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과 그리스 정교의 차이
그리스 정교는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를 수장(首長)으로 하여 정통적인 그리스도교회임을 자처하는 여러 교회의 일단이다. 그리스도교는 대체로 가톨릭교회·그리스정교회·프로테스탄트교회로 나뉜다. 그리스정교회는 동방교회(東方敎會;Ecclesia Orientali)라고도 하며, 처음엔 로마교황을 수장으로 했으나, 지나친 국가주의·민족주의 등의 원인으로 교리의 차이가 생겨 로마교회에서 분리되었다. 그리스정교회의 신도는 약 1억 5000만이다. 그리스정교회가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된 것은 로마제국의 동서분열의 결과로서 정치적 이유에 의해서였다. 즉 서로마에서는 교황과 황제가 대립하고 있었으나 동로마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협력하고 있어 로마와 콘스탄티노플과는 점차로 멀어져 갔다. 11세기에 이르러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는 로마교회의 의식과 교리를 크게 비난하여, 당시의 교황 레오 9세는 화해의 사절을 콘스탄티노플에 파견했으나 듣지 않으므로 교황사절은 그곳의 소피아대성당에서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를 파문했다. 그로써 분열이 확정되었고, 그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서로 화해를 시도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가톨릭교회와 그리스정교회의 차이는 교회관의 차이에 있다. 즉 가톨릭에서 교회를 불가견적 신비체인 동시에 교황을 수장으로 하는 가견적 통일체라고 하는 데 대해 그리스정교회는 사랑과 은총에 의한 불가견적 통일체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로마교황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교회의 수장이며 신앙 개조의 결정과 신앙 도덕에 관한 최고의 결정자라고 하는 교황 수위권에 반대하고 있다.
988년 러시아황제 브라미디르는 그리스 정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전 러시아인들에게 세레명을 내린다. 당시 동서양 문화의 교차로에 서서 두 문화를 두루 받아들이고 있던 키에프 러시아는 서양문명을 상징하는 기독교를 선택함으로써 유럽의 일환으로 편입시킨다. 그 선택에는 인접국인 폴란드, 덴마트,헝가리등이 기독교를 수용함으로써, 동양의 왼쪽날개보다는 유럽의 오른쪽 날개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결과이다. 키에프러시아는 카톨릭이아니라 정교(러시아정교)를 수용함으로써 인접국가와 오랜 반목과 투쟁이 시작된다. 이에는 그리스정교의 의식의 차이외에 당시 러시아가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라틴문화가 전혀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 성서를 슬라브어로 번역하는등 그리스정교 사도들이 오래전부터 러시아 전도에 나섰던 점등이 크게 작용했다. 비잔틴 제국이 쇠잔하면서 러시아가 사실상 정교의 종주국이 되고, 그후 러시아 정교에 슬라브적이고 동방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러시아가 유럽사회에서 고립되는 한 요인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정교(orthodox)는 유럽에서 크게 그리스를 중심으로한 그리스 정교, 발칸반도를 중심으로 세르비아 정교, 러시아를 중심으로 러시아정교로 나뉜다.
그리스 정교는 로마제국의 동서분열에 따른 정치적 이유로 형성이 되었고, 세르비아 정교는 정교의 동로마와 카톨릭의 서로마가 만나는 발칸을 중심으로 주변국의 이해관계로 나타나게된 몬테니그로, 세르비아에서 형성이된다. 외세의 이해관계로 인해 형성되게되어 그후 계속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그반면 러시아는 동서문화의 교차점에서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 수용하게되며, 러시아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
정교회와 카톨릭 교회(이하 천주교회라고 할게요)의 차이점은
같은 종교(기독교=그리스도교=크리스트교)이지만 다른 교회(조직)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하느님(하나님)을 믿고 같은 성경을 봐도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밖에 없지요.
그 예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언급하겠습니다.
1. 삼위일체론
기독교에선 유일신 하느님이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위격을 가지고 계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이 세 위격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데 저희 정교회는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성자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으며,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성령 하느님이 '발현'하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천주교회는 이와 다르게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성자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으며, 이 성자 하느님과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성령 하느님이 '발현'하신다(이중발현)고 가르칩니다.
2. 성체와 성혈
천 주교회에선 미사, 정교회에선 예배라고 하는 예식 때 성찬례라는 것이 있어서 거룩한 제단에 바쳐진 빵과 포도주가 각각 예수님의 살(성체)과 예수님의 피(성혈)가 되고 이것들이 성직자와 신도들에게 배분되지요. 저희 정교회에서는 성체와 성혈이 둘 다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에게 배분됩니다. 다만 성직자들은 빵(성체)를 손으로 떼서 먹고 잔(성작)에 담긴 포도주(성혈)을 돌려 마시는 반면, 평신도들에겐 성직자가 잘게 다져진 빵(성체)과 포도주(성혈)를 한 잔(성작)에 같이 담아 수저로 떠서 입 안에 넣어 줍니다.
한 편 천주교회에서는 평신도들은 빵(성체)만 먹고 포도주(성혈)는 성직자들만 마시지요. 한 마디로 정리해서 정교회에선 성찬례 때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 성체와 성혈 둘 다를 먹고 마시는데 천주교회에서는 성직자들만 성체와 성혈 둘 다를 먹고 마시고 평신도들은 성체만 먹는다는 겁니다. 또 정교회에서는 누룩을 넣은 빵을 성체로 하는데 천주교회에서는 누룩이 없는 밀전병 모양의 얇고 흰 빵을 성체로 하며, 정교회에선 세례를 받자마자 견진(기름바름)도 받으므로 갓난 아기들도 성체성혈을 영하지만 천주교회에선 세례 받고 몇년 지난 후 견진을 받으므로 어느 정도 성장하고나서 성체를 영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3. 성상의 차이
개 신교회 예배당과는 달리 천주교회 성당에 들어가면 예수님과 성모님 등을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들이 있잖아요. 이를 성상이라고 하는데 저희 정교회 성당에 들어가도 성상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상이라고 해도 천주교회와는 달리 조각이나 동상은 만들지 않고 대부분 그림으로만 되어 있는데 이는 십계명에 어떤 형상도 깎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교회 성상은 only 그림이고, 천주교회 성상은 그림+조각+동상 등 여러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4. 성직자와 결혼
개 신교회 목사님들은 대부분 결혼하시는데 천주교회 신부님들은 다들 총각들이시잖아요. 그런데 저희 정교회에선 결혼한 유부남들도 신부될 수 있습니다. 신부되고 나서도 계속 부인이랑 살면서 애 낳고 키우며 살 수 있지요. 다만 신부되고 나면 결혼 못하고 또 신부일 하다가 부인이 죽어도 다시 결혼 못합니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았던 홀아비이던 부인과 별거를 하던 어쨌던 독신남들로 구성된 수사들이 있습니다. 독신으로 사는 이 수사들 중에서 성직자로 임명된 분들이 있는데 이를 '수도정식자'라고 하고 앞에서 언급한 결혼한 분들은 '재속성직자'라고 합니다. 하위 성직인 보제와 사제(신부)는 독신남인 수도성직자 뿐만 아니라 유부남인 재속성직자도 맡을 수 있지만 고위 성직인 주교는 수도성직자들만 맡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주교직이 비었는데 이를 맡을 수도성직자가 정 없을 경우에는 재속성직자가 주교가 되기도 하는데 이럴 때 그 부인은 별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천주교회의 성직자는 100% 독신남들이지만 정교회 성직자는 유부남과 독신남이 공존합니다. 또 정교회에도 수녀님들이 있는데 꼭 처녀가 아니더라도 과부일 수도 있고 남편이 수도원 들어가 수사가 돼서 수녀가 된 분들도 있습니다.
5. 교황 문제
천 주교회에서는 로마의 주교이신 교황님이 그리스도의 대리인이요, 성 베드로의 후계자이자 주교 위의 주교로서 가장 큰 권위와 권력을 가지고 계시지만, 저희 정교회에서는 많고 많은 주교님 중의 한 분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로마 교황님이 성 베드로의 후계자이시긴 해도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모든 주교는 누가 더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가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즉 주교 위에 주교 없고, 주교 아래 주교 없다는 개념이지요. 그런데 콘스탄티노플(터키 이스탄불)과 러시아 모스크바 등지의 주교는 총대주교로 불리는데 이는 다른 주교들보다 높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맡은 책무가 다른 주교들보다 크고 무겁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비유로 말하자면 천주교회의 교황님은 한 반의 담임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교회의 총대주교님들은 한 반의 반장이며 담임선생님은 예수님이신 겁니다. 이 문제가 바로 정교회와 천주교회를 분열시킨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 정교회 | 가톨릭 |
| 성령은 오직 성부에게서 나온다. |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Filioque) 나온다 |
| 성모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 선포를 반대한다. | 성모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를 선포한다. (1854년 비오 9세) |
| 성모 마리아의 몽소승천 교리 선포를 반대한다. | 성모 마리아의 몽소승천 교리를 선포한다. (1950년 비오 12세) |
| 이콘 성화는 허락하나 입체 조각은 금한다 (그리스 정교회 입장) | 조형 미술의 모든 양식을 허용한다. |
| 로마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거부한다 | 로마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믿는다. 교황의 무류성 교리를 선포한다. (1870년 제 1차 바티칸 공의회) |
| 미사 때, 누룩 넣은 빵을 사용한다. 양형 영성체를 한다. | 미사 때, 누룩 넣지 않은 무교병만 사용한다. 흔히 성체만 영한다 |
| 부제 서품 전에 결혼여부를 결정한다. 기혼 사제가 상처했을 때는 재혼할 수 없다. 주교는 독신이어야 한다. | 독신 사제만 허용한다. |
| 성직자는 대체로 수염을 기른다. | 성직자는 대체로 수염을 깎는다 |
| 남녀 수도자들의 수도복이 같다. 수도자들은 성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 남녀 수도자들의 수도복이 다르다. |
그리스 정교회가 속해있는 동방 정교회를 정확하고 자세히 아실려면 사실 4세기 초에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비잔틴 천도에서부터의 세계사와 교회사를 읽으셔야 됩니다. 여기에는 복잡한 동서방의 교리 논쟁에서부터, 동서로마 제국의 정치적 갈등까지 모든 요소들이 배경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정교회는 가톨릭 교회와 성사적인 면에서, 교리적인 면에서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성직은 사도시대 전승에 따라 주교, 사제, 부제로 나뉘지만 이들은 모두 결혼을 하며 독신은 수도자만 지킨다는 점도 다릅니다. 또한 성서와 성전을 모두 신앙의 근거로 인정하지만 구약성서 49권과 신약성서 27권(가톨릭 교회는 구약성서 46권, 신약성서 27권)을 성서로 사용하고 있으며, 구약의 제2경전을 인정하지만 교의적 신학적 권위는 지니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일 단 "가톨릭 대사전"에 나와있는 내용을 올려드립니다. 보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제가 책 한권을 소개해 드립니다. 한국에 있는 정교회 소속 "강태용 신부"가 쓰고, 1996년에 발행된 책인데, 제목은 <동방 정교회 designtimesp=28079>, 출판사는 <도서출판 정교 designtimesp=28080>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동방 정교회]
동 방교회, 정교회, 하리스트스 정교회 등 여러 이름으로 알려진 교회들의 총칭. 고대 말기 동로마제국의 교회에서 생겨난 많은 민족 교회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 정교회는 고대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등 4개의 총주교 관구(Patriarchatus)에서 갈라져 나온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독자적인 교회조직을 가지며, 부분적으로 서로 교류하고 있다. 정교회가 성립된 순서별로 보면 시리아, 불가리아 (917년), 세르비아(1346년), 러시아(1589년), 그리스(1830년), 루마니아(1925년), 알바니아(1937년)의 순이다. 아프리카와 아라비아에 퍼져있으며 그리스도 단성론(單性論)을 신봉하는 콥트교회, 아비시나아교회, 아르메니아교회, 야곱파교회, 남인도의 말라바르교회, 한때 페르시아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펴졌던 네스토리우스파[景敎]도 모두 동방 정교회의 이단이다. 이들 교회의 신자는 통틀어 약3억명 정도다.
정교회는 5∼6세기 그리스도의 위격(位格)을 둘러싸고 동서교회가 분열되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 1054년에는 로마의 교황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서로 파문하면서 동서교회는 결정적으로 분리되었다. 서로 그리스도의 참되고 유일한 교회라고 주장하면서 그 뒤 분열의 폭은 더욱 깊어졌다.
동방 정교회의 중핵은 러시아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회다. 이들 정교회들은 둘 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떨어져 나온 교회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 후에 시작된 러시아교회는 모스크바 대주교를 독립시켜 총주교로 삼았다(1589년). 1917년 러시아 혁명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교회는 동방 정교회의 신학과 전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61년 동방 정교회는 세계교회협희회(W.C.C.)에 정식으로 가입하였다.
동방교회의 특징은 신학과 전례에서 신비주의적인 색채가 농후하며 교회가 각 국민문화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전례와 성서는 일찍부터 각국어로 번역되어 사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국민문학이 발흥하였다.
동방 정교회의 성직자는 수도지원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결혼을 하며, 성직은 사도전승에 따라 주교, 사제, 부제 등을 모두 고대의 성직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동방 정교회의 성찬의 전례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이 특색이다. 주로 성 크리소스토모(Chrisostomus)의 전례를 사용하지만 1년 중 10번은 성 바실리오 전례를, 한번은 성 야곱 전례를 사용한다. 교회생활의 중심은 삼위일체의 예배이고, 여기에 성모와 여러 성인에 대한 공경이 첨가된다.
1. 그리스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
그 리스 지방에 처음 복음이 전해진 것은 사도 바울로에 의해서다. 당시에는 로마제국의 속국이었고, 고린토를 비롯한 주요도시에 세워진 교회는 서로 고립된 채로 남아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중부 그리스지방이 마케도니아에 통합되었고 지방구로 설정되어 콘스탄티노플의 재치권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뒤 콘스탄티노플 분열(486∼516년)때 로마교회에서 분리되었고 성화상논쟁(聖畵像論爭, 725∼842년)때에 성화상공경을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1054년을 기하여 서방교회와 완전히 분리되었다. 1453년 오스만제국이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뒤에는 그리스 정교회도 터키인의 지배를 받았다. 19세기 오스만제국이 쇠퇴함에 따라 발칸제국은 독립을 얻었고, 그리스의 독립전쟁(1821∼1827년)에서 승리하여 독립하였다. 교회는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에서 분리, 독립을 선언했고(1833년), 총주교는 결국 승인을 하였다(1850년). 1852년 그리스 국회는 그리스 정교회를 국교로 정했고, 아테네 대주교를 중심으로 한 주교회의(Holy synod)를 설치하였다.
2. 러시아 정교회(Russian orthodox church)
9 세기경 키에프 주민들이 콘스탄티노플과 접촉하면서 복음이 전해진 러시아에는 공주 올가(Olga)의 입교(957년), 그의 손자 블라디미르 1세와 황제 바실리오 1세의 딸 안나와의 결혼으로 전도가 활발하였다. 13세기 타타르인이 러시아에 침입하면서 러시아인들이 동북부로 이주하였고, 교회의 중심도 키에프에서 모스크바로 넘겨졌다(1328). 1589년 모스크바의 주교 욥(Job)이 콘스탄티노플 총주교로부터 총주교의 칭호를 부여받은 뒤부터 모스크바는 소위 제3의 로마로서 당시 터키인의 지배 아래 있던 콘스탄티노플을 대신하여 정교회의 중심이 되었다.
교 회를 국가의 지배아래 두는 데 성공한 최초의 인물은 표트르대제였다. 그는 총대주교 제도를 폐지하고(1700년), 12인의 위원을 두어 주교회의(Holy Synod)를 관장케 하였다. 이 제도는 러시아혁명까지 존속하였다. 혁명 후 2차대전 시작(1941년)까지 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소비에트 정부는 마르크스 유물론과 반종교정책으로 교회가 차르 체제를 지탱한 점을 신랄하게 공격, 탄압하였다. 교회재산은 몰수되었고, 성직자는 투옥, 처형당하였다. 1929년 이후 정부는 조직적인 반종교투쟁을 감행했고, 이는 1941년 대독일전쟁 개시 때까지 계속되었다. 전쟁은 반종교정책을 완화시켰다. 반종교선전이 중지되고 1943년에는 주교회의 개최가 허락되었다. 뒤퐁이 죽은 뒤 (1924년) 공석으로 남아 있던 총주교좌에 세리키가 선임되었다. 이후 교회는 서서히 힘을 회복하였고 성직자 교육과 신학연구를 위한 신학교와 대학을 설립하였다. 이후 동서냉전이 강화됨에 따라 정부의 대종교정책도 강화되었지만 신자의 공직취임 금지조치 이외에는 정책에 반대하지 않는 한 상당한 자유로 인정되었다. 러시아 정교회는 해외선교사업에 현저한 업적을 남겼고, 1961년 뉴델리의 세계 교회회의를 통해 세계교회협의회에도 가입하였다.
3. 루마니아 정교회(Rumanian orthodox church)
1856 년 공국 (公國)이 된 루마니아는 25년 두에 독립왕국이 되었다. 최초의 왕자 코사(Couza)는 교회를 독립시키기로 하여 국회의 동조를 구했고, 그에 따를 법률도 통과되었다. 1885년 콘스탄티노플 총주교 요아킴 4세는 정식으로 루마니아 교회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1차 대전 후 영토와 국민이 증대하면서 교회의 지위도 강화되어 1925년에는 총주교좌가 설치되었다.
4. 불가리아 정교회(Bulgarian orthodox church)
1204 년에서 1393년까지 불가리아 교회는 독립된 주교좌를 갖고 있었지만, 터키인의 침략 이후 투르크제국이 멸망할 때(1393∼1856년)까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지배아래 있었다. 주교 힐라리온(Hilarion)이 교회의 독립을 선언했지만 (1860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이를 민족주의적 이단이라 하여 반대했고 다시 총대주교 안티모스(Anthimos) 6세는 불가리아 정교회를 파문하였다. 그 뒤 모스크바 총대주교의 배려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파문을 풀면서 양교회의 관계는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5. 세르비아 정교회(Serbian orthodox church)
1219 년 성 사바(Sava)에 의해 독립 주교좌가 되었고, 1346년 총주교좌 교회로 승격되었다. 1389년 이후 약 5세기간 터키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교회도 독립을 잃고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재치권 아래 있었다. 1876년 국가가 완전 독립하면서 교회도 1879년에 자치를 회복하였다.
6. 알바니아 정교회(Albanian orthodox church)
1912 년 터키로부터 독립한 뒤 교회는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투쟁을 폈다. 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알바니아인들에 의해 추진된 이 투쟁은, 1908년부터 사제 놀리(Noli)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1920년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수상이 되었다. 그러나 회교인으로서 뒷날 국왕이 된 조구(Zogu)의 침입을 받아 놀리는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1937년에야 알바니아 정교회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로부터 정식교회로 인정되었다.
7. 그 외에도 체코슬로바키아 정교회(1951년), 폴란드 정교회(1925년) 등의 교회가 성립되었고,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헝가리, 마케도니아, 우크라이나 등에도 동방정교회 신자들이 살고 있다.
카톨릭과 정교회 사이는 15세기 이후 완전히 단절되었다. 그러나 20세기의 화해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시도되었다. 500여년만이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와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 1세가 예루살렘의 올리브산에서 만났다. 양측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화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기간 동안 정교회측의 업저버가 참관하여 여러 가지 조언을 하기도 했으며, 1964년 제2차 정교회회의(Pan-Orthodox Conference)에 모인 14개 정교회 대표들은 로마와 교회일치적인 입장에서 계속 대화를 갖기로 합의하였다. 가톨릭에서는 동방교회에 관한 문제를 관할하는 성(省)을 1917년에 독립시켜 동방교회성성(Congregation for Oriental Church)이라 명명하고 있다.
한국의 정교회는 1897년 러시상 정교회의 암브로시오 신부에 의해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암보로시오 신부에 의해 주한 러시아공사관에서 시작된 선교는 1900년 황제 고종으로부터 정동의 땅1,000평을 하사받아 성 니톨라이 성당을 건립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2대 신부로 온 스케초프스키(Chrysanthus Sketkovsky)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상당수의 신자를 확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6년 노일전쟁(露日戰爭)에서 러시아의 패전과 이에 따른 원조의 중단, 1917년 러시아에서의 공산주의 혁명과 이에 따른 선교활동 중단 등으로 선교활동이 크게 위축된 데다가, 1945년 이후 정교회를 주관하던 폴리카르프 (Polycarp) 신부와 김의환(金義煥) 신부가 추방되거나 납북됨으로써 교회는 거의 문을 닫다시피 하였다. 1950년 유엔군의 일원으로 출전하였던 그리스군 군목들의 주선으로 1956년 소속이 그리스정교회 산하로 옮겨졌고, 1966년 성당도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으로 옮겼다.
■동방정교회
동방 정교회란 고대 동로마제국에 자리잡고 있던 여러 지역교회들이 1054년 로마를 중심으로 형성된 서방교회로부터 갈라져 나와 독자적 전례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모든 교회를 통칭하는 말. 자신들만이 '올바른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에서 '정교회'(Orthodox Church)라고 부른다.
정교회도 역사를 거치면서 지역에 따라 각기 독립을 선언, 현재는 러시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알바니아 정교회 등으로 나눠져 있다.
한국의 정교회는 1897년 러시아 정교회 소속 암브로시오스 신부가 주한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교를 시작하면서 형성됐으며, 1900년 고종으로부터 정동에 땅을 받아 성 니콜라스 성당을 건립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러일전쟁(1906년), 러시아 혁명(1917년)으로 선교활동이 중단되고 한국전쟁 발발로 정교회 신부들이 납북되는 등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1975년 그리스 정교회 신부가 다시 한국 책임자로 부임하면서 활기를 되찾아 오늘에 이른다. 현재 정교회 성당은 서울, 부산, 인천 등지에 분포돼 있으며 신자수는 2000여명 정도.
정교회는 가톨릭교회와 성사적, 교리적 측면에서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성공회처럼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 성직은 가톨릭처럼 주교, 사제, 부제로 나뉘지만 모두 결혼을 하고 독신은 수도자만 지킨다는 점도 다르다.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성서와 성전을 계시 원천으로 받아들이지만 구약 49권, 신약 27권을 성서로 사용하는 점, 구약의 제2경전을 인정하지만 교의적 신학적 권위를 지니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우리가 잘못 아는 상식 중 하나가 그리스정교와 가톨릭교회가 이른바 '성상숭배' 문제로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비잔틴 제국 안에서 '성화상논쟁'이 거세게 일었고, 피튀기는 대립이 있었습니다.이를 계기로 동서방 간에 갈등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제2차 니케아 공의회를 계기로 동서방교회간에 '성화상파괴 주의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였고, 성화상 논쟁은 종식되었습니다. 동서방교회간의 분열원인은 첫째, 로마제국의 분열에 있습니다. 이로 인한 라틴문화의 서방세계와 헬라문화의 동방세계간의 이질감이 생겼고, 제국의 수도의 이전으로 인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권위가 상승하면서 로마주교, 즉 교황의 권위에 버금가는 지위에 오른 것이 교회분열의 첫째 원인입니다. 둘째 원인은 관할권 다툼입니다. 불가리아와 모라비아 교회에 관한 관할권을 두고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교회간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셋째, 서방의 교황수위권과 동방의 황제교황주의 간의 대립이 교회분열의, 어떻게 보면 가장 큰 분열원인입니다. 서방교회는 황제교황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동방교회는 교황수위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결국, 동로마 황제가 교황의 동의 없이 포티우스를 콘스탄티노플교회의 총대주교로 임명함으로써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로마교황은 비잔틴 황제의 동의없이 프랑크의 왕, 샤를마뉴를 서로마의 황제로 세웠습니다. 넷째, 성령론에 대한 의견 차이로 상호파문을 통해 완전히 결별하였습니다.동방교회는 성령은 오직 성부하느님으로부터만 발한다고 주장하였고, 서방교회는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동시에 발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참을대로 참았지만, 이 차이로 인해 서로 이단이라 하며 상호파문하면서 결국 1054년에 갈라서고 맙니다. 이런 관계는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상호파문을 철회하면서 끝납니다. 그러나 지금도 갈라져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공통점은.........삼 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성모님을 비롯한 성인성녀와 천사들을 공경하며, 성화상, 성유물, 성유해 등을 공경합니다. 또한 성모님에 관해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설과 '평생동정설'을 신조로 합니다. 또한 "니케아신경"에 나와 있는 신조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믿음과 선행을 통한 구원을 믿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7 성사(세례,견진,고해,성체,신품,병자,혼인성사)를 모두 인정하고, 성직체계(주교,신부,부제)가 같으며, 성서와 함께 성전을 신앙의 원천으로 삼고, 사도전승을 중요시하며, 공의회의 권위를 중요시합니다. 수도자(수사,수녀)제도가 있습니다. 차이점은 그리스정교회는 1.성모님에 관해서는 '무원죄 잉태설' 이나 '몽소승천설'을 존중하기는 하나 신조로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가톨릭은 신조로서 받아들였습니다. 2.가톨릭의 연옥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3.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사제 독신주의를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세속사제 경우에는 기혼자도 사제서품을 받을 수 있으며, 이후에도 부부생활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상처하면, 재혼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주교는 미혼사제만이 될 수 있으며, 수도자는 어떤 경우에라도 독신을 지켜야 합니다. 4.성서는 가톨릭 보다 구약이 3권이 많아, 구약 49권, 신약 27권 모두 76권을 경전으로 인정합니다. (가톨릭은 구약 46권, 신약 27권, 모두 73권입니다.) 5.가톨릭의 교황처럼, 중앙집권적인 수장을 거부합니다.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주교가 명목상으로는 수장이지만, 실질적인 수장은 각 교구의 주교들입니다. 6.앞서 말했지만, 성령론에도 차이점을 보이며, 세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침례를 고수합니다. 7.성찬때 누룩없는 빵을 사용하는 가톨릭과 달리 누룩있는 빵을 사용하며, 가톨릭은 사제는 양형영성체를 하지만, 일반신자들은 단형영성체를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정교회는 사제나 일반신자들이나 모두 양형영성체를 합니다. (참고로, 양형영성체는 성체성혈을 모두 영하는 것이고, 단형영성체는 성체만을 영하는 것입니다.) 8. 가톨릭은 예배시에 라틴-갈리아 전례를 행하지만, 그리스정교는 그리스-동방전례를 행합니다. 이외에도 사소한 몇가지 차이점은 많으나 가톨릭과 그리스정교는 서로를 사도로 부터 이어오는 교회임을 인정하고 서로의 세례를 인정하며 다시 하나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 아는 상식 중 하나가 그리스정교와 가톨릭교회가 이른바 '성상숭배' 문제로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비잔틴 제국 안에서 '성화상논쟁'이 거세게 일었고, 피튀기는 대립이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동서방 간에 갈등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2차 니케아 공의회를 계기로 동서방교회간에 '성화상파괴 주의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였고, 성화상 논쟁은 종식되었습니다. 동서방교회간의 분열원인은 첫째, 로마제국의 분열에 있습니다. 이로 인한 라틴문화의 서방세계와 헬라문화의 동방세계간의 이질감이 생겼고, 제국의 수도의 이전으로 인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권위가 상승하면서 로마주교, 즉 교황의 권위에 버금가는 지위에 오른 것이 교회분열의 첫째 원인입니다. 둘째 원인은 관할권 다툼입니다. 불가리아와 모라비아 교회에 관한 관할권을 두고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교회간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셋째, 서방의 교황수위권과 동방의 황제교황주의 간의 대립이 교회분열의, 어떻게 보면 가장 큰 분열원인입니다. 서방교회는 황제교황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동방교회는 교황수위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결국, 동로마 황제가 교황의 동의 없이 포티우스를 콘스탄티노플교회의 총대주교로 임명함으로써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로마교황은 비잔틴 황제의 동의없이 프랑크의 왕, 샤를마뉴를 서로마의 황제로 세웠습니다. 넷째, 성령론에 대한 의견 차이로 상호파문을 통해 완전히 결별하였습니다. 동 방교회는 성령은 오직 성부하느님으로부터만 발한다고 주장하였고, 서방교회는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동시에 발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참을대로 참았지만, 이 차이로 인해 서로 이단이라 하며 상호파문하면서 결국 1054년에 갈라서고 맙니다. 이런 관계는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상호파문을 철회하면서 끝납니다. 그러나 지금도 갈라져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공통점은.........삼 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성모님을 비롯한 성인성녀와 천사들을 공경하며, 성화상, 성유물, 성유해 등을 공경합니다. 또한 성모님에 관해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설과 '평생동정설'을 신조로 합니다. 또한 "니케아신경"에 나와 있는 신조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믿음과 선행을 통한 구원을 믿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7 성사(세례,견진,고해,성체,신품,병자,혼인성사)를 모두 인정하고, 성직체계(주교,신부,부제)가 같으며, 성서와 함께 성전을 신앙의 원천으로 삼고, 사도전승을 중요시하며, 공의회의 권위를 중요시합니다. 수도자(수사,수녀)제도가 있습니다. 차이점은 그리스정교회는 1.성모님에 관해서는 '무원죄 잉태설' 이나 '몽소승천설'을 존중하기는 하나 신조로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가톨릭은 신조로서 받아들였습니다. 2.가톨릭의 연옥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3.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사제 독신주의를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세속사제 경우에는 기혼자도 사제서품을 받을 수 있으며, 이후에도 부부생활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상처하면, 재혼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주교는 미혼사제만이 될 수 있으며, 수도자는 어떤 경우에라도 독신을 지켜야 합니다. 4.성서는 가톨릭 보다 구약이 3권이 많아, 구약 49권, 신약 27권 모두 76권을 경전으로 인정합니다. (가톨릭은 구약 46권, 신약 27권, 모두 73권입니다.) 5.가톨릭의 교황처럼, 중앙집권적인 수장을 거부합니다.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주교가 명목상으로는 수장이지만, 실질적인 수장은 각 교구의 주교들입니다. 6.앞서 말했지만, 성령론에도 차이점을 보이며, 세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침례를 고수합니다. 7.성찬때 누룩없는 빵을 사용하는 가톨릭과 달리 누룩있는 빵을 사용하며, 가톨릭은 사제는 양형영성체를 하지만, 일반신자들은 단형영성체를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정교회는 사제나 일반신자들이나 모두 양형영성체를 합니다. (참고로, 양형영성체는 성체성혈을 모두 영하는 것이고, 단형영성체는 성체만을 영하는 것입니다.) 8. 가톨릭은 예배시에 라틴-갈리아 전례를 행하지만, 그리스정교는 그리스-동방전례를 행합니다. 이외에도 사소한 몇가지 차이점은 많으나 가톨릭과 그리스정교는 서로를 사도로 부터 이어오는 교회임을 인정하고 서로의 세례를 인정하며 다시 하나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