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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장로교 예배의 핵심 원리인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에 대하여

작성자뉴부산|작성시간15.07.23|조회수622 목록 댓글 0

개혁파 장로교 예배의 핵심 원리인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에 대하여

 

 

                -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를 중심으로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서론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것이 옳을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받으실 예배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을까? 우리는 우리의 기분과 취향에 따라 마음대로 예배해도 상관이 없을까?

     성경에는 예배가 무엇인지,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또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는 예배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눈에 확연히 드러나도록 예배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예배에 대한 최고의 기준이 된다. 성경은 비록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예배의 원리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성경구절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다.1) 다시 말하면, 성경은 비록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원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

     그 원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이다.


본론


   1. 요한복음 4장 24절에 나타난 예배의 원리

     기독교회의 예배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성령으로, 진리 안에서”이다. 이 원리는 요한복음 4장 24절에 잘 나타나 있다. 해당구절의 개역한글번역인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의 말씀은 오역(誤譯)으로서, 개역개정판 번역이 잘 번역한 것처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in spirit and in truth) 예배할지니라”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이 말씀에 의하면 신약교회는 성령 안에서, 진리 안에서 예배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령 안에서, 진리 안에서”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먼저, “성령 안에서”라는 말은 우리의 예배가 오직 성령님께 의존하여서 드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2) 참된 예배는 구속함을 입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해서 성령님 안에서 삼위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기독교의 예배는 인간의 의(義)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공로만 힘입어 예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경배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기독교에서는 지성이면 감천이 아니라, 사람의 의라도 다 떨어진 누더기 같은 것이므로 이것으로는 하나님께 감히 나아가 경배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의(義)에만 의존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경배해야 한다.3)

     둘째로, “진리 안에서”라는 말은 요한복음 17장 17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는 말씀과 연관지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예배의 요소만을 사용하고,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들은 모두 제거하고 하나님께 경배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4) 다시 말해 성경의 방법을 따라 예배하라는 명령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원리에 의하면 예배는 아무렇게나 드릴 수 없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에 따라 예배드려야 하며, 예배에는 질서가 있고 순서가 있다. 예배는 어떤 규정된 순서나 규정된 요소들로 짜여진 일정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을 교회 역사에서는 아주 중요하게 여겨왔는데, 특별히 개혁파 교회가 이 부분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2. 규정적 원리를 보여주는 여러 성경구절들


     예배에 있어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에 따라 드려야 한다는 사실은 더 많은 성경구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예배의 방식을 규정해 주시는 장면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출애굽기 25~3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식양(式樣)에 대해 상세하게 계시하신다(esp. 출25:40). 그리고 성막의 식양 뿐 아니라 제사의 세세한 절차들에 대해서도 명령하고 계신다(출25:9,40; 26:30; 27:8; 민8:4; 행7:44; 히8:5). 게다가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신27:5)나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신27:6)와 같은 말씀 등에서는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 있어서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배의 형식을 규정해 주셨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예배의 형식을 규정해 주셨다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레위기 10장 1-7절에 나오는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사건이다.5) 레위기 10장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답과 아비후를 죽이신다.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불이 아닌 다른 불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예배하라고 하신 방식대로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1절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라는 말씀에서 ‘다른 불’이라고 번역된 말은 히브리어로 ‘불법적인 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들이 다른 불을 사용한 것은 그냥 단순히 하나님이 명령하시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서 ‘불법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예배드린 결과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다(레10:2). 이러한 나답과 아비후의 이야기는 아무리 인간이 신실하다 할찌라도 예배라는 것은 인간 자신의 소원을 따라 드려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드려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6)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르게 그분을 예배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이며,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잘못된 방식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복이 아닌 진노를 불러왔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이러한 예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창세기 4장 3-7절에 나오는 가인의 예배나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금송아지 사건, 이사야 1장 10-14절, 사무엘상 13장 8절-14장 2절, 사무엘하 6장 6-7절, 열왕기상 12장 32-33절; 15장 30절, 역대기하 26장 16-23절; 28장 3절, 예레미야 7장 31절, 고린도전서 11장 29-30절,7) 마태복음 15장 8-9절, 마가복음 7장 6-7절, 골로새서 2장 22-23절8) 등에 보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은 예배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9)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좋아 보이는 예배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아주 불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합당한 예배는 인간의 제도나 방법에서 시작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에서 시작된다.10)


   3. 제2계명에 나타난 규정적 원리


     예배에 있어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에 따라 드려야 한다는 사실은 십계명 중 제2계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십계명 중 제1계명부터 제4계명은 예배와 관련된 계명인데, 제1계명은 예배의 대상, 제2계명은 예배의 방법, 제3계명은 예배의 태도, 제4계명은 예배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 제2계명은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준다. 제2계명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잘 가르쳐 준다.

     제2계명은 출애굽기 20장 4-6절에 있는 말씀으로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인데, 이 말씀은 하나님은 ‘형상’이 없으신 ‘영’이시므로,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 ‘형상’을 만들어서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형상화하면 안될까? 그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신4:12,15; 요1:18; 4:24; 롬1:20; 골1:15; 딤전1:17; 6:16).11) 영이신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을 왜곡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그 영에게 예배해야 하는 것이지, 어떤 형상을 만들어서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2계명을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이 명령하는 방식으로 섬기라는 계명이다. 그러므로 제2계명의 궁극적 의미는 우리가 예배할 때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2계명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대로 섬겨야 하는 것이지, 우리가 생각해 내어 섬기면 안된다는 것이다.

     제2계명은 요한복음 4장 24절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 사실이 더욱 분명해 진다. 요한복음 4장 24절은 우리에게 “진리 안에서” 예배할 것을 가르치는데, 그에 앞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방법대로 예배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하나님의 속성인 영이신 것과 연관짓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4장 24절이 제2계명의 궁극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제2계명은 요한복음 4장 24절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방법을 따라 예배하라는 명령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제2계명이 말하는 우상숭배란, 하나님을 인간이 원하는 방식과 생각에 따라 상상하여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에 따른 예배에 대해 불평을 하고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제2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배 중에 허락하신 은혜의 방편인 말씀과 성례, 기도를 통해서 주시는 은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은혜를 찾는 것이 바로 제2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이렇게 제2계명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시인 성경말씀을 통하여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예배하라는 명령이다.


   4.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라고 칭함


     지금까지 살펴본 말씀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에 대한 규범은 인간적인 창의성이 아니라 성경이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드리는 ‘태도와 동기’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이시는 것이 아니라,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신다.12)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 지를 말해주는 최고의 규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죄성은 계속해서 새로운 예배 방법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기보다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예배로 바꾸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예배하라고 명령하신 방법대로 예배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기독교회의 예배의 원리와 형태와 내용을 제공해 준다. 참된 예배는 성경에 의해 규정된다. 성경만이 기독교 예배의 형태와 내용을 궁극적으로 규정한다.13)

     이렇게 성경의 방법을 따라 예배하라는 가르침을 가리켜서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라고 부른다. 혹은 줄여서 RPW 라고 하기도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 속에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를 규정해 주셨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새로운 것을 덧붙이는 것에 대해서 청교도들은 골로새서 2장 18,23절 말씀에 근거하여 ‘자의적 예배’(will-worship)라고 불렀다. 아무리 신실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생각에 따라 예배를 드리는 것은 자아-예배의 행위이며 특별히 우리 자신의 의지와 원하는 것을 반영하는 예배일 뿐이라는 의미에서이다.14)


   5.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신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RPW)는 성경 본문 뿐만 아니라 신학적 원리를 따라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그 신학적 원리란 바로 ‘오직 성경의 원리’이다. 개혁교회, 장로교회는 ‘오직 성경’을 중요한 신학적 모토로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제2절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범이 된다. 그러므로 예배에 있어서도 ‘오직 성경’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 규정적 원리는 ‘오직 성경’을 강조하는 종교개혁의 원리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이 신앙과 삶의 최종적인 권위인 것처럼,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공적으로 예배드릴 것인지에 대한 최종적인 권위가 된다.15) Sola Scriptura 일 때에 Soli Deo Gloria 할 수 있다.


 

   6. 예배의 주체가 하나님께 있다는 관점에 기초하여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RPW)는 기독교회의 예배가 인간 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하신 일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라는 정의를 생각해 보면 더욱 합당하게 받아들여진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즐거워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WLC 1; WSC 1).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자신이 직접 계시하신 말씀인 성경을 통해 그분을 기쁘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을 우리끼리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16) 하나님께서 예배 가운데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성경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예배에 있어서 오직 그러한 것들만을 행해야 한다.


   7.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 타락 교리에 기초하여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RPW)는 개혁주의 신학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교리”와 “인간의 전적 타락 교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교리”에 의하면,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 중심적인 예배이어야 한다.17)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예배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영광 돌리려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인간의 전적 타락 교리”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방식대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18) 이러한 교리에 따라 진정한 예배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 따라야 한다.19)


   8. 공예배에 드러나야 할 ‘규정적 원리’


     이러한 규정적 원리는 특별히 공예배 가운데에 드러나야 한다. 그냥 성도들이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하며, 그 가운데 설교가 있으면 그것이 공예배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공예배는 보편적 질서와 직분적 기능 속에서 드려져야 한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예배 가운데는 마땅히 있어야 할 내용들이 있어야 하며 공교회적 질서에 따라 예배가 이루어져야 한다.20) 그러므로 우리는 공예배에 있어서 매우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예배의 중요한 부분들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방법대로 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물론 예배드릴 때에 긴 의자에 앉아야 하는지 아니면 개인의자에 앉아야 하는지, 예배 시간은 얼마나 오랫동안이어야 하는지 등과 같은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게 해도 상관이 없다.

     간혹 어떤 분들은 사무엘하 6장 12-23절에서 다윗이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집으로부터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아랫도리가 벗겨지는지도 모르고 즐거워했던 장면을 근거로 예배는 개인의 자유로운 태도로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본문은 사적인 예배의 근거는 될 수 있지만 공예배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본문은 아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예배할 때에는 어떠한 형식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공적으로 교회가 함께 모여 예배할 때는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에 따라 해야 한다.


   9. 개혁파 장로교 예배의 원리


     이러한 사상에 따라 개혁파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는 예배의 요소만을 사용하려고 하였고,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들은 모두 제거하고 예배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개혁(장로)교회는 “예배의 방식과 요소들에 대해 하나님 말씀의 공인이 있어야만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였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받으실 만한 방식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제정되며, 그의 계시된 뜻에 의해 제한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을 성경에 규정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예배해서는 안되며, 명령되지 않은 것은 금지된다는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가 강조된 것이다.21) 


   10. 종교개혁사에 나타난 규정적 원리


     특별히 이 원리는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생겨났다. 이 원리가 생겨나게 된 배경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중세 시대에 로마 가톨릭은 예배에 있어서 성경에서 명령한 것 외에 교회가 자의적으로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는 것에 있어 자유롭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중세 시대의 예배는 정말 혼잡한 예배였다. 그리하여 종교개혁의 기간 동안에 예배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서 루터파 교회(Lutheran Church)는 주어진 예배의 실제가 성경에 숨기워지지만 않았다면 그것은 허락된 것이라고 믿었다. 다시 말해 성경이 금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입장이다. 이것을 가리켜 ‘허용적 원리 혹은 규범적 원리 혹은 표준 원리’(normative principle)라고 한다.22) 이 원리에 의하면 성경에서 명백하게 금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예배에 허용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성경에서 댄스나 드라마의 사용을 명확하게 금지하지 않았으니 얼마든지 예배에 사용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설교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루터파 교회의 견해는 문화를 중립적인 것으로 보면서 사람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에 따라 과감하게 예배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개혁파 교회(Reformed Church or Calvinism Church)는 달랐다. 루터보다 좀 더 성경에 충실하려고 했던 깔뱅은 하나님께서 말씀에 명령하신 방식으로 예배해야만 하며, 어떤 것도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깔뱅은 “율법 가운데서 규정된 적합한 예배”가 있다고 하면서,23)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일정한 규범을 따라 자신을 예배하시기를 원하신다고 말하고 있다.24) 예배를 비롯한 모든 문제에 대해서 깔뱅은 “나는 성경에서 도출된, 따라서 전적으로 신적인 하나님의 권위에 근거한 제도들만을 시인할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25) 깔뱅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관습은 신앙을 촉진하지 않고 오히려 퇴색시킨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런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니라 “부패하고 오염된”(vitiated) 것이고, “허구적인”(fictitious) 것이며, “미신적인”(superstitious) 것이라고 한다. 오직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진리를 각인할 때만 예배의 관습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 깔뱅의 생각이었다.

     예배에 있어 이렇게 엄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깔뱅은 “타락한 인간 속에 남아 있는 종교성의 씨앗은 인간을 참다운 하나님께 인도하기보다는 자기 욕구에 따라 하나님을 만들었기 때문”이며, “인간은 모두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우상 만들기 전문가로 준비되어 태어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한 깔뱅의 영향을 받은 개혁파 교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가르치신 것만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노력해 왔다. 다른 일에서와 같이 하나님을 경배할 때도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고 하나님께 어떤 순서를 마련해 드려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가르치신 것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 근본적 생각이었다. 따라서 개혁파 교회는 “예배 방식과 요소들에 있어서 하나님 말씀의 공인이 있어야만 한다”는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에 늘 충실해 왔다.26)


   11.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에 나타난 규정적 원리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예배의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를 오랜 기간 동안 논쟁했고 그 논의의 결과가 개혁주의 신앙고백을 표현하고 있는 벨기에 신앙고백서(7,32조)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96문답),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WCF 1:6,8; 20:2; 21:1; WLC 108-110; WSC 51)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먼저,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7조 “성경의 충족성”에 관한 조항을 보자.


제 7 조  성경의 충족성

The Sufficiency of Holy Scripture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또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할 모든 것을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체 방식the whole manner of worship이 성경 안에 충분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성경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은 심지어 사도라 할지라도 그 누구도 불법입니다unlawful.2)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바대로,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불법입니다(갈1:8).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인해서(신12:32),3) 성경의 교리는 모든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4) 우리는 제아무리 거룩한 사람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쓴 모든 저작에 대하여 신성한 말씀the divine Scriptures과 동등한 가치value를 가진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관습custom이나, 위대한 다수의 견해the great multitude나, 고대의 유풍antiquity, 시대와 사람의 계승succession, 공의회councils나, 법령 혹은 규칙decrees or statutes 등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진리와 동등한 가치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무엇보다도 우선하며,5) 모든 사람들은 다 스스로 속이는 자liars이고, 입김breath보다 가볍기 때문입니다(시62:9).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요한이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4:1)하고, 또한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1:10)고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바대로, 이 절대무오한 규범infallible rule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배격reject해야 합니다.6)


     이 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체 방식the whole manner of worship이 성경 안에 충분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는 부분에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가 언급되고 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32조 “교회의 질서와 권징”에 관한 조항을 보면,


제 32 조  교회의 질서와 권징

The Order and Discipline of the Church


     우리는 교회를 치리하는 자들이 몸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질서를 세우는 것to establish이 유익하고 좋다 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지not deviate from를 항상 살펴야 함을 믿습니다.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도입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양심을 억압하고bind 강요하는compel 인간적인 모든 고안물들inventions이나 규범들laws을 배격합니다reject.2) 우리는 조화와 일치를 보존하고 증진시키며,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모든 것을 지키게 하는 적법한 것만을 받아들입니다.3) 이 목적을 위하여 권징discipline과 출교excommunication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시행되어야만 합니다.4)


1) 딤전3:15   2) 사29:13; 마15:9; 갈5:1   3) 고전14:33   4) 마16:19; 18:15-18; 롬16:17; 고전5장; 딤전1:20


 

     여기에서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지not deviate from를 항상 살펴야 함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도입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양심을 억압하고bind 강요하는compel 인간적인 모든 고안물들inventions이나 규범들laws을 배격합니다reject. 라는 부분에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가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제2계명을 다루고 있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96문답과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08-110문답, 소요리문답 51문답에 잘 나타나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96문답을 보면,


96문: 제2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을 형상image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고,1)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서 명하지 아니한 다른 방식으로

                예배하지 않는 것입니다.2)


1) 신4:15-18; 사40:18-19,25; 행17:29; 롬1:23-25   2)레10:1-2; 신12:30-32; 삼상15:22-23; 마15:9


     여기에서 제2계명의 궁극적인 의미를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서 명하지 아니한 다른 방식으로 예배하지 않는 것”으로 고백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제2계명이 바로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임을 바르게 이해한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08-110문답을 보면,

제 108문 : 제 이 계명에서 요구하는 의무들은 무엇입니까?

답 : 제 이 계명에서 요구하는 의무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제정하신hath instituted 종교적 예배와 규례ordinances를 받아receiving 준수하고observing, 순전하게pure 그리고 전적으로entire 지키는 것keeping입니다.1)  특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와 감사,2) 말씀을 읽고 선포하고 듣는 것,3) 성례의 시행administration과 받음,4) 교회 정치와 권징,5) 직분적 사역과 그것의 유지,6) 종교적 금식,7)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8) 하나님께 서약하는 것vowing,9) 모든 거짓된 예배를 부인하고disapproving 미워하며detesting 반대하는 것opposing,10) 각자의 지위와 부르심에 따라 거짓된 예배와 모든 우상 숭배의 기념물들monuments을 제거하는 것입니다.11)


1) 신32:46,47; 마28:20; 행2:42; 딤전6:13,14   2) 빌4:6; 엡5:20   3) 신17:18-19; 행15:21; 딤후4:2; 약1:21-22; 행10:33   4) 마28:19   5) 마18:15-17; 16:19; 고전5장; 12:28   6) 엡4:11-12; 딤전5:17-18; 고전9:7-15   7) 욜2:12-13; 고전7:5   8) 신6:13   9) 사19:21; 시76:11   10) 행17:16-17; 시16:4   11) 신7:5; 사30:22


제 109문 : 제 이 계명에서 금지된 죄들은 무엇입니까?

답 : 제 이 계명에서 금지된 죄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지 않으신 어떤 종교적 예배를 고안하고devising,1) 의논하고,2) 명령하고,3) 사용하고,4) 어떤 모양으로든 인정하는 것any wise approving,5) 거짓 종교를 용납하는 것tolerating6) 하나님의 삼위(三位) 전체나 그 중 어느 한 위의 형상representation이라도 내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가지든지, 외적으로 피조물의 어떤 형상이나 모양으로 만드는 것과,7) 그 형상이나 혹은 그 형상 안에서8)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일이며,9) 거짓 신들feigned deities의 형상을 만들고,10) 그들을 예배하거나 또는 그것들에게 속한 것을 섬기는 것이며,11) 모든 미신적인 고안물,12) 하나님의 예배를 부패케하는 것,13) 우리 자신들이 발명하여 추가했든지,14) 전통을 따라서 사람들로부터 받아 취하였든지,15) 옛 제도antiquity,16) 풍속custom,17) 경건devotion,18) 선한 의도, 혹은 다른 어떤 구실의 명목으로19) 예배에 추가하거나 삭감하는 것과,20) 성직 매매simony,21) 신성 모독sacrilege,22) 하나님이 정하신 예배와 규례들에 대한 모든 태만all neglect23) 경멸contempt,24) 방해hindering,25) 반대하는 것opposing입니다.26)


1) 민15:39   2) 신13:6-8   3) 호5:11; 미6:16   4) 왕상11:33; 12:33   5) 신12:30-32   6) 신13:6-12; 슥13:2,3; 계2:2,14,15,20; 17:12,16,17   7) 신4:15-19; 행17:29; 롬1:21-23,25   8) 출32:5   9) 단3:18; 갈4:8   10) 출32:8   11) 왕상18:26,28; 사65:11   12) 행17:22; 골 2:21-23   13) 말1:7,8,14   14) 시106:39   15) 마15:9   16) 벧전1:18   17) 렘44:17   18) 사65:3-5; 갈1:13,14   19) 삼상13:11,12; 삼상15:21   20) 신4:2   21) 행8:18   22) 롬2:22; 말3:8   23) 출4:24-26   24) 마22:5; 말1:7,13   25) 마23:13   26) 행13:44,45; 살전2:15,16


 

제 110문 : 제 이 계명을 더 강화하기 위하여 그것에 첨가된 이유들이 무엇입니까?

답 : 제 이 계명을 더 강화하기 위하여 첨가된 이유들은 다음의 말씀에 나타나 있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한 것입니다.1) 그것들은 우리 위에over 있는 하나님의 주권 외에, 우리 안에 있는 순종propriety,2) 그 자신의 예배를 위한 강렬한fervent 열심zeal,3) 영적 간음으로서의 모든 거짓 예배에 대한 그의 보복적인revengeful 분노indignation,4) 이 계명을 범한 자들the breakers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로 여기시어accounting 여러 세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벌하기로 위협하시는 것threatening5) 자기를 사랑하고 이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높이시어esteeming, 여러 세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자비mercy를 약속하신 것입니다.6)


1) 출20:5,6   2) 시45:11; 계15:3,4   3) 출34:13,14   4) 고전10:20-22; 렘7:18-20; 겔16:26,27; 신32:16-20   5) 호2:2-4   6) 신5:29


     여기에서도 동일하게 제2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방법대로 예배하는 것임을 잘 고백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1문답도 마찬가지이다.


제 51 문 : 제 2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제 2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형상images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거나,1) 자신의 말씀으로 정하여 주시지 않은 다른 방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2)


1) 신4:15-19; 출32:5,8   2) 신12:31-32


     다음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는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에 대하여 곳곳에서 잘 다루고 있다. 먼저, 제1장 “성경에 관하여”를 다루고 있는 부분 중 6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6. 하나님의 영광, 인간의 구원, 그리고 신앙과 삶에 필요한 하나님의 모든 뜻은 성경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선하고 적절한 논리에 의하여 성경에서 추론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그 어느 때라 하더라도 성령의 새로운 계시나 인간의 전통을 첨가할 수 없다.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말씀에 계시된 것을 구원받는데 유효하도록 깨달으려면 성령의 내적 조명을 받아야만 한다.13) 다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형식과 교회정치에 관해서는 인간들의 일반적인 활동이나 모임에서처럼 격식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일반적인 법칙들에 근거한according to the general rules of the Word 본성의 빛the light of nature과 성도의 분별Christian prudence을 따라서 행해야 한다.14)

        

12)갈1:8,9; 살후2:2; 딤후3:15-17. 13)요6:45; 고전2:9-12. 14)고전11:13,14; 14:26,40.


     이 고백은 ‘성경의 충분성’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이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은 하나님께 들리는 예배의 형식에 대한 지침이 되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하지만 이 고백은 성경 구절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성경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청교도들이 강조하였던 오직 성경의 원리는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 뿐만 아니라 암시적인 가르침도 포함한다. 그래서 위 고백에 의하면 우리는 예배에 적합한 요소들을 선하고 적절한 논리에 의하여 성경에서 추론해 낼 수 있다. 그 선하고 적절한 논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일반적인 법칙들에 근거한according to the general rules of the Word 본성의 빛the light of nature과 성도의 분별Christian prudence을 말한다.


같은 장의 제8절에도 보면,


     8. 히브리어(하나님의 옛 백성의 모국어)로 기록된 구약성경과 헬라어(그 기록 당시의 모든 나라들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언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은 하나님에 의해 직접 영감되었으며inspired by God, 하나님의 비상한 보호singular care와 섭리에 의해 모든 시대에 걸쳐 순수하게 보존하셨기 때문에 확실하다authentical.17) 따라서 종교의 모든 논쟁에 있어서 교회는 구약과 신약성경에 최종적으로 호소해야 한다to appeal.18) 그러나 이 원어들은 성경에 대한 권리right와 관심interest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성경을 읽고 상고하도록to read and search 명령받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에게 알려진 말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이 전수되는 모든 나라의 자국어the vulgar language로 번역되어야 한다.20)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거하게 하여21) 그들이 합당한 방법으로in an acceptable manner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며, 성경이 주는 인내patience와 위로comfort를 통해 소망hope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22)


17)마5:18. 18)행15:15; 사8:20; 요5:39,46. 19)요5:39. 20)고전14:6,9,11,12,24,27,28. 21)골3:16. 22)롬15:4.


     여기에 보면 “.........성경이 전수되는 모든 나라의 자국어the vulgar language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거하게 하여 그들이 합당한 방법으로in an acceptable manner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며, 성경이 주는 인내patience와 위로comfort를 통해 소망hope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해서 성경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우리로 하여금 합당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는 것”에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다음으로 제20장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를 다루고 있는 부분 중 제2절을 보면,


     2. 하나님만이 양심의 주인Lord of the conscience이시며,10)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예배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거나contrary to his word 벗어나는beside it 사람의 교리나 계명으로부터 양심이 자유하게 하셨다.11) 그러므로 그런 교리를 믿거나 그런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양심의 참 자유를 배반하는 것이다.12) 또한 맹목적인 믿음implicit faith과 절대적인 맹종an absolute and blind obedience을 요구하는 것은 양심과 이성의 자유를 파괴하는 것이다.13)


10)약 4:12, 롬 14:4.   11)마 15:9, 23:8-10, 행 4:19,5:29, 고전 7:23, 고후 1:24.   12)갈 1:10,2:4-5, 5:1, 골 2:20,22-23.   13)사 8:20, 호 5:11, 렘 8:9:, 요 4:22, 행 17:11, 롬 10:17,14:23, 계 13:12,16-17.


     라고 되어 있는데, 이 고백의 중요성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예배하도록 강제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을 규정한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다음으로 제21장 '종교적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의 제1절을 보자. 


     1. 본성의 빛the light of nature은 만물에 대한 주권lordship과 통치권sovereignty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분은 선하시며 만물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를 경외해야 하며 사랑해야 하며 찬양해야 하며 찾아야 하며 신뢰해야 하며 섬겨야 한다.1) 그러나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방법the acceptable way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해 주신 것으로, 그분의 계시된 뜻에 의하여 한정된다limited by his own revealed will. 그러므로 인간의 상상imaginations이나 고안devices 또는 사탄의 제안suggestions에 따라 눈에 보이는 사물visible representation을 사용하거나 성경에 지시되어 있지 않은not prescribed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서는 안된다may not.2)


1)수 24:14, 시 18:3,31:28,62:8,119:68, 렘 10:7, 막 12:33, 행 17:24, 롬 1:20,10:12.   2)출 20:4-6, 신 4:15-20,12:32, 마 4:9-10,15:9, 행 17:25, 골 2:23.


    이 고백에서는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방법the acceptable way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해 주신 것으로, 그분의 계시된 뜻에 의하여 한정된다고 고백한다. 또한 성경에 지시되어 있지 않은 방법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렇게 이 신앙고백은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를 강조하고 모든 ‘자의적 예배’(will-worship)를 금하고 있는 것이다.



   12. 규정적이지만 자유가 있는 규정적 원리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개혁파 장로교 예배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이다. 이 원리에 근거하여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예배는 비교적 일정한 형식을 따라 드리는 예배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공예배가 일정한 형식을 따라 드려지게 된다는 것은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오랜 전통이다.27)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러한 규정적 원리가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표현하도록 허락하시는 자유를 빼앗아가는 편협한 원리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규정적 원리에 대한 오해이다. 규정적 원리는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가장 확실하게 지켜주는 보증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자유란 성경에서 금하지 아니하는 무엇이든 행할 수 있다는 개념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28)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계시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이 제시해 준 방식대로 예배하도록 명령하는 규정적 원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을 막아준다. 규정적 원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조금도 제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호해 준다.

     교회가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수 있고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의 자유를 보호하는 유일한 길은 규정적 원리, 즉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예배하는 이 원리를 준수하는데 있다. 이 원리를 타당하게 준수한다면 공예배에서 성경적인 근거없이 주어지는 예배 요소들을 강요하는 교회의 학대 행위로부터 교회의 백성들을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29) 나아가 규정적 원리는 우리들로 하여금 인간의 전통으로부터 해방케 하여, 하나님의 방법 안에서 자유롭게 한다.


     규정적 원리가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규정적 원리 자체가 ‘원리’이므로 판에 박힌 모양으로서의 예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깔뱅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공식적인 예배의 순서를 명확하게 지시해 주지는 않으셨으므로 각 시대의 모든 교회는 그들의 정황과 지혜에 따라 적절한 순서를 마련해서 예배할 자유가 있다.”(기독교 강요 4권 10장 30절) 그러므로 규정적 원리는 ‘원리’로서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 충분한 자유로움이 있다. 물론, 이러한 자유가 예배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30)

     그래서 역사적으로 개혁파 장로교회에서는 가장 성경에 부합한 예배를 드릴 것을 요구하면서도 예배의 비본질적인 ‘정황’(circumstance)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일정한 양식을 강제하지 않고, 각 교회와 회중의 자유를 존중하는 전통을 이어왔다. 장로교회의 예배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점은 바로 예배의 요소들(elements)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성경적 근거를 따져서 그 요소들을 찾고 그에 충실하려고 하면서도 예배의 정황들에서는 자유를 강조하여 어떤 고정적인 의식(liturgy)을 확정짓고 그에 집착하려 하지 않은데 있다고 할 수 있다.31)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을 살펴보면 이 사실을 잘 엿볼 수 있는데, 예배에 관한 부분에서 규정적 원리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예배순서를 획일적으로 정하지 않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은 예배순서와 형식이 아니라 예배요소와 모범에 집중했고 있을 뿐이다(WCF 21:3).

     예배의 형태를 지나치게 획일화하고 어떤 고정적인 의식(liturgy)을 확정짓고 그에 집착하려 하는 이른바 ‘예전적 운동’(liturgical movements)은 교회가 타락하는 표식들의 하나이다. 그래서 개혁주의 교회의 그 어떤 총회에서도 예배를 위한 ‘온전한’ 의식을 준비하거나 강요한 일이 없었다.32)

     이렇게 개혁파 장로교 예배는 예배의 형식을 불변적인 법의 의미로 보지 않았고 늘 변화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원리에 충실할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장로교 예배는 예배 형식과 의식을 중요하게 여기되 그 의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다.33)



   13. 고신총회 헌법의 예배 지침34)에 나타난 규정적 원리


     개혁파 장로교 전통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고신) 헌법(2011년판)의 예배지침 제3장 제8조 (주일예배의 순서와 요소)에는 이러한 개혁파 장로교 예배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해당 조항에 보면 주일예배의 순서를 다루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주일공예배의 순서는 당회가 정하되 그 기본적인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나서, ‘예배의 요소’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성경의 근거를 따라서 예배의 초청, 기원, 영광찬송, 회개기도, 감사찬송, 성경봉독, 설교, 성례, 권징, 헌금, 축도 등의 요소를 제시하고 있을 뿐, 그 순서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구체적으로 예배의 형식을 확정짓기보다는 반드시 있어야 할 요소를 제시한 뒤에 나머지 부분은 개체교회 당회의 권위로 작정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1) James A. De Jong, Into His Presence: Perspectives on Reformed Worship (Grand Rapids: CRC Publications, 1985), 황규일 역, 『개혁주의 예배』(서울: CLC, 1997), 36-37; D. G. Hart & John R. Muether, With Reverence and Awe: Returning to the Basics of Reformed Worship (Phillipsburg: P&R, 2002), 김상구 외 2인 옮김, 『개혁주의 예배신학: 개혁주의 예배의 토대로 돌아가기』(서울: P&R, 2009), 112.

 

2) 침례교 신학자인 웨인 그루뎀은 “성령 안에서”라는 의미보다는 “영적인 세계에서, 영적인 활동으로”라고 본다.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 (Grand Rapids: Zondervan, 1994), 노진준 옮김, 『조직신학(하)』(서울: 은성, 1997), 259.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썩 바람직하지 않다.

 

3) 이승구, “성경적 공예배를 지향하며”, in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 기독교 세계관적 교회론 탐구』(서울: SFC, 2007), 42. 참고로 이승구 교수의 책에 수록된 “성경적 공예배를 지향하며”는 그가 2005년 『장로교회와 신학』, 제2호에서 발표한 소논문 “장로교회의 예배이해와 장로교 예배모범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4) 이승구, “성경적 공예배를 지향하며”, 43. 
 

5) Hart & Muether, 『개혁주의 예배신학』, 26.  

6) Daniel R. Hyde, “개혁주의 예배가 성경적이다,” 강문진 옮김, 『진리의 깃발』(서울: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2005), vol. 75, p. 25.  

7) John M. Frame, The Doctrine of the Christian Life (Phillipsburg: P&R, 2008), 468.  

8) “칼빈도 마태복음 15장 9절과 골로새서 2장 22-23절 등에 대해서 증거본문으로 삼는다” Hart & Muether, 『개혁주의 예배신학』, 94.

9) David Peterson, Engaging with God: A Biblical Thogy of Worship (Nottingham: IVP, 1992), 김석원 옮김, 『성경신학적 관점으로 본 예배신학』(서울: 부흥과개혁사, 2011), 8. David Peterson은 성공회 신자이다.  

10) Peterson, 『성경신학적 관점으로 본 예배신학』, 21.  

11)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4문답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영’을 다루고 있다.  

12) J. Ligon Duncan Ⅲ,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방법에 관심이 있으신가?,” in 필립 그레이엄 라이큰, 데릭 토마스, 리곤 던컨 3세 편집, Give Praise to God: A Vision for Reforming Worship: Celebrating the Legacy of James Montgomery Boice (Phillipsburg: P&R, 2003), 김병하, 김상구 옮김, 『개혁주의 예배학: 예배 개혁을 위한 비전』(서울: P&R, 2012), 105.  

13) Duncan Ⅲ,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방법에 관심이 있으신가?,” in 『개혁주의 예배학』, 62.  

14) Duncan Ⅲ,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방법에 관심이 있으신가?,” in 『개혁주의 예배학』, 81, 99. 

15) Duncan Ⅲ,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방법에 관심이 있으신가?,” in 『개혁주의 예배학』, 62.  

16) Peterson, 『성경신학적 관점으로 본 예배신학』, 11. 

17) Hart & Muether, 『개혁주의 예배신학』, 19.  

18) Hart & Muether, 『개혁주의 예배신학』, 20.  

19) Hart & Muether, 『개혁주의 예배신학』, 20, 95. 

20) 이광호, “공예배의 회복” 

21) 이승구, “성경적 공예배를 지향하며”, 43-44; Hart & Muether, 『개혁주의 예배신학』, 88; John Murray, “Worship”, in 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y, vol 1: The Claims of Truth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76), 박문재 역, 『조직신학 Ⅰ』(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1), 166.  

22) Hart & Muether, 『개혁주의 예배신학』, 89. 

23) Institutes, Ⅰ. ⅱ. 2.  

24) Institutes, Ⅰ. ⅻ. 3.  

25) Institutes, Ⅳ. ⅹ. 30.  

26) Hart & Muether, 『개혁주의 예배신학』, 88. 

27) 이승구, “성경적 공예배를 지향하며”, 41.  

28) Hart & Muether, 『개혁주의 예배신학』, 93.  

29) Hart & Muether, 『개혁주의 예배신학』, 98.  

30) Edmund P. Clowney, “Presbyterian Worship”, in Worship: Adoration and Action, ed. D. A. Carson (Grand Rapids: Baker, 1993), 117.

31) 이승구, “성경적 공예배를 지향하며”, 49.  

32) Klaas Runia, “The Reformed Liturgy in the Dutch Tradition”, in Worship: Adoration and Action, 97.

 

33) 정일웅, 『개혁교회 예배와 예전학』(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2010; 개정판), 194. 

34) ‘예배 지침’이라는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고신총회의 2011년 개정헌법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예배 지침’이라고 해 두었다. 합동, 합신, 고려 총회 헌법은 ‘예배 모범’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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