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동네 목욕탕 / Rumi 》
요한나 반 고흐-봉허
3개국어를 하던 영어 교사 출신
본인도 미술계 집안이던 요한나는 테오의 70통 편지 어택을 받고 고민끝에 연애 및 결혼함
그러나 그 남편 테오는 형 따라 6개월만에 정신질환 앓다가 사망
29살 그에게는 아들 하나와
형제간에 주고 받은 편지 663통 (많이도 썼다)
그리고 아주버님인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400여점만이 남음
요한나는 약혼 및 결혼 초기에 빈센트를 잘 몰랐음
끽해야 귀 자르고 난리났다 정신질환자로만 알았음
오히려 빈센트 때문에 결혼을 주저하기도 함
동생이 형한테 매월 200프랑 (약 1200만원)씩 준대
그래서 요한나는 빈센트 반 고흐를 원망했나요?
아니요
테오를 따라 빈센트의 집을 방문한 요한나는
빈센트가 오히려 테오보다 강인한 사람이란 걸 느낌
그리고 그 그림들에서 천재성을 느낌
테오가 죽은 뒤 요한나는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봄
미술계 인사 몇에게 빈센트의 작품을 보여줌
돌아오는 대답... 이분은 어떤 분이세요?
그리고 다짐하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은 묻혀서 안된다
요한나는 테오가 자신에게 예술과 인생을 알려줬으니
테오와 빈센트가 평생 만들어온 이 작품들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함
사진은 형 죽고 6개월만에 정신질환으로 가버린 요한나의 남편..
아무튼 요한나는 자신이 알던 남편의 예술계 지인들을 통해
빈센트 반 고흐의 전시회를 개최함
뒤섞여있던 편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해 책을 냈음
적극적으로 작품을 대여해줘서 빈센트 반 고흐의 노출도를 높임
아트 딜러에게 여러 작품을 판매하며 미술품의 값을 올림
책의 인기에 힘입어 테오의 무덤을 빈센트의 옆으로 이장해 형제애를 널리 알림
뉴욕까지 가서 미국에까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보여줌
영어를 잘 하다보니 영어로 테오-빈센트 서간집을 번역도 함
63세까지 열심히 일하다가 사망
그 후 아들이 일을 물려받아 미술관을 세움
요한나는 자기가 하는 일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일기를 썼다고 함
그 일기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음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모두 만족스럽다. 테오와 빈센트를 기억하면서 할 수 있는 내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빈센트 반 고흐를 알린 인물이자
빈센트의 작품을 보며 농민과 여성 참정권을 생각하고 관련 운동도 한 인물이었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