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세주의(厭世主義, Pessimism)
염세주의(厭世主義, pessimism)는 비관주의(悲觀主義)라고도 하며, 세계는 원래 불합리하여 비애로 가득 찬 것으로서 행복이나 희열도 덧없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한자 뜻풀이대로 세상 모든 것, 특히 인간과 그 사회에 대한 것들을 싫어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상. 비관주의와 허무주의가 안 좋은 방향으로 발전했을 때 이르는 가치관이다.
염세주의적 사상은 주로 인간 사회의 모순이나 부조리함 등에 실망하여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체적으로 염세주의자들의 사회적 혐오가 동반되며, 현실적인 사회구조의 허점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면 굉장히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만 논리가 확립된 경우 그렇다고 틀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긍정적인 부분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염세주의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며, 외향적 염세주의자라고 항상 사회 파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내향적이라고 해도 그 끝이 항상 자살인 것은 아니다. 염세주의자에겐 자살(또는 그 행위)조차도 네거티브하게 볼 수 있기 때문. 염세주의자들은 삶의 많은 부분이 전혀 긍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허무주의자나 회의주의자가 자살할 확률이 더 높다.
오히려 이러한 염세주의자 중 외향적인 사람들은 칼 마르크스처럼 기존 사회의 탈피를 위한 이론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일단 한 번 빠지면 대인관계는 확실하게 잘못되기도 한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다. 그는 1788년 2월 단치히(현 폴란드 그단스크)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친의 권유로 각국을 다니며 언어를 익히고 상업 활동을 했다. 17세 때 부친이 사망한 뒤에는 괴팅겐대, 베를린대 등에서 여러 학문을 익혔다. 바이마르에서는 인도 우파니샤드 철학을 연구하며 허무주의에 눈을 떴다. 1818년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권을 냈다. ‘인간은 항상 만족 못 하고 맹목적 의지에 얽매여 살기 때문에 삶은 지독한 고통’이라는 게 요지다. 맹목적 의지 중 하나는 생리학적 충동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사랑은 없다’고 결론 냈다. 여성을 멸시했던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또한, 그의 사상은 자살 옹호로까지 이어졌다. 자살자는 삶의 의지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삶의 표상을 파괴하는 것이기에 존중돼야 한다는 것. 꾸준한 저술활동으로 학계의 관심이 커졌고 1855년부터 각 대학에서 그의 철학 관련 강의가 속속 개설됐다. 고뇌로 가득 찬 세상을 초월하려는 자기 극복 의지는 니체의 사상으로 연결됐다. 1860년 9월21일 72세의 나이로 프랑크푸르트에서 눈을 감았다.
허무주의(虛無主義, Nihilism)
허무주의(虛無主義) 또는 니힐리즘(Nihilism)은 기성의 가치 체계와 이에 근거를 둔 일체의 권위를 부인하고 음산한 nihill('허무'의 라틴어)의 심연을 직시하며 살려는 사상적 입장이다.
우주·인생의 진상을 무(無)에서 보려고 하는 사상은 노자(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이나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사상에서도 볼 수 있으나, 자각적인 사상으로서의 본래의 니힐리즘은 19세기 중엽 이후로부터 현대에 걸친 서구 사회의 특유한 사상이다. 곧 서구 근대 시민 사회의 가치체계가 붕괴하고 그 후에 올 장래의 가치에 대해 전망할 수 없는 역사의 위기적 전환기에 있어서 소시민층의 세계관의 반영으로서 성립한 것이다.
시민 사회를 역사적 진보의 완성으로 성화(聖化)시키는 헤겔의 절대정신(絶對精神) 철학은 그리스적 지성과 유대적 신앙의 대담한 절충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강제적인 결혼은 중매자인 헤겔의 죽음과 함께 파탄을 일으켰다. 합리적·실증적 정신의 발달에 의해 그때까지 가치 목적을 한몸에 집중시키고 있던 신에의 신앙이 상실되었을 때, 그 후에 남겨진 적나라한 자연의 실상(實相)은 가치의 껍데기라고 할 수 있는 니힐의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무한한 불안과 절망의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 철학에 반발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이나 키르케고르의 실존주의 사상에 근대시민들의 생을 잠식하고 있는 니힐한 기분이 짙게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또 헤겔 좌파의 맹장 포이어바흐의 무신론(無神論)을 철저히 밀고 나가 강렬한 에고이즘의 입장을 세운 독일의 '자유파(自由派)' 사상가 슈티르너의 자리를 무(無) 위에 놓음으로써 자기 이외의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절대적 자유를 향수하려는 무정부주의적 니힐리즘 철학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니힐한 시대 풍조는 드디어 러시아의 작가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1861)의 청년 주인공 바자로프에 의해 니힐리스트라는 하나의 인간상으로까지 결정(結晶)되었다. 철저한 과학적 실증주의 입장에서 일체의 기성 질서나 가치의 권위를 부정하는 이 자유주의를 투르게네프가 '니힐리스트'라고 명명한 이래로 니힐리즘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었다. 신인(神人) 예수에 대한 소박한 신앙을 거부하고 스스로 인신(人神)의 입장에서 서려고 하는 니힐리스트들의 삶은, 도스토옙스키의 영필(靈筆)에 의해 신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무서운 인격분열의 절망을 초래하는 것으로서 날카롭게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사조로서의 니힐리즘의 저류를 철저히 적발하여 이를 명확한 하나의 사상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니체로서, 니체는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지배하고 고귀한 자가 비소(卑小)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본래의 가치 체계라고 하는 권력의지설(權力意志說)의 입장에서 니힐리즘을 분석하여 '수동적(受動的) 니힐리즘'과 '능동적(能動的) 니힐리즘'의 두 유형을 발견한다.
'수동적 니힐리즘'은 약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서 쇠퇴한 니힐의 현실을 직시할 것을 회피하고 찰나적인 향락주의나 무관심한 이기주의 등 퇴폐적 삶에 의해 공허감을 채워보려는 것이다. 여기서 니힐리즘은 잠재적인 형태로 예감될 뿐이며 그 참된 극복은 무한히 연기된다. 이에 대해 소모적인 현실 도피의 삶을 거부하고 니힐의 병근(病根) 한가운데로 적극 개입함으로써 허무의 현실을 초극하려는 것이 '능동적 니힐리즘'이다. 이러한 능동적 니힐리즘의 입장에서 모든 현존하는 가치나 질서가 뽐내는 절대적 권위를 파괴해 갈 때, 거기에 새로운 가치를 자유로이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싹튼다. 우상(偶像)의 가면을 벗기는 이기(利器)로서 무(無)를 내세움으로써 무를 단순한 생의 소모 원리(消耗原理)로부터 생의 적극적인 창조 원리로 전환시켜 나가는 '능동적 니힐리즘'이야말로 니힐리즘의 지배 밑에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당연한 생활 방식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확실히 근대 합리주의의 문화는 여러가지 형태로 '목적과 수단의 가치 전도'를 일으켜서 잠재적인 니힐리즘을 준비하고 있다. 니힐리즘은 이 잠재적 니힐리즘과 성실하게 대결하여 거기에 숨어 있는 우상 숭배적인 태도를 파괴하고 그 폐허 위에 진실한 가치의 탄생을 이룩하려고 한다. 물론 니힐리즘 자체는 환영할 만한 손님은 못되지만 적어도 현실 도피적인 무관심주의나 찰나적인 향락주의보다는 훨씬 진지하고 성실한 생활 태도의 소산인 것이다. 타협을 거부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자만이 우상숭배적인 삶의 허망함에 절망할 수 있는 것이다. 허무를 우러르고 허무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는 허무를 허무로서 직시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키에르케고르도 역설한 것처럼 현실의 삶이 허무에 잠식되고 있을 때, 이러한 삶에 대해 절망하지 못한다는 것은 구원할 수 없는 중증(重症)의 절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니힐리즘은 거기에 안주할 서식처는 아니지만, 진실한 삶에 도달하기 위하여 경과해야 할 현대인의 필수적인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전체적 목표와 그 목표 달성을 위한 온갖 부분적 수단의 본말관계(本末關係)를 전도하는 것이 잠재적 니힐리즘의 참된 원인이다. 이러한 가치전도를 바로잡으려는 것이 '생의 철학'이다. 생의 철학에서는 인생을 위한 합리(合理)이지, 합리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생의 철학의 주장을 한 걸음 더 진전시켜, 니힐한 현실을 스스로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에 의해 허무의 심연을 초극하려는 것이 실존주의이다.
교조주의(敎條主義,Dogmatism)
교조주의(敎條主義, Dogmatism)란 특정한 사상이나 종교경전을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특정한 교의나 사상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현실을 무시하고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태도이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를 발전하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고 고전에 서술되어 있는 명제를 절대적인 교조라고 생각하여, 당면한 구체적인 여러 조건을 음미하지 않고 현실을 무시한 채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태도나 생각을 이른다.
과학적,혹은합리적인 증명을 하지 않고 신앙이나 신념에만 기초한 사고방식으로 사물을 설명하려는 태도. 종교에서 권위자가 말한 것을 깊이 이해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추종하려는 태도로, 중세의 스콜라 철학, 독단론, 또는 정설주의(定說主義) 따위가 있다.
도그마적인 신조이다. 근본주의와 권위주의에 얽매여 융통성을 잃은 극단적인 믿음을 의미한다. 교조주의의 단어 '교조' 역시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자신의 신념이나 내집단의 교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외부의 비판에 대해 방어적이고 독단적인 자세를 취하는 심리다.
교조의 유래인 영단어 '도그마'란 본래 가톨릭에서의 종교적 신조를 의미하는 신학 개념이었으나, 이후 융통성 없이 고집하는 '그들만의' 절대적인 진리, 원칙 등을 지칭하는 뜻으로 바뀌었다.등이 있다.
교조주의를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어디에나 정통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그대로 적용시키는 행태를 비판하는 말로 쓴다. 실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은 왜 마르크스가 모든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비평한 이유를 다양한 배경에 근거하여 생각하지 않고, 분쟁이 일어나면 무조건 '계급투쟁'이라고 하는 것을 유사 마르크스주의라고 비평한다. 때문에 마오쩌둥, 블라디미르 레닌 등과 같은 혁명가들은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무분별하게 고수하던 교조주의를 맹렬히 비판했으며, 이들은 각 노동 계급이 처한 현실에 맞게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켰다. 종교적으로는 경전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종교인을 교조주의자나 원리주의자라고 한다. 교조주의는 사상과 종교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이므로, 학문적 곧 논리적 비평에 대해 대화와 토론으로 극복하기보다는 무조건 거부하거나 탄압하는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