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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의 원리

작성자고재봉|작성시간24.02.27|조회수35 목록 댓글 0

성경 해석의 원리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성경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성경은 아주 다양한 형식으로 쓰인 책입니다. 설화 형식으로 기록된 글도 있고, 시로, 잠언이나 풍자로 표현하기도 했으며, 서신도 있고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마치 판타지 소설과 같이 표현된 내용도 있습니다.

 

성경의 일부 책들은 상징과 비유로 기록이 되어 있으며, 예수님의 경우를 보더라도 제자들에게 여러 번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성경 속의 책들이 다양한 형태로 쓰이다 보니 때로는 그 내용을 이해하고 그 말씀이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참뜻을 파악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성경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누가 해석해야 하는가? 어떤 해석이 올바른가? 하는 문제는 기독교를 여러 종파와 교파, 교단으로 갈라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천주교(로마 가톨릭)의 경우, 문제가 되거나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이 있는 성경 구절의 해석은 공의회를 통하여 정리하고 교황이 최종 결정권자로써 결정하면 됩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과 같이 통일된 조직이 없는 개신교는 성경 해석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을 경우 가부간 결정을 내려줄 권위 있는 성경 해석자가 없기에 똑같은 성경 말씀을 놓고도 교단과 교파에 따라서 성경 해석에 차이를 보입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데는 몇 가지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존 스토트목사는 저서인 「성경 연구 입문」에서 성경 해석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첫째, 자연스러운 뜻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평이의 원칙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보존되게 하신 목적이 오직 일반 사람들에게 자기의 뜻을 전하여 구원하시고자 함임을 주장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경 본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역사의 원칙이다. 우리는 이미 앞장에서 하나님이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서 자신을 계시하였음을 살폈다. 그러므로 성경의 영원하고 보편적인 메시지는 그것이 원래 주어진 상황의 빛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런고로 후대의 생각들을 성경에 삽입해 넣는 것은 분명히 그릇 인도하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성경의 일반적인 뜻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조화의 원칙이다. 성경 본문도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해결하되 성경을 하나의 조화 있는 전체로 해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특별히 모호한 것을 명백한 부분으로 해석하고 성경의 한 곳을 설명할 때에 다른 부분에 모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캐나다 벤쿠버에 있는 리젠트칼리지의 제임스 패커교수 역시 존 스토트목사와 같은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성경은 그 자신을 해석하는 원리로서 두 가지 기본 원리를 제시한다. 첫째는 각 문구의 적절하고 자연스러운 의미(즉, 저자가 의도했던 의미)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나름의 정황 속에서 최초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된 성경 본문의 의미는 그 본문이 지닌 더 넓은 의미를 탐색할 경우 반드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성경 해석의 두 번째 기본 원리는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문구의 범위와 의미는 그 문구를 다른 문구와 연계하여 살핌으로써 밝혀내야 한다.”

 

위에 언급한 성경 해석의 기본 원리를 근거로 하여 이제부터는 교회가 다양한 교파와 교단으로 갈라지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성경 해석의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하는지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음악을 예로 들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멋진 교향곡을 듣고 있다고 합시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베에토벤의 교향곡 제6번 F장조 〈전원〉중에서 제2악장 「시냇가의 정경」 연주는 베를린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20세기의 전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친절하신 우리의 클래식 전문가는 간단히 곡을 해설하고 CD를 올립니다. 아름다운 연주가 끝났습니다. 전문가는 이번에는 다른 CD를 올립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조금 전에 들었던 바로 그 「시냇가의 정경」이 다시 울려 나오는 것입니다.

의아해하던 사람들은 빈 CD 케이스를 보고서야 전말을 이해합니다. 연주는 뉴욕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는 쥬빈 메터. 이제 이 판의 연주도 모두 끝이 났습니다.

 

분명히 이 곡의 작곡가는 베에토벤입니다. 카라얀도 쥬빈 메터도 베에토벤의 악보를 보고 지휘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두 가지 ‘다름’이 대두됩니다.

 

첫째는, 듣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음악적으로 훈련이 되어 있지 않거나,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두 연주의 차이점을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귀로서 음의 차이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CD의 포장 케이스를 보고 눈으로 알아내는 것이지요.

귀로 들리는 음색을 통해서는 두 곡의 무엇이 다른지를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여 자주 감상을 하는지 어느 정도로 음악 공부를 하였는지에 따라 이 ‘다름’은 나타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지휘자의 곡 해석입니다. 이 곡의 작곡가인 베에토벤은 분명히 세계의 모든 음악가가 사용하는 음표를 사용했고 부호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결코 암호를 악보에 그려 둔 것이 아닙니다.

 

카라얀도 쥬빈 메터도 똑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작곡가의 똑같은 음악이 다르게 연주되는 이유는, 그 곡을 지휘하는 지휘자의 곡 해석 때문입니다.

 

지휘자가 학습한 음악교육 과정이나 성향, 베에토벤이라는 작곡가와 그의 작품을 대하는 음악적인 관점에 따라 곡을 이해하고 해석하기에, 그의 지휘하에 연주되는 음악이 다른 지휘자들의 연주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의 어떤 음악 평론가도 카라얀의 음악이 올바른 곡 해석이고 쥬빈 메터의 연주가 엉터리라고 절대 평하지를 않습니다. 이것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라 곡 해석의 미묘한 차이일 뿐입니다.

 

적절한 예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성경 해석의 문제로 되돌아갑시다.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기독교의 정통 교단들은 모두 복음주의 신학을 지향합니다.

복음주의란 무엇입니까?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며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것’ 입니다.

 

장로교나 감리교를 비롯한 모든 정통 교단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마치 베에토벤의 악보를 보고 지휘하는 카라얀과 쥬빈 메터의 곡 해석이 다르듯이, 성경의 일부 내용을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이 교파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카라얀이 맞고 메터가 틀렸다는 식의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만 해석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교단과 교파에 따라 교리적인 문제에서 서로 다른 성경 해석으로 인한 혼란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것은 모든 정통 교단에서 공인하듯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핵심은 구원입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을 그저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고, 가난에서 벗어나며 죽음에서 영생으로, 마귀로부터 이기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이러한 것들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구속하고 회복시켜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구원을 얻는 방편은 오로지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뿐입니다.

 

성경은 정경으로써의 권위를 인정을 받은 이래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성경은 변함없이 지금과 동일한 내용으로 우리들의 후대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해석은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변화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천여 년의 세월 동안 근본적인 기독교 진리는 변함없이 지켜져 왔듯이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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