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조선

유향소와 경재소

작성자지금|작성시간12.07.05|조회수278 목록 댓글 0

(가) 우리 전하(성종)께서 무신년(성종 19년) 읍 소재지에 다시 유향소를 세우고 좌수(座首)와 별감(別監)을 두었는데, 나이가 많고 덕망이 높은 자를 추대하여 좌수라 일컫고 그 다음을 별감이라 하며, 이들로 하여금 한 고을을 규찰하고 관리하게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예천 군지 -


(나) 고을에는 각 토박이 성씨가 있는데, 서울에 살면서 벼슬하는 사람 중에서 경재소가 구성됩니다. 경재소에서는 그 고향에 살고 있는 토박이 성씨 중에서 강직하고 두뇌가 명석한 자를 선택하여 유향소에 두어 사무를 보도록 하거나, 간사한 향리의 범법 행위를 서로 규찰하여 풍속을 유지시키는데, 그 유래가 오래되었습니다. -「성종실록」-


(가)는 유향소, (나)는 경재소와 관련된 자료이다. 유향소와 경재소는 지방의 유력자에게 관리 임명권을 주고 연대 책임을 물었던 고려의 사심관 제도가 분화, 발전한 것이다. 유향소는 고려 말 지방 세력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종종 지방관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경우가 있어 조선 건국 이후 혁파와 부활이 거듭되었다. 성종 때 부활된 유향소는 지방의 사림이 좌수와 별감으로 임명되었으며, 사림의 향촌 지배력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 경재소는 지방 출신의 중앙 고관들로 구성되어 중앙 정부와 해당 지방의 유향소 사이에 연락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유향소는 수령 보좌와 감시, 향리 규찰, 풍속 교정 등의 기능을 행하여 때로는 수령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데, 이를 통제하기 위해 경재소가 설치되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