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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빛역사] 2013.06.11. 인류의 시원 삼황오제 탐방 / 중국 삼황오제 한역 답사기

작성자운.영.진|작성시간26.06.11|조회수152 목록 댓글 34

[빛역사]

2013.06.11. 인류의 시원 삼황오제 탐방

월별빛역사

6월의 빛역사

1990.06.01. 손바닥에 새겨진 불꽃

1993.06.03. 박정규 화백 이야기

1995.06.27. 백두산 빛VIIT의 잔 탄생

1997.06.06. 김수환 추기경과의 만남

2000.06.20. 사단법인 건강과 행복을 위한 빛명상 등록일

2013.06.11. 인류의 시원 삼황오제 탐방

2017.06.29. 빛패치 보감의 탄생

중국삼황오제 한역답사기

6천년 전 우주마음이 태호복희씨에게 '8괘'를 주어 세상을 이롭게 하고 상생과 평화를 가르쳤듯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학회장님을 통해 '빛VIIT'을 주시어 현세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빛VIIT의 도구인 '한역팔목을 통해 빛VIIT을 알리고 전하며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1. 6월 4일 화요일(출발당일)

학회장님을 비롯한 우리 일행은 역사적 현장에 함께 한다는 설렘과 기대감을 가지고 인천에서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예정대로라면 오후 2시쯤 북경공항에 착륙하여 북경공항에서 아주 여유 있게 18시 15분 서안으로 향하는 국내선 비행기를 갈아탈 수 있었으나, 북경의 기상악화로 비행기에 탑승한 채로 거의 한 시간 반 가량 기다려서야 이륙할 수 있었다.

북경에 도착한 후 이춘옥 가이드의 이야기에 따르면 일행 도착전 북경시간으로 오전11시부터 30분동안 하늘이 갑자기 깜깜해지면서 먹구름이 덮이고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려서 우리가 도착하지 못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일행이 도착한 후에는 날이 개이고 맑았다.

북경의 일기예보는 3일전부터 비가 내린다고 계속 예보가 있었지만, 내리지 않았고, 오늘 그것도 불과 몇 시간 전에 그동안 머금은 모든 비가 집중적으로 내렸다고 한다. 북경을 방문하는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방문전 깨끗하게 정화시켜주는 비처럼 느껴졌다. 짧은 북경 만남을 뒤로한 채 우리 일행은 북경을 거쳐 '서안'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2. 6월 5일 수요일(섬서성황제헌원릉)

오전 11시 23분 경, '섬서성 중부헌 교산 황제릉(황제헌원)'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입구에 늘어선 모든 성씨의 근원을 찾아준다는 상점들이었다. 중국 정부가 한족뿐 아니라 56개 소수민족까지도 모두 자신들의 시조라 여기는 황제헌원으로부터 비롯된 한뿌리임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역사왜곡의 현장이었다.

많은 관문을 지나 도착한 황제릉 뒤편에 돌로 만든 테이블 위에 학회장님은 한역팔목, 삼목, 빛VIIT의 책 등을 꺼내놓으시고 땅에 씰마크를 그리시고 향을 꽂고 술을 따르시며 감사의 마음을 우주마음께 올리셨다.

3목과 8목을 주심에 감사를 올리고, 많은 사람들이 팔목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청을 올리셨다. 그러자 곧이어 해가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 주변과 나무주변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감사제를 지내는 사람들의 몸, 얼굴, 옷, 그리고 주변의 나무들까지 온통 빛무리가 퍼지며 오색 빛풍선이 떠다녔다. 너무나 황홀한 순간이었다.

오색 찬란한 빛현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하늘에 선명한 구름 띠가 한 줄로 그려졌으며, 마치 경계를 보여주듯 한줄 선명한 구름 띠를 중심으로 태양이 구름띠 밑으로 내려와 점점 아래로 우리들 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 순간의 감사와 경외로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함께 참석한 가이드, 지승스님, 박홍주 교수 등은 처음 보는 빛현상에 마냥 넋이 빠진 모습이었다. 태양을 너머 태양을 통하여 초자연적 빛현상으로 우주마음의 현존을 보여주심에 그 역사적 현장에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감사제를 지낸 후 나오는 길에 하늘에는 커다란 원형 무지개가 떠서 오늘의 감사제 빛현상을 가슴에 잘 담을 수 있도록 기쁜 마무리를 해주셨다.

3. 6월 6일 목요일 (산서성 순제릉묘와 사당 탐방)

무척이나 더운 날씨에 살갗이 따가울 정도의 햇살까지 내리쬐었다. 학회장님께서 순제릉에 도착 후 입구에서 `순제석상’에 빛VIIT을 주시며 정화를 시키시니 그 화답으로 찌는 듯 한 폭염 속에 갑자기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더니, 이글거리는 태양을 잠시 잠재운 듯 그늘막이 쳐진 날씨처럼 관람하기에 좋은 환경이 되었다.

순제릉 입구 광장 바닥에 그려진 복희씨 대형 팔괘에 올라가셔서 빛VIIT의 터와 연결하시고 순제릉에 헌향, 헌주 올리시며 삼황오제 그분들의 모습이 구름위에 오셔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 하시며 감사제를 올리셨다. 탐방 후 나오는길 하늘엔 중국지도모양으로 대형구름이 하늘에 그려져 있었고 그 뒤에 구름으로 만든 지도 사이 사이에서 빛줄기들이 내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비로웠다.

4. 6월 7일 금요일 (서안 비림박물관, 대안탑, 화청지, 병마용갱, 진시황릉탐방)

오전에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들을 모아놓은 제1급 국가박물관인 비림박물관을 찾았다. 이곳은 중국 고대와 봉건사회시절 유명 서예가들의 작품도 전시되고 있었다. 학회장님께서는 수 많은 비석들 중느낌이 통하는 비석들에게 빛VIIT을 주시고 `삼족오’를 찾으시고는

빛VIIT과 교류하셨다.

이후 비림박물관을 나와서 삼장법사의 불경을 모아둔 `대안탑’ 을 찾아 ` 빛VIIT’의 안테나를 세우셨다.오후에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별장인 `화청지’를 방문해 그 곳의 오래된 수목 (800년 된 석류나무)에 빛VIIT의 동전을 올려놓고 빛VIIT과 교류하는 빛VIIT의 안테나를 심으셨다.

다음일정으로 그 유명한 `병마용갱’과 `진시황릉’을 답사했다. `병마용갱’은 가히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학회장님께서는 이곳에서 불쌍하게 동원되고 생매장된 수많은 영혼들에게 빛VIIT을 주셨다.

일정을 마치고 장사로 가는 공항 게이트 대합실에서 창밖으로 일몰이 장관을 이루었다. 태양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그 주변으로 빛풍선들이 마구 터져 나왔다. 공항대합실에서 탑승 대기 중이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탄성을 자아냈다.

학회장님께서는 병마용갱을 만들고 생매장을 당한 무수한 많은 영혼들을 빛VIIT으로 보내주었는데 그들이 보내는 감사의 표시라 하셨다.

5. 6월 8일 토요일 (염제신농 사묘탐방)

오전에 호남성 주주시에 있는 염제신농사묘를 탐방했다. 장사에서 무려 5시간 이동하여 도착했다. `염제신농’은 앞서 방문한 `황제헌원’과 함께 삼황 중 한 분으로 차나무를 발견했고 농사짓는 법과 의약醫藥을 가르쳐 백성이 배불리 먹고 건강하게 살도록 했다.

현지에 도착하여 만난 문화해설사 `이진’의 말에 의하면, 오전에 우리 일행이 도착하기전 그들 표현으로 `성스러운 비’가 내렸다고 했다. 학회장님께서는 날씨로 환영의 마음을 보여준 것이라 하셨다. 일정 내내 해가 구름에 가리어 그늘이 만들어졌고 학회장님께서 `해원상생’이라는 글자를 써서 커다란 폭죽과 함께 터뜨리셨고, 염제신농릉에 헌향, 헌주를 올리며 예를 올리셨다.

안쪽에 수수하고 초라한 염제릉을 뒤로 한 채 앞쪽에는 자금성의 축소판 같은 대규모의 현대식 `신농대전’이 건설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두 곳의 모습이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학회장님께서는 중국인들이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뒤에 염제릉은 절의 산신각처럼 눈에 띄지 않게 하고, 앞에 놓인 `신농대전’으로 이목을 끌어 역사를 왜곡하려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신농대전 광장엔 커다란 대리석으로 정팔각형 팔괘도가 깔려있었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황제와 함께 염제炎帝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편입하여 `염제와 황제의 자손’이라는 의미의 `염황지손炎黃之孫’ 또는 염황자손炎黃子孫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황제나 염제의 궁궐터나 사당을 복원하고, 초상이나 동상을 만들어 역사상의 실제 인물로 만들고자 하는 사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민족의 뿌리를 사실이 아니라 가공해가는 중국의 실행력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남의 민족 뿌리까지 자기 민족의 조상으로 편입시키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우리 민족의 정신과 뿌리는 무엇이며 이를 상징하고 기념하는 곳은 어디이며 6,000년의 역사의 자긍심과 가치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 모두가 자문해보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

6. 6월 9일 일요일 (동정호, 이비묘 탐방)

오전에 중국 최대의 호수로 길이가 800리에 달하는 악양에 있는 동정호를 찾았다. 그리고 배를 타고 동정호 안에 위치한 `군산도’에 있는 이비묘를 방문했다.

이곳엔 순임금의 두 부인인 이비의 슬픈 사연으로 만들어낸 반죽(얼룩진 대나무)숲이 있었다. 이비묘 주변의 숲을 거닐며 학회장님께서는 반죽과 고목에 빛VIIT을 주셨다.

오후엔 기차로 종주역에 도착하여 `서안’을 담당한 장명철가이드를 다시 만났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 팀이 서안을 떠난 날 저녁부터 서안에는 벼락과 천둥이 치고 하늘은 억수같이 비를 퍼붓고 오늘까지도 계속 비가 내린다고 했다. 서안은 거의 비가 오지 않는 도시인데 말이다. 우리가 정주역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약간씩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는데, 차를 타고 이동 중에는 비가 내리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리면 비가 멈추는, 참으로 감사하고 신기한 일기가 이어졌다. 이러한 현상 또한 수차례의 빛VIIT여행에서 수도 없이 겪어온 일들이다.

 

7. 6월 10일 월요일 (회양현 태호복희사묘, 신정 황제헌원사당 탐방)

오전 11시경, 하남성 회양현에 있는 태호복희씨 사묘에 도착했다. 사묘 입구에 태호복희묘 안내문이 보였는데 영문과 중문, 심지어 한국어로까지 표시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자국뿐만 아니라 해외에 까지 자민족의 역사를 알리려는 중국의 발빠른 대응이 보인다.

새벽에 비가 억수같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라 그곳 주민들은 모두가 신령스런 비라 하였다. 일행이 도착할 즈음, 맑게 정화된 깨끗한 날씨였으며 상쾌한 가랑비(빛비)가 내려 방문객이 많지 않아 번잡하지 않았고, 아주 조용하고 촉촉한 기분 좋은

빛비를 맞으며 새털 같은 마음으로 `복희사묘’를 둘러 볼 수 있었다.

학회장님께서는 전날 밤 잠을 못 이루시고 태호복희사묘에서 사용할 감사제문을 준비하셨는데, 이동하는 차 안에서 우주마음의 느낌을 받아 빛교류 후, 우주마음의 뜻을 받아 적고 완성하시니 비가 그치고 맑아졌다고 말씀하셨다. 다음은 차 안에서의 우주마음과의 빛교류 내용이다.

『우주마음이 6,000여년 전 태호복희에게 `팔괘’를 주셨다. 지금은 우리에게 `팔목과 삼목’을 주셨다. 태호복희에게 준 팔괘를 이용하여 팔목을 뜻대로 활용해 온 세상에 `빛VIIT’을 알리라 하셨다.

이 지구를 비롯해 우주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두를 포용하고 초월하는 Viit Meditation House를 세워 그곳에 빛VIIT이 함께 해 누구나 와서 힐링하고 세계 평화, 행복의 장소가 되게 하라하셨다.

제 2의 르네상스가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빛VIIT으로 인류를 살릴 새로운 기회가 왔다고 하셨다. 나의 것, 남의 것 따지지 말라하셨다. 역사를 되찾으려하지마라. 모두다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된 것이며, 빛VIIT안에서 모두 하나다』

다음 일정으로 `신정’에 있는 `황제헌원’의 고향에 있는 사당을 방문하였는데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입장 마감 시간이 지난 5시 45분이었다. 원래는 5시 30분이 관람 마감 시간이었는데 오늘 현지 사정으로 30분 연장한다고 해서 입장할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칼같이 퇴근을 하는데 이 날은 어떻게 된 일인지 근무종료시간이 지났는데도 입장을 허락해주었다. 현지 가이드는 이런 일은 중국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함께 한 우리 일행 또한 이런 일들이 너무 신기하였다.

사당 내부네 이르자 황제상이 보였다. 인문초조人文初祖. 사람과 문명의 시초가 되는 조상이 황제헌원이라는 의미를 담은 현판이 걸려 있었다. 학회장님께서는 사당 마당에 있는 고목나무 세 그루를 빛VIIT의 나무로 명명하시고 빛VIIT의 터와 연결시키셨다. 돌아오는 차창으로 비치는 일몰 광경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빛VIIT의 향연을 또 한 번 보여주셨다.

8. 6월 11일 화요일 (요제릉, 어태현 태호복희 획팔괘처 탐방)

이 날의 첫 번째 여정인 하남성 산동성에 있는 하택시 요제릉에 도착했다. 수천 년 전 임금의 무덤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흙무덤이었다. 작고 볼품없었고 일제의 도굴 흔적으로 보이는 구덩이가 있었다. 전설 속 임금의 능묘라기엔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었다.

무덤 앞 동네 여인네들에게 우리 일행이 이 묘가 요제릉이 맞냐고 물으니, 흙을 쌓아 놓은거지 무덤이 아니라며 우리 일행을 혼돈스럽게 하였다. 그 찰라에 이곳 사당지기인 66세 왕극춘 할아버지가 나타나, 이곳이 요임금의 무덤이 맞으며 맞은편 낡은 사당이 있으니 들어가 보라며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무덤 마당에는 잡풀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이제껏 보아온 능묘와 사당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사당 한구석 어느 비석에는 2008년 한국 락앤락회장이 사당보수금을 희사했다는 얘기가 씌어져 있었다. 사당 앞에는 향로조차 없어서 학회장님은 땅에 나뭇가지로 삼각형 씰마크를 그리고 그 안에 향을 꽂은 뒤 감사의 예를 올렸다.

요제릉을 출발하여 오후 6시가 다되어 어태현 태호복희사당(획팔괘처)에 도착하였다. 획팔괘처는 태호복희씨가 팔괘를 하늘로부터 받은 곳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또한 이곳은 우리의 이번 탐방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말그대로 태호복희가 하늘로부터 팔괘의 영감을 받아 처음으로 팔괘를 그려 얻은 곳이다. 이곳은 산동성에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사묘건축물이다. 특이한 점은 릉 위에 복희·여와사당이 만들어진 점이다. 릉 위에 사당을 건축했다는 점은 중국사묘 건축역사상에는 유일하다한다.

이곳은 태호복희씨의 형상을 조각한 조각물만 있는 사당이었고, 가슴에 팔괘를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학회장님께서는 감사의 마음으로 우주마음에 예를 올리셨다. 헌향과 헌주를 하고 잠시 침묵으로 복희씨의 영과 교류하시며, 이제 팔괘를 가져가도 되겠냐고 하시자, 복희씨의 영이 가슴에 품고 있던 팔괘를 통째로 가져가라고 했다고 말씀하셨다. 영적에너지가 낮은 일반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할 때는 어김없이 하늘의 응징(주살)을 받을 거라 하셨다.

학회장님께서는 제단 위에 놓여있던 팔괘대 위에 한역팔목과 삼목을 올려놓으시고, "이제 태호복희 팔괘는 한역팔목과 삼목으로 거듭납니다."라고 하셨다. 이날 태호복희씨의 팔괘는 한역의 뿌리로서 학회장님이 만드신 팔목으로 다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학회장님은 이제 팔괘는 앞으로 영원히 우리 민족 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빛VIIT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할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복희사당 뒤쪽에 위치한 여와사당에도 헌향하시며 빛VIIT을 주셨다. 일행은 마당으로 나와 `황정’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 우물에 모여, "이 우물은 우주마음으로부터 받은 팔괘의 기적으로 생겨났으며, 우물의 물을 마시면 모든 아픔이 사라지는 기적의 샘물이 되었다"는 우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학회장님께서는 빛VIIT으로 그 샘물과 팔괘를 연결하시고 "이제 이것도 우리 우물이다" 하시며 이곳에 빛VIIT의 안테나를 세우셨다.

그 무렵 건너편 하늘에 있던 해질녘 태양을 향해, 학회장님께서 빛VIIT을 보내시며 "커져라"라고 말씀하시자, 이미 서산으로 넘어간 해가 그 소리에 맞춰 다시 떠올라 크고 환하게 분열하여 점점 더 우리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함께 지켜본 서안 장명철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사진에 담으며 사진에 담긴 빛현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9. 6월 12일 (공자사당, 소호금천 사묘탐방)

산동성 곡부에 있는 공자의 사당을 방문했다. 사당 안은 수많은 관람객으로 붐비었다.

우리 상고사를 조작한 공자는 자신이 쓴 책 `예기’에서 죽기 일주일전 자신이 두 개의 기둥 사이에 누워있는 꿈을 꾸고 그것이 동이족의 장례의식인 지석묘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동이족인 은나라의 후손인 것을 제자 자공에게 알렸다고 한다. 즉, 자신을 중화민족, 한족으로 알고 동이족의 역사를 날조했는데 죽기 일주일전 자신이 동이족임을 알게 된 것이다. 참으로 비통한 역사다.

다음 일정인 오제 중 하나로 황제헌원의 맏아들인 "소호금천씨 사묘"로 향했다. 이곳은 공자사당의 북적임과는 달리 찾는 이들이 드문 한적한 분위기였다. 소호금천씨는 황제의 후손으로서 우리 일행은 `맹자’가 쓴 이루하 제 1장에 나오는 글귀가 쓰여진 현판과 그 옆에 사마천의 사기에 의한 우순의 가계도를 사당 안에 있는 전시물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孟子離樓 下曰〉 : 舜生于諸冯, 迁于負夏, 卒于鳴條; 東夷之人也

〔 맹자 이루 하 왈, "순임금은 제풍에서 태어나고, 부하로 이사하시고,

명조에서 죽으셨는데, 그는 동이사람이다."〕

우리가 증명하고자 했던 삼황오제가 우리의 선조라는 사실이 역사적 자료로 명확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일행은 자료를 확인한 뒤 사당 뒤쪽에 있는 `소호금천씨릉’으로 발길을 돌렸다.학회장님께서는 능 앞에 빛VIIT의 씰마크를 그리시고 그 밑에 광光자를 쓰시고 씰 모서리에 향을 피우신 뒤, 다시 주역이 한역으로 거듭남을 선포하셨다. 또한 하늘의 문을 조금 열어 놓을테니, 선조들에게 빛VIIT의 나라로 가시라고 하셨다. 감사제를 지낸 후 능 주변에 예쁘게 피어있는 들꽃과 나뭇잎과 돌을 채취해 이 날의 기념으로 삼으셨다. 채취한 것들은 영원히 시들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고 그 곳의 좋은 에너지들을 빛VIIT의 터와 연결시키셨다.

10. 6월 13일(중화삼조당 탐방)

이번 방문의 마지막 일정으로 `탁록현’에 있는 `중화삼조당’을 찾아 갔다. 이 곳은 현대식 사당으로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염제신농, 황제헌원, 치우천왕 세 분의 석상을 모신 사당이다.

`귀근원’이라는 문구를 써서 세 분이 그들의 조상이라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었다.

남의 것을 빼앗아 버젓이 자기 것인 양 화려하게 치장해 세월이 흐르면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게 날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비통하고 안타까웠다.

이번 중국 삼황오제 역사탐방을 통해 우리 배달민족의 정신과 인류역사의 시원을 찾는데 큰 의의를 가질 수 있었고,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지나간 세월을 주워 담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미래를 알고 미래의 올바른 비전을 세우려함이다.

한역과 함께 새로 확인하는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 민족의 시조인 삼황오제가 신화나 전설이 아닌 실존과 현존의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음에 무한한 영광과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6천 년 전 우주마음이 태호복희씨에게 `팔괘’를 주어 세상을 이롭게 하고 상생과 평화를 가르쳤듯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학회장님을 통해 `빛VIIT’을 주시어 현세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빛VIIT의 도구인 `한역팔목’을 통해 빛VIIT을 알리고 전하며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또한 일만 년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후손임을 마음 깊이 새기며, 현존의 빛VIIT이 왜 우리와 함께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일본에 의해 왜곡된 식민사관과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의 흔적이 남아있는 역사서로 교육받은 우리들은 지금의 이러한 일들을 통해 다시 재조명되는 우리의 상고사가 국민들에게 바르게 읽혀지기를 바란다.

발로 직접 찾아가 우리 시조의 능묘와 사당을 탐방하고 확인할 수 있었던 귀한 발걸음이었다. 아마 평생 잊지 못 할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학회장님께서 수만 명의 사람들을 통해 검증한 한역의 집필을 마무리하시면서, 한역의 시원을 확인하기 위해 시작된 이번 `한역답사’는 한역과 함께 더 큰 사실을 아는 계기가 되었고,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아 민족정신을 회복하고, 교육을 통해 긍지를 유발하며, 바른 역사를 세우고 후대에 전하여 미래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번 탐방으로 태호복희의 팔괘는 우리나라의 한역팔목으로 새롭게 재탄생되어 지구촌 많은 이들에게 빛VIIT의 현존을 알리는 빛VIIT의 도구로 자리매김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행복예보 생활한역 p266~285

 

 

지승스님을 생각하며

1.

대한민국 상고사에

40년 이상을 바쳐온

지승 스님이 얼마 전 작고했다

아무런 기별도 없이

조용히 육체를 벗었다

7월의 어느 새벽녘

스님이 깊은 명상 중에 오셨다

-빛선생님 그리워

찾아왔어요

잘 계시지요?

잊지 말고 소승을 기억해 주세요

잠에서 깨어나

스님이 게시던 서쪽 하늘에

한줄기 빛VIIT을 띄워 보냈다

2.

스님은 잃어버린 4.000년

대한민국 상고사를 찾기 위해

홀로 중국 땅을 샅샅이 누볐다

굶는 날에는 깡소주에 의했고

노상에서 긴 밤을 지새웠다

대한민국의 6,000년의 역사가

일제 강점기를 거쳐 말살되고

단군 조선의 4,300년 역사마저도

왜곡된 현실에 스님은 울분을 토했다

『우리 상고사 기행』이라는

탐사기를 펴냈지만

검증되지 않은 사료라는 이유로

그 어디에서도 주목받지 못했다

3.

그러던 중 나와 인연이 닿았고

의기투합해 탐방을 계획했다

2013년 6월, 일행과 함께

중국의 삼황오제를 찾아 나섰다

하루 15시간 전세 버스로 이동하는

강행군을 거쳐 사묘와 능묘를 찾아다녔다

비석과 사요, 묘와 사당을 좇아

삼황오제가 전설속의 임금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며 동이족東夷族임을 확인했다

『행복예보 생활한역』과 『우리상고사 기행』

스님과의 인연으로 대한민국의

잃어버린 상고사 4.000년을 되찾아 올수 있었다

주역의 원천이 되는 팔괘를 창시 받은 분이

태호복희이며 그분이 동이족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수천 년간 중국의 역으로만 알았던 주역¹

배달민족 한역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1. 주나라의 역이라고 해서 주역周易으로 불렸다

그 기록을 남겨

『행복에보 생활한역』을 집필했다

이제 『해동성국』이란 단행본으로 출간해

후세를 위해 길이 남기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스님의 숨은 노고에

영혼의 무궁한 평안함이 담긴

빛향기를 한아름 보낸다

2013년 6월, 동정호 이비묘 앞에서 지승스님과 함께

출처 : 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3(2쇄)

2024년 6월 22일 초판 1쇄

2024년 12월 17일 초판 2쇄 P. 358-361

전설의 삼황오제를 찾아서

2013년 6월, 배달민족의 잃어버린 상고사를

찾기 위해 삼황오제 탐방에 나섰다

‘우리 상고사 기행’의 저자 지승스님과

발로 직접 확인한 능묘와 사당은

동이족의 자취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동이족의 시조인 태호복희 사당이 있던

어태현 획팔괘처에 도착했을 때다

사당 안으로 들어가 빛VIIT과 교류하며

헌향, 헌주하며 우주마음에 감사올렸다

한역의 원천이 되는 팔괘를 만든

동이족의 선조, 태호복희를 기렸다

앞마당에 오래된 우물이 있어 빛VIIT을 교류하니

빛VIIT현상이 일어났다.

태양이 돌고 오색의 빛풍선이 터져나오며

이날을 축복했다.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상고사,

6,000년의 시간을 되찾았던 그날에 감사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그림 찻방에 싣는다

출처 : 甲辰年 그림찻방3

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3

2024년 6월 22일 초판 1쇄 P. 35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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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최보현(미건) 풍요11기 | 작성시간 26.06.12 우리상고사 6천년을 찾으신
    학회장님의 노고에 온 마음으로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감 사 드 립 니 다. !!
  • 작성자박은조 | 작성시간 26.06.12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작성자이서연(풍요22기) | 작성시간 26.06.13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영래(풍요2기) | 작성시간 26.06.14 빛역사 이야기,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여영란 | 작성시간 26.06.1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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