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빛명상세상돋보기

[역사][빛역사] 1990.04. 혜명스님의 빛만남 / 걸뱅이 왕초 스님¹ / 걸뱅이 왕초 혜명 스님

작성자운.영.진|작성시간26.04.01|조회수131 목록 댓글 33

[빛역사]

1990.04. 혜명스님의 빛만남

월별빛역사

04월의 빛역사

1987.04.25. 수성관광호텔 솔밭예술제의 기적

1990.04.00. 혜명스님의 빛만남

1994.04.00. 김대중 대통령의 빛만남

1995.04.00. 여고생 상희 이야기

2008.04.12. 인터넷 빛명상 온라인 빛카페 개설일

2012.04.19. 사단법인 빛명상과 대구시 교육청 MOU체결

빛역사빛만평

제179화 혜명스님의 방광지팡이

바로가기 : https://cafe.daum.net/webucs/9JVO/199

[30]혜명스님의 방광(放光) 지팡이

혜명스님의 방광(放光) 지팡이 이야기입니다.

1, 2, 3 바로가기 : https://cafe.daum.net/webucs/DHl9

걸뱅이 왕초 스님¹

1. 청송과 안동, 영주 일대를 돌아다니며 나눔을 펼쳤던 혜명 스님의 애칭

Ⅰ. 내가 떠나더라도 빛선생님께

공양 올리는 것 잊지 말고,

빛선생님 뵙거들랑

부처님 대하듯 하라!

주완산 백련암 주지

걸뱅이 왕초 스님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고아였던 혜명 스님은

여섯 살에 행자 생활을 시작해

열두 살에 비구니가 되었다

일흔에 임종할 때까지

육십 년의 시간을 불도를 닦았다

탁발하러 갔다와도

돌아오는 길에

청송 주왕산과 백련암 모습

부엌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담장 넘어 모두 툭 던져주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왕초 스님

사심도 욕심도 없는 마음에

모든 이가 존경해 마지않았다

Ⅱ. 스님도 일흔이 가까워

췌장암 말기에 이르자

사후의 갈 길을 방황하던 중

빛명상 책을 읽고

꿈에서 나를 만난 뒤

빛VIIT과의 인연이 되었다

빛VIIT을 받고 건강해짅 스님은

겨울 새벽 꽁꽁 언 바닥도

마다 않고 감사 예불을 올렸다

스님의 건강이 걱정되어

갈비탕을 권해 드렸더니

고심 끝에 생전 처음

고깃국을 맛보셨다

― 세상에 이런 맛도 있었습니까?

극락에서 먹는 밥맛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겁니다

헤어질 때마다 고사리, 산나물을

바리바리 싸주시던 그 마음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한다

빛터에 모습을 드러낸

선홍빛 수련꽃 한 송이를 보며

천상의 빛향기를

고이 띄워 보내드린다

출처 : 甲辰年 그림찻방3

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3

2024년 6월 22일 초판 1쇄 P. 172-175

걸뱅이 왕초 혜명 스님

 

호텔에 근무하던 무렵, 나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청 초광력전超光力殿에 머물곤 했다. 우연한 기회에 구입하게 된 작은 암자였다. 그 날도 산청에 도착한 나는 평소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걸뱅이 왕초' 스님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은 바로 청송 주왕산의 백련암 주지로 계시는 혜명 스님으로, 주변에 어려운 이가 보이면 앞뒤 가리지 않고 가진 걸 다 내주는 스님의 기이한 버릇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

 

스님은 절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어렵사리 탁발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도 굴뚝에서 저녁연기가 나지 않는 집을 발견하면 서슴없이 가진 걸 툭 털어주고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뿐 아니라 때로는 절 주변에 참깨나 고추 같은 작물들을 심어 판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도 했다.

 

이런 스님의 행적이 하나둘 알려지면서 안동, 청송, 영주 일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분을 존경하고 따르며 '왕초'라는 애칭을 지어 부르곤 했던 것이다.

 

'그처럼 훌륭한 스님이 어디가 편찮으셔서 나를 찾아오는 걸까?'

 

나는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스님을 기다렸다. 하지만 스님은 정오가 지나 짧은 겨울 해가 산등성이에 걸리기 시작할 때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벌써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 무슨 일일까?'

 

나는 고개를 쭉 빼고 연방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마침내 두 스님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배가 남산만 하게 부르고 얼굴이 누렇게 뜬 노스님 한 분이 아직 얼굴이 앳된 어린 스님의 시중을 받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올라오고 있었다.

 

'옳지, 저분이구나.'

 

나는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신발을 신고 스님 쪽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내 얼굴을 본 노스님은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대뜸 소리쳤다.

 

"담뱃대! 담뱃대! 저분이시다!"

 

입구에 들어설 때만 해도 당장 주저앉기라도 할 듯 몸을 가누지 못하던 혜명 스님은 나를 보는 순간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시봉 스님의 부축도 뿌리치고 '아이고, 부처님······.' 하며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부터 해댔다.

 

"스님, 일어나십시오. 제가 무슨 부처님입니까? 건강도 안 좋아 보이는데 이렇게 차가운 바닥에 엎드리지 말고 어서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갑작스런 부처님 소동에 난처해진 나는 얼른 스님을 일으켜 세웠다.

 

그제야 혜명 스님은 조금 진정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연신 내 얼굴과 초광력전超光力殿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지난밤 꿈에 보았던 모습과 모두가 똑같습니다. 아까 올라오면서 보았던 저 입구 저수지도, 선생님 얼굴도 그렇습니다. 아아, 어쩌면 이럴 수가 있습니까?'

 

"대체 무슨 꿈을 꾸셨기에 이러시는지요?"

 

나는 영문을 몰라 물었다.

 

"내 이야기 들어보시겠소?"

 

혜명스님은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셨다.

 

"내 나이 일흔에 가까워지면서 몸에 이상이 생겼다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복통이 여러 달 계속되더니 점점 심해져 병원에 갔더니 놀랍게도 말기 췌장암에다 설상가상 암세포가 위장으로 전이되어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는 검진 결과가 나왔소. 병원에 다녀온 후, 몸은 눈에 띄게 몸이 약해지고 배에 복수가 차올라 마치 산달을 앞둔 임산부와 같아지면서 호흡마저 가빠지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지경까지 되었다오."

 

혜명 스님은 힘겹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왕진 의사가 와서 하는 말이 이런 상태로 일주일이나 더 버티실지 알 수 없으니 임종 준비를 하는 게 어떠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자들이 슬퍼하며 제 다비식을 위해 절 마당 한 귀퉁이에 장작더미를 쌓아두는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오. 그렇게 허망한 마음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나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된 한 처사가 팸플릿 하나를 들고 와 말하지 않겠소?"

 

"그게 무슨 팸플릿이었습니까?"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바로 이곳 산청 초광력전超光力殿에 관한 팸플릿이었소. 그 처사가, '스님, 경남 산청에 가면 빛VIIT으로 우주의 기운을 펼치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분께 빛VIIT을 받으면 마음도 맑아지고 아프던 사람이 몸도 낫는다는데, 스님도 한 번 그분께 가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고 묻더이다. 하지만 나는 한마디로 거절했소. '내 이 마당에 무슨 힘이 남아 산청까지 가겠나? 게다가 빛VIIT으로 마음을 맑게 한다니 그분이 무슨 비로자나불이라도 된단 말인가? 내 그런 소리는 일평생 들어본 적이 없네. 그만 됐네.'하고 말이지요."

 

"하하, 그러셨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저를 찾아올 마음이 생기셨습니까?"

 

나는 스님의 완강한 표정을 보며 물었다.

 

"그 꿈 때문이오, 꿈! 처사가 한번 읽어나 보라고 두고 간 팸플릿을 볼 생각도 않고 그저 잠자는 머리맡에 놓아두곤 살포시 잠이 들었소. 몸이 아프고 난 뒤에는 잠도 깊이 자지 못하고 그나마 든 잠이 들만하면 오만 잡귀와 망상이 따라와 몸이 피곤하곤 했는데 그날따라 웬일인지 단잠을 잔 게요. 그러다가 신기한 꿈을 꾸었지요. 꿈에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가만히 보니 호리호리한 체구에 양복을 입은 그저 평범한 모습이었소. 다만 남다를 게 있다면 유달리 긴 담뱃대를 하나 물고 있는데, 갑자기 그 남자가 물고 있던 담뱃대가 점점 길어지더니 느닷없이 내 옷자락을 꽉 쥐어 잡고는 '이리 오너라!' 하고 외치며 나를 어디론가 마구 끌고 가더란 말이오."

 

그러고는 스님은 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래서요, 스님?"

 

거기 모인 사람들은 점점 신기하게 여겼고 한 사람이 물었다.

 

"그렇게 담뱃대에 끌려가는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한테 가까이 가면 갈수록 몸에서 기운이 차츰 되살아나더니, 나중에는 완전히 기운이 펄펄 나서는 그 담뱃대를 문 양반 쪽으로 마구 뛰어가기까지 하는 게 아니오? 그런데 내가 거의 다가갔을 무렵, 갑자기 그 사람의 형체가 너무도 크고 환한 빛VIIT으로 변하더니 온통 내 몸을 뒤덮어버리고 말았다오. 그 순간 '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비로자나 부처님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 하고 외치다가 그만 꿈에서 깨어났지 뭐요."

 

혜명스님은 아직도 꿈꾸는 기분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눈을 번쩍 뜬 후 방안을 둘러보았지만 잠들기 전 모습 그대로였소. 달라진 게 있다면 어젯저녁 처사가 놓고 간 팸플릿이 내 베갯머리 옆에 놓여있다는 것뿐. 나는 그 순간 어떤 예감이 들어 얼른 그걸 펼쳐 보았다오. 이윽고 몇몇 사진들이 내 눈에 들어왔고, 아래에는 빛을 펼칠 때 나타나는 현상을 담은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고, 그 사진들을 보자 나는 방금 꿈속에서 보았던 비로자나불의 크고 환한 빛을 다시 만난 듯 그렇게 흐뭇하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오. 당장이라도 산더미처럼 부푼 배가 푹 꺼질 듯한 느낌이었지요. 분명 팸플릿에 실린 빛 사진은 꿈에 보았던 비로자나불과 연관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래서 절 만나러 오신 거군요."

 

"그렇소. 내가 산청으로 간다고 하자 백련암에서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오. 큰 스님, 그 몸으로 어딜 간다꼬 그라시냐며 제자들이 말리고 야단이 났지요. 그래서 제가 걱정하지 말아라! 어떻게 죽어도 죽을 몸인데, 내 가다가 죽는 일이 있을지언정 꼭 산청에는 가야 한다. 가서 꼭 그 비로자나불을 만나 뵈어야 한다, 하고는 이렇게 달려온 겁니다."

 

혜명 스님은 그렇게 하여 백련암 상좌 스님의 만류를 뿌리치고는 택시를 대절하여 시봉 스님 한 명을 데리고 산청까지 온 것이었다.

 

꿈 이야기를 다 들려준 혜명 스님은 나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담뱃대를 들고 있던 비로자나불이 바로 선생님이셨습니다. 크지 않은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그리고 그 눈빛까지 하나도 다를 게 없어요. 저는 이곳에 처음 와보는데도 꿈에 보았기 때문인지 하나도 낯설지가 않습니다. 제가 제대로 찾아온 거지요. 나무관세음보살······."

 

꿈속의 얼굴이 내 모습과 똑같았다니, 나 역시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부처님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생전 불경 공부 한 자 해본 적 없는 제가 무슨 비로자나불이겠습니까? 꿈이야 어찌 되었든 스님께서 평소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 이 빛을 만나게 되셨겠지요."

 

"칠십 평생을 죽으면 부처 세계에 간다고 배웠고, 남한테도 그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하나 부처의 세계가 있다 한들 느껴본 적이 없고, 극락이 있다고는 하나 본 적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죽을 날은 다가오는데 어찌 제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기만 한지··· 남들은 저를 생불이라 불렀지요. 하지만 생불은 무슨 생불입니까, 죽을 날이 눈앞에 닥치니 불안하고 무서운 게 보통사람하고 다를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감정을 선뜻 누구에게 내색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저 이 몸뚱이 태울 마른 장작들을 보며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스님은 자신의 심경을 내게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저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후 일곱 살 때부터 행자 생활을 하다가 열두 살에 정식 비구니가 된 후 이때까지 부처님만 모시고 살았습니다. 부모 형제가 있나 자식이 있나, 저는 세상사는 일에 별 미련 없습니다. 단지 제가 평생 배우고 가르치고 진리라 믿었던 것들이 기껏 죽음을 앞에 두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그 사실이 그렇게 허무하고 무서울 수가 없었습니다."

 

혜명 스님은 난생처음 만난 나에게 죽음 앞에 절실했던 자신의 속내를 꾸밈없이 털어놓았다. 성직자로서 이렇게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한평생 불도를 닦아온 스님도 막상 마지막 순간에 이르자 죽음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두려움이란 이처럼 뿌리 깊고 근원적인 것이다.

 

혜명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듣던 대로 한평생 선하게 살아온 맑고 순수한 마음이 느껴져 한결 스님이 가깝고 측은하게 느껴졌다.

 

"스님, 마지막으로 뭐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라도 있습니까?“

 

그러자 혜명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입을 열었다.

 

"뭐 그런 게 딱히 있겠습니까. 단지 제가 주지로 있는 주왕산 백련암에 대한 애착은 조금 있습니다. 고려시대 때부터 있던 암자로 역사가 꽤 깊은 절이지요. 옛날 주왕의 딸 백련이 이 암자에 머물러서 백련암이라고 하는데, 임진왜란 당시에 사명대사가 머물렀던 송운정사 건물 현관과 터가 남아있어 유명합니다. 또한, 사명대사 영정도 저희 절에 있지요. 이런 유서 깊은 절에다 오래전부터 공양주나 신도들이 기거할 요사寮舍채 하나 지으려 마음먹고 있는데, 제 몸이 이렇게 되는 바람에 그 일을 마무리하지 못할 것 같아 그게 좀 아쉽기는 합니다. 한 육 개월만 시간이 더 있으면 그 일을 완성할 수 있기는 하겠는데······. 그것도 어찌 보면 제 욕심 아니겠습니까."

 

혜명 스님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계시면서 한 번 우주마음께 간곡히 부탁해보십시오. 순수한 마음으로 빛을 잘 받으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빛을 만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도 했으니까요."

 

나는 스님의 바람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답했다.

 

"저는 이렇게 직접 선생님을 만나서 그 빛VIIT을 다시 한번 받아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여한이 없습니다."

 

무리한 장거리 여행을 한 후라 그런지 스님의 얼굴이 한결 더 피곤해 보였다. 나는 곧 스님을 방으로 안내해 드리고 그날은 일찍 자리에 드시도록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초광력전超光力殿으로 몰려들었다. 혜명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주변에서 찾아온 스님네들이며 이런저런 사람을 합치니 족히 칠팔십 명은 넘는 것 같았다. 혜명 스님은 맨 앞자리에 앉아 담담한 얼굴로 빛VIIT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 특히 그날은 먼 곳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온 혜명 스님을 위해 생명 원천의 빛VIIT을 청했다. 이윽고 향기로운 빛VIIT 향기가 코끝을 감싸면서 우주의 기운이 초광력전超光力殿 안으로 가득히 퍼져나갔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갑자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부처님······어엉······."

 

다름 아닌 혜명 스님이었다. 그분은 갑자기 빛VIIT을 받다 말고 어린아이처럼 목 놓고 울고 있었다. 난데없는 울음소리에 놀란 사람들 모두 무슨 일인가 싶어 스님을 쳐다보았다.

 

"흑흑······, 이제 알겠습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도대체 뭘 알았다는 말인지, 스님은 이번에도 뜻 모를 이야기만 계속하며 연신 옷깃으로 눈물을 훔쳤다.

 

"스님, 대체 왜 그러세요?"

 

내가 묻자 혜명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스님은 다 죽어가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쩌렁쩌렁 울리는 큰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선생님께서 양팔을 뻗으며 빛VIIT을 펼치기 시작하시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장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하늘에서 환한 빛VIIT이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금줄 은줄을 새끼처럼 꼰 동아줄 두 개가 빛VIIT 선생님 양옆으로 내려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줄을 타고 한쪽에는 동자들이 다른 한쪽에는 동녀들이 조롱조롱 내려와 선생님 주변을 호위하며 에워쌌습니다. 다시 한번 주변이 환해지면서 선생님의 두 손에서 빛VIIT이 나가는 순간 선생님의 온몸이 빛VIIT으로 변했습니다.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분명히 보았습니다······."

 

스님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제가 부처님께 귀의하여 60년이 넘게 어렵고 가난하게 불법에 의지하고 살아왔는데, 오늘에야 평생 처음으로 부처님의 대자대비 대광명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제 두 눈으로 불광(佛光)을 똑똑히 확인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혜명 스님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빛VIIT을 펼치고 나면 간혹 혜명 스님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하지만 내가 일부러 그런 모습으로 보이려 의도한 적이 없기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나 자신도 설명할 수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혜명 스님이 그 일로 인해 이 우주의 빛VIIT은 물론 자신이 평생 의지해온 부처님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확신할 수 있게 되었고, 죽음 직전의 불안감도 모조리 떨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동시에 스님의 이야기가 허망한 환상이 아닌 순수하게 우주의 마음과 교류하면서 일어난 빛VIIT의 현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써 스님이 바라던 소원 역시 이루어지리라는 우주마음의 느낌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스님이 바라던 대로 육 개월간 요사채를 지을 수 있는 시간을 얻으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스님은 두 손을 모아 머리 숙여 연방 인사를 하였다. 이윽고 스님은 곧 식당으로 내려가서 밥과 나물국 한 대접을 거의 다 비워냈다. 예전에는 죽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던 분이 말이다. 이미 스님은 처음 이곳에 들어설 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산청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화장실이 온통 피바다가 되도록 스님이 엄청난 양의 핏덩이를 쏟아냈다는 소식이었다.

 

'혹 스님의 건강에 무슨 이상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깜짝 놀란 나는 그 길로 산청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예상외로 스님의 건강은 좋아 보였다. 비록 얼굴이 조금 핼쑥해지긴 했지만, 눈빛이 살아있고 한껏 차올랐던 복수도 눈에 띄게 가라앉아 있었다.

 

"선생님, 저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쏟아내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아요.“

 

예전에도 한 자궁암 환자가 이런 증상을 보인 적이 있기에 나는 내심 마음이 놓였다.

 

"스님, 그래도 건강을 생각하셔서 갈비탕이라도 좀 잡수십시오. 몸도 허한데 이런 나물국만 먹어서 어디 기운을 차리겠습니까?"

 

"안 됩니다! 중이 무슨 고기를 먹습니까? 재가 지금까지 물고기 한 마리 잡아먹은 적이 없는데 갈비탕이라니, 큰일 납니다!"

 

혜명 스님은 말도 안 된다며 두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원기를 되찾아야 요사채도 짓고 하실 게 아닙니까? 건강을 위해 먹는 것이니 약이라 생각하고 드십시오. 괜찮으니 제 말대로 하세요."

 

혜명 스님은 내가 몇 번이나 설득한 끝에야 겨우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하는 말씀이니 시키신 대로 하겠습니다."

 

다음 날 혜명 스님은 회원들이 가져온 갈비탕으로, 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고기를 맛보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맛도 있습니까? 극락에서 먹는 밥맛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겁니다······."

 

난생처음 먹는 고깃국에 스님은 아이처럼 천진한 표정으로 웃었다.

 

스님은 계속해서 산청에 머물면서 차츰 기력을 회복해 갔다. 그 와중에도 스님은 새벽 2시만 되면 추운 밤공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광력전超光力殿 앞마당에 엎드려 예불을 올리곤 하였다.

 

"스님, 몸도 편찮은데 안으로 들어가서 하시지요?"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전에 감히 이 비천한 몸이 어찌 들어가겠습니까?

 

내가 적극 권했지만 스님은 한사코 맨바닥을 고집하였다. 그분의 그러한 겸손한 마음에서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부처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분의 그런 마음을 우주마음께서 이미 알고 스님이 마지막 소원을 이룰 시간을 허락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스님의 몸은 언제 그랬냐 싶게 정상으로 되돌아왔고, 볼록하던 복수도 거의 다 가라앉았다. 문병 온 신도들이 병원에 한 번 가볼 걸 권했지만, 스님은 그럴 필요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병원에 가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미 제 목숨은 다했는데, 선생님께서 육 개월 연장해주셨으니 그 시간 안에 맞춰 서둘러 요사채나 완성하는 게 급하지요. 그런데 선생님, 한 달 전에 제게 여섯 달을 약속하셨으니 이제 제겐 다섯 달이 남은 거겠지요?"

 

스님은 애달픈 얼굴로 물었다.

 

"아닙니다. 요사채 마무리하는데 육 개월이 걸린다 하셨으니 지금부터 시작하십시오. 건물 완성할 때까지는 시간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뒤는 저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다음 날 백련암으로 돌아갔다.

 

스님이 떠난 후 육 개월가량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요사채가 완성되었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백련암을 찾아달라는 혜명 스님의 전갈이 날아왔다. 나 또한 새로 지은 건물은 물론 스님의 근황이 궁금하던 참에 한걸음에 주왕산으로 달려갔다.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주왕산 자락에 있는 백련암은 무엇보다 암자 입구로 들어가는 호젓한 다리가 인상적이었다. 졸졸 흘러가는 맑은 계곡물 소리와 더불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찾아온 이의 마음을 저절로 상쾌하게 해주었다. 게다가 오래된 산사는 뒤쪽에 늘어선 거암 봉우리들과 어우러져 한층 기품 있고 운치가 넘쳤다. 말로만 듣던 암자를 실제로 와보니 혜명 스님이 마지막까지 이곳에 요사채를 짓고 싶어 하던 마음이 십분 이해되었다.

 

"정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혜명 스님은 환한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몸은 비록 야위었지만 얼굴에는 맑은 기운이 어려 있었다.

 

나는 스님과 시봉 스님들의 안내를 받으며 대웅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무심코 당나라 때 그려졌다는 금사 탱화를 바라보다간 소스라쳐 놀랐다. 다름 아닌 내 얼굴이 찍힌 사진이 부처님 그림 위에 모셔져 있는 게 아닌가?

 

"아니, 대체 왜 제 사진이 여기 부처님 머리 위에 올려있는 겁니까? 어서 치우십시오."

 

"우리 큰 스님께서 자신의 부처님은 선생님이라시며 아침, 저녁으로 공양을 올리는 걸 게을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큰 스님의 엄명이라 저희들이 함부로 사진을 내릴 수 없습니다."

 

옆에 있던 행자스님이 설명을 해주었다.

 

"당치않은 말씀입니다. 제가 무슨 부처입니까? 게다가 저는 아직 죽지도 않고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인데 아침저녁으로 스님들 공양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힘들여 그런 일 하지 마십시오."

 

혜명 스님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부처님 머리 위에 내 얼굴이라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함께 간 아우를 시켜 당장 사진을 내리도록 일렀다.

 

그날 밤 혜명 스님은 새로 지은 요사채의 제일 넓은 방 한 칸에 새 이불이며 베개를 내주었다.

 

"이 방은 빛VIIT 선생님 방입니다. 언제고 선생님께서 이 근방에 오시거든 마음대로 묵었다 돌아가십시오."

 

비구니들만 수도하는 도량에서 이렇게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다는 사실은 물론 새로 지은 건물의 방 한 칸을 내 것으로 떼어놓은 스님의 마음이 참으로 푸근하고 감사했다. 그 방에 앉아 몇 마디 담소를 나누던 중 혜명 스님이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빛VIIT 선생님, 저 이제 다 되었지요?"

 

달력을 따져보니 마침 혜명 스님과 처음 만난 지 꼬박 일곱 달째가 되어가고 있었다. 스님은 여전히 건강해 보였지만 앞일이 어찌 될지 나 또한 알 수 없기에 대답을 못 한 채 잠자코 앉아있을 뿐이었다.

 

"빛VIIT을 만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광명을 만나고, 이렇게 마지막 소원까지 다 이루었으니 이제 정말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선생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혜명 스님에게 마지막으로 빛VIIT을 드리고 난 후 백련암을 떠났다. 그러자 스님은 언제 준비해두었는지 고추며 참깨, 절 뒤뜰에서 기른 온갖 농산물을 손수 보자기에 싸더니 마치 친정어머니가 딸에게 들려 보내듯 내 손에 꼭 쥐여주었다.

 

"선생님, 조심해서 가십시오.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것이 내가 본 혜명 스님의 마지막 얼굴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스님은 일주일 만에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어 다시 연락을 받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빛VIIT 선생님, 오늘 저녁부터 배가 풍선 불 듯 올라오더니 다시 전처럼 복수가 한가득 찼습니다. 아마 이 밤 못 새고 가지 싶네요. 갈 때 가더라도 선생님께 마지막 안부 인사는 올려야겠다 싶어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예상하고 있었던 일인데도 막상 스님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다.

 

"제가 그곳으로 갈까요?"

 

"아닙니다. 됐습니다. 저는 이미 선생님한테 받을 것 다 받았습니다."

 

스님은 굳이 먼 길을 올 필요 없다며 나를 말리고는 내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이 전화를 끊고 나면 지난번 보았던 그 환한 빛VIIT이 스님을 감싸 안을 것입니다. 편안하게 좋은 곳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성불하십시오."

 

"선생님, 고맙습니다······."

 

혜명 스님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수화기 너머로 스님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대로 전해졌다. 나는 부디 이분의 순수한 영혼이 평소 생각해오던 좋은 곳으로 떠날 수 있기를 '비로자나 부처님'(불광), 곧 생명원천의 빛VIIT마음에 진심으로 마음을 모아 드렸다.

 

혜명 스님이 돌아가신 후 한 번 더 백련암을 찾은 나는 내 사진이 도로 부처님 머리 위에 올려있는 걸 보고는 또 한 번 경악하였다.

 

"큰스님께서 마지막까지 '내가 죽더라도 빛VIIT 선생님께 공양 올리는 것 잊지 말고, 선생님을 뵙거들랑 부처님 대하듯 하라.'라는 유언을 남기셨어요. 그래서 저희들은 그분의 말씀을 따라 이렇게 매일 선생님 사진을 놓고 기도드립니다."

 

혜명 스님의 마음은 알겠지만, 나는 다시 한번 내 사진을 내려오게 해야 했다.

 

혜명 스님이 떠난 지 십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오늘에도 그분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분의 맑은 마음과 그 겸손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평생 남을 돕고 베풀면서 산 스님의 선행, 그리고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며 추운 새벽 얼음 언 흙바닥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불을 올리던 겸손한 마음, 그것이 바로 스님으로 하여금 부처님 대광명 세계를 눈으로 확인하고, 요사채 또한 완성할 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출처 : 나도 기적이 필요해

2017년 5월 3일 초판 3쇄 P. 338-355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정윤서(풍요2기) | 작성시간 26.04.02 혜명스님 빛만남 이야기 감사합니다
  • 작성자박정자( 풍요20기) | 작성시간 26.04.02 혜명스님의 빛역사 이야기 ,
    감사합니다.
  • 작성자이나경41 | 작성시간 26.04.02 감사합니다.
  • 작성자박수현(풍요21기) | 작성시간 26.04.02 감사합니다.
  • 작성자박은조 | 작성시간 26.04.02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