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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자료

구약 성경에서 발견되는 ‘예수 이름’의 근거

작성자soul|작성시간26.06.16|조회수6 목록 댓글 0

구약 성경에서 발견되는 ‘예수 이름’의 근거              

 

Ⅰ. 유대인의 이름 이해

 

1. 이름의 일반적인 의미

 

  고대 사회에서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특별한 성향을 말해주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혀준다. 또한, 그 사람의 업적과 그의 활동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알렉산더는 그의 업적으로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 요한은 그의 활동으로 인하여 침례 요한이라고 불렸다. 성경 속에서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성격과 특성 및 운명을 드러낸다. 하나님이 첫 사람(man)을 ‘아담’이라 부른 것은 그를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창 1:26-27) ‘아담’은 “아다마”(흙, 토지, 땅)’와 연관을 가지며, 이 두 단어는 “아돔”(붉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원적 유사성을 가진다. ‘아담’은 “아돔”과 연관이 있으므로, 아마도 인간의 본래 피부색인 붉은 색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고, 또한 “아다마”, 곧 “붉은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명사는 ‘아담(첫 사람)’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또한 ‘인류 혹은 총칭적인 인간’, 특정한 사람들의 집단으로서의 ‘사람들’, 또는 ‘어떤 이’(부정대명사)라는 의미가 있다. 70인 역본에서는 ‘아담’이라고 음역하지 않고, “안드로포스”(사람)라고 번역한다. 그리고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꾼 것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를 의미하는 것으로(창 17:5-8) 족장을 표현하는 이름이다. ‘아브람’은 북부 셈어형의 이름이며, “아버지는 높임 받으신다”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히브리어 ‘아브라함’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를 의미한다. 전자는 창 11:26-17:4에, 후자는 대상 1:27 느 9:7을 제외한 구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 대상 1:27과 느 9:7에는 아브람과 아브라함이 함께 나타난다. 아브람이란 이름은 창 17:5에서 계약의 갱신과 함께 하나님에 의해 “열국의(많은 무리의) 아버지”로 설명되는 아브라함으로 개명되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낳을 것을 말하자 사라가 웃었다. 이로 인해서 그들의 아들은 ‘웃음’을 뜻하는 ‘이삭’이라 불렸다. (창 17:19; 21:1-7)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꿨으며(창 32:28), 예수는 시몬의 이름을 ‘반석’을 의미하는 ‘베드로’로 바꾸었다. (마 16:13-19, 요 1:40-42)

 

  성경 속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유대인들은 신적인 요소를 가진 이름을 많이 선호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부모의 신앙을 나타내거나 감사의 의미를 갖는 이름도 있다. 신앙 고백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으며, 동식물명의 이름을 도용하기도 했다. 이들은 개인의 특징에 따라서 혹은 출생의 특수한 환경과 관련하여 작명하기도 하였다. 구약 성경에서 예수 이름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이름의 의미를 살펴보기 전에 유대인의 이름의 형태와 작명에 대한 배경지식을 먼저 이해한다면 더 확실한 하나님의 이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의 의미

 

  고대 중동 사회에서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의 본질을 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성서를 이해하는 열쇠는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에 있다고 본다. 구약 성경이 일관되게 증언하고 고백한 하나님은 ‘야훼(YHWH)’이다. 이 ‘여호와’의 이름은 모세가 시내(호렙) 산에서 받은 계시 사건과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시내 산에서 자기 계시를 통하여 나타난 ‘여호와’의 속성과 본질이 가장 분명하게 제시된 곳이 출애굽기 3장과 33~34장이다. 3장에 나오는 ‘여호와’는 “창조할 것을 창조하는 자(3:14)이며, 33~34장에 나오는 ‘여호와’는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는(33장)” “긍휼의 신”(엘 라훔, 34:6)으로 계시된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의 역사적, 신학적 의미는 고난받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하나의 민족으로 창조하신,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계시되었던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라는 이름의 신이다. 그 신이 모세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계시된 것이다. (출 6:2-3) ‘여호와’라는 말의 본질은 ‘에흐예(ehyeh, 나는 이다 또는 나는 존재한다)’라는 의미가 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하나님을 부르는 특별한 이름이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는 “정의될 수 있는 자, 구별된 자, 개별자”로 묘사된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이다”라는 동사에 토대를 둔다는 점에서 존재(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모세와 연결되어 과거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엘 샤다이)과 동일한 분이다. (출 3:16) 또한, 미래의 하나님으로 ‘여호와’는 영원한 이름이 되며, 대대로 기억해야 할 칭호이다. (출 3:15) “나는 스스로 있는 자”(3:14)라고 정의한 하나님은 그 존재와 현존이 완전하게 실현 될 때까지는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다. 포로기의 선지자들은 ‘여호와’를 “처음이자 나중, 창조주, 역사의 주, 유일한 구주”라고 불렀다. 역사 속에 나타난 여호와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든 열방이 여호와가 하나님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특별한 계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Ⅱ. ‘예수 이름’의 어원적 의미

 

  우리나라 말 ‘예수’로 번역된 헬라어 “이에수스”는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히브리어 ‘여호수아(예호슈아)’라는 유대 이름을 헬라어로 음역한 다음 주격 변화를 위해서 뒤에 시그마를 붙인 것이다. 이 ‘여호수아(야훼는 히브리어 ‘여호와’와 ‘야솨’의 합성어이다.) 하나님의 이름인 히브리어 ‘여호와’의 본래 발음은 불명확하여 오늘날 이 하나님의 명칭은 ‘야웨’, ‘야훼’, ‘여호와’, ‘예호와’ 등 다양하게 표기한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고유 명칭이며 기념 칭호이다. 이 ‘여호와’의 이름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직접 받은 이름으로(출 3:13-15), ‘나는 스스로 있는 자’란 뜻이다.

 

  장영일은 ‘여호와’ 이름은 ‘하야’ 동사에서 유래했으며, 본래적인 의미를 ‘그는(역사 속에서 참 하나님으로) 현존/ 존재하시는 자이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계시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한 것으로 본다. 여호와 전승에 따르면 예수는 태초부터 계신 분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구속적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 때부터라는 것이다. 칠십인 역에서는 구약의 모든 ‘여호와’의 이름을 ‘큐리오스’(주님)라고 통일하여 번역함으로써 구약성서를 헬라어로 읽을 때 ‘여호와’를 ‘예수 그리스도’로 읽게 한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야솨’는 히브리어 동사의 기본 어근으로서 ‘구원하다’, ‘구출하다’, ‘구조하다’의 의미가 있다. 구약 성경에서 ‘야솨’는 약 200회 정도 등장하며, ‘야솨’와 그 파생어들은 353회 사용된다. ‘야솨’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외부로부터의 압제와 죄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하며, 환난이나 질병 등 각종 고통스러운 것으로부터의 종합적인 구원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약성서에서 예수 이름이 갖는 어원적 의미인 ‘여호수아’는 ‘여호와’와 ‘야솨’ 두 단어의 합성어로서 “여호와는 도움이시다” 또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정의 안에 들어있는 모든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Ⅲ. ‘예수 이름’의 모형론적 의미

 

  모형론적 해석은 신약의 주요 사건들, 인물들, 관습들을 구약과 비교하여 중요한 연결고리를 만든다. 신약의 저자들은 구속사적 맥락에서 예언의 성취처럼 모형론을 통해 구약의 연속 및 완성으로서 예수를 소개한다. 신약에서 예수를 통하여 이룬 구원 사건은 구약의 주요 구원 사건과 비교된다. 구약의 예언을 모형론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예는 예수가 시편 110편에 언급된 다윗의 후손을 모형론적으로 해석한 경우이다. 모형론은 구약의 하나님은 예수의 아버지이며, 나사렛 예수는 구약 구속사의 성취자인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신약은 구약의 성취를 십자가 사건의 외적 실체, 즉 행위 그 자체에서가 아니라 인자의 높이 들림(십자가의 수치와 고난당함)에서 찾는다. 호프만(Hofmann)이 강조한 것처럼, 신약은 구약의 구속사에서 발견되는 모형들의 성취요, 미래 최종 완성에 대한 모형적인 예언으로, 이중적 관계에서 이해되고 설명되어야 한다.

 

  구약 성경 곳곳에 등장하는 예수(메시아)를 예표 하는 메시아의 모형들은 성경 계시의 점진성을 보여준다. 구약에서 메시아 모형의 인물들로는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을 포함한 사사들, 그리고 다윗 왕과 솔로몬 왕 등의 여러 인물이 있다. 본 절에서는 구약성서에서 예수 이름의 모형론적 의미를 고찰하기 위하여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모형 인물 중에서 먼저 예수의 선지자직과 중보자직의 모형으로서 ‘모세’를 연구한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친 언약의 중재자로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대적과 싸운 지도자(정복자)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생명을 준, 예수의 모형인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연구한다. 마지막으로 ‘영원한 대제사장’(히 7:27)이며 ‘만왕의 왕’(계 17:14)으로 영원히 다스릴 예수의 모형으로 대제사장과 왕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한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를 연구하려 한다.

 

1. 모세

 

1) 선지자(예언자) 모세

 

  선지자는 말씀의 사람이다. (렘 18:18) 선지자의 역할은 하나님의 입이 되는 것이다. (렘 15:19) 선지자자들은 “신에 감동한 사람들”이었다. (호 9:7) 일반적으로 선지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용어는 “나비”이다. 어원적으로 이 용어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사람, 설교자 또는 대변자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대언자의 직책, 곧 나비의 사명을 맡겼다. 선지자를 나타내는 더 오래된 구약의 용어로서 “로에, 호제”가 있으며, 이 용어는 “예언자”로 지칭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뜻과 관련된 것들을 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선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미 3:8)”,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 23:2) 이처럼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영에 감동되어 말할 때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말했다.

 

  성서 전승에서 모세는 무엇보다 ‘선지자’로 불린다. (신 18:15) 신명기 결론에 따르면, 모세는 모든 선지자의 본보기가 되며, 이스라엘에서 모세 같은 선지자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세는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대면하였으며, 애굽 온 땅에서 기사와 이적을 행함으로 권위를 나타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다’라거나 ‘야훼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처럼…’과 같은 표현이 되풀이 되는 것은 모세가 야훼와 깊이 교통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여호와는 모세의 ‘이름까지도 아신다. (출 33:12, 17) 백성들이 모세에게 불평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불평하는 것과 같을 정도로 모세와 하나님의 관계는 깊었다. (민 21:5)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신 18:18)라고 하신다.

 

  “그 이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 (신 34:10)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어떻게 보면 이 구절은 미래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겠다”(신 18:18)라는 언급과 모순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모세는 야훼와 대면하던 자이며(출 33:11, 신 12:6-8), 바로와 그의 신하들과 이집트 땅에서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신 34:10-12)을 이스라엘 앞에서 행하던 유일한 대행자이기 때문에 이후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이제 더 이상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훼의 말씀을 직접 듣고 백성에게 대언하는 기능을 계승한다는 측면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의 미래적 등장에 대한 언급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이러한 모세의 탁월성과 관련된 “단정적이며 선언적인” 표현은 수사학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스투에르나겔(Steuernagel)은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리라”에 사용된 동사가 “하나님께서 때때로 일으키실 것이다”를 의미하며, 단 한 번의 미래행위를 가리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HKAT[1923] 121) 매이즈(Mayes)에 의하면 본 절은 이스라엘 역사의 모든 선지자가 선포한 메시지가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과 관련되어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981] 2 2) 이같이 장차 올 선지자가 “나와 같은 선지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인격이 아니라 모세가 하나님의 사자로서 역할을 했던 그 역할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모세의 업적은 이스라엘 백성의 존재와 역사의 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모세를 후세의 선지자들과 같은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볼 수는 없다.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강제 노역의 짐으로부터 해방시킨 하나님의 구원 행위인 출애굽 사건은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죄의 속박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구속 사건을 연상시킨다. (눅 9:28-36) 이에 필자는 선지자 모세를 통하여 선지자 예수를 바라보고자 한다.

 

  모세가 ‘산(시내산/호렙산)’ 위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경험한 사건(출 19-24, 32-34)은 ‘산’에서 예수의 변모 사건 사이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내용이다. 예수의 변모 사건에서 모세의 출현은 신명기 18:15에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리라”라고 예언된 그 예언자가 예수 안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의 음성(출 24:16)’이 같은 구름 속에서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눅 9:35)”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를 신명기 18:14-19에 약속된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여기게 된다. 모세의 사십일 금식기도(출 24:18, 34:28)는 광야에서 예수의 사십 일 금식기도(눅 4:1-2)와 유사하다.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 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민 21:8-9)라는 말씀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에게 영생을 주는 것과 유사하다. (요 3:14-15) 모세는 광야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리게 하여 먹게 하였다. (출 16:4-16) 그러나 이들은 후에 죽게 되었지만, 생명의 떡인 예수에게 나아가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요 6:32-35, 49-51, 58) 이같이 선지자 모세와 예수의 유사성들의 핵심은 모세의 율법만큼 중요한 하나님의 새 계시를 가진 새로운 모세로 예수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세는 구원자의 직계 선조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오실 구원자의 직접적인 모형이나 대표 인물이 아니다. 모세는 단지 하나님의 집의 사환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원하려 했던 하나님의 경륜에 쓰임 받은 자이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하나님의 공회(교회)에 아주 중요하며 모든 종살이로부터 해방시킬 미래에 올 구원자의 사역의 좋은 본을 보여주고 있다. 신명기 18:15은 이제 사환이었던 모세는 물러나고 교회의 진정한 주인되는 예수가 그 사역을 대신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모세의 사역에서 중요한 요인을 그의 원형인 모세와 같은 선지자에게 적용시켜보자.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먼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원수들의 종살이로부터 구원해 내어야 한다. 이사야 40~66장에서 이사야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여호와의 종”이라고 일컫고 있으며, 포로에서 구원을 이 여호와의 종과 그의 공로에 연관시킨다. 마침내 예수가 자기 백성을 죄와 사단의 종살이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나타났을 때, 예수는 이사야 61:1 이하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모세가 약속했던 그 선지자가 바로 자신임을 밝히고 있다. 신명기 18:15, 18에 기록된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모세가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대면하여 알았던 것(민 12:6-8)과 같이 그도 하나님의 얼굴을 맞대고 대면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1:18의 말씀은 아무도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제외하고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이 독생한 하나님이 선지자 예수이다. 선지자 모세가 시내산에서 숨겨진 하나님 구원의 경륜을 계시했듯이 모세와 같은 그 선지자도 그와 같은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인간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모든 경륜과 뜻을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사건에서 완성하신 예수이다. 바로 이 예수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던 그 ‘선지자’라는 것이다. (막 6:15, 8:28, 눅 7:16) 누가복음 24:19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들도 그를 ‘선지자’로 보았다. 사도행전 3:22-23과 7:37에서도 예수를 고대하던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2) 율법의 중재자(중보자) 모세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신 5:23-27)와 여호와의 승인(신 5:28-31)을 통해서 유일무이한 중재자직을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화염이 자신들을 삼킬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에게 전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염려와 두려움 섞인 요청에 대한 반응으로 백성의 유한함을 인정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신 18:16-18) 이것은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18절)라는 선언에서 명백하게 강조된다. 이 구절에 따르면 선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것을 가감(加減) 없이 선포하는 것이다. 만일 선지자가 하나님 말씀대신 자기 말을 하나님 이름으로 전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전하게 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신 18:20) 그러므로 중재자인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대언하여야 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말을 들어야 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19절)라고 선언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모세가 전하는 말들은 모세 자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 모세의 중재는 가능한 대로 총체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모세는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야 했다.” (민 11:12) 모세는 목말라 부르짖는 백성들을 위해 간구하였을 때 그들은 반석에서 나는 물을 마셨으며(출 15:12, 17:4), 배고파서 원망하는 백성들을 위해 간구하였을 때, 하늘의 양식인 만나와 메추리기로 배불리게 했다. (출 16:4-5, 민 11:11-15) 백성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을 때, 모세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게 된다. (민 11:1-2, 민 21:5-7) 또한, 백성들이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그 신상에게 절하며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제단을 쌓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고자 하자 모세는 여호와께 간구한다. 그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며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에게 행한 약속의 적법한 상속자라는 논지를 펴서 여호와의 뜻을 돌이키어 화를 백성들에게 내리지 않도록 중재하였다. (출 32:1-14) 특히, 모세의 중보자 역할로 가장 두드러진 것 중의 하나는 아말렉과 싸움에서 모세의 역할이다:

 

  모세가 그의 팔을 들면, 이스라엘이 더욱 우세하고, 그가 팔을 내리면, 아말렉이 더욱 우세하였다. 모세가 피곤하여 팔을 들고 있을 수 없게 되니,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와서 모세를 앉게 하고, 그들이 각각 그 양쪽에 서서 그의 팔을 붙들어 올렸다. 해가 질 때까지 그가 팔을 내리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그 백성을 칼로 무찔렀다. (표준새번역: 출 17:11-13)

 

  다른 하나는 가데스로 향하는 여정이 끝나갈 때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이 험하여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불평하게 된다. (민 21:4-5) 이에 여호와가 불 뱀들을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여 죽은 자들이 많아지게 되자(6절), 이로 인해 모세는 하나님에게 백성들의 치료를 위해 중보한다: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구하였다. “주님과 어른을 원망함으로써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이 우리에게서 물러가게 해 달라고 주께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세가 백성들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였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서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물린 사람은 구리로 만든 그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표준새번역: 민 21:7-9)

 

  중재자 모세는 백성들이 죄를 범할 때, 그는 마치 자기가 그들의 죄에 연루된 것처럼 범죄 한 백성들과 운명을 나눠 갖기 위해 자신을 드리는 기도를 하였다. (출 32:31-32)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분노하기도 하였다. (출 32:19—20)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중재를 요청하기도 했고, 때로는 모세가 주도적으로 하나님과의 중재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출 20:19, 24:3) 신명기 5장에 인용한 십계명(출 20:3-17)은 말 그대로 모세의 중재 역할(출 20:18-19)을 상기시킨다. 출애굽기 33장에서 하나님은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1절)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3절) 처음 모세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인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라는 말씀이 거두어진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과 계속되는 긴 협상을 통해서(3:14-4:17)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호의를 얻게 된다. 그리하여 모세는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계약의 회복을 성사시킨다. (33:12-34:28) 여호와의 충성스런 종이며 백성들의 중재자였던 모세는 이스라엘 공동체 가운데 임재하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의 인간 집행자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신명기 18:18에 예언된 ‘모세와 같은 그 선지자’도 모세처럼 백성들에게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모든 경륜과 뜻을 완전히 계시하여야 할 것이다. 모세가 백성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목숨을 걸고 중보했던 것 같이 ‘모세와 같은 그 선지자’도 자기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막아서야 할 것이다. (출 32:32, 민 14:19, 신 9:25 이하, 시 106:23) 모세는 신명기 10:10에서 “내가 처음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렀고 그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이스라엘을 참아 멸하지 아니했다”라고 말한다. ‘모세와 같은 그 선지자’인 예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재자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밤낮을 산 위에서 기도했다. 마지막에는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기의 목숨을 건 기도를 했다. 그 결과 예수는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대신 죽음으로 말미암아 사망과 저주로부터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게 된다. 모세 이후에는 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한다(신 34:10)고 하였으나 예수는 모세를 능가하는 선지자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의 종으로서 충성하였으나, 예수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충성하였기 때문이다. (히 3:5-6)

 

2. 눈의 아들 여호수아

 

  모세는 죽음을 앞두고 여호와께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도록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세워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간구한다. (민 27:17) 이에 모세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라”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받는다. (18절) 모세에게 안수받은 여호수아는 모세와 동일시되며 그의 직책과 권위와 권능을 전가 받게 된다. 안수 후에 “지혜의 영”이 여호수아에게 충만하게 임하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순종한 것처럼 여호수아의 말에 순종하게 된다. (신 34:9) 여호수아는 이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약속의 땅을 직접 정복하고 분배하는 국가적 과제를 수행할 준비가 되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직접 임무를 내린다. (수 1:1).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일어나 내가 그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한 그 땅으로 가서 백성들로 하여금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을 것이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며, 두려워하지 말고,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다 행하라. 그러면 형통할 것이다.”(1:2-9) 하나님은 모세가 죽은 후에도 여호수아에게 직접 말씀하심으로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지도자임을 확증해주고 있다.

 

  여호수아의 임무를 통하여 앞으로 계승될 이스라엘 지도력의 패러다임을 살펴보도록 한다. 모든 지도자는 모세라는 그림자 가운데서 일어난다. 모세는 죽었지만, 그의 가르침은 모든 후계자에게 계승되며 모세를 따라야 한다. 이스라엘의 지도력은 땅과 분리될 수 없다. 지도자는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여호와가 주신 그 땅을 유지해야 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듯이 여호수아와 그의 계승자들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된다. 이것은 모세에게 주어진 약속에 근거하고 있다. (5절)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왕이든(신 17장) 그렇지 않으면 정복자이든(여호수아) 그들의 지도력은 모세의 율법을 따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지도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후일의 이스라엘의 사사(재판관)들과 왕들을 위한 길을 예비하게 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 백성의 구주(구원자)와 속량자(해방자)인,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의 역할을 예표하고 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주이며 용사이다. 예수는 또한 종이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그에게 나오는 모든 자는 그를 통하여 승리를 얻게 된다. 여호수아와 그의 계승자들인 이스라엘의 사사들과 왕들은 모두 장차 올 더 위대한 구속자와 구원자를 예표하고 있다.

 

  이상에서 볼 때 여호수아는 여러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다. 여호수아는 어원적으로도 예수 이름과 같다. 여호수아가 군사 지도자로서 적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 것 같이, 예수는 사단과의 싸움에서 택함받은 백성들을 구한다. (마 9:33, 17:18, 막 7:26-30, 눅 4:35, 9:42, 11:14) 예수가 자기 백성들의 구원자요 생명을 주는 자라는 점에서 여호수아와 닮았다. (눅 2:11, 4:40) 여호수아가 점령한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듯이, 예수는 그를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기업을 나누어 주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에 새겨진 모세의 율법으로 가르쳤다면, 예수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위해 찢긴 몸과 흘린 피에 새긴 새 언약을 주었다. (마 26:26, 막 14:22, 눅 22:19-20)

 

3.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스가랴 선지자는 3장에서 참소자 사단이 여호와의 천사 앞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지 못하도록 고소하려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사단은 여호와라 불리는 천사로부터 여호와의 책망을 받는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께 선택받은 불 가운데서 꺼낸 그을린 나무토막이라는 것이다. (슥 3:1-2) 여호와는 사단에게 고소당한 여호수아를 위하여 천사들에게 화려한 명예회복식을 명한다. “내가 여호수아의 죄를 용서하였다. 너희들은 그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깨끗하고 흰옷을 입혀라.” (3:4). 그때 스가랴 선지자가 “정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라고 말했더니 그대로 되었다. (3:5)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대제사장직으로 임직할 때 정결하게 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은 것 같이(레 8:5-7), 여호수아도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기 위해서 정결하게 되어야만 했다. 스가랴가 씌워준 ‘정한 관’은 대제사장에게 부여된 새로운 권위를 표시하는 두건(미츠네페트) 대신 씌워준 것이다. (출 28:4)

 

  여호와의 천사는 만일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길(도덕적인 명령)을 걷고 여호와의 일(의식적인 기능)에 열심을 낸다면, 그가 하나님의 집(성전)을 “다스리거나” “판단”할 것이며, 천사들처럼 하나님 보좌 앞에 드나들 수 있게 된다고 약속한다. (슥 3:6-7) 이는 성전을 다스리고 지키는 것은 포로기 전까지는 왕들의 임무였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드나드는 일은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일로서 주로 예언자들이 맡아서 했다. (삼상 7:8-9) 이제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왕과 예언자의 직분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신약 성경에서는 하늘에 올라간 예수가 이 일을 맡아서 행한다. (히 9:24, 롬 8:34)

 

  여호와가 스가랴에게 말했다. (슥 6:9) “너는 은과 금을 가지고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씌우라”(6:11) 스가랴 3장 5절의 ‘정한 관’이 ‘면류관’으로 표현되고 있다. 면류관을 씌우는 것은 왕의 위엄을 나타낸다. (시 21:3, 렘 13:18, 겔 21:31) 스가랴 선지자는 이 왕권의 표시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보라 싹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슥 6:12) 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메시아가 아니며 스룹바벨과 같은 존재로 칭함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스가랴는 스룹바벨을 대신하여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는 일을 끝낼 다른 싹이 나타나리라고 예고한다. (6:12) 이 싹은 바벨론에서 데리고 온 자가 아닌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다스릴 것이다. (6:13a) 이것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그 백성의 형제들 가운데서 일어난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신 18:15) 그러나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슥 13b) 이 다른 싹은 미래에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그의 대리자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을 씌운 것이다.

 

  여호와로부터 기름부음 받아서 대제사장이 되었던 여호수아는 이제 왕을 상징하는 면류관을 씌움받아서 제사장과 왕의 직분을 겸하게 된다. 미래에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날 새싹은 대제사장 여호수아같이 제사장직과 왕의 직분을 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그의 보좌”에 앉아 그의 말을 듣고 믿어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려 영원한 대제사장(히 7:27, 9:12, 26, 10:2, 10, 14, 롬 6:10, 벧전 3:18)이 될 것이다. 또한, 그는 구원받은 백성들을 영원히 다스리는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 된다. (계 17:14) “먼 데서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며 여호와의 말을 듣게 될”(슥 6:15) 모든 사람의 대제사장이요 왕이 바로 신명기에 약속된 ‘모세와 같은 그 선지자’ 예수이다.

 

  드라이버(S. R. Driver)는 “회복된 제사장직은 메시아 왕국이 온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 증거는 순(새싹)과 돌(8-9절)에 연관되어 있으며, 그 “새싹”(체마흐)은 예레미야가 다윗 혈통에서 새 왕이 올 것을 예언할 때 사용했다. (렘 23:5, 33:15)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호테르)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네체르)가 나서 결실할 것이다”(사 11:1)라고 하였다. 이사야는 다윗 혈통에서 새 왕이 나올 것을 말한 것이다. 그 “새싹”이 바로 만왕의 왕이며 대제사장이신 예수이다.

 

  이상에서 볼 때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는 ‘영원한 대제사장(히 7:27)’이며 ‘만왕의 왕’(계 17:14)으로 영원히 다스릴 예수의 모형으로써, 대제사장과 왕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한 선지자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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