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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근본 원리

작성자고재봉|작성시간23.04.22|조회수36 목록 댓글 0
예배의 근본 원리                

서 론
 



예배학은 설교학, 전도학(선교학), 목회학, 상담학과 함께 실천신학 분야의 하나이다. 신앙 인으로서 참 예배에 대한 바른 인식이 목회자들과 교인들에게는 필요하다. 이에 대한 신학적인 정립을 위하여 예배 학이라는 학문적 탐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모쪼록 예배학은 하나님께 대한 참 예배를 바르게 연구하고 체계화 시켜 실제 목회 현장에 적용시키는 과정이 뒤를 따라야 한다. 


Ⅰ.예배의 실재(實在)  

1.예배의 어의(語義) 
예배(Worship)라는 말의 뜻은 원래 앵글로 색슨어(語)의 Weorthscipe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Worth( ```가치가 있는) 라는 형용사와 Ship(신분) 이라는 형용사가 합성되어 추상 명사를 만들고, 다시 Worship 이라는 말로 변하였다. 그 뜻은 가치를 돌린다(to ascride worth)인데, 일반적으로 신을 경배하는 마음, 예배, 숭배, 숭앙(admiration, adoration)이라고 한다. 영국에서는 이 말을 경칭어로 사용하여 각하라 하였으며, 고어에서는 명예, 존엄 등으로 사용되어 훌륭한 인물을 지칭하는 명사(n)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대한 예배(Divine Worship)도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와 그 엄위를 인정하고,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시29:2). 


2.예배의 정의 
예배의 정의는 하나님의 은혜의 계약의 기초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이로워지는 교제(communication)와 만남(meeting)이다. 

또한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예배에 대하여 말하기를“만일 그대가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면 그대는 마땅히 그에게 예배하여야 한다”(Habere Deu- m est coiere Deum)고 하였다. 그리고 헉스터블(John Huxtable)은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대화이다”라고 하였다. 


3.예배의 표현 
예배란 신앙의 필요 불가결한 표현이다. 그 표현인 예배를 통하여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여 나타낼 것인지가 문제인데, 그것은 실제적으로 헌물(offering)을 통하여 표현된다. 헌물이라 함은 봉사와 선물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여 받아 주시기를 바라면서 내놓는다, 또는 바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헌물을 원하심을 알 수 있다(시96:8). 


4.예배의 본질 
하나님과 인간과의 교제는 어디까지나 그 근본이 하나님의 자의식(自意識)과 자기결정(自己決定)에 기초한 인격적 계약 관계이다. 즉 자연적 관계가 전혀 아니라는 뜻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주관적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계약을 지키는 자에게는 영생을 부여하여 영원한 교제를 허락하신다. 
 
원래 예배는 인간이 타락하기 전,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실제적으로 이로워졌다. 즉 교제(communication)와 만남(meeting)의 예배가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한 후 흠 없으신 하나님 앞에서 대화가 단절되었고, 따라서 교제를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도무지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가까이 할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그 죄의 결과이다. 
 
그렇지만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서만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죄인이며 무능한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의 자유의지 안에서 동작된 예지(叡智)요 그 사랑하심이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은 인간을 미리 아시고 선택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또 그 가운데 현존하시고, 궁극적으로 인도하시어 영생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란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와 그 축복에 대해, 주신 믿음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응하고 희생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기독교 예배의 본질인 것이다. 


5.특별 계시인 구약의 예배 
인간에게 특별 계시로 주신 성경에 나타난 구약에서의 예배는 가시적(可視的)으로 나타난다. 즉 구약에서의 예배는 성막과 성전에서 거행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하는 사람들 가운데 임재하신다고 하였다(출25:8, 22. 민17:4) 


1)성막 예배 
구약의 성막은 면회하는 집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성막에 임재해 계시고, 그의 백성과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는다(시42:1-4, 63:1-2). 

성막의 구조는 성소와 지성소로 되어있고 그 사이에 휘장을 친다(히9:1-8, 출25:10-40). 이렇게 휘장을 치는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 하심을 기억하고, 또 그것을 믿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이다. 

구약의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신약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마27:51, 1:23, 사7:14, 요1:1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참된 성전”이시다(요10:19-21, 막14:58). 


①지성소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다. 이 지성소에는 대제사장 1인이 1년에 한 번, 곧 속죄일에 들어가서 자신과 신자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들어갔다.(히9:7) 


②성 소 
흠없고 순전한 동물을 잡아 제단에서 죄의 희생을 드림으로 제사장은 신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③향 단 
향불은 항상 꺼지지 않도록 제사장이 관리하였다. 그리고 향은 오늘날 기도의 상징으로서 가장 순수한 예배행위이다. 


6.특별 계시인 신약의 예배 
특별 계시인 성경에 나타난 신약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예배로 드려져 그 부활하신 날, 곧 일주일의 첫 날인 주일에 예배를 드린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막과 성전은 이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림자로서의 그 사명을 다하였다. 

  신약에서의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모은다는 뜻의 교회(  : 에클레시아)에서 드려지는데 신약의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엡1:23), 하나님의 전(고전3:16), 성령의 전(고전6:19), 하나님의 집(딤전3:16) 등으로 불리워 진다. 사실 신약의 교회에서 행하는 예배는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임재 및 신자와의 교제, 그리고 신자들의 봉사와 헌물등 구약 시대의 성전 예배와 동일한 영적 진리를 갖는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는 그리스도의 통치와 하나님께 대한 예배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리고 그 소속되는 자격에 있어서도 중생한 자들이 속해 있으므로 무형적 교회란 의미에서 같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본래 종말론적 개념이다. 그러므로 신약 교회에서의 예배는 종말에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따라서 종말론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인 천국이라는 의미로 볼 때, 그리스도인은 현재에 천국을 소유하는 자들이다. 즉 오늘 이 시간에도 거리에서나, 가정에서, 직장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에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성스러운 만남을 이룬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은 예배를 통해 비로소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예배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편재와 구별되어 특별 계시에 의한 임재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그리스도의 임재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성령과 말씀에 의한 임재인데 그것은 말씀의 설교와 성찬식에 의하여 가장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7.예배의 요소 
예배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성스러운 교제요 친밀한 만남인데, 여기에는 필연적인 두 요소가 있다. 


①신적(神的) 요소 
예배에서의 신적인 부분으로 하나님이 말씀으로 되어 신자 개개인에게 찾아오시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성경봉독, 설교, 예전, 축도 등이다. 


②교회적 요소 
예배에서의 교회적인 부분으로 신자 개개인이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기도, 찬송, 헌금 등이다. 
③위의 두 가지 요소는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예배 자에게는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수동적 역사를 체험케 하고, 예배자 자신이 하나님 말씀에 응답함으로 능동적인 역사를 체험케 한다. 신자가 예배에 참석하여 이와 같은 쌍방의 역사(신인화합:神人和合)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8.예배의 목적 
사도 바울은 “교회의 덕을 높이는 것”이 예배의 목적이라고 하였다(고전14:3-5, 26. 엡4:11-16). 
칼빈주의를 위시한 개혁파 교회에서는 예배의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고 하였다. 
루터는 예배의 목적을 “죄인의 개종” 또는 “공중의 교육”이라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조심하여야할 경건주의 자들은 예배의 목적을 성도의 교제라고 한다. 
 
이상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진정한 예배의 목적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성도가 완성되며, 죄인이 개종하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 


Ⅱ.예배의 원리  
예배에는 몇 가지 기본 원리가 있다. 이 원리들은 예배 행위를 바르게 정립시키기 위한 것으로서 필수 불가결의 기본 원리이다. 


1.계시와 응답 
예배의 원리는 먼저 하나님의 계시에 입각한다. 하나님은 초월적 지식의 그 깊으신 예지(叡智)로부터 타락한 인간을 먼저 사랑하시고 측량할 수 없는 선하신 계획으로 인간을 끝까지 인도하사 영생토록 구원하신다. 이러한 주권적 하나님의 역사 하심에 대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로서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전한 경외와 감사와 신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예배의 다음 원리는 인간 편에서의 응답이다. 이 응답은 말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와 그 계시의 말씀과 이를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에 대한 인간 편에서의 진정한 응답이다. 

기독교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실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 종교이다. 즉 기독교의 사상은 불완전한 인간 이성의 논리 체계에 입각한 어떤 것이 아니고, 인간의 상상과 추상인식 속에서 창출된 고대 신 개념의 근거 없는 어떤 것도 아니다. 분명한 사실과 생생한 역사적 근거 위에 서 있는 확실함이 있다. 이러한 점이 기독교가 타종교와 다른 점이다. 기독교는 오로지 역사 속에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생생한 역사적 사실 속에서 일하시며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셨다. 하나님은 구약의 역사 속에서는 하나님 자신이 특정한 히브리 민족들의 생활 속에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히브리민족의 역사 속에는 하나님의 계시와 그 민족들의 하나님께 대한 응답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하나님의 종으로 나타난 예언자들을 통하여 선포되었고, 그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미 언약하셨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도성인신케 함으로 타락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무능한 인간들을 다시 살리시는 구속의 대장정을 궁극적으로 성취하신 것이다. 이것이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폭로”(self-disclosure of God)이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대한 교회의 응답이 곧 예배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예배의 핵심에는 항상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와 부활의 놀라운 사건이 반드시 등장해야 한다. 이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선포(saving acts)이며 거기에 대한 인간 편에서의 당연한 응답을 불러일으키는 예배자의 마땅한 도리인 것이다. 진정한 예배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배가 원리적으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응답이라면 그 계시된 말씀의 선포는 예배 자들의 응답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예배하는 곳에는 하나님을 향한 참회와 감사와 헌신과 찬양의 응답이 넘쳐나게 된다. 

2.성령의 내적 증거 

본 장에서 예배의 원리를 말하는 것은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참된 예배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그 내적 증거로부터 출발을 한다. 이미 언급한대로 예배란 하나님의 뜻하심과 그 행동하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그리고 믿음의 응답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신자에게 주어진 불가항력적 은혜의 사실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예배의 응답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신자에게 주어지는 그 은혜이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의 응답을 할 수 있다라고 인간 자신의 자유 의지 안에서 합리화시킨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참된 예배의 원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런 류의 말씀들이 생생하게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 즉“믿으라”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그러하고, 또 “믿어졌다”라고 하는 수동적으로 말씀하시는 그 계시의 뜻이 그러하다. 
 
예를 들면“주 예수를 믿으라”(행16:31)는 명령문(VMAA)으로 그 뜻은“must needs”이다. 이는 반드시, 꼭, 틀림없이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에는 그 시상이 부정 과거형으로 이로워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뜻은 단번에, 계속하여, 변함없이 라는 강조 점을 더욱 부여한다. 그러므로 믿어라 라고 하는 말씀은 “단번에 변함없이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것이다. 여기에 신자 자신의 결정권이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반(反)하여 신자 자신의 전적 타락한 내적 자유가 습관적으로 발동된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이며 주 예수를 믿으라고 증거 하는 성령의 내적 증거를 받아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의 내적 증거는 예배의 응답이 하나님으로부터 신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말씀한다. 그리고 성령의 내적 증거는 고정적으로 또는 기계적으로 신자의 마음을 환기시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신자의 마음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실이 절실하게 느껴지도록 감동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성령의 감동이라고 한다. 이 성령의 감동만이 참된 예배의 응답을 이끌어 낸다. 
 
성경 말씀에 성령의 감동은 모든 기도의 참된 근원이라고 하였다(롬8:26, 히7:25, 요14:-16:). 이와 같이 참된 예배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성령의 간섭 곧 그 억제 하에서의 기도라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성령에 의하여 일어나는 예배의 원리는 자유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억제라는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일련의 무리들이 여기에 대하여 다른 주장을 편다. 즉 성령은 자유의 영으로서 바람처럼 임으로 불며 즉흥적 응답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주장한다.1)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무리는 성령은 자유로운 영적 은사의 표현을 하게 한다고 주장한다.2) 이들은 하나님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전적 타락한 인간의 자유 의지대로 하나님 자신의 사상을 왜곡되도록 방치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는 예배는 하나님의 뜻하시고 의도하시는 바에 의하여 분명히 제약을 받는다. 성령은 영원하며 자기 모순이 없는 진리의 영으로 곧 그리스도의 영이다. 그러므로 그 성령의 기능은 그리스도를 증거 함에 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생각하심과 그 일들을 생생하게 갖고 계시며 그것들을 우리에게도 역시 생생하게 보여 주신다. 
 
예배의 진실성은 예배 형식의 유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참된 예배는 성령의 인도와 보호, 그 감동을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밀접한 연합관계로 이끌어 간다. 이는 분명 참 예배 자는 성령의 지도와 억제아래 있고 그 분의 의도대로 자신을 복종시킨다. 예수님은 요4:24에서 기독교 예배의 원리를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찌니라”. 


3.본질적 공동체 예배 
예배란 개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 전체의 행위이다. 즉 기독교 예배의 원리는 “본질적 공동체 행위”(essentially a cooperative<corpo- rative> activity)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불가항력의 의지로 불러모은 무리인 교회(: 에클레시아)의 기능과 존재 이유는 “본래 또는 반드시, 뚜렷이 하나님께 대하여 공동체적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본질적 공동체 행위는 “없어서는 안될 긴요한 것으로서 완전한 것이며 전혀 나무랄 데 없는 엑스(extract) 같은 향기를 흘러 넘치게 하는 것”이다 라는 뜻이다. 
 
그리고, 공동체(共同體)라고 하는 것은 공동(cooperation)의 어떤 목적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서로 협동(work together)하는 것을 말한다. 바울 사도는 롬8:28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하였다. 즉 서로 합하여 협력과 협동으로 서로 작용하여야 선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선한 목적, 그것은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다. 참된 예배란 이미 말한 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그러한 예배로서 응답하는 것은 그 깊으신 뜻 안에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전적 타락으로 죽을 수밖에 자리에서 궁극적 구원으로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영적으로 죽어버린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贖罪)하여 다시 살려 놓으시고 그 하신 일에 대한 합당한 영광을 우리에게서 요구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요구에 본질적 공동체 예배로서 응답하여야 한다. 
 
기독교 예배의 본질적 공동체 안에는 또 하나의 다른 국면이 있다. 그것은 지상에 있는 유형 교회3)라는 개념과 하늘에 있는 무형 교회4)라는 개념인데, 이 둘을 합하여“우리들의 교회”라고 하며, 이는 한 교회의 두 측면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참된 백성으로 조직된 진정한 교회의 소속이라는 의미이다. 유형 교회와 무형 교회의 예배는 그 속성상 “전 교회”(whole Church)의 예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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