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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콩과 참외/ 고성의

작성자현정희|작성시간15.01.06|조회수55 목록 댓글 3

칼콩과 참외

             

                  고성의

 

  아침에 일어나서 맨 먼저 마주치는 화초는 거실 창문위로 뻗어 올라간 '칼콩(작두콩의 별칭)'이다.

꽃대에 매달린 나비 모양의  연분홍 꽃들이 먼저 미소 지으면 손바닥만한  삼엽 이파리가 뒤따라 손을 흔든다. 먼저 꽃이 진 자리에는 작두 모양의 길쭉한 꼬투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생명을 잉태한 울림이 들린다.

   시선을 밑으로 돌리면 땅위를 뻗어가는 참외 덩굴손이 재롱을 떤다. 잎이 난 줄기 마디에서 별모양의

노란 꽃들이 벌써 아침잠에서 깨어나 반긴다. 벌 나비를 일찍 맞이했던 규방에서는 벌써 옥동자가 새근새근 잠들고 있다. 새 생명이 자라는 모습이다.

   칼콩과 참외는 둘 다 빨리 자라는 한해살이 덩굴 식물이지만 모양과 특성은 판이하다. 칼콩은 줄기나 잎에 털이 없이 매끈한 몸으로 위쪽을 향해 감아 올라가지만 참외는 줄기나 잎에 잔털이 있고 땅 위를 덩굴손으로 붙잡고 기어간다.

   무더위는 오늘 아침도 가라앉지 않는다. 동물들에게는 짜증스럽지만 식물들에게는 제철을 만난 세상이다. 칼콩은 하루 사이에도 한 뼘씩 옥상에 연결한 줄을 타고 올라간다. 한사코 반시계 방향인 '왼쪽감기'를  고집한다. 등나무가 시계 방향인 '오른쪽감기'를 고수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참외의 덩굴손은 어느 한 쪽 방향으로 감기를 고집하지 않는다. 좌우의 덩굴손이 상황에 맞게 유연하고 자유롭게 대처한다. 가히 공자의 중립성을 고집했음이니라. 새삼 공자의 중용을 생각게 한다.

  식물의 세계도 이렇게 조화로움이 존재하거늘 인간의 세계에서 좌우의 대립으로 갈등을 빚는다는 것은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하늘을 좋아하는 칼콩과 땅을 좋아하는 참외, 수직과 수평의 조화이기도 하다. 수직이 희망, 진취, 창조의 표상이라면 수평은 평등, 화합, 평화의 상징으로 그려본다. 수직과 수평은 배척이 아니라 보완이다. 높고 낮음의 가치가 아니라 조화이다.

  구름 사이로 비친 아침 햇살이 꽃잎에서 빛난다.

  칼콩은 거실 앞에 녹색 아취를 만들고, 참외는 그 바닥을 푸른 유단으로 깔아 놓는다. 하늘과 땅과 생명, 삼재三才의 융합을 이룬다.  우주의 오묘한 섭리가 스치는 아침이다.

 

*[에세이스트] 2006년 9/10호에 수록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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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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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현숙 | 작성시간 15.01.07 오래된 내 글이 어디선가 나오면 나는 참 부끄러워요. 물론 글을 들여다보는 시선도, 쓰는 시선도 달라졌으니 그렇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이 눈에 띄어 그렇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 느낌이 변하지 않아야 좋은글이라는데 고성의선생님 글은 쓰신지 꽤 되었는데도 참 좋네요. 다시 읽게 해주셔서 감사 드려요~~^^
  • 작성자고성의 | 작성시간 15.01.07 현정희 샘, 철지난 옛날 졸작을 뜬금없이 여기에 올리느라 수고했는데, 오타 부분을 원본대로 바로 잡습니다.
    (1행)'칼콩'(완두콩의 별칭) → '칼콩(작두콩의 별칭)'
    (2행 중복 오타)...연분홍 꽃들의 먼저 미소 지으면 손바닥만한 연분홍 꽃들이 먼저 미소 지으면 손바닥만한 삼엽 이파리가 뒤따라 손을 흔든다 →연분홍 꽃들이 먼저 미소 지으면 손바닥만한 삼엽 이파리가 뒤따라 손을 흔든다
    (6행)잎이 난 줄기 마다에서→잎이 난 줄기 마디에서
    (15행)...자유롭게 대처한다. 새삼 공자의...→...자유롭게 대처한다. 가히 중립성을 고집했음이니라. 새삼 공자의...
  • 답댓글 작성자현정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1.07 죄송합니다. 오타 수정했습니다. 지난번 야외학습때 낭독하신 글이 좋아서 읽어보다가 여기에 올리면서
    제가 졸았나봅니다. 넓으신 아량으로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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