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편지 Ⅱ
☑ ‘다른 말’과 ‘틀린 말’ 75
‘재자(才子)’와 ‘재원(才媛)’
줄줄이 딸만 낳다가 마지막으로 아들을 하나 얻은 집안에서 흔히 있었던 일화 가운데 하나는 아들이 손위의 누이들을 일컬어 “언니, 언니!” 하며 따라다닐 때마다 누이들이 애써서 ‘언니’가 아니라 ‘누나’임을 힘주어 강조하던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물론 아들만 있다가 늦둥이로 하나 얻은 고명딸의 경우도 그와 비슷한 에피소드가 얼마든지 있었을 것입니다. 오라비들더러 “형, 형!” 하고 부를 때마다 온 가족이 나서서 ‘형’이 아니라 ‘오빠’임을 분명히 하려 했을 테니 말이지요.
생물학적 차원의 염색체가 다르듯, 남녀가 사용하는 말이 다르거나 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말이 차이를 보이는 현상은 우리말에서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언어에서 나타나는 언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일본어의 경우는 우리말의 경우보다 그 정도가 훨씬 심해서, ‘아버지’와 같은 호칭은 물론이거니와 ‘맛있다’나 ‘먹다’와 같은 동사에서도 남녀 간의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즉, 여성은 ‘아버지’를 일컬어 ‘おとうさん’(오토상)이라고 하는 반면, 남성은 ‘‘おやじ’(오야지)라고 하며, ‘맛있다’와 ‘먹다’에 대해서도 여성들은 ‘おいしい’(오이시이), ‘たべる’(다베루)라고 하는 반면 남성들은 각각 ‘うまい’(우마이), ‘くう’(구우)라고 하는 것이지요.
지난번 편지에서 다루었던 ‘약관’과 ‘묘령’ 혹은 ‘방년’이 20대의 나이를 성별에 따라 달리 칭하는 데 사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자’(才子)와 ‘재원’(才媛)이라는 말 또한 성별에 따라 달리 사용해야 하는 말입니다. 우선 다음 예를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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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ㄱ. 한눈에 부필의 앞날을 알아본 안수가 범중엄에게 이 낙양 재자가 혼인을 했느냐고 물었다. ㄴ. 큰딸 엘리너는 분별력이 뛰어난 재원이고 둘째딸 마리안은 감수성이 뛰어난 미인이며, 셋째딸 마거릿은 아직 어린 소녀이다. |
위 문장들에서 사용된 ‘재자’(才子)와 ‘재원’(才媛)은 ‘재주가 뛰어난 젊은이’를 가리키는 말이되, 전자가 남성에 대해 쓰는 말인 반면, 후자는 여성에 대해 쓰는 말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결혼 적령기에 이른 젊은이를 두고 그들의 재주를 칭송하여 훌륭한 신랑신부감이라는 말을 하고자 할 때, 신랑감에 대해서는 ‘재자’(才子)를, 신부감에 대해서는 ‘재원’(才媛)을 쓰는 것이 올바른 우리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세월의 변화와 함께 사용하는 단어들 또한 변화를 겪어 오늘날에 이르러선 ‘재자’라는 단어는 사용 빈도가 극히 낮은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재원’이라는 말은 여전히 비교적 자주 사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재원’을 여성이 아닌 남성에 대해서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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⑵ㄱ. 그는 오히려 모험가 협회에서도 안심하고 정문의 경비를 전적으로 맡길 만큼 뛰어난 *재원이었다. ㄴ. 김 씨의 아들은 프랑스 유명 요리학교 출신 *재원으로 현재 한국에서 프랑스 요리사로 활동하고 있다 |
문맥으로 미루어 볼 때 위의 예에서 쓰인 ‘재원’은 여성이 아닌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점에서 잘못 쓰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언어적 사실을 비롯하여 성별의 차이에 따라 단어를 구별하여 쓰는 우리말의 예로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