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편지 Ⅱ
☑ ‘다른 말’과 ‘틀린 말’ 66
‘야단’과 ‘꾸중/꾸지람’
지난 2014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115일 동안 유럽과 북미, 중남미, 오세아니아, 동남아시아, 일본 등등 세계 여러 곳에서 강연을 펼쳤던 저자가 매일 열린 강연 가운데 호응이 높았던 대화를 현장감을 살려 싣는 한편, 세계 곳곳의 특색 있는 방문지에 대한 감상을 곁들여 엮은 책이『야단법석』이라고 하니, 이 책은 ‘야단법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살린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이란 불교의 전통적인 법회 방식 가운데 하나로 “야외에서 크게 베푸는 설법의 자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우리말에는 불교 용어인 ‘야단법석(野壇法席)’과 동음이의어인 ‘야단법석(惹端法席)’이 또한 있어,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고 부산스럽게 굶.”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야단법석(惹端法席)’이 ‘야단법석(野壇法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법석’을 제외한 ‘야단’의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을 보면, 그러한 추측이 반드시 옳다고 보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문제는 ‘야단법석(惹端法席)’을 구성하는 요소인 ‘야단(惹端)’은 그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음을 보기로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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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
용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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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떠들썩하게 일을 벌이거나 부산하게 법석거림. 또는 그런 짓. |
어린것들도 오랜만에 와 보는 산이 좋은지, 땅바닥을 쿵쾅쿵쾅 굴리고 뛰며 야단들이다.≪김춘복, 쌈짓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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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높여 마구 꾸짖는 일. |
어쩐 일인지 내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어머니는 야단을 하지 않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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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하거나 딱한 일 |
이거 하루바삐 밥줄을 잡아야 할 텐데 참 야단입니다.≪김유정, 아기≫ |
이러한 사전의 의미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야단(惹端)’은 그 의미가 세 가지로 쓰이는 다의어입니다. 이 가운데 두 번째 의미, 곧 “소리를 높여 마구 꾸짖는 일.”이라는 뜻의 ‘야단’은 어른에 대해서는 쓸 수 없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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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ㄱ. 자정이 돼서야 귀가한 윤희는 아버지께 된통 야단을 맞았다. ㄷ. A 군은 지난 9일 학교에서 지각해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았다. |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⑴의 문장들에서 쓰인 ‘야단을 맞다’는 올바른 우리말 표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⑴의 문장을 어떻게 쓰는 것이 맞는 말일까요? 다음에서 보듯 ‘꾸중/꾸지람을 듣다’로 써야 맞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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⑵ㄱ. 자정이 돼서야 귀가한 윤희는 아버지께 호되게 꾸중/꾸지람을 들었다. ㄷ. A 군은 지난 9일 학교에서 지각해 선생님한테 꾸중/꾸지람을 들었다. |
요컨대, “소리를 높여 마구 꾸짖는 일.”이라는 의미의 ‘야단’은 ‘꾸중’ 혹은 ‘꾸지람’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하는 쓰는 말로, ‘야단을 맞다’는 행위자가 높임의 대상일 경우에는 쓰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⑴과 같은 상황에서라면 ‘야단을 맞다’ 대신 ‘꾸중/꾸지람을 듣다’로 적어야 올바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언어적 사실은 어른 혹은 윗사람을 존중하려는 우리의 의식이 언어 표현에 반영된 것으로, 우리 언어문화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