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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도운동을 주의하자

작성자고재봉|작성시간23.10.23|조회수194 목록 댓글 0

신사도운동을 주의하자

 

© breebuddy, 출처 Unsplash

오늘은 신사도운동에 대해 다뤄볼까 합니다. 저는 신사도운동과 같이 은사주의를 지향하는 단체들을 사실상 이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천지나 JMS 같은 단체들은 사이비로 판정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계하게 되지만 신사도주의 단체들은 주요 교단에서 이단 판정을 받지 않아서 그런지 그러한 경계심이 허물어진 채로 접근하게 되기 때문에 더 쉽게 물들고 그런 사상들에 잠식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신사도 계열 단체의 집회나 교회에 아무런 경계심없이 참여하고 거기서 들은 터무니없는 주장에 감동하며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지인들이 꽤나 많습니다. 사실 너무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도 제대로 뭐가 뭔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신사도 계열에 포함된 단체가 어느 단체들이 있고 어느 교회들이 있는지 꾸준히 정리해 볼 생각이며 그래서 첫 게시글로 신사도 운동이 무엇이 왜 주의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아보려고 합니다.

사도란?

'사도'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사도라는 용어는 초대교회의 첫 번째 직분이며 가장 중요합니다.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요. 신약성경은 사도라는 직분을 열두 제자와 바울에 한정하여 극소수의 사람에 한정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되고 싶다고 아무나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눅6:13, 새번역] 날이 밝을 때에,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는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롬1:1, 새번역]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나 바울은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위의 말씀들을 보아 사도라는 직분은 예수님의 제자 12명과 바울에게만 국한되어 사용되었던 단어입니다. 예외적으로 바나바와 야고보에게도 사용되어지는 모습이 보이지만 그들 개인에게 적용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도들과 함께 병행하여 사용되어졌기 때문에 그들이 사도였는지에 대해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적인 사도의 자격과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사도는 예수께서 직접 불러 세우시고 보내신 자로 예수께서 직접 임명한 직분 (막3:13-14, 갈1:1, 행9:15)

둘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이었다.(행 11:21-22, 고전 9:1, 고전15:7-9)

셋째, 사도는 예수께서 직접 기적을 행할 능력을 주신 자였다.(막3:14-15, 고후12:12)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사도와 선지자가 계승되고 있을까요? 사도와 선지자라는 직분은 초대교회에만 있던 직분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세운 기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와 선지자라는 직분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직분이 아니라 교회의 기초적인 터를 제공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엡2:20, 새번역]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신사도운동이란?

신사도운동을 시작한 피터 와그너 박사는 2001년 당시 '제2 사도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며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이 계속해서 계승되어져 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신사도운동이 말하는 사도란 영적 권위를 갖고 목사를 지도하며, 개인적인 관계로 목사의 삶에 영향력을 준다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 지역교회를 관할하는 사도적 리더쉽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이 러더쉽은 교회적 직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관계에 의해서 세움받거나 폐해진다. 사도적 네트워크가 교단을 대신한다. 각 지역 교회들은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목사들은 각 회중의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광역 사도의 영적보호(spiritual covering) 아래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단하여 선택한다. 이것은 사도와의 인격적 동의에 따라 성립되는 관계이다. 이 관계 안에서 사도는 영적권위를 가지고 목사를 지도하며 그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외부의 도움이 핗요한 사역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며 영적 아버지로서 목사를 격려하는 것이다.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피터와그너, 쉐키나, 41-42쪽

그러나 지역교회를 넘어서는 사역에서 우리는 옛 가죽부대의 목사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새 가죽부대의 사도적 사고방식에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교단을 떠나고 종교의 영과의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 고통스럽지 만, 결단을 내리고 행동을 하는 갱신운동 지도자들이 점점 더 많아 지고 있다. 그들은 내부의 개혁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사도 개혁의 새로운 가죽 부대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43쪽, 60쪽

교단을 탈퇴하고 신사도운동에 들어와 그들이 말하는 사도의 보호를 받으란 의미입니다. 이들은 이것을 개혁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 교회의 틀의 붕괴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교단이 해체되어야 하고 정통신학을 부정해야합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정통신학은 걸림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신사도운동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부의 이동이며 추종자의 수인데 자신들의 주장이 정통 신학과는 반대되기 때문에 이들은 계속해서 신학의 틀을 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신사도운동의 특징

 

1. 새 포도주와 새 부대

신사도운동을 하는 목사들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는 기존의 기독교와 다른 새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들이 말하는 옛 포도주는 기독교의 가르침이고, 헌 가죽부대는 기독교의 기존 교회를 뜻합니다.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정통신학을 모두 부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제2의 사도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새 포도주가 옛 포도주보다 더 좋은 것임을 믿어야 한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를 위해서 새로운 가죽 부대들을 연이어만들어 오셨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가죽부대로 들어왔다. 이것을 나는 제2의 사도시대라고 부른다.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18쪽

예수께서는 율법과 복음,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비교하며 가죽부대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합니다. 새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이며 그것이 곧 '새 언약'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신사도운의 주장이 새 포도주라면 또 새로운 언약이 등장했다는 의미일까요? 예수님의 피가 옛 언약이 된다는 의미일까요? 더 나아가 피터 와그너는 포도주와 가죽부대의 비유를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해서 세대마다 포도주를 담는 가죽부대가 달랐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막14:23-25, 새번역]

23 또 잔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은 모두 그 잔을 마셨다.

24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2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피터 와그너는 기독교와 신사도운동을 비교하며 낡은 가죽 부대인 기독교에서 새 가죽 부대인 신사도운동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의 낡은 지도자들이 새 포도주가 새 가죽부대에 담기는 것을 싫어한다겨 말하며 이것을 '종교의 영'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종교의 영은 사탄의 사자라고 주장합니다.

낡은 가죽부대에서 새 가죽부대로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강력한저항을 유발한다. 이 저항은 낡은 가죽 부대의 기름부음 받은 지도자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낡은 가죽 부대의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지도자들로부터 온다.

종교의 영을 간략히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종교의 영은 종교적 수단을 사용하여 변화를 막고 현상을 유지하는 일을 맡은 사탄의 사자이다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19쪽/21쪽

신사도운동의 이러한 주장은 초대교회 때부터 존재해 왔던 이단들의 주장이기에 전혀 새로운 주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피터 와그너는 정통신학을 부정하며 개방신학을 주장합니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단일신론자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기독론까지 포용하는 행태를 보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정통신학은 사탄의 사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신사도운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통신학을 하는 사람들을 종교의 영이자 사탄의 사자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의 영은 교단의 지도체제를 현 상태로 유지하게 함으로써사도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도적 권세로 사역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종교의 영은 교단 지도자들에게 교회가 하는 일에 영향을 끼칠 최종적인 결정들은 개인이 아닌 집단이 내려야 한다고 믿게 함으로써 이 일을 한다. 실제로 많은 교단은 이른바 민주주의적인 교회정치 체제 개념을 정립하여 핵심교리에 손대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을 집단의 다수결로 정하고 있다.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227쪽

신사도운동은 예수의 피가 새 언약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기독교 자체를 부정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옛 언약으로 취급하고 교회를 헌 가죽부대로 만듭니다. 사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므로 성경이 새롭게 기록되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기독교를 부정하는 일이며 신학적으로 바르지 못한 사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학은 2천년이란 기간동안 이단들과 싸워오며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신학보다는 예언과 계시 그리고 기적과 은사라는 보이는 현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자신들이 사도라고 헛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도미니온과 킹덤나우

피터 와그너는 목회의 목적을 '교회 성장'이라는 용어로 바꾸었습니다. 그에게 교회성장이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인 수의 증가로 수평 이동도 포함됩니다. 도미니온(통치신학) 사상은 신사도운동에서 가장 이단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사도운동은 세상을 종교, 가정, 교육, 정부, 미디어, 예술과 연예, 비즈니스 등 7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이를 일곱 산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7개의 산을 정복해서 사회변혁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의 지배층에 사도들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이러한 변혁의 수단으로 두개의 기둥을 주장하는데, 하나는 '일터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돈'입니다. 즉 일터교회와 부의 이동을 통해 그들이 주장하는 통치체제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터 와그너가 주장하는 도미니온은 킹덤나우라고도 불립니다. 이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이 말하는 천국과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지상에서 이뤄지는 신사도운동이 말하는 천국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하나님 나라는 '킹덤나우' 사상으로, 지상에서 이루는 현재적이며 세상적인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현재적인 진행의 개념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인간이 이 땅에서 실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통치신학인 것입니다.

 

킹덤나우 사상은 "중보기도를 통한 전략적 영적전투"로서 지역사회를 변혁시킨다는 것이고 그것을 지도로 표시한 것이 영적도해입니다.

 

도미니온은 예수님의 재림 전 신자들이 이 땅에 미리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릇된 후천년설의 일종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예수님이 오실 왕국을 만들어 놓아야 예수께서 재림하신다는 이단적인 사상입니다. 예수님은 특정한 시대에 어떠한 조건에 맞춰서 오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때는 하나님만 알고 계시며 도적처럼 이 땅에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종말의 때를 안다거나 어떤 일이 일어난 후 마지막 날이 온다고 하면 다 거짓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피터 와그너는 두 개의 기둥(일터교회와 부의 이동)을 통해 세상을 변혁시키여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교회의 체제를 일터교회로 바꾸어야 하고, 그들이 말하는 사도들을 중심으로 가난의 영을 파괴하며 부를 이동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론적으로 신사도운동에서 주장하는 통치신학이란 자칭 사도들이 다스리는 현재적이며 물질적이며 세상적인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회의 변혁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가고자 하는 우리의 목표와 더 잘 부합되는 신학은 통치의 신학(dominion theology), 즉 킹덤나우(Kingdom Now) 신학이다. 통치의 신학, 즉 킹덤나우 신학을 강력하게 주장해 온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마라나타 운동의 창시자인 밥 와이너이다. 사람들이 킹덤나우 신학과 통치의 신학을 다소 지혜롭지 못하게 적용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자들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다.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111-112쪽

일터는 진정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왜냐하면 일터는 도시의 권세자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전에는 목사와 교회 지도자들과 기도로 땅밟기를 통해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일터의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들을 무장시켜야 한다

사회의 변혁을 위해서는 기도와 영적전쟁과 사도적 리더쉽이 필요할 뿐 아니라 돈도 필요하다. 1992년 무렵부터, 하나님은 전례없이 많은 재물을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동원하실 것이라는 말씀이 검증된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되기 시작했다.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119-120쪽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지상에서 이뤄질 수 없습니다. 마지막 날은 아무도 모르게 오고 그 시기는 주님만 아십니다. 그때를 알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인간이 이루는 어떠한 조건으로 준비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는 몸을 입고 살아나 하나님 앞에서 심판대에 설 것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재창조된 새하늘과 새땅에서 삼위 하나님과 영원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재림에 있어서 어떠한 조건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이단적이며 바르지 못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영적도해

영적도해는 신사도운동에서 주장하는 중요한 교리입니다. 영적도해는 하나님의 영역과 사탄의 영역을 지도로 표시하여 그 지역을 다스리는 지역신들을 쫓아냄으로 하나님의 영역을 확장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주장은 극단적 세대주의의 이원론으로서 이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구도로 보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유는 대속의 개념이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일의 근원이 되신다고 말하며, 땅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가는 타락한 사람들의 죄와 생각들이 문제가 된다고 말합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대적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권세 아래 놓여서 묶인 존재입니다.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피조물을 통치해야할 사명을 감당하고 있던 아담과 이브사이에 서 있었던 존재는 사단인 뱀이었다.사단은 자신이 찬탈한 이 세상이라는 왕국을 싸움이 없이는 쉽게내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통치권을 탈환해야 함을 아는 우리는 일반적으로 영적전투라고 부르는 이 싸움에 개입되어 있다. 1990년대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영적전투, 특히 바울이 에베소서6장 12절에서 언급한 정사와 권세에 관련된 전략적 차원의 영적전투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열심히 배웠던 기간이었다. 그 이전에는 영적도해나 지역의 영 혹은 동일시 회개라는 개념들은 우리의 레이더 스크린에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개념들이 널리 퍼져있고 이 개념들은 사회변혁을 이루기 위해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도미니온, 264쪽

그렇다면 예수님이 멸하시기 위해 오신 그 마귀의 일이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에덴동산 이후 사단이 인류에게 커다란 고통을가 했던 불행과 조직적인 빈곤, 그리고 불의와 압제 들이었다. 사단의 명칭인 ‘공중의 권세 잡은 자’ 혹은 ‘이 세상 임금’은 그가 왕국을 소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사단의 호전적인 계급적 체제를 갖추어 통치한다. 이 어두움의 나라는 두 번째 아담이 오시기 전까지는 세계적인 규모로 직접적인 도전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셨을 때 사단은 전면적인 공격을 당하게 된 것이다.

도미니온, 146쪽

다행히도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실제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여 대적들을 멸하시도록 인도하셨던 옛 언약의 때가 - 78 - 아닌, 새 언약의 때에 살고 있다. 새 언약과 더불어 예수님은 하나 님의 나라를 이 땅에 가지고 오셨다. 우리의 전투는 더 이상 육체적 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 앗느니라”(마11:12), 우리가 수동적으로 머물러 있으면 이 땅을 다 스릴 수 없다.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가 공격적이 되고 원수에 대해 서 전쟁을 선포할 때에만 우리는 진정으로 이 땅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도미니온, 150쪽

최근 이단성이 짙은 단체로 널리 알려진 인터콥의 최바울도 영적도해를 주중합니다. 그는 '세계영적도해'라는 책을 썼으며 그 책에서 지역신의 개념이 계속해서 언급되어 집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우상 그 지역들을 장악하고 있는 신들에 대항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지역마다 그 지역 을 지배하는 어둠의 영적세력들이 오랜 세월 역사 속에서 강력한 영적진을 형성해 왔습니다

최바울, 백투예루살렘, 70쪽

우리는 두 번째 아담인 예수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것을 찾아 회복하시려고 오셨음을 살펴 보았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인류를 위해 부여하신 통치권을 되찾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을 살펴 보았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 오셨다. 에덴 동산에서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었던 아담의 권세를 찬탈할 수 없었으나 예수님은 역사를 되돌리시려는 공격적인 의도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

피터와그너, 도미니온, 146쪽

이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택한 자들의 구원이 아닌 마귀의 일을 멸하며 통치권을 되찾아 주시러 오셨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이에 대해 최바울도 같은 주장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역사는 인간 개개인을 구원하셨지만,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인간 개개인이 구원 받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것 이상의 하나님의 사역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단의 권세를 멸하고 모든 권세를 하나님 앞에 무릎꿇게 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역사 이후에도 하나님의 세계경영은 지구영적 전쟁의 차원에서 계속되는 것입니다.

왕의 군대, 118쪽

신사도운동의 영적도해, 영적전쟁, 축사, 땅밟기 기도, 대적기도, 선포기도 등은 모두 극단적 세대주의에서 나온 이원론적인 사상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구도로 보는 이원론은 초대교회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선과 악의 대결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원론을 말하며 모든 것의 근원이 하나님이며 악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놓여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영적도해에서 나온 대표적인 것이 땅밟기 기도입니다. 이들은 여리고성 사건을 인용하며 땅밟기를 시행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이유로 모두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구약의 사건들은 예표와 상징을 통해 해석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땅밟기를 통해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은 그 자체에 어떤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수1:3, 새번역] 내가 모세에게 말한 대로, 너희 발바닥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위의 본문에서 땅을 밟는 대로 소유가 된다는 의미는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될 가나안 땅의 최대 경계를 가리키는 상징적은 표현이지 땅 밟기를 해서 어떤 영역을 하나님의 영역으로 가져온다는 해석을 하게되면 안 됩니다.

4.기적과 표적만을 구하는 집회

신사도운동 계열 단체들의 집회에서는 이를 금니로 바꿨다거나 쓰러짐, 진동, 웃음, 입신과 같은 유치한 현상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은 타 종교에도 존재합니다. 최근에 영성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신비주의적인 집회를 하는 곳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기적과 표적을 추구하는 신앙이 꼭 구원얻는 신앙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막13:22, 새번역]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표징들과 기적들을 행하여 보여서, 할 수만 있으면 선택 받은 사람들을 홀리려 할 것이다.

성경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도 표적과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적과 표적만을 추구하는 신앙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적들이 있어야 구원얻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그에 대한 의미를 알고 은혜 언약이 무엇인지 알 때에 우리는 구원얻는 믿음에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적과 표적은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어떤 사건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구원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최근 박혁이라는 사람이 말도 안되는 영상을 올리면서 자기가 전도자라는 직분을 갖고 사역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른 비슷한 영상을 올리는 아류(정재한, 시스터지 등)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영상들의 특징한 병을 고치고 귀신들린 자를 고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이 짜고치는 고스톱 판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하며 성령의 역사를 가볍게 여기게 만듭니다. 성령의 역사는 어떤 특정한 집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 삶에서도 이뤄집니다. 이런 무질서한 집회는 성경에서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예로 들겠지만 그 사건은 지금과 같은 이런 바보같은 집회와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성령을 받고 안수를 받으면 쓰러진다는 성경구절도 없습니다. 박혁이 다른 사람의 머리에 손을 대면 쓰러집니다. 저는 그 사람이 천번 손을 대도 안 쓰러질 자신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어떤 능력도 없기 때문이죠.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쓰러짐이 우리의 신앙에 유익한 점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신사도운동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

 

1.신사도운동이 과연 진정한 성령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구원얻는 믿음을 갖고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믿는 지 바로 알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예수님이 왜 죽으실 수 밖에 없었는지, 내가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는지 은혜언약에 대해 바르게 아는 사람이라면 구원의 확신을 바르게 누리며 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적과 표적을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 사람의 구원 여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기적은 일어날 수도 있고 안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병을 고치는 신사도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집회를 열어서 돈을 벌 시간에 병원에 가서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면 돈을 굉장히 많이 벌 수 있을텐데 그러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짜고 치지 않으면 그 일이 절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들도 기적과 표적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기적과 표적이 전적인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천사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신앙의 객관적 기준이자 계시로 믿지 않고 사도라고 부르는 자들이 하는 거짓말을 계시와 예언으로 따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

 

그들은 지상에서 그들이 세우는 천국에 동참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눅17:20) 성령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시는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나님 나라입니다.(계21:10)

[마7:22-23, 새번역]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도 하고 귀신도 쫓았는데 예수님꼐서는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이 정확히 누구를 뜻하는 것일까요? 잘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기적과 예언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2. 성경과 정통신학과 교리의 불필요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피터 와그너를 포함한 신사도운동가들은 정통 교리와 신학의 불필요성을 계속해서 주장합니다. 오히려 목사들이 사도들의 아래로 들어와 그들의 영적 보호를 받아야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가 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의미이며 그 말은 성경이 새롭게 쓰여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들 스스로 직통계시와 예언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즉 그들의 계시와 예언이 성경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그들에게 당연히 2천년의 기간 동안 정립된 신학은 걸림돌이 될 것 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하나님 나라는 사도들의 부와 명예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사도운동의 특징과 위험성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더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전부 다 담으려면 길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여기서 마치려고 합니다. 다른 특징들에 대해서는 신사도와 관련된 단체와 교회들을 다루며 그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을 때 함께 다뤄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이인규 장로님의 '신사도운동의 정체와 비판'/ 조믿음 목사님의 '신사도운동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참고해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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