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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빛역사] 1993.06.03. 박정규 화백 이야기 / 낙동강에서 두만강 오백리 길

작성자운.영.진|작성시간26.06.03|조회수109 목록 댓글 27

[빛역사]

1993.06.03. 박정규 화백 이야기

월별빛역사

6월의 빛역사

1990.06.01. 손바닥에 새겨진 불꽃

1993.06.03. 박정규 화백 이야기

1995.06.27. 백두산 빛VIIT의 잔 탄생

1997.06.06. 김수환 추기경과의 만남

2000.06.20. 사단법인 건강과 행복을 위한 빛명상 등록일

2013.06.11. 인류의 시원 삼황오제 탐방

2017.06.29. 빛패치 보감의 탄생

[빛역사 이야기] 박정규 화백의 빛만남

게시판 : 빛터회합 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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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역사 빛만평

인명은 재천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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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낙동강-두만강오백리길

박정규 화백이 빛[viit]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1-9편 바로가기 https://cafe.daum.net/webucs/COhd

낙동강에서 두만강 오백리 길

<초광력超光力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울산의 모 호텔에서 총지배인이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프론트에 서 있는데 두 사람의 부축에 의지해 출입문을 들어서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뉘엿뉘엿 지는 저녁 해를 등지고 들어오는 터라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한 눈에도 나를 찾아온 환자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즈음이면 나에 대한 소문이 경북 일대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근무하던 호텔로 이렇게 환자들이 찾아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들어간 커피숍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환자가 분명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굳이 찾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커피숍에 들어가 보니 그들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카운터 앞에 서서 일단 가만히 기다렸다. 그냥 차를 마시러 들어온 손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두리번거리는 그들 일행 중의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손을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그들 쪽으로 걸어가 인사를 하며 말했다.

 

"예. 정광호 선생님을 좀 뵙고 싶은데요. 이 호텔에서 지배인으로 계신 걸로 압니다만."

 

역시 짐작한 대로였다. 일행 중 주인공으로 보이는 초로의 남자가 내 이름을 말했다.

 

"예. 제가 정광홉니다만……."

 

"아 그러십니까? 이거 반갑습니다. 저는 박이라고 합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중후한 가운데 활기참이 느껴졌다. 소위 빵모자라고 하는 것과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는 모습이 예술가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었는데 그렇게 보아 그런지 얼굴에서도 분위기 있는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래, 어쩐 일로 절 찾아오셨습니까"

 

"허허, 글쎄요.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나……?"

 

말을 꺼내려니 막연하다는 듯 남자는 공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어렵게 생각 마시고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예, 실은 제가 몸이 좀 좋지 않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남자는 말 끝을 접으면서 다시 한번 낮은 웃음을 뱉었다. 아마도 초면부터 자신의 아쉬운 곳을 드러내기가 어색했던 모양이다.

 

나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약간 검은 얼굴에는 특별하게 그늘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밝은 인상이었기 때문에 일견 심각한 문제가 아닌 듯도 싶었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 이끌려 달리 느낌을 모아보지 않고 물었다.

 

"어디가 좋지 않으십니까? 아까 보니 부축해서 들어오시는 것 같던데 혹시 다리라도 불편하십니까?" "그래 보입니까? 하하, 그 정도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실은 그게 아니고 암입니다. 위암이지요."

 

아차 싶었다. 좀 더 신중하게 상대를 살펴볼 것을.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남자의 모습이었다. 말을 하기 전이나 말을 하고 난 다음이나 남자의 얼굴에서는 잔잔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바로 그런 모습 때문에 나는 달리 긴장을 하지 않은 것이겠지만 하여튼 남자는 그 어디에서도 위암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놀라운 절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시군요……. 허면 지금 상태는……?"

 

"말기입니다. 병원 눈치를 보니까 이제 거의 끝나가는 모양입니다."

 

남자는 복수가 차올라 좌측으로 배가 하나 더 있었다. 그의 설명이 아니라도 암 말기에 저토록 복수가 찼다면 현재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통증이 심하시겠습니다."

 

"예. 좀 그런 편입니다. 지금은 진통제 기운으로 그래도 견딜만 합니다만 약 기운이 떨어지면 무척 힘이 듭니다. 한 번 통증이 시작되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이지요. 그냥 하늘이 노랗습니다. 허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그래도 말투는 남의 얘기를 하듯 무심했다.

 

"그래도 퍽 의연하십니다."

 

진심이었다. 남자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아온 수많은 환자들과 확연히 달랐다. 물론 죽음 앞에서도 정리된 모습을 보이는 환자를 드물게 겪어보기는 했지만 이 남자처럼 초탈한 듯한 평화로움을 보이는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무엇이 있어 그리도 차분하게 자신을 지켜갈 수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 모습이 내게는 너무도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안 그러면 어쩌겠습니까? 이것도 현실인 것을요. 내 의지 밖의 일이라면 추하지 않게 받아들여야지요. 그림쟁이한테 그런 자존심도 없으면 뭐가 남겠습니까?"

 

"아, 그럼 화백이신가요?"

 

"화백은 뭐, 그냥 미천한 그림쟁이에 불과할 뿐이지요."

 

무언가 풍기는 것이 있는 듯싶더니 과연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남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접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시각의 진폭이 클 터인즉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데도 그만큼 관조적이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스스로를 미천한 그림쟁이라고 소개했지만 나는 그가 범상치 않은 화백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품의 소유자라면 그림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뭐라고 그러던가요?"

 

"뭐라고 그런다기보다 그냥 시체 취급이에요. 하긴 뭐 두어 달 밖에 안 남았다니까……."

 

어려운 이야기일 것도 같것만 그는 여전히 가볍게 말했다.

 

그런데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은 느낌이었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처음엔 긴장을 풀어 느낌을 못 받았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대화가 진행되어도 우주의 마음으로부터는 아무런 느낌이나 확신도 다가서지 않았다. 나는 초조함을 누르고 어서 빨리 우주 마음의 느낌이 닿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통원 치료는 거의 포기하고 계신 건가요?"

 

"그런 셈이지요. 병원에 가봐야 이제는 진통제 처방밖에 해주지 않으니까요."

 

"자가 치료는요?"

 

"예, 그건 나름대로 하고 있습니다. 한약도 먹고 이것저것 민간요법도 꾸준히 써보고 있어요. 뭐 꼭 기적을 바란다기보다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거지요. 죽을 땐 죽더라도 무책임하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마지막 날까지 열심히는 해볼 작정입니다. 그러다 안되면 또 기꺼이 가면 되는 것이고……."

 

무심한 듯한 말이었지만 심금을 울렸다. 맹목적 집착도 나약한 포기도 아닌 그의 말 속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치열한 성찰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도 찾아왔습니다만 저 같은 사람이 초광력超光力을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가 말을 하는 중에도 우주마음의 느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진정으로 이 남자를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초광력超光力은 하늘의 뜻이 표현되는 것이라서 사람의 능력으로는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이 품은 예정에 따라 결과가 갈리게 되지요. 예정이 남았으면 기적이 올 것이고, 예정이 다 했다면 평화로이 빛VIIT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줄 겁니다. 제가 박 화백님께 당장 해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것뿐이군요.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마음을 편안히 먹으시고 일단 초광력超光力을 받으세요."

 

완곡히 둘러서 말하기는 했지만 내 마음은 거의 비관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내가 '인명은 재천이다' 라는 말을 썼을 때는 살릴 자신이 없다는 뜻이었다. 안타깝지만 이 남자의 생명은 하늘이 정한 예정을 모두 채운 뒤끝인 것 같았다.

 

나는 초광력超光力을 주면서 다시 한번 우주 마음에 매달려보았다. 그러나 우주 마음은 여전히 무의 상태로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늘의 뜻은 이미 정해진 것같이 보였다.

 

"시간 나시는 대로 자주 나오시지요. 병이 워낙 깊어서 꾸준히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박 화백님 말씀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 하다보면 어떤 하늘의 결정이 있겠지요."

 

나는 되도록 그늘을 감추기 위해 웃으며 말했다.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건 간에 그에게서 희망마저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다. 죽을 땐 죽더라도 끝내 무책임할 수는 없다는 그의 빛나는 의지를 격려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돌아간 후 주위를 통해 알아보니 그는 화단에서 꽤나 이름을 떨친 중견급의 화백이었다. 화랑에서도 그의 작품이라면 모두 군침을 흘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은 화랑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다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점을 그려도 혼신의 열정을 쏟아 곰삭여 그려내기 때문에 몇년 가야 작품이 하나 나올까 말까 할 정도라는데 그렇게 나온 작품은 화단에서 모두 명작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게다가 작품을 절대로 돈 받고 파는 일이 없어서 시중에서 그의 작품을 보기란 거의 불가능한 가운데 상당히 희소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끌리는 구석이 많았다. 내가 미술은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대단한 예술혼을 지닌 양반인 것 같았다. 세속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고고히 지켜가는 영혼도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그래서 아깝다는 마음이 더했다. 그 고고한 세계가 도중에서 접혀야 하다니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또한 모두 하늘의 뜻인 것을.

 

그로부터 며칠 후 그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이번엔 혼자였다. 그래도 조금 몸에 힘이 실렸던지 부축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찾아온 그의 모습이 일단 보기에는 처음보다 훨씬 좋았다.

 

"어떠셨습니까?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예. 아주 잘 지냈습니다. 일단 통증이 없으니 살 것 같더군요. 어찌된 일인지 그날 선생님께 초광력超光力을 받고 돌아간 후부터 통증이 말끔히 가셨습니다. 또 식욕도 되돌아오고 잠도 잘 자고요. 덕분에 지난 며칠간을 정말 오랜만에 편안하게 생활했습니다. 문득문득 내가 환자라는 걸 잃어버릴 정도였다니까요."

 

박 화백은 아주 활짝 웃으며 활기찬 목소리로 그간의 상황을 얘기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에게서는 전보다 훨씬 생동감이 살아나 있었다.

 

"좀 나아지셨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다시 계속해서 초광력超光力을 받으시지요."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었기 때문에 달리 길게 할 말도 없었다. 지난 며칠간 아무런 느낌도 다가서지 않았던 것으로 봐서 우주마음의 결정은 이미 내려진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죽음은 예정된 수순 같았다. 다만 그가 호전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승에서 남은 시간만이라도 고통 없이 생활하다가 깨끗한 몸으로 하늘에 들라는 우주 마음의 마지막 배려일 것이었다.

 

두 번째로 초광력超光力을 받고 난 박 화백은 처음 때보다 훨씬 상기된 반응을 보였다. "정말 신비하고 알 수 없는 일이군요. 눈을 감고 있는데도 아주 밝은 색채를 봤습니다. 마치 눈을 감고 태양을 바라본 느낌이랄까요? 눈부신 주황빛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그렇게 찬란하고 황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물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 들면서 머리 속이 상쾌해지는 겁니다. 이 기분을 한마디로 요약하기가 힘드네요."

 

박 화백은 금분을 들여다보면서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긴장했던 첫날보다는 빛VIIT의 기운을 좀 더 생생하게 감지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나쁜 현상은 아니었다.

 

"몸은 어떠십니까? 좀 시원하신가요?"

 

"예, 아주 날아갈 것 같습니다. 다리에 힘도 부쩍 들어가고요. 지금 당장은 다시 청춘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기운이 펄펄 나네요. 가만, 이게 기분인지 어쩐지 좀 볼까…….?"

 

그는 가뿐해진 몸이 너무나 반가우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숍 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천진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없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어허, 그것 참. 허허허……. 어떻습니까? 괜찮아 보이지요?"

 

커피숍 안을 두세 바퀴 걷고 돌아와 앉은 박 화백은 탄성과도 같은 웃음을 흘리며 보란 듯이 두 팔을 벌려 내게 물었다.

 

"그렇군요. 컨디션이 아주 좋아 보이십니다.“

 

그의 기분을 깰 필요가 없어 같이 따라 웃어주기는 했지만 마음 속은 묵지근한 돌멩이가 들어앉은 기분이었다.

 

이런 내 속내를 눈치챈 것일까 그가 뜻밖인 말을 했다.

 

"억지로 제 기분을 맞춰주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저도 알 것은 알고 있으니까요. 하여간 그래도 지금은 몸이 가벼워서 너무 좋습니다 그려. 허허허……."

 

나는 무엇을 감추다 들킨 사람처럼 내심 흠칫하며 그의 얼굴을 보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살기 어렵다는 거 말입니다. 정 선생님 얼굴 보면서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냥 편하게 대해 주세요. 그래야 저도 편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박 화백의 얼굴엔 쓸쓸한 건지 달관한 건지 모를 웃음이 머물러 있었다.

 

"아무런 부담도 갖지 마십시오. 제가 여기에 온 건 위암을 낫겠다고 온 것이 아니니까요. 이런 몸으로 어떻게 살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도 말씀드렸든 손 놓고 무책임하게 있을 수 없어 이렇게 찾아오기는 했습니다만 그게 꼭 목숨에 연연해서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다른 데에 목적이 있지요. 마지막으로 이뤄야 할 소원이 하나 남았거든요. 실은 내가 정 선생님을 찾아온 것도 바로 그 마지막 소원 때문입니다."

 

그는 이전과 다름없는 차분한 모습으로 말했다.

 

"마지막 소원이라니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중국에 다녀와야 하거든요."

 

"중국을요? 그 몸으로 말입니까? 아니 중국에 무슨 일이 있기에……."

 

"작품을 하러 갑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계획해온 일이지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박 화백에게는 두 가지 원대한 작품 구상이 있었다. 화백 생활을 시작하고서부터 기획해왔다는 그 작품 구상은 첫째가 낙동강 칠백 리 전경을 그리는 일이고 둘째는 두만강 오백 리를 그리는 일이었다. 그중에 낙동강 칠백리를 그리는 작업은 이미 오래전 완성을 했고 이제 두만강 오백 리를 그리는 작업만 남았다고 했다. 그가 중국에 가겠다는 것은 바로 두만강 오백 리를 화폭에 담아오기 위해서였다.

 

"낙동강 줄기를 모두 그림에 담았다니 저 같은 사람은 상상이 잘 안 가는군요. 그림의 규모가 대단하겠습니다?"

 

"큰 편이지요. 그리는 데만 꼬박 4년이 걸렸으니까요.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리면서 공통된 민족 정서를 담아내느라 상당히 힘든 작업이었어요. 병풍으로 만들었는데 몇 자나 되는지는 재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냥 매우 길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가 설명하는 스케일이 쉽게 실감은 안 났지만 어림만으로도 대단할 것이라 느껴졌다.

 

"그렇게 꼭 강을 고집하시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있지요. 강은 물이고 물은 생명이지 않습니까? 그 생명의 상징을, 특히 남과 북에 있는 생명의 상징을 제 화폭에 하나로 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남과 북의 생명을 그림으로나마 통합시킨다는 의미이지요. 그래서 낙동강과 두만강을 선택한 겁니다. 남북통일은 정치적 군사적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적인 접근도 중요하지요. 심정과 정서로 하나가 되어야만 진정한 통일도 말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에요."

 

그는 통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락한 화실을 마다하고 순교자의 고행처럼 강 길을 따라 걸으며 통일에 대한 향불을 피워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그가 그렇게 커 보일 수 없었다. 당장 자신의 몸은 병들어 쇠퇴해가면서도 그렇듯 큰 화합의 정신을 불태우고 있는 그의 모습이 실로 눈부셔 보였다.

 

"어쨌든 그래서 시작한 작업인데 낙동강은 작업이 끝났고 이제 두만강 오백리를 그릴 차례에서 그만 몸이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지요. 낙동강과 두만강 작품이 나란히 하나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아야 죽더라도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좀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게는 그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절절한 마음이 내게도 느껴지는 듯했다.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작품세계에 매달리는 그의 작가 정신이 내게는 더 없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더도 말고 6개월 정도만 시간을 연장해 주십시오. 이런 몸으로 더는 욕심이겠고 딱 6개월입니다. 밤낮으로 매달리면 그 시간에 작업을 마칠 수 있을 겁니다."

 

"6개월이라……."

 

남북 관계를 그림으로나마 풀어보겠다는 그의 의지는 높이 사야 할 것이었다. 나는 그의 부탁을 꼭 들어주고 싶었다. 물론 내가 결정하는 일은 아니지만 나는 진정으로 우주 마음에 기원해 보기로 했다.

 

"좋습니다. 하루에 두 번 초광력超光力을 드리는 경우는 드물지만 박 화백님의 그런 소원을 알았으니 다시 우주마음에 전해 보겠습니다. 일단 마음을 편하게 갖고 한 번 더 초광력超光力을 받아보십시오. 초광력超光力을 받으실 때에는 꼭 시간에 집착하지 마시고, 먼저 자신의 마음이 맑고 평화롭게 되기를 기원하세요. 순수하게 맑은 상태가 된다면 그 안에서 다른 일들도 따라 잘 풀릴 수 있을 겁니다."

 

"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의 마음과 동화된 절실함으로 빛VIIT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만큼은 그의 소원이 곧 나의 소원이기도 했다. 하여 그의 생명을 다시 되돌려주실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약간의 시간만 연장해달라는 그 작은 소원마저는 외면하지 않으시기를 하늘에 조르는 마음으로 간청했다.

 

초광력超光力중에 하늘로부터 받은 느낌은 긍정적이었다. 평소보다 많은 불기둥이 아득할 정도로 밝게 눈앞에 나타나는 가운데 너그럽고 순조로운 기운을 접할 수 있었다.

 

"중국엔 언제 가실 예정이십니까?"

 

"언제든지요. 몸이 움직일 정도만 되면 당장 내일이라도 달려갈 작정입니다." "그럼 다음 주부터 시간을 정해놓고 주기적으로 나오십시오. 체계적으로 광력光力을 드릴 테니까요.

 

하늘도 박 화백님의 마음을 높게 사는 것 같으니 같이 한 번 노력을 하다보면 좋은 일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이후 박 화백은 하루에 한 번씩 집중적으로 초광력超光力을 받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검던 얼굴색이 풀리며 발그레한 혈기가 돌더니 일주일쯤 후부터는 몸의 붓기가 모두 빠졌다. 그런 바탕 위에서 근력이 붙고 체중이 늘고 통증이 사라지는 등의 희망적인 예후들이 속속 이어지더니 정확히 한 달 후쯤에는 불룩하던 복수까지 모두 사라졌다. 그러면서 외견상으로는 거의 정상적인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즈음 박 화백이 물어왔다.

 

"요즘엔 제가 환자인지 아닌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병에 걸리기 전에도 이렇게까지는 몸이 좋지 않았을 겁니다. 어떤 때는 정상인들보다 내가 더 건강하다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어떻습니까, 선생님? 이 정도면 준비가 충분히 된 게 아닐까요?"

 

이제 중국에 가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소리일 것이다. 하긴 내가 보아도 그의 몸 상태는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기왕 갈 중국이라면 더는 지체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를 해주었다.

 

그는 중국으로 떠나기 전날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왔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덕분으로 일생의 숙원을 풀러 떠나게 됐습니다. 뜻을 못 이루고 허무하게 가는 건 아닌가 했는데 말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린 시간이 다가와서일까 목소리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결의에 찬 그의 모습이 다부져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는 분명 생명의 끝자락에 서 있는 말기암 환자였다. 그를 떠나보내는 나의 마음이 무조건 개운할 수만은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힘이 넘치니까요. 지금 상태 같아서는 작품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한 30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의 웃음소리가 청량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한 번 정해진 하늘의 이치였다. 지금 그의 모습은 마치 지기 전의 찬란한 노을과도 같은 상태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의 웃음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거 받아주십시오."

 

그는 부시럭거리며 안주머니에서 곱게 접힌 화선지 한 장을 꺼내더니 내게로 건냈다.

 

"이게 뭡니까?"

 

"제 그림입니다."

 

"그림이요?"

 

"예. 제가 처음으로 그렸던 그림입니다. 국선에 입선했던 작품이지요.

 

선생님께 드리고 싶어 갖고 왔습니다. 받아주십시오."

 

펼쳐보니 시원한 폭포가 떨어지고 있는 묵화였다. 그 힘찬 붓 길이 폭포보다도 시원하게 느껴지는 게 그림을 모르는 내가 보아도 상당히 훌륭한 작품인 것 같았다. 더구나 국선에서 입선한 작품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꽤나 가격이 나가는 그림일 것이다. 선물로 받기엔 너무나 부담스러운 물건이라 마음이 선뜻 허락하지 않았다.

 

"됐습니다. 제게는 너무 과분한 선물인 것 같군요.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도로 넣으시지요. 이렇게 보여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족합니다."

 

"그러지 말고 받아주십시오. 이건 그냥 선물이 아니고 제 마음을 드리는 겁니다."

 

그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제가 부담스러워서 그렇습니다. 작가에게 첫 작품은 자식만큼이나 귀중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그리 귀한 그림을 제가 어찌 받겠습니까?"

 

"맞습니다. 귀중한 의미가 있지요. 그래서 드리는 겁니다. 의미는 진정한 짝을 만났을 때 가치를 발하는 것이니까요. 제가 그린 낙동강 칠백 리 그림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국방부에 있습니다. 제가 기증을 했지요. 내 전우가 낙동강 전투에서 죽어 다시는 그 같은 전쟁이 없으라고 국방부에 기증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지금 이 그림을 선생님께 드리는 데에도 뜻이 있습니다. 생명 때문이지요. 말씀하셨듯이 첫 작품은 제게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듯 제 생명이라서 선생님께 드리는 겁니다. 제 생명을 조금이라도 늘려주신 데 대한 감사로,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계속 보듬어주십사는 뜻으로 말입니다. 그러니 거절하지 마시고 받아주십시오."

 

이렇게 진지하게 나오는 데까지야 차마 그 마음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주신다니 그럼 귀중하게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대통령이 달라고 해도 주지 않았던 그림입니다. 다른 사람 주지 마시고 꼭 간직해 주십시오. 제가 죽은 후에도 말입니다."

 

마치 미리 유품을 남기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그의 얼굴이 조금 쓸쓸해졌다.

 

"하하, 그리도 기다리시던 작품 여행을 앞두고 무슨 그런 재미없는 말씀을 하십니까? 그런 말씀은 그림 다 그리고 오셔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세요."

 

"내가 여행에서 돌아와 또 선생님을 뵐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요."

 

"글쎄요……. 자신이 없군요."

 

창쪽을 바라보는 박화백의 눈길이 아득해졌다.

 

"두려우십니까?"

 

"무슨 말씀을요. 두렵기는요. 단지 헤어지는 게 좀 섭섭해서 그렇지요. 선생님과 헤어지고 나면 다시 만날 자신이 없거든요."

 

"그런 생각 마시고 가서 훌륭한 작품 그리고 오세요. 우리가 다시 만나고 못 만나고는 하늘에 맡기시고요. 또 하늘의 뜻이 어떠하든 간에 시간의 문제일 뿐 사람들은 누구나 끝내는 서로 헤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다가 또 언젠가는 빛VIIT의 세계에서 다시 모두 만나게 될 테구요. 그런 걸 생각하면 당장의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크게 보면 우리에게는 반드시 만남이 약속되어 있으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선생님 말씀……. 그리고 제가 몰랐던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신 점 정말 감사드려요. 사실 그동안 초광력超光力을 받으면서 상당히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사 말이지만 지금 저는 두만강 작업에 대해 상당히 태평한 마음이에요. 예전에는 못 그리면 어쩌나 해서 앉으나 서나 두만강 생각에만 쫓기고 죽으면 귀신이 돼서라도 그릴 생각이었는데 말입니다. 그게 다 집착과 욕심이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이제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그리자는 마음뿐입니다. 그냥 순리에 따라야겠다는 생각이지요. 이게 다 초광력超光力을 받고 일어난 변화입니다. 아마 초광력超光力이 아니었다면 욕심과 교만과 집착 같은 내 허물을 못 보고 갔을 겁니다. 잠시 시간을 얻으러 왔다가 너무 큰 것을 얻어 가지고 가네요.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달리 또 인사를 드릴 기회가 오게 될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그는 중국으로 떠나갔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박 화백의 일을 잠시 잊고 있다가 얼마 전에야 우연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중국으로 간 그는 다행히 두만강 오백 리의 그림을 완성했지만 그림의 완성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그의 운명 시기였다. 그가 운명했다는 날짜를 듣고 보니 내게 집중적으로 초광력超光力을 받기 시작한 날로부터 정확히 6개월째 되는 날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확인하고 전율스럽기까지 했다. 성광의 존재하심과 주관하심이 그토록 엄정하심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병풍으로 만들어 수제자에게 넘겨졌다는데 아쉽게도 나는 그 그림을 보지 못했다. 그의 작품 속에서 흐르는 두만강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빛VIIT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그린 그림이라서 더욱 그 모습이 궁금하다. 혹시 오백 리 구비 구비 마다 빛VIIT의 미소가 머물러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그 재능이 도중에 스러진 것은 못내 안타깝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빛VIIT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떠났으니 다행한 일이다. 지금도 그가 남긴 묵화를 들여다볼 때면 치열했던 그의 예술혼이 느껴지는 듯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비록 그는 빛VIIT의 세계로 들었지만 그가 그려놓은 화해의 강줄기는 언제까지고 세상에서 마름없이 흘러갈 것이다. 어서 빨리 그의 뜻대로 남북이 이어지고 화해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사람 영혼에게 평화로운 안식을 빌어본다.

 

출처 : 초광력超光力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1999년 3월 8일 1판 1쇄 발행

1999년 4월 15일 1판 2쇄 발행

2014년 5월 28일 한정판 1쇄 P. 259-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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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윤수(풍요22기) | 작성시간 26.06.03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오선영(풍요 1기) | 작성시간 26.06.03 new 귀한 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연주(풍요1기) | 작성시간 26.06.03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문창경(풍요14기) | 작성시간 05:42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박은조 | 작성시간 2시간 6분 전 new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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