14.마카베오 상 15.마카베오 하 |
그러나 헬라 문화권에 속하여 70인역을 오랫동안 경전으로 익숙하게 사용하던 로마교회와 유럽의 교회들은 얌니아 회의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초기 로마교회내에서도 15권의 후기문서에 대해서 경전의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혹평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제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불가타 성경(제롬의 라틴어 번역)
그러다가 AD390년 로마교회(가톨릭)는 70인역을 라틴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때 히에로니무스(제롬)을 비롯한 많은 사제들이 구약의 헬라어로 기록된 후기문서들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구약 39권을 정경으로, 후기문서 15권은 <외경>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외경은 경전과 동등하지 않지만, 읽어서 유익한 교회의 책”이라는 해설을 붙였습니다. 이 라틴어 성경을 <불가타성경>이라고 부릅니다.
문희석은 <불가타성경>은 제롬의 라틴어 번역이라고 말합니다. 이 제롬의 번역사업은 AD405년에 완성되었고 제롬이 번역사업을 벌인 목적은 전에 있었던 벤투스 라티나보다 나은 라틴어 성경을 만들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불가타성경>은 종교개혁운동 당시까지도 가장 권위 있는 성경으로 가톨릭교회의 예배에서 경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트리엔트종교회의
그러나 종교걔혁 이후 30년이 지나 1546년의 트리엔트종교회의에서 가톨릭교회가 후기 15문서 가운데 11문서를 제2경전으로 승격시켜 구약성경에 포함시키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 이유는 개신교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구약성경을 39권으로 주장하는 것은 유대교의 전통을 따른 것이고 이는 사람뜰에게 혼란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가톨릭교회가 사용하는 성경에는 이 후기 11문서(7권)가 포함되어 있어서 구약이 46권이고 이 성경이 현재 가톨릭교회의 정경이 된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개신교 구약성경은 46권이 아닌 39권이 되었을까요? 이는 1517년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라틴어 번역본인 <불가타성경>대신 팔레스타인 공동체에서 사용했던 <히브리어 원어구약성경>을 가지고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불가타성경>의 외경부분에 해당하는 문서를 성경에서 제외시킨 것입니다. 정경의 문제는 이렇게 교회 역사에서 오랫동안 생각이상으로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정경화 과정 정리
| AD90년 얌니야회의 | 구약39권만을 정경으로 인정, 후대에 번역된 15권을 정경에서 제외시킴 |
| AD309년 로마교회 | 구약39권을 정경으로 인정, 후대의 15권을 <외경>으로 분류, 불가타성경(제롬의 번역) |
| AD1546년 트리엔트 종교회의 (가톨릭 성경) | 15문서 가운데 11문서(7권)를 제2정경으로 승격시켜 구약에 포함시킴, 현재 가톨릭교회의 정경이 됨 |
| AD1517년 종교개혁 (개신교 성경) | 마틴루터가 독일어 성경 번역작업시 <불가타성경>대신 <히브리어 원어 구약성경>을 가지고 번역하면서 개신교는 구약성경이 39권으로 결정됨 |
위경
신구약 중간기의 문헌들 가운데 두 번째는 <위경>입니다. 위경은 ‘거짓이름(가명)으로 기록된’이라는 뜻으로 외경보다 훨씬 범위가 넓습니다. 학자들도 위경의 범위에 대해 아직까짇도 일치된 견해를 내어 놓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만 대략 17개에 달하는 문헌을 일컫습니다. 위경은 외경을 포함해 예수 탄생 이전 몇세기 동안 즉 신구약 중간기와 AD.1세기에 기록된 문서들을 말합니다.
위경은 크게 팔레스타인에서 기원한 것과 헬라에서 기원한 것으로 구분합니다. 먼저 <팔레스타인에서 기원한 위경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1.제1에녹서 6-36, 37-71, 83-90, 91-104-BC164년경 2.희년서 BC150년경 3.12족장의 유언서 BC140-110년경 4.솔로몬의 시편 BC50년경 5.욥의 유언서 BC.1세기 6.모세의 승천서 AD.7-28년 7.예언자의 생애 AD1세기 8.이사야순교사 AD1-50년 9.아브라함 유언 AD.1-50sus 10.아브라함 묵시록 AD.70-100년 11.제2바룩서 혹은 바룩의 묵시록 AD50-100 12.아담과 이브의 생활 혹은 모세의 묵시록 AD.80-100 |
<헬라에서 기원한 위경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13. 무녀의 신탁서:3권,4권,5권 14. 제3마카비서 15. 제4카카비서 16. 제2에녹서 혹은 에녹 비밀서 17. 제3바룩서 |
사해 두루마리 사본
신구약중간기의 문헌들 가운데 세 번째는 <사해 두루마리 사본>입니다. 사해 두루마리 사본은 쿰란 사본이라고도 부릅니다. ‘사해 두루마리’라는 용어는 1947년 이래로 사해의 몇 계속에 위치한 동굴들에서 발견된 많은 문헌을 말하는 포괄적 명칭입니다. 이 문서들은 가죽에 쓴 것들이 대부분인데 혀내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긴 것은 8.6m나 되는 것도 있습니다.
레이먼드 설버그는 사해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들을 한데 모아 정리했는데 연대별로 다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51년 헤브론 동편의 사해로 들어가는 와디 다라야 지방의 한곳인 무라바아트의 두 동굴에서 무더기 자료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것들의 연대는 로마의 통치기간으로 바르 코흐바에 의해 AD.131-135년에 일어났던 제2의 유대인 반란과 관계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1952년에도 한 무더기의 파편들이 비잔틴 왕조의 폐허가 있던 키르벳 미르드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자료들에 수록된 언어는 헬라어와 히브리어, 팔레스타인의 아람어이며 그것들의 기원은 기독교시대의 5세기와 8세기 사이로 연대가 추정됩니다.
1960년과 1961년 또 다른 문서들이 엔 게디의 남쪽 유대광야에 있는 나할 헤버와 나할 세엘림에서 탐사중이던 히브리대학의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견되었습니다. 1960년 ‘두루마리의 동굴’이라 불리는 하나의 동굴은 나할 세엘림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곳은 바르 코호바의 시대에 누군가가 그곳에 거주했다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편지의 동굴’이라 불리는 나할 헤버의 다른 동굴은 바르 코흐바 자신이 쓴 시편의 단편들과 15개의 파피루스를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듬해인 1961년 50또는 60통의 편지들이 더 발견되었고 이후 1967년에는 The Temple Scroll’ 도 발견되었습니다.
와디쿰란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또 다른 자료들과 이따금 ‘사해 두루마리’라고 불립니다. 이 두루마리들은 4천개 이상의 단편들이 1947년부터 지금까지 조사되었던 259개 중의 각기 다른 동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학자들은 그것들의 연대를 BC.200년부터 AD.70년까지로 추정합니다. 쿰란의 필사본과 자료들은 가죽과 파피루스, 동판들로 된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