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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문화

작성자뉴부산|작성시간18.08.16|조회수57 목록 댓글 0

선교와 문화

 

 
 
이 책의 주체는 복음과 인간의 문화, 문화적 차이와 선교사, 문화적 차이와 메세지, 이중 문화적 단체라는 4가지 이다. 책의 저자는 그의 사역을 바탕으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요청하고 있다.
 
 
1. 복음과 인간의 문화
설교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만 갖추면 가능할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그러나 통문화적, 통역사적인 전달이 필요하다.
인류학은 첫째 통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 둘째 성경번역과 같은 특별한 선교업무에 관한 통찰 셋째 회심의 과정 이해 넷째 청중에게 적합하게 복음전달 다섯째 문화 차이 사이에서의 가교설정 등에 대하여 안목을 제공해 준다.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의 이야기이다. 선포와 말씀, 그리스도 중심으로 동일화해야 한다. 성경적 메세지의 의미를 인식적 차원, 감정적 차원, 평가적 차원의 3차원에서 총체적으로 이해함을 통해 전체적으로 보편성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필요로 한다.
서방문화와 기독교를 동등시하는 문화우월주의, 제국주의적 상대주의를 딛고 성육신을 통해 변혁에로 도전해야 한다. 복음이란 문화 가운데 주어진 하나님의 메세지이다.
 
 
2. 문화적 차이와 선교사
선교사, 동일화, 생존, 사역
사람과 문화에 대한 오해, 우리에 대한 오해, 복음에 대한 오해 등이 문화 충격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관계하는 방법, 생각하는 방법의 차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화 충격을 경험한다.


문화충격의 증세와 원인으로는 첫째 언어 충격 둘째 일상성의 변화 셋째 관계 넷째 이해력의 상실 다섯째 감정적, 평가적 방향성 상실로 인한 기대감 좌절 등이다.


증세로는 첫째 스트레스 둘째 육체적 아픔 셋째 위장, 위선 등으로 인한 심리적,영적 억압 등이다.
이러한 문화 충격의 극복 과정은 여행자수준에서 - 생활인 - 학습 - 포기하든가 도전하든가 하는 단계를 거치면서 이루어 진다. 선택 -회복을 통한 새 문화와의 결속, 나눔과 인정과 융통성을 통하여 현실화 - 이상 추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어떻게 문화 충격을 딛고서 통문화적 이해와 전달이 가능한가?


중요한 방법은 감정이입이다. 이 감정이입은 언어, 의식주, 교통수단, 주거 등에 있어서의 동일화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나 완전한 동일화는 불가능하다. 능력의 한계가 엄존하기 때문이다.


세계관의 추정은 대부분 함의적이고, 북미인의 세계관은 우리가 가끔 인정하기를 원하는 것보다 더 깊은 뿌리를 가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통문화적인 상황에서 일할 때 우리는 문화적인 편중성의 내용과 범위를 인식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자문화중심주의와 상호 오해를 줄이도록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문화적 차이와 메세지
성경을 현지어로 변역할 때 상징성을 번역하면서 의미의 상실과 추가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다. 유사 메세지를 통한 쌍방 통행은 응답-변화를 기대하도록 한다. 성경에 대한 이해, 수용자 중심,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의사전달은 중요하다.


복음의 메세지는 지역 문화의 카테고리안에서, 그리고 세계관 가운데서 표현되어져야 하고, 그것은 성경적인 내용으로 채워져야 하며 혁명화해야 한다. 비판적 상황화는 만민 제사장 의식, 성령의 역사, 교회 공동체의 과업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신앙은 삶의 총체적인 방법(체계) 속에서 온전한 비찬적 상황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
 
 
4. 문화적 차이와 이중 문화적 단체
선교사들 사이의 갈등이 존재할 수 있고 선교사를 파송한 내국인 지도자들 사이의 세대차가 또한 존재한다. 이것을 극복하는 한 방법으로 이중문화의 창조를 들수 있다. 선교사는 이중문화의 가교로서 이중 문화를 창조하여야 한다. 동일화(성육신) - 삶의 방식과 인간 이해를 통해 - 변화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 진다.


미완성의 과업인 선교를 이해함에 있어서 국제적인 관점, 인구 증가, 도시화, 폭력, 가난, 기근, 압박과 부정의, 국가주의, 비기독교 종교들의 부흥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어떻게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떤 역할을 통해 복음화를 이루어 낼 수 있겠는가? 전체속에서 통시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 평 가 >
 
 
이 책은 선교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점들에 대한 안목과 대안을 저자의 경험을 통해 제공해 주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글의 흐름 속에서 서구 선교사들이 지니는 문화와 세계관의 차이에서 오는 인식의 한계도 엿볼 수 있다. 특히 저자는 이슬람에 대한 언급을 통해 지신의 견해를 저자의 인식의 한계로 국한 시키고 있다.


“기독교 선교에 반사적으로 자극된 비기독교 국가에서 성장하는 ...선교 정신이 있다. 예를 들면 이슬람도 원유생산과 판매를 통해 얻어진 자금으로 이슬람 선교에 나셨다. 그리고 오늘날 그것은 기독교 보다 더 빨리 자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슬람의 특성에 대한 선입견일 뿐이며 또한 이슬람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나 힘을 주지 못하는 관점이다.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겪고 있는 선교지에 대한 몰이해나 편견 그리고 문화충격으로 인한 현지 부적응의 문제가 선교의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외국 선교사들에게 있어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동일화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고 있는 언어에 있어서의 적응에 있어서 한국 선교사들은 다른 나라의 선교사들에 비해 적응성이 약하다. 효율적인 사역을 위해 현지 언에에 대한 원활한 적응이 꼭 필요하다. 생활 양식에서도 현지인들과 비교되는 고차원의 생활를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중문화적 과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의 선교사의 역할은 제한되어야 한다. 결국 복음화는 현지인들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복음화는 현지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구조를 지녀야 하며, 현지인들의 오류와 실패할 가능성을 인정함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결국 선교의 중심 주체는 선교사가 아니라 현지의 교회와 현지인들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선교사 문화적 차이와 갈등을 극복하고 미완성의 과업인 올바른 성경적 상황화를 이루어 내기 위하여 할 수 있는, 하여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 그중 몇가지를 점검하고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선교를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돌성
이것은 선교 현장에서 업적주의로 나타난다. 선교운동 자체가 쉽지 않은 일로서 소위 숫적 부흥을 이루고 있다면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달성이 오히려 반감되거나 부작용 발생하고 있다. 서로 협력해야할 선교 단체끼리 궁극적인 목표인 선교보다는 경쟁으로써의 선교 단체끼리의 세력다툼으로 선교 정책은 선교기관과 교단 선교부와의 갈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언어 및 현지 적응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자신의 나태함으로 인해 선교사가 접근하기 쉬운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민 목회가 주요한 전략인 것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참된 선교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발견하고 현지에서 언어와 현지적응에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2) 성경적 상황화의 결여
선교에 대한 방법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그 연구가 기존의 공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함으로 인한 비실제적인 경우와 교단간 선교단체간의 협력 고려가 거의 없는 까닭에 중복으로 인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다. 또한 있더라도 선교 방법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부족한 가운데 평면적인 선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선교지에 적합한 선교 전략의 부재는 선교지 정보획득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사전답사나 기존의 자료분석을 통한 선교지의 풍습, 습관, 문화전반에 걸쳐 얻을 수 있는 정보 획득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함으로 선교을 창조적고 도전적으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기존의 자료를 충분히 습득하며 현지의 풍습과 습관 및 문화적인 정보를 빠르게 입수하여 적응하며, 선교지에 대한 사전 답사 또한 필요하다.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현지에 가서도 실패하게 됨으로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충분한 훈련과 문화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현지에서 선교사들과 선교단체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선교하는 각 단체들끼리 협력하여 이중의 물질을 소비하는 낭패가 있지 않도록 도와가며 선교해야 할 것이다.


한국 선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비판적 상황화를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는 선교사의 자질의 함양과 선교적인 정책의 수립하는 것이다. 선교지에 대한 몰이해는 결국 상황화를 이루어 낼 수 없으며, 선교 운동의 실패로 드러날 수 있다. 과업 중심의 정책은 선교사가 선교지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하고 적응하여 올바른 선교 정책을 수립할 여유를 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는 종족입양운동의 강화와 선교지 연구 프로젝트의 효율적인 활용과 실천이다. 단기선교 운동이나 선교 답사들이 이것을 위하여 대안적 방안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 응 용 >
 
 
1) 종족 중심의 선교 인식의 회복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선교 인식은 또다른 문제점이 되고 있다. 선교사, 선교지는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지녀야 한다. 선교사의 역할이 선교지에 좋은 열매로 나타나야 할 것이고, 선교지가 선교사에게 살기에 적절하여야 한다. 살기에 적절하다는 것은 체질적인 차원에서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선교사가 잘 적응할 수 있는 곳이어야 됨을 말한다. 전혀 신체적으로는 적응하지 못하면서 사명감으로 자신의 체질에 부적절한 지역에서 애쓰고 사역하는 경우도 보게된다. 선교지에서의 선교사역이 삶에 바탕을 두는 것이라 할 때 생존이 위협을 받고 있거나 생존하기에 급급한 가운데서 어떤 삶을 살아 낼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문제점들의 바탕에는 선교를 지역 중심으로 보는 것에 그 원인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선교는 지역성을 중심으로 하기 보다는 종족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을 따라가는 선교하는 것이 올바르다.  
  
 
2) 열정주의를 극복하는 연구나 대안 모색
하나님께서도 선교에 있어서 타문화권에 대하여 철저히 이용하셨다. 여호수아 시절에 가나안 정탐 이후의 가나안 정복의 과정에서 이에 대한 관점을 지원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도 유대 문화 편향적인 베드로나 사도들을 유대인 사역으로, 헬라 문화에 적응되어 있던 바울과 바나바 등을 이방인 선교에 동원하시는 것 등을 통하여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질적인 문화권, 타문화권에 대한 이해나 적응 없이 이른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준비해 놓으셨다는 열정을 가지고 선교지에 들어서고 있다. 선교지에 대한 이론적 토대가 성령의 역사를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타문화권의 이해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지방중심의 선교를 하므로 전체적인 면을 바라보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요즘 미종족전도의 하나로 입양하여 그 종족을 위하여 기도하며 물질로 도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역에 있어서 나의 체질이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무리이다. 현지적응에 감당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열정만을 가지고 들어가는 선교사님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맞지 않은 생각이다. 열정만을 가지고 들어가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무조건 주님이 준비하리라는 생각으로 나아가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선교를 하러 나가는데 있어서 철저한 준비가 없어서는 안된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충분한 조사와 현지적응 그리고 그 다음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선교지원 네트웍크 구축
선교지에서의 중복 지원과 투자는 효율적인 선교를 방해하는 중요한 요인이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단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이나 전 세계적으로 선교에 대한 정보가 공유될 수 있어야 하고 공유된 정보에 의해 각 지역별 선교사별로 필요한 사항을 센터에서 점검하고 지원 할 수 있도록 조치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각 교단의 선교 정보가 공유되야 하며, 뿐만 아니라 개별 선교단체들의 선교 현황도 사실 그대로의 상태로 서로 정보가 공유되어야 한다.


그 이후에 각 선교단체와 각 교단의 선교 관련 기구에서 연합체를 구성해서 지역과 선교사별 지원사항을 연구하고 지원규모를 책정해서 효율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실시하는 것이다.


  
 
< 통 합 >   
  
 
선교의 목적은 이방인들을 개종시키고 더 나아가서 교회를 설립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눈 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 11:25, 26) 누가가 사도행전 등을 기록한 모든 것을 볼 때 그것은 이방인에게까지 넓혀진 포괄적인 구원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뉘우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도 있겠지만 이미 복음은 전세계적이고 전인류적인 부분으로 확산되었다. 이제 천국은 믿음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부여된 기회인 것이다. 우리가 선교적 사명을 다하게 될 때 온 열방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날 곧 온 세계에 하늘나라의 복음이 전파되는 때야말로 종말이 될 것이다. 여기서 선교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바빙크는 복음주의적인 토착화를 적극 인정하였는데 복음이 토착문화형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은 복음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고 하였다. 선교를 함에 있어서 문화에 대한 열린 시각이 참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새롭게 도전되어진다. 문화속에는 한 민족의 삶과 생각의 형태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문화의 구조속에는 종교적인 신앙이 은밀히 결합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인간의 죄로 인해서 오염되었기에 바빙크는 문화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조명으로 즉 엘렝틱스로 변혁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타종교란 본질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인간의 죄성과 부패된 성품, 사탄의 영향력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조명속에서 변화시켜서 바른종교 즉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이 엘렝텍스를 하기 위해서는 타종교를 이해해야 하며 장기간의 세월이 요구되어지는 것이다. 세계관의 전체적인 변혁이 없이 서구 기술문화만의 전수는 진정한 복음전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선교는 종말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다. 종말의 절정은 오직 미래의 시대에 가서야 이루어질 것이다. 선교활동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 자체의 일부이다. 보에티우스는 선교의 목적을 세가지로 정의했는데 곧 이방인의 회심과 교회의 설립과 하나님의 은혜를 확증함과 영광 돌림이라고 했다. 이들 중 제일 첫째는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의 영광이며 둘째는 교회의 설립이며 세 번째가 이방인의 회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교의 목적은 우선적으로 하나님에게 그의 영광과 그의 나라에 있다고 할 것이다. 선교사는 새로운 개종자들이 그 사회내에서 가져야 할 책임의 한계에 대해서 재치있고 주의깊게 지적해 주어야 한다. 신자의 생활을 이방인의 생활양태에 적응시키고 토착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생활을 소유하여 그것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에 대해서 열린 시각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이 자라온 환경과 문화에 대해서 부정하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대상들에 대한 문화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와 함께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분명히 알고 이해함가운데 엘렉팅스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가 대하는 사람들의 특수한 상황과 환경에서 접촉점을 찾고 그들의 문화를 잘 인식하고 그들과의 접촉점에 대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복음이 살아있는 인격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역시 살아있는 인격을 통해야만 한다. 따라서 날마다 나의 인격이 그리스도를 닮는 경건의 생활로서의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남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내가 변화된 인격을 소유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열린 시간을 가지되 우리에게는 성경의 원리를 배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의 도전 속에서 성경의 글자에만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원리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상식과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문화 속에는 우리의 상식도 필요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기도도 필요할 것이다.


모든 선교사가 갖추어야 될 것중 하나는 자신의 생활과 자기도 모르게 갖고가는 문화에 대해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선교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쉽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 앞에서 준비된 모습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내 주관이나 내 관습을 죽이는 내 십자가를 지는 고난을 통해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고립될 수 없고 항상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교회의 일상생활에서 져야할 계속적이고 고된 책임이다. 세상의 주목을 끄는 문제는 진정 그리스도를 통한 주목이어야 하며 고난을 감수할 수 있는 주목이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의 주목 이전에 하나님 앞에 홀로서야 할 단독자의 모습이 먼저 선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선교지에서 접근과 관련해서, 첫째로 우리가 대하고 있는 사람을 보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환경, 문화, 개인적인 문제를 통해서 먼저 벽을 허무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로 접근은 사랑으로 충만한 만남이어야 한다. 나도 같은 죄많은 똑같은 인간임을 느끼며 그들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변화시킬 준비를 하고 있어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대일 대화를 통해서 우리의 인격 또한 그들을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작업을 하는 것이다. 나의 인격 수양에 힘을 실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의 사명은 땅끝까지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선교의 중요성은 그만큼이나 부각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실지로 복음을 다른 민족에게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하는 사실을 책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하나님의 굉장한 역사도 일어나지만, 또한 마귀의 역사도 만만치 않게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의 선교의 방향이 전략적이어야함을 생각해 본다. 선교사도 목회자만 가던 옛시절에서 무엇인가 그 사회에 들어가 그들 속에서 어떤 일을 통해서 그들을 가르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가야 할 것이다.


바울이 장막짓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복음을 전했던 것에서 더 나아가 내가 일하는 이 일을 가르치고, 또한 이 일로 이윤도 내면서 그들속에 복음을 전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모습이 단지 그 사회문화를 순식간에 파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과 융화될 수 있게 때로는 기다림의 모습도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융화됨의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상황신학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상황에 대해서 지혜롭게 대처함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구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이성, 지혜, 상식 등 모든 것이 그 상황하에서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선교사역이 힘들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깨닫는 사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종족에 관한 전도에 있어서 선교세터의 역할을 하는 기구가 잘 협력하여 많은 물질이 헛되이 낭비되지 않도록 잘 도와 지역을 혹은 종족별로 나누어서 전도에 힘쓴다면 효과적인 전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철저한 준비로 현지에 적응하지도 못하면서 그 곳에 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도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열정만 가지고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사전답사와 현지적응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만이 선교에 있어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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