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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강론(교육)의 차이를 구별해야 합니다

작성자뉴부산|작성시간19.02.01|조회수572 목록 댓글 0

설교와 강론(교육)의 차이를 구별해야 합니다

 

 

 

설교자로 서 있을 때와 청중으로 설교를 들을 때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설교가 잘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삼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됩니다.


가령 전달하는 설교는 모니터를 해 주기 전에는 그날의 분위기 여부로 짐작만 할 뿐이지만, 

설교를 들을 때는 화가날 정도로 속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설교자들이 설교를 하는 게 아니라 강의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그렇습니다. 


설교는 반드시 성경을 텍스트로 삼아야 합니다. 

이에 반해서 강의는 반드시 텍스트가 성경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강의를 하는 사람은 자신이 전하고 싶은 주제를 위해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설교하는 사람은 성경이 말씀하는 중심점을 무시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설교자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말하고싶은 주제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성경이 전하려는 주제에 집중 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설교를 하는 게 아니라, 

강의자 역할을 한다면 그는 아주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러 나온 청중이 화를 낼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분노할 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성경이 말씀하고 싶어하는 내용보다는 

설교자 자신이 말하고 싶어하는 내용을 전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중심점은 설교자나 회중의 관심사와는 너무 다를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건강회복과 자녀 출세가 화급한 일인데,

오히려 나보다 더 약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이해는 되면서도 선뜻 응하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연 성경의 중심점과 설교의 중심점이 일치하는 지 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만일 설교문을 작성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반문하면 됩니다.

자신의 설교 제목이나 중심점을 확인한 다음,

이것이 오늘 성경의 중심점인가 하고 물어보면 됩니다.


가령 5천명을 먹인 일화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 

B 목사님이 "어린 아이와 5천명이 배부르게 먹은 만찬"이라고 제목을 잡았다고 합시다.

본문에 어린 아이도 등장하고, 5천명이 배부르게 먹은 것도 분명합니다. 

이럴 때 B목사님은 체크할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은 어린 아이의 오병이어가 5천명을 배부르게 하였다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교육이라는 수단으로는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로써는 아주 잘못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본문의 목적은 어린 아이의 5병 2어를 통해서 주님께서 배고픈 5천명을 먹이셨다

고 말씀하시는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계시다는 말씀을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서도 언급한바 있습니다만, 

설교자는 설교의 텍스트인 성경을 몇 차례고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중심점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점을 오늘의 회중들에게 설득력있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 인위적으로 감동을 주거나 흥미를 끌게 하려고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는 내용을 가정이라는 추론을 달아서 흥미를 유발해서도 안 됩니다.

때때로 이런 가정이나 추론이 기정 사실처럼 둔갑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5분 강의는 성경의 중심점과는 전혀 다른 설교의 중심점을 설교해서는 안 되겠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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