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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D 원산위정철 칼럼

4) 순서(順序) 뒤바뀐 족보서문(族譜序文)

작성자위윤기|작성시간21.04.12|조회수22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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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순서(順序) 뒤바뀐 족보서문(族譜序文)
기묘대동보에는 역대 남북 족보의 서문을 싣고 있다. 1999년 발행된 대동보의 서문은 외부 찬술자인 이가원교수의 서문과 도유사 춘사공의 서문은 1권에 실었다. 나머지 1759년에 발행된 기묘보의 영이재공의 서문, 관북 초보격인 기사보(1689)의 승지공(承旨公) 등이다. 그런데 편집자의 착오인지는 몰라도 발행된 연대(年代)대로 배열되어 있지 않다. 가령 관북 정해보는 1767년에 발행됐는데 1824년에 발행된 갑신보가 앞에 있어 후손으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그리고 관북보의 여러 서문은 족보발행 연도나 장흥을 다녀간 관북종인의 왕래일정 등이 일관성이 없다. 어느 서문은 정진공(挺振公)이 1764년 갑신(甲申), 1800년설, 창빈공(昌彬公)이 1767년 정해(丁亥)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어떤 서문은 합보를 위한 관북종원의 남행(南行)을 1704년의 갑신(甲申)과 1754년 갑술(甲戌)로 기록하고 있어 무엇이 진짜인지 헷갈린다. 이런 결과가 번역의 잘못인지 아니면 편집의 잘못인지 알 수 없다.
문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책인 족보의 서문을 이 정도로 처리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남북의 족보서문을 전면 재정리해야 한다. 우선 원문(原文)과 번역문(飜譯文)을 대조해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번역도 현대적인 문체로 다듬어 어떤 후손도 알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배열도 발행연도(發行年度)대로 일목요연하게 편집해야 한다. 지극히 기초적인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대동보를 만들었다고 세상에 내놓은 일은 반복되지 않아야 된다.

5) 선조향사(先祖享祀)의 차별문제(差別問題)

(1) 제사(祭祀) 및 시제(時祭)와 효친(孝親)
국가와 민족마다 미풍양속(美風良俗)이 있기 마련이다. 지구상에 풍속이 없는 나라와 민족은 없을 것이다. 그 미풍양속은 그 나라 그 민족의 정체성(正體性)을 대변한다. 양속은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할 정도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적게는 수 백 년 아니면 길게는 수 천 년의 세월을 거쳐서 비로소 자리를 잡은 풍속일 것이다. 그래서 나라와 민족마다 서로 다른 민속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고유의 미풍양속이 없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민족을 대표 할만 미풍은 과연 무엇인가. 물론 곰곰이 따져보면 여러 가지의 장점을 내세울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자랑거리는 역시 전통적인 효친사상(孝親思想)이라고 할 것이다. 미풍이 날이 갈수록 퇴색하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우리의 효친사상을 으뜸 양속으로 치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의 효친사상은 어버이를 섬기는 사상이다.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어버이가 이승에 계실 때나 저승에 가셨어도 정성을 다해 섬기는 사상이다. 자식들이 부모를 봉양하고, 시묘(侍墓) 살이를 했던 전통도 효친사상에서 비롯된 풍속이리라. 따라서 제사나 시제는 어버이 곧 자신의 조상을 기리며 섬기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효친사상을 부정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2) 합제(合祭)와 단소제향(壇所祭享)의 증가추세(增加趨勢)
세상엔 변하지 않는 게 없다. 제사나 시제도 예외는 아니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하면 영영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법과 제도 또한 바뀌는 게 역사요 세상이다. 비근한 예로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상을 보자. 해방 전후만 하더라도 감히 남녀평등(男女平等)이란 말을 액면대로 믿는 사람은 있었는가?
그러나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하고 있다. 남녀평등은 여자와 남자가 겸상을 하는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여성 상위시대란 말이 유행되기도 했으니 조선시대를 사셨던 어른들께서 보고 들으시면 자다가도 깜짝 놀라시지 않겠는가. 남녀평등만 아니라 그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선 명절의 세시풍속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자. 설이나 추석이면 서울 등 객지에서 살던 자식들이 천리 길을 마다 않고 고향을 찾았다. 지금도 어버이를 섬기려는 전통은 꿋꿋하게 내려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부모가 서울을 찾아가는 역귀향(逆歸鄕)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제사와 시제의 풍속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4대 봉사라 하여 한 집에서 여러 위(位)의 제사를 기일에 맞춰 꼬박꼬박 지낸 게 관례였다. 그런데 근래 들어 번거롭다는 이유로 제사를 합해서 한 날 지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시제도 여기 저기 떨어져 있는 묘지에서 지냈으나 한 장소에 설단해서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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