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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D 원산위정철 칼럼

기록보완(記錄補完)과 제향의례(祭享儀禮)

작성자위윤기|작성시간21.04.12|조회수1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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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보완(記錄補完)과 제향의례(祭享儀禮)

1. 유고(遺稿) 저자의 왜곡(歪曲)과 누락(漏落)

기묘대동보 지장록(誌狀錄)은 119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선조(先祖) 관련 기록을 싣고 있다. 역대 족보에 비해 매우 바람직한 기획(企劃)으로 평가되고 있다. 후손들은 선조들의 유고를 통해 귀중한 당시의 역사사실을 되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왕에 선대의 유고를 정리해서 집대성(集大成)한 책이라면 좀 더 면밀한 검토를 거쳤어야 했다. 그러기에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작품이라는 혹평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부터 그런 평가를 받는 이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1) 금당별곡(金塘別曲)
지장록에는 가사문학 작품인「금당별곡」을「삼족당금당별곡(三足堂金塘別曲)」(p.1163)으로 게재하고 있다. 작품의 저자가 삼족당이다. 그러나 저자는 삼족당이 아니라 수우옹(守愚翁) 휘 세직(世稷, 1655~1721)이다. 금당별곡이 수우옹의 작품으로 판명된 것은 기묘대동보(1999)가 발행되기 32년 전인 1967년 조선대 이종출(李鐘出) 교수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삼족당유고집」에서「차삼종형수우옹금당운(次三從兄守愚翁金塘韻)」을 발견하고 저자가 삼족당이 아니라 수우옹임을 밝혀 한국문학 제34․5호 합병호에 관련논문을 실었다.
문제는 1972년의 임자보(壬子譜)나 1999년의 기묘대동보(己卯大同譜)가 모두 금당별곡의 저자가 판명된 이후로 발행됐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그 방면에 문외한(門外漢)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백보를 양보한다 해도 삼족당 유고집을 한번만 보았다면 그가 금당곡을 차운(次韻)해서 3수(首)의 한시를 지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수수하게「금당별곡」이라 기록했으면 했을 터인데「삼족당금당별곡(三足堂金塘別曲)」이란 제목을 뽑아 게재한 것은 매우 의아스럽다. 이를 어찌 단순한 실수라고 하겠는가?

2) 선대유고누락(先代遺稿漏落)
보통 문중에서 발행한 서적을 보면 선대순(先代順)으로 쓰여 있음을 본다. 그러나 우리 지장록은 다르다. 가령 존재공(存齋公)의 상소문(上疏文)을 게재하려면 그보다 훨씬 이전의 어른이신 원감국사께서 원나라 세조(世祖)에게 올린「상대원황제표문(上大元皇帝表文)」이나 간암공(艮庵公)이 1734년에 영조(英祖)에게 올린 상소문을 함께 싣는 것이 순서이다. 그럼에도 웃어른의 작품은 실리지 않았다.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에 대해 당시 족보편집진은 문건(文件)을 입수하지 못해 그랬다고 할 것인가?
만일 문건을 입수하지 못해서 그랬다면 말이 안 된다. 간암공의 유고집은 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웬만한 종씨들은 문제의 문집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감국사의 게송(偈頌)과 잡저(雜著)의 유고집인「원감국사집(圓鑑國師集)」은 1988년 중앙대 진성규(秦成圭)교수가 번역해서 출판해 여러 종인들이 가지고 있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유고집을 찾아보지도 않고 족보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처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3) 원칙(原則)없는 지장록(誌狀錄) 게재순서(揭載順序)
지장록과 관련해서 또 하나의 모호한 점은 게재의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전국의 종원들이 일정한 수단을 내서 만들어진 족보라면 면주(面註)의 기준을 정하듯 지장록에도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지장록을 보면 그런 원칙과 기준을 찾아볼 수 없다. 후손들에게 꼭 읽을 가치가 있고, 길이 보존해야할 역사사실 등이 게재돼야 하는데 일부 선조의 개인행장과 묘갈명을 넣어 책을 만들었다. 물론 그 책에 들어간 조상의 후손 입장에서는 가치 있는 사연일 수 있다.
그러나 생졸년도 모른 조상을 둔 후손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라. 돈은 자신들이 내고 몇 선조의 후손이 광(光)낸다고 하지 않겠는가? 사리가 이러하다면 누가 봐도 합리적인 방안을 사전에 마련했어야 했다. 어찌 보면 문중의 족보가 아니라 마치 개인의 유고집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만들어진 책을 지금 와서 어찌할 수 없다. 다시 종이 족보를 만들기도 어렵다. 그러면 향후 전자족보(CD)를 만들 때라도 그 기준은 제시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몇 가지 방안을 밝혀본다.

(1) 공적(公的)인 저술(著述) 우선원칙(優先原則)
첫째, 원감국사나 간암공 등의 선조들이 원나라 황제나 왕에게 올린 청전표나 상소문이 우선적으로 게재돼야 한다. 그리고 한시(漢詩)와 가사(歌辭) 등 순수문학작품, 기타 문중을 위하거나 공공성이 있는 작품을 실어야 한다. 물론 선조들의 공적인 활동인 충의록도 보충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다듬어서 실어야 한다. 그러나 내용이 없거나 과대 포장된 인물의 충의록은 제외시켜야 한다. 유적 가운데 교지(敎旨)나 외국에서 받은 동산(動産) 등도 새로 실어야 한다.

(2) 제외(除外)시킬 유고(遺稿)
현재 지장록에 실려있는 개인의 묘갈명(墓碣銘)과 행장(行狀)은 일률적으로 재단할 수 없지만 더 이상 문중의 지장록 같은 서책에 실어서는 안 된다. 이들 문건은 후손들이 간직할 부분이지 전체문중차원에서 보존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조들의 유고전체를 문중이 보존하는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유고 중 문중을 위한 부분은 연구하고 보존하는 대책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학자들이 선조의 사상 등을 연구한 논문과 책을 수집 보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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