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하세요”』
‘확인하세요’ 메시지가 와있다. 광고 문구인 줄 알고 엉겁결에 읽었다. 살다 보면 칼날보다 날카로운 말 한마디가 심장에 와 박히는 순간이 있다. 내게는 휴대전화 액정 위로 툭 떨어진 다섯 글자, ‘확인하세요’가 그랬다. 어른한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점잖은 부탁도 아니고,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춘 고지도 아니었다. 마치 아랫사람을 다그치거나, 비겁하게 이긴 장수의 야비한 웃음과 서늘함이 깃든 말 같았다. 심장이 녹슨 칼날에 베인 듯 속이 메스꺼웠다. 모멸감인지 우울감인지, 딱 잘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한꺼번에 아찔하게 몰려왔다.
3년 전, 상가주택 지하를 한 청년에게 임대했다.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30만 원. 당시 그의 이모가 수개월째 임대료를 밀리고 있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조카라는 그 청년이 이어받아 임차하겠다고 했을 때, 부동산 중개수수료라도 아껴주고 싶은 순수한 배려로 중개인 없이 직접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 도중 해약하면 이모가 수수료를 모두 부담해야 했기에, 공인중개사를 통했을 때 썼던 문구 그대로 당사자 간 수기로 쓰고 다시 깨끗하게 타이핑하여 서로 도장을 찍었다. 오직 선의뿐인 계약이었다.
지하 공간은 특성상 외부 창문 아래의 하수구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전 임차인들이 늘 그래왔듯 주변 하수구 청소는 임차인이 관리하기로 구두로 약속했다. 청년 역시 기꺼이 그러겠노라 답했고, 지내는 동안에도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방수업체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하를 임차해서 무인 공간 대여 사업을 하겠다는 스물아홉의 청년. 당시 스물여섯이던 그 청춘의 말을 올곧게 믿었던 우리 부부가 바보였다.
2024년 7월, 하늘이 뚫린 듯 폭우가 쏟아진 날 사건이 터졌다. 지하가 물바다가 된 것이다. 여러 방수업체를 대동해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처음에는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이 건물에서 수년간 체육관을 운영했던 이전 세입자는 "아무리 큰비가 와도 누수 한번 없었다"라며 힘이 되어주는 확인서까지 써줄 만큼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며칠을 씨름한 끝에 찾아낸 원인은 허탈하고도 분통 터지는 것이었다. 문제는 바로 외부 창문 아래의 하수구였다. 청년이 실내장식을 한다고 벽면을 합판으로 꽉 막아버린 탓에, 물이 창문 틈새로 들어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누구도 쉽게 알아채지 못했다. 임차인이 관리하겠다던 하수구가 나뭇잎과 이물질로 꽉 막혀, 넘친 빗물이 창문 틈을 타고 안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었다. 이물질로 하수구 구멍을 막고 직접 물을 붓는 실험을 하며 청년에게 눈으로 확인까지 시켜주었다. 그러나 다음 날 돌아온 것은 미안하다는 사과가 아니었다. 기다렸다는 듯 내용증명이 등기우편으로 배달됐다. 침수 손해배상 요구였다. 처음에는 2천만 원을 요구하더니 영업 손실이라며 4천만 원, 결국에는 8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요구하며 언제까지 입금하지 않으면 소송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제 겨우 스물여섯인 어린 사람이 설마 소송을? 육십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송사였다. 손해배상의 이유는 ‘임대인이 임차 공간을 사용할 수 없게끔 관리를 소홀히 하여 재산상 손해와 정신적 피해를 주었다’는 것이었다.
"마음고생 많겠습니다. 계약서에 문구 한 줄만 섰어도 이런 일은 당하지 않으셨을 텐데……." 첫 재판에서 원고가 오기 전 판사가 던진 그 한마디가 희망 같기도 하고, 임차인 보호가 우선이라 어쩔 수 없다는 얄미운 위로 같기도 했다. 맞다. 법은 '임차인의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 소홀'보다, 법적 약자라는 임차인의 프레임을 먼저 보호해 주었다. 조정과 항소를 거쳐 최종적으로 내가 그 청년에게 보상해야 할 금액은 3천 7백만 원. 한 달 임대료가 30만 원이었는데 말이다.
그 판결문 계산서를 보내며 청년이 보낸 첫마디가 바로 ‘확인하세요’였다. 육십 중반이 되도록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크고 작은 풍파를 겪었지만 이렇게 비위가 상하는 일은 없었다. 돈이 무섭거나 아까운 게 아니었다. 그저 인간에 대해 비위가 상했고, 우울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돈을 송금하고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는커녕, "확인 부탁드립니다"라는 최소한의 존칭조차 생략된 글자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환멸을 느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천 냥 고지서를 내미는 태도에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단 말인가. 내 과분한 배려를 받아놓고도 침묵하는 그의 이모와 그 부모는 도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아왔기에, 자식을 저토록 영악한 괴물로 키워냈는지 서글픈 의문이 공허하게 맴돌았다.
원고인 청년은 입금 시한을 분 단위까지 적어 보냈다. 그 시한을 넘기면 재산 압류니 강제집행이니 하는 협박성 문구들이 허공을 서늘하게 맴돌았다. 다시 열어 읽고 정확하게 알아야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변호사에게 날짜와 금액을 확인받아 기한일, 기한 시각에 정확히 입금해 줄 것이다. 내 손가락을 거치는 온라인 송금 대신, 은행 창구에 가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입금표를 작성해 내밀 생각이다. 한순간도 괴물 같은 존재와 어떤 식으로든 직접 엮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메시지 외에 카카오톡에도 ‘확인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숫자 ‘6’이 떠 있다. 여섯 번을 연거푸 보낸 것이다. 나는 읽지 않았다. 마음을 달래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아직 송금하지 않았다. 사람인가 괴물인가 싶은 그 녀석이 정한 마지막 날 3시, 나는 6월 12일 오후 2시 59분. 정확히 그 시각에 돈을 입금한 뒤 그의 존재를 내 인생에서 영원히 차단해 버릴 것이다.
그 마지막 1분이라는 시간 동안, 영악한 청년이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어쩌면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한 그 청년은 내가 던지는 이 무언의 침묵을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것은 내가 이 불공평한 세상과 못된 청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고고한 저항이자, 어른으로서 베푸는 마지막 예의이다.
뻔히 보이는 진실을 외면하는 법 앞에서 나는 무력했고, 내가 베푼 선의는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문득 나는 인공지능 ‘재미나이’에게 물었다. ‘로스쿨 입학 방법’을. 법 없이도 잘 살 줄 알았는데...... 나를 그리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법이라는 방패가 필요했다.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 나를 지키고, 나와 같은 선량한 사람들을 지켜내고 싶다.
개인적인 송사로 치부하기엔 내게 남은 상처가 너무 크고 깊다. 세상에 묻고 싶다. 만약 당신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법치주의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그날의 송사가 남긴 상처 때문일까? 창밖으로 흐르는 빗소리는 이제 그 고통스러웠던 법정의 기억을 몰고 와 나를 다시금 무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당장은 법이 그의 손을 들어주었을지언정 타인의 가슴에 구멍을 내고 가져간 그 돈이 결코 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 못하리라는 것을. 세상의 보이지 않는 엄중한 법칙이 그 청년에게 언젠가 똑같은 무게의 통지서를 보낼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때 나도, 세상도 그에게 똑같이 이 한마디를 건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