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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화합][살며 생각하며] ‘스토리’라는 위대한 유산(문화일보) / [빛명상] 슬픔을 넘어 행복으로 / 진정 자유로이 떠나기

작성자운.영.진|작성시간26.06.23|조회수138 목록 댓글 45

[살며 생각하며]

‘스토리’라는 위대한 유산

출처 문화일보 : https://www.munhwa.com/article/11596722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가족 성공·시련 함께했던 얘기

잘 아는 아이가 스트레스 극복

 

‘자수성가’ 상승형 가족서사는

동기부여·실패 압박감 ‘공존’

 

부모 실패 경험 미화하려 말고

과정 솔직히 전달하는 게 ‘유산’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다. 한때는 예능에서 수없이 패러디되며 깔깔댈 수 있을 표현이었지만, 지금 세대에게는 공감도 재미도 불러일으킬 수 없는 낯설고 폭력적인 질문이다. “우리 아버지는 저녁 식사 후에 강아지와 산책하세요” “우리 아버지는 요즘 AI 프로그램 배우고 계세요” 같은 대답을 바라고 하는 질문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서열주의가 지배적인 우리 사회에서 부모에 대한 질문은 점차 금기시되고 있다.

부모에 대한 질문이 권력과 재력이 아닌 성장과 희로애락의 스토리에 포커싱되어 있다면 어떨까. 이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미국에서 발표된 바 있다. 에머리대 심리학과 마셜 듀크와 로빈 피부시 교수가 1990년대부터 진행해온 ‘가족 서사 프로젝트’(Family Narratives Project)가 그것이다.

위기나 스트레스 속에서도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회복탄력성이 좋은 아이들의 비결을 알아보는 연구를 통해, 가족에 대해 잘 아는 아이들이 자신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높고 ‘내적 통제력’(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연구팀은 ‘부모님이 어디서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알고 있는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디에서 자라셨는지 알고 있는가, 우리 가족이 겪은 가장 큰 비극이나 이를 통해 깨닫게 된 점은 무엇인가, 네가 태어났을 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가’ 등 가족에 관한 질문의 답을 분석한 결과 3가지 유형의 서사를 발견했다.

첫 번째는 상승형 서사(Ascending)다. 상승형 서사는 ‘과거에는 가난하고 힘들었으나 노력 끝에 성공하여 지금 이렇게 잘살게 되었다’와 같은 스토리다. 이런 경우는 아이에게 책임감과 함께 나도 성공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긍정적 요인과 실패에 대한 압박감을 준다는 부정적 요인이 공존했다.

두 번째는 반대의 경우인 하강형 서사(Descending)로, ‘예전에는 잘나갔으나 이런저런 원인으로 어느 순간 이렇게 몰락하게 되었다’는 스토리다. 이 경우 아이에게 무력감이나 원망, 패배주의를 심어줄 수 있어 심리적으로 가장 취약한 유형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진동형 서사(Oscillating Narrative)다. ‘좋은 일(성공)과 나쁜 일(실패, 비극)이 반복되었지만, 결국 우리 가족은 함께 힘을 합쳐 이겨냈다’라는 스토리로, 그 오르막과 내리막의 진동을 알게 된 아이들은 심리적 강인함을 보였다.

‘사업이 대박 나기도, 큰불로 인해 집을 잃기도, 실직을 겪기도 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가족은 똘똘 뭉쳐 이겨낼 수 있었다’와 같이 진동형 서사가 강한 가족 스토리를 알고 있던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행복감이 가장 높았다. 부모와 가족들이 자주 대화하며 전달된 풍부한 가족의 역사는 아이의 뇌에서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언어 인지 능력과 사회성을 발달시키는 최고의 학습 도구로 작용한 것이다. 실제로 연구가 진행되는 기간에 발생한 9·11 테러라는 거대한 충격 앞에서도, 여러 세대를 거치며 가족이 겪은 근현대사와 가족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훨씬 더 잘 극복하고 빠르게 일상으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위기를 맞닥뜨렸을 때 ‘나 혼자 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느끼면 쉽게 고립감과 무력감에 빠진다. 하지만 진동형 서사를 들으며 자란 경우 혼자가 아니라 안전하고 단단한 무언가, 즉 가족 시스템에 소속돼 있다는 상호세대적 자아(Intergenerational Self)가 생겨 안정감을 갖게 된다. 하강형 서사는 세상의 위험을 과장하고, 상승형 서사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압박을 주는 반면, 진동형 서사는 인생은 원래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일어나는 굴곡이라는 삶의 본질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인지적 재구성이 일어나 특히 스트레스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면서 대처하는 힘을 제공한다.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즉 통제감을 키워갈 수 있게 된다. 가족의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들어온 경우 이런 대리 통제감이 내재화돼 힘든 상황을 피하지 않고 극복하는 단단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대단한 재력가이거나 권력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서사가 아니다. 한 시대를 살며 겪은 소소한 이야기들, 그 순간들을 어떻게 넘겨왔고 지금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이라면 충분하다. ‘돈이 없어 온 가족이 밤마다 모여서 부업을 했대’ ‘슬플 땐 다 같이 등산을 했대’와 같은 구체적인 극복 서사가 뇌 속에 위기 대응 매뉴얼인 인지스크립트를 형성하여 실제로 위기가 닥쳤을 때 당황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한다.

부모가 실패했던 경험, 힘들었던 경험 자체를 숨기거나 미화하려 들지 말고, 그 과정과 그 감정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달함과 동시에 그 고통에서 어떻게 뚫고 나왔는지가 담긴 스토리. 대단한 무용담이 아니어도 된다. 살다 보면 힘든 일도 있고 헤쳐 나갈 힘도 생길 거라는 것, 인생의 진동에 흔들리지 않을 힘을 키워 줄 그 스토리가 어쩌면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크고 위대한 유산일 수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빛명상

슬픔을 넘어 행복으로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전북 익산에 사는 최은영입니다. 선생님의 따스한 배려로 아바지의 장례는 무사히 치렀습니다.

 

곧장 찾아뵙거나 편지를 드렸어야 옳은데, 장례를 마치고도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아 이제야 편지로 인사를 대신 드림을 용서하십시오.

 

돌아가신 아버지를 비롯하여 저희 가족들이 선생님께 입은 은혜를 어떻게 말로 다 갚겠습니까? 하지만 막상 찾아뵙고 길게 말씀드리기가 더욱 송구스러워 이렇게 편지를 올립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선생님을 찾으셨습니다. 물론 저희 아버지께서 선생님께 임종을 봐 달라는 뜻에서 그러셨던 것이 아니란 것은 선생님께서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다만 6개월의 생명 연장으로 인해 이 세상 왔다가 아쉬움만 가득 남기고 떠나는 발걸음 가벼웁도록 선생님께서 도와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광력봉을 가슴에 품고 조용히 선생님의 이름을 되뇌이셨습니다. 아버지께나 저희 가족들에게 준비하라시던 고통의 이틀여 동안에도 아버지께서는 오로지 선생님의 저서와 광력봉을 안으신 채 광력수 만을 마시며 고통을 이겨내셨습니다.

 

“회장님, 이제 제가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부디 만인을 위해 건강하시고 행복을 주십시오…….”

 

임종 직전, 아버지께서는 또렷한 음성으로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평온한 얼구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그 얼굴이 너무도 평화로워 저희는 마치 아버지께서 그냥 단잠에 빠져드신 것이 아닐까, 한동안 숨죽여 아버지만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아셨겠지만, 사실 저희 아버지를 선생님께 모시고 갈 때에는 병원에서도 한 달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상태였습니다. 당뇨는 합병증이 가장 무서운데, 당뇨 합병증에 만성 신부전증으로 통증의 고통과 거듭되는 혼수상태 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태셨죠. 하루가 멀다하고 저희는 혹시 오늘이 아버지의 임종이 아닐까 초조한 나날을 보내던 터였습니다.

 

 

“아버지, 제가 서점에 갔다가 이 책을 샀어요. 읽어 보니 아버지께 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오빠가 어느 날 <행복을 주는 남자>라는 책을 들고 와 병석의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대학에서 강의도 하셨고, 책을 유난히 좋아하셨던 아버지이기는 했지만 온몸이 고통으로 찌들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태에서 오빠의 행동은 가족들에게 뜻밖의 행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 상태에서 아버지한테 책을 읽으시라는 거야? 정신 나갔어?”

 

나는 오빠에게서 책을 빼앗으려 하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거의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아버지의 손이 조금씩 책을 가리키면서 달라는 듯 보였습니다. 오빠가 아벚의 가슴에 선생님의 책을 올려놓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서는 한숨을 ‘휴우’ 하고 내쉬셨습니다. 혼수상태에서 빠져나와 나아지는 듯했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믿을 수 없는 그 광경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더욱 놀란 사람들은 바로 병원의사들이었지요. 그날 밤부터 아버지께서는 선생님의 책을 읽고 계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평온한 얼굴로 말입니다.

 

“내가, 이 선생님을 찾아가야겠다. 살고자 해서가 아니라 죽기 전에 꼭 얼굴을 직접 뵙고 싶구나…….”

 

그동안 저희 가족들도 선생님의 저서를 일었던 터라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에 선생님과 한 번이라도 만나게 해 드려야겠다는 데 의견이 모아져 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본인께서 현대 과학을 하셨던 분인 데다가 생전에 가장 경시하시던 것이 바로 미신이며 초능력 같은 것들이었기에 쉽게 말씀을 못 드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어떻게 틈을 보고 있던 저희 가족들에게 아버지의 그 말씀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실 걱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툭 하면 혼수상태에 빠지고 온종일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아버지를 선생님께서 계신 대구까지 모시고 가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들의 이런 걱정과는 달리 아버지께서는 차 안에서도 선생님의 저서를 가슴에 안은 채 평온하게 먼 길 여행을 즐기셨습니다.

 

“참으로 신비하고 고마운 일이다. 내가 사실 회장님을 만나기 전에는 통증이 심했지. 숨고 쉬기 거북했고……. 말을 하면 가던 길을 되돌릴까 싶어 오로지 책을 쥐고 간절히 빌었다. 정광호 회장님의 얼굴을 한 번만 보게 해 달라고……. 그런데 초광력을 받을 때 갑자기 머리 정수리에서부터 뭔가 따스한 기운이 내 몸을 관통하며 지나가더라. 그 열기가 지나는 자리에는 다시 알 수 없는 온기가 퍼지면서 그렇게 아픈던 고통이 씻은 듯 사라지는 게야……. 마치 새 생명을 얻은 듯하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 자리에서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 오빠와 제가 초광력을 받으면서 겪은 신비한 일은 참으로 평생을 두고 잊히지 않을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초광력을 받는 동안 어머니께서는 자꾸만 허리가 주저앉을 듯이 툭툭 꺾이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누군가 벨트로 허리를 감싸는 느낌도 들고요. 도대체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데 왜 당신 허리에 이상이 오나, 그런 생각을 하셨더랍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주 오랫동안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하고 계셨거든요.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어머니께서는 오로지 아버지께서 나아진 일에 감사하고 신기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이틀이 지나 어머니께서는 저희 남매에게 조심스레 말씁하셨죠.

 

“얘, 나 참 이상한 일이다. 대구에 다녀오고부터 허리에 복대를 하지 않아도 하나도 아프지 않다. 게다가 걸어도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안 아파. 요즘은 그래서 약을 안 먹었는데, 괜찮아. 광력을 받을 때 나는 일구월심 니들 아버지가 고통 없이 돌아가시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왜 내가 복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이거 소문도 낼 수 없어. 말하면 부정타서 금세 다시 허리가 아플까 봐 말이야. 그런데 너무 신기해서 늬들한테만 말하는 거다…….”

 

저희는 어머니의 말씀에 믿겨 지지 않아 그저 놀란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볼 뿐이었습니다. 어머니의 허리는 두 차례 수술에도 좀처럼 낫지 않아 고생을 많이 하셨거든요.

 

“아마 선생님께서 어머니의 허리가 멀쩡해야 아버지 병 수발 잘 드실 거라고 생각하시고 허리부터 고쳐 주셨나 보네요…….”

 

오빠의 말에 어머니와 저는 그럴 수도 있다며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부정 타서 다시 허리가 아프실까 말씀도 못 하시던 어머니께서는 여고 동창이며 아는 친지 분들에게 당신의 허리와 아버님이 나아지신 얘기를 하시느라 자주 전화통을 붙들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걱정처럼 다시 허리가 아파 고통스러운 일은 아직까지도 없었습니다. 다 나은 것이죠.

 

저와 오빠는 광력을 받으면서 겪은 경험이 비슷한데, 오빠의 경우 초광력을 받으면서 자꾸만 가슴에 불을 당기는 뜻한 느낌이 들어 숨을 크게 쉬었다고 합니다. 숨을 크게 쉴 때마다 가슴으로 향기가 가득히 전해졌다는 것이죠. 말이 안 되는 얘기 같지만 코로 느껴지는 향기가 아니라 가슴으로 내장 속까지 구석구석 느껴지는 향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심호흡을 하고, 또 심호흡을 해도 분명 코롤 들어오는 향기가 아닌 가슴으로 전달되는 향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빠는 그 향기가 아버지 몸 속으로 들어가 병든 세포들을 잠시라도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기를 간절히 기도드렸다고 합니다.

 

저는 초광력을 받는 동안 자꾸만 힘겹게 겨우 앉아 계신 아버지께 몸이 쏠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혼자 앉아 계시기도 힘겨운 아버지께 제 몸이 기대어지면 아버지는 그대로 쓰러지실것이 분명한데도 제 몸은 자꾸만 자석에 이끌리듯 아버지께로 이끌려 들고 있었습니다. 온 몸에 힘을 주어 곧추세우려 해도 자꾸만 아버지께 몸이 쏠리는 가운데 갑자기 뭔가 밝은 빛이 눈을 부시게 하는 듯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혹시 우리에게 뭔가 빛을 쏘이고 계신가……. 저도 모르게 살짝 눈을 떴습니다. 선생님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라 저도 모르게 제 눈을 뜨도록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곁에 계신 아버지 손에서 형광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손은 거의 형태도 알아볼 수 없었고 다만 손에서 하얗고 밝은 형광체만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조심스레 눈으로 좇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희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앉아 두 손을 우리 가족 쪽으로 뻗으신 채 묵상을 하시듯 눈을 감고 계셨습니다. 저는 얼른 눈을 감고 간절히 빌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음을 준비할 시간만이라도 연장해 달라고……. 이 신비가 힘이 있다면 부디 아버지께서 당신 스스로 죽음을 준비할 조금의 시간이라도 달라고…….

 

“죽음이 없다면 삶도 의미가 없습니다. 죽음이 삶의 뒤에 버티고 있으니 삶이 지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불사의 욕심은 진정 욕심일 뿐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삶을 하루하루 충실히 살려고 애쓰지 않습니까? 정말 하루하루를 열심히 뻐근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죽음의 시간이 왔을 때 미련 없이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떠나지요. 삶에 대한 미련은 집착에 불과하고 그 집착을 버리면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울 밖에요. 어차피 떠날 길이라면 그 길이 행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주의 마음이 선생께 6개월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선생께 직접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선생께서는 삶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보다는 아직 정리하고 가실 일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일을 마무리하시라는 의미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물론 가족들의 도움도 필요할 테구요……. 아마도 고통은 없으실 겁니다. 우주의 마음 초광력을 믿으신다면요…….”

 

그때 저희 가족들은 선생님의 그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이미 아버지의 생명이 다 꺼졌음을 늘 암시했었고 가족들은 매일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할까 아버지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아버지께 6개월의 시간을 주었다고 말씀하셨으니 속된 저희야 믿어지지 않을 밖에요.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선생님의 말씀을 철썩 같이 믿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어쩌면 아버지의 그 철썩 같은 믿음이 6개월의 시간을 주셨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거, 참. 내가 내 생의 마지막 논문을 정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셨을고…….”

 

우리는 그제야 선생님께서 아버지께 아직 못 다한 일이 있다고 말씀하신 뜻을 알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병석에 눕기 전부터 일생을 바친 학문의 마지막 논문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정년 퇴임을 하시고 명예 교수직으로 계시면서 병세가 악화돼 아버지께서 준비하시던 논문은 서재의 책상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은 지 여러 달이었던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께서는 곧장 서재로 들어가셨습니다. 저희는 그런 아버지를 지켜 보며 금세 다시 드러누우시지는 않을까 며칠 걱정스레 지켜 봐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주 편안하고 오히려 건강한 모습으로 논문을 정리하셨습니다. 오빠와 저는 아버지의 논문을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러면서도 내내 불안했지요. 이 일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으며, 과연 아버지께서는 선생님께서 약속하신 6개월 안에 논문을 마치실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논문이 출간되어 나오던 날,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는 아버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셨습니다. 먼길이라 자주 찾아 뵙지 못하고 주기적으로 전화를 통해 초광력을 받던 아버지는 당장이라도 선생님께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하셨었지요.

 

“회장님이 올 필요 없다고 그러시네……. 그 양반, 약속된 시간이 다 되어 이 늙은이가 보기 싫은 모양이다.”

 

한 켠으로는 서운하시고 한 켠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말투였습니다.

 

“너무 먼길이라 아버지 힘드실까봐 그러시겠죠…….”

 

“아니야, 이제 약속한 시간이 다 됐잖냐…….”

 

약속한 시간……. 우리는 너무도 왕성하게 논문 작업을 하시던 아버지 곁에서 선생님과 약속했던 시간을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그 약속을 잊지 않으셨던 모양이었습니다. 순간 저희는 아버지 입을 통해 흘러나온 ‘약속된 시간’이라는 말에 목이 메였습니다.

 

“며칠 지나면 한 이틀 정도 많이 아프실 거야. 그러면 광력수 드시게하고……. 어머니 놀라지 않게 준비하시게 도와드려…….”

 

뜻하지 않게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광력초와 광력씰, 광력수 등의 소포를 받고 전화를 드리니 선생님께서는 그렇게만 말씀하셨었지요.

 

저희 가족은 그 물건들을 보며 선생님의 따스한 배려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실로 눈물겹도록 감사한 일이었지요.

 

결국 선생님 말씀대로 아버지께서는 한 이틀 앓으시며 광력수만을 드시다가 평온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영정 앞에 광력초를 피우니 방 안이 알 수 없는 향기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3일장을 치르는 내내 우리 가족들은 물론 빈소를 찾는 사람들의 손바닥에 금분이 솟았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이, 우주의 마음이 저희 가족과 함께 했던 것입니다. 저희는 아버지를 잃는 슬픔을 안에서 또 다른 의미의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모두 선생님과 우주의 마음 덕분이지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 길고 긴 편지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저는 요즘 가끔 쓸데없는 생각의 고리를 만들곤 합니다. 만일 오빠가 선생님의 저서를 사오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 저서를 아버지께서 맏지 않으셨더라면……. 아니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으셨더라면……. 아니, 아니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희 온 가족 선생님 덕분에 슬픔을 넘어 행복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은혜를 입으신 분이 바로 아버지시죠. 이제 아버지의 논문은 후학들에게 전해져 그들의 또 다른 연구에 도움을 주겠지요. 아마도 그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죽음의 목전에서 우주의 빛을 받아 완성된 엄청난 은혜의 논문이 바로 그 논문임을 말입니다.

 

하지만 상관 없습니다. 다만 저희 가족들은 죽을 때까지 선생님과 우주의 마음의 사랑을 잊을 수 없으며, 슬픔도 행복으로 승화되는 초광력에, 그리고 사랑과 행복을 행하시는 선생님께 평생 감사를 드리며 살겠습니다.

 

익산에서 최은영 올림

 

진정 자유로이 떠나기

 

 

은영씨, 어머님과 오빠에게서 이미 전화를 받았지만 은영씨의 친필로 보내준 편지를 받으니 더욱 기쁩니다. 우주의 빛이 언제나 은영씨 가족에 충만할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아버님의 장레를 무사히 마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물론 향기와 금분에 대한 얘기도 들었지요. 저도 은영씨 아버님의 장례를 치르던 3일 동안 밤마다 맑은 마음으로 명상을 했습니다. 아버님은 아주 좋은 곳으로 가볍게 떠나셨습니다.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으니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평안히 가신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사실 죽음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삶의 명제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죽음이 두려운 것은 전혀 예고편을 하지 않고 상영된다는 사실 때문일 겁니다. 우스운 말로 내용도 모르고 언제 개봉할지도 모른 채 무방비 상태에서 당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를 죽음 앞에 언제나 두려울 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너무 뻔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속된 말로 ‘태어남에는 순서가 있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고들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매일매일 죽음에 대비하는 삶을 사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죽음을 맞고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겠지요.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명제 중 하나라면 죽음인들 아름답고 행복하게 맞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타마 붓다도 임종의 자리에 이르러서는 ‘생은 덧없으니 부지런히 자신을 점검하라’ 고 했으며 금세기의 성자로 알려진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도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자.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병에 찌들대로 찌든 아버님을 처음 뵈었을 때, 아버님은 이미 그 날이 마지막이어도 결코 집착이나 미련 따위로 떠나는 길을 오열과 슬픔으로 만드실 분이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그분이 맺지 못한 논문은 그분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모든 후학들에게 나아가 국가나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기에 우주의 마음이 6개월이라는 시간을 연장해 준 것입니다. 나 자신도 우주의 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전화를 걸어,

 

“이제야 진정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

고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다시 한번 내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과연 나는 그 순간에 ‘자유롭게 떠나노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았는가? 내일 죽음이 와도 자유와 행복으로 충만해 길을 떠날 수 있겠는가?

 

은영씨의 아버지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머무름과 떠남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면서 살았던 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떠남을 진정한 자유라고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삶에 머무르고 있을 때에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떠날 때에는 과연 어떤 얼굴로 떠나야 하는가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은영씨의 아버님은 이제 진정 자유로운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가족들 모두 떠남과 부재에 대한 허전함으로 슬픔만 가지지 마시고 편지에 쓰신 대로 자유로이 떠나신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슬픔을 뛰어넘어 행복과 기쁨으로 이겨내길 바랍니다.

 

좋은 날, 정광호 드림

 

출처 :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2000.07.07. 초판 P. 18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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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스트
  • 작성자신동건 | 작성시간 26.06.23 new 귀한 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신연걸(풍요18기) | 작성시간 26.06.23 new 귀한 빛 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운서(풍요14기) | 작성시간 26.06.23 new 빛과 함께 살아갈수있어 진심으로 감사마음 올립니다 ...(())...
  • 작성자프랑스 김지연 | 작성시간 26.06.23 new <슬픔을 넘어 행복으로>
    저를 돌아보게 하는 귀한 편지, 빛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이나경41 | 작성시간 2시간 4분 전 new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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