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전도의 목적

작성자고재봉|작성시간22.06.14|조회수24 목록 댓글 0

전도의 목적           

 

교회가 새롭게 개척되고 확장되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성장한 모 교회가 있어야만 하였다.

120명에게 3,000명이 더하고, 다시 5,000명이 추가된 예루살렘 교회야말로 이 사명을 감당할 선교의 센터가 될 수 있었다.

이 센터를 향해서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고” 다t; 돌아가 자기가 있는 지역에서 교회를 세워 나감으로 예루살렘 주변과 우대, 사마리아, 갈릴리 자방에 수많은 교회들이 개척되고 확장되어 나갔다.

 

오순절 아침 저들이 설령의 권능을 받은 후 시작한 활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사도들이 담대히 말씀을 전파(행 2:14)

② 기도에 전혀 힘씀(행 2:42)

③ 상부상조하여 각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 줌(행 2:43-44)

④ 날마다 성전에 모이길 힘씀(행 2:46)

⑤ 성도의 교제 생활에 힘씀(행 2:46)

⑥ 하나님께 찬송(행 2:47)

⑦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음(행 2:47)

⑧ 날마다 교육과 전도(행 5:42)

⑨ 최초의 집사의 선택과 역할부여(행 6:1-6)

⑩ 평신도의 전도와 개척교회(행 8:4-7)

⑪ 사도들의 개척교회 지원(행 8:14-24)

 

이로 인하여 교회는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행 2:47).

 

1. 전도의 방해

어떤 전도자의 말이다.

“예수 믿고 구원얻읍시다”고 했더니, “예수 안 믿고 10원 얻을래요.” 하드란다.

물론 전도의 방해는 있다.

 

기독교의 매너리즘(mannerism) 때문에 오늘의 간디(Gandhi)를 잃고 있다는 일화가 있다.

또한 성령의 울타리 밖에서 서성거리는 크리스천 이방인 때문에 전도의 문이 막힌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말 유교의 영향과 불교의 영향도 전도의 장애를 만든다. 그러나 먼저 전도자 자신에게서 그 방해(상습적인 6無)를 진단해야 할 것이다.

 

① 무성경(무성경) - 성경 말씀을 전하는 자가 가령 유다서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몰라서

야 되겠는가?

② 무성령(무성령) -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 인간의 방법에 의존한다.

③ 무기도(무기도) - 기도를 앞장 세워라. 무기력한 기도는 무 기도와 같다.

④ 무확신(무확신) - 확신이 없으면 활동이 없고, 활동이 없으면 열매도 없다.

⑤ 무애정(무애정) - 전도는 구령의 열정이다. 따라서 무애와 무정은 저주와 살인이다.

⑥ 무관심(무관심) - 관심이 없고야 발길이 옮겨질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믿도록 예정해 두셨다면 전도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고 예정론을 비난한 사람이 있다.

성경은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전도를 받지 아니했다고 했다.

그의 전도에 능력이 없어서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 때문이다.

그래서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요 10:26)고 하셨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누가 택한 사람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땅 끝까지”(행 1:8), 그리고 “만민에게”(막 16:15), “무조건” 전도해야 한다(고전 9:16). 또 하나님은 누구의 전도를 통하여 구원받을 것까지 아 예정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인본주의 서계관이 방해한다.

① 인본주의 서계관은 하나님이 창조주요 사람은 그의 피조물이라고 하는 순서를 바꿔 놓았다. 이점에 있어서는 한 치도 물러 설 수가 없다.

창조주이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인본주의 세계관은 자기를 자기 자신의 신으로 만든다.

 

② 그것은 인간 자신의 본성에 대한 그릇된 지식을 가르친다. 사람을 하나의 소유주라고 할 때 이러한 과오를 범한다.

 

③ 그것은 인간의 능력에 대하여 오해하며 그의 힘의 한계선을 무시한다.

자유의지는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정당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권능과 권위에 대한 승리를 의미하는 깃발이라고 생각한다.

 

④ 그것은 사람 자신에서 출발하므로 진리는 그것이 종교적이건, 세속적이건, 과학적이건, 철학적이건, 그 가치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으로 본다.

 

2) 휴머니즘이 방해한다.

① 그것은 피조자로서의 인간의 본질을 그릇되게 소개한다.

만약 사람을 소 우주라 기술이라고 본다면, 만약 한 행동의 가치를 개인 감정의 토대 위에서만 평가한다면, 그는 자신이 창조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것은 신학적 인간 이행에 전적으로 모순되는 것이며, 신본주의적 인간관에도 반대되는 것이다.

 

② 그것은 구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신앙의 중요성을 과소평가 하게 된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과학이나 휴머니즘(Humanism)이 그들이 현재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될 모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좋은 선생이나 인애주의자 모른다. 그러나 인류의 구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휴머니즘은 구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절대필요성을 부인한다.

 

③ 그것은 인간의 능력을 과대평가 한다.

만약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는 더 좋은 삶을 가지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개조할 수 있을 것이며, 싸르트르(Sartre)가 말하듯이 하나님의 자비나 은총을 의지할 필요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한다.

 

④ 사람은 자기를 어거할 수 없다고 생각할 없는 인본주의적 이론의 근거해서 형성된 현대 휴머니즘은 현대 사회에 있어서 전도에 대하여 가장 강력한 장애물이 되고있다.

 

3) 자유주의가 방해한다.

① 신학적인 자유주의는 교회의 전통에 따르기를 원치 않는 방법론적 입장이다.

모든 신학적 교리는 과학적인 방법으로서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② 현대 자유주의자들은 성경기록이 역사적으로 사실이며 철학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는데 대하여 자신을 잃고 있다. 그리고 예수의 역사성까지 의심하게 되었다. 그들은 성경의 권위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③ 그들은 성경기록에 대하여 충분한 신뢰심을 가지지 않으며 인류 구원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제공해 주는 것도 부인한다. 만약 기독교의 진리와 생을 상대화하려는 자유주의자들의 원칙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전도열을 완전히 잃어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신양의 필요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4) 혼합종교가 방해한다.

① 혼합종교란 이질적이고 분명히 상이한 전통에 속한 여러 가지 교훈과 교리를 종합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예를 든다면 로마 천주교와 신교를, 또는 기독교와 불교의 교훈과 교리를 종합하려는 시도다. 정말 다른 종교와 철학에 속한 것을 종합하는 것이 가능할까? 초대교회가 전도활동에 성공했다면 그 성공의 한 원인은 당시의 유대교와 지배적인 영향을 가졌던 헬라 철학의 체계에 대하여 타협하지 않고 굳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② 우리는 종교적 다원론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 대화를 가져야 된다고 종종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와 다른 종교 간에 있는 유사한 점만을 강조하고 그 차이점을 과소평가하고 달갑지 않은 차이점만을 설명해 버린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요, 오해하는 것이다.

 

③만약 혼합주의가 현대교회를 지배하고 있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결론이 초래될 것이다.

㉠한 사람도 기독교를 위하여 일생을 바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독교 복음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있는 여러 가지 교훈중의 하나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선교활동은 없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종교적인 교육을 적당히 받은 일반 사람에 게 기독교의 메시지를 선포 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5) 만인 구원론이 방해한다.

만인 구원론이란 모든 존재가 구원을 얻는다는 이론이다.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의 정결을 용하면서 찬반을 논한다. 만인 구원론을 주장하는 듯한 성경 기록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① 모든 인류의 구원을 예언하는 것(행 3:21, 요 12:32, 롬 5:18)

②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 하시려는 뜻을 나타나신 것(딤2:4, 벧후 3:9).

③십자가의 연고로 모든 사람들이 벌써 객관적으로 하나님과 화해되어 있어서 적당한 때에 모든 사람이 구원함을 얻는다는 것(고후5:19, 딛2:11,골1:20, 히2:9, 요일2:2)

 

그러나 이와 반대로 마지막 심판 때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타나 어떤 이들은 구원으로, 어떤 이들은 저주로 선고받은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그리고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주장하는 성경 구절이 많이 있다(요12:32, 5:29, 행3:21, 3:23, 롬5:18).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때에 만인 구원론은 비 성경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도 인류의 마지막 사람 까지도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 만인 구원론자도 전도에 무관심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도에 관한 관심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 있어서 우리의 전도에 대한 관심과 차이점이 있다.

㉠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보다 인류애를 더 강조한다. 그러나 전도의 참 목적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일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기보다 사람들이 이미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강조하는 것이 전도방법이다.

㉢전도에 관한 긴박감이 결여되어 있다. 멸망을 받을 도시를 떠나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피할 것을 강조하는 필요성, 곧 “내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 고 하는 것이 없다. 전도는 여러 가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의 리스트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