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서신이란
바울 서신을 제외한 나머지 서신을 공동서신이라고 합니다. 바울 서신은 주로 교회나 지역 이름이 제목으로 붙었고, 일반서신은 야고보, 베드로, 요한 등 주로 사람 이름이 붙었습니다. 공동서신이란 말은 어느 특정 교회나 개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교회 전체를 위한 서신이란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갈라디아서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서신서가 야고보서입니다. 야고보서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같은 복음의 선포나 에베소서, 빌립보서 같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말씀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두 번 사용되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기독교 문서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야고보서에 사용된 동사 절반이 2인칭 명령형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윤리적 강령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를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신약의 잠언서'라고 말하고, 마틴 루터같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지푸라기 서신'이라고까지 혹평했습니다. 야고보서는 과연 지푸라기 서신입니까? 야고보서가 없다면 신약성서는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요?
한약 처방하는 것을 보면 여러 가지 약재를 섞어 씁니다. 특정한 병에 약성이 있는 여러 재료를 함께 쓰기도 하지만, 강한 약성을 중화시키고 조화를 이루려고 병과 관계없는 약재를 넣기도 합니다. 한의사님께 물어보니 그렇게 약재를 쓰는 것을 반좌법이라고 한답니다. 반대로 보좌해주는 약이라는 뜻입니다.
건강한 상태에는 몸의 장기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약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조화롭게 쓴다는 것입니다. 마치 야고보서가 꼭 그런 역할을 하는 서신서입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어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그것이 우리 삶에 무슨 의미가 되는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말씀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삶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우리를 행위의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행위를 다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야고보서의 메시지입니다.
야고보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구원에 대한 검증의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서신에서 여러 번 경고한 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율법에서 자유하게 된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육체의 방종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야고보서 같은 말씀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복음이 구체적인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점에서 야고보서는 독특하면서도 귀중한 책입니다.
바울은 주로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음의 부담을 느끼며 편지를 썼기 때문에 믿음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야고보나 마태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인 사람들, 주로 유대인을 향해 가르치는 처지였기 때문에 행함을 강조해야만 했습니다. 이는 대립이나 모순이 아니라 조화와 보충을 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주제어는 단연 '행함'입니다. 1장에서는 "자유롭게 하는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야고보서 1:25)고 하였습니다.
이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다" (마태복음 7:24) 한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2장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7) 했습니다. 이것이 야고보서 전체의 핵심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야고보서 2:16) 행함이 없는 것이 이와 같다고 한 것입니다.
이는 마태복음에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0) 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3장에서는 말에 대해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온전한 사람이다" (야고보서 3:2) "그러므로 혀를 잘 다스려야 한다" (야고보서 3:5) 야고보는 말도 사람의 행위 중 중요한 영역으로 보았습니다.
야고보서의 두 번째 주제어라고 생각되는 단어는 '지혜'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지혜는 세상살이의 지혜가 아니라 성결한 삶을 위한 지혜입니다. 3장에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은 선한 행실을 통해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으로 자기 행위를 보이는 사람”(3:13)이라고 말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다”(3:17)고 말합니다.
영적 생활에서 지혜는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것이고(4:1-10), 율법에 대해서는 율법으로 판단과 비방을 하지 않는 것이 지혜이며(4:11-12), 세상을 살면서는 허탄한 것을 자랑하지 않는 것이 지혜라고 말합니다(4:13-16).
야고보는 구원받기 위한 수단으로 도덕적인 행함을 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을 복음의 적이 아닌 유익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라고 한 말씀처럼, 야고보서 말씀도 우리 삶에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김기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