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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방비의 符籍(부적)을 조각해 놓은 醴泉龍門寺(예천용문사) 大藏殿(대장전)

작성자法故創新|작성시간26.01.12|조회수88 목록 댓글 0

火災防備(화재방비)의 符籍(부적)을 彫刻(조각)해 놓은

醴泉龍門寺(예천용문사) 大藏殿(대장전)

醴泉龍門寺(예천용문사) 復元佛事(복원불사) 溯考(소고) -

 

 

龍門寺는 경상북도 醴泉에서 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小白山기슭(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391번지)에 위치하는 寺刹, 이 고장 출신의 杜雲대사가 신라 景文王 10(870)에 창건한 千二百年 古刹이다. 용문사는 고려 태조가 삼한 통일을 위하여 杜雲대사를 방문코자 동구에 이르니 이 나타나 引導하였다 하여 절의 이름을 龍門寺라 일컬었다고 한다.

 

이 절에는 보물 제145호인 龍門寺大藏殿(용문사대장전)을 비롯한 寶物 8점인 제684龍門寺輪藏臺(용문사윤장대), 729龍門寺敎旨(용문사교지), 989龍門寺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용문사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1330龍門寺八相幀(용문사팔상탱), 1445龍門寺靈山會掛佛幀(용문사영산회괘불탱), 1637木造阿彌陀如來坐像(목조아미타여래좌상), 1644龍門寺千佛圖(용문사천불도)文化財資料(문화재자료) 169龍門寺慈雲樓(용문사자운루), 聖寶遺物館(성보박물관) 등 많은 文化財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스님들의 敎育場嶺南第一講院(영남제일강원)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僧兵(승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이곳에서 짚신을 만들어 조달한 신발방(자운루 대들보에는 당시 짚신을 삼던 삼 줄에 패인 자국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의 기능을 수행한 護國(호국)場所(도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유서 깊은 사찰이 하루아침에 화재로, 그것도 불과 두어 시간 만에 사찰 건물 7동이 全燒(전소)해 버린 慘禍가 발생한 것은 198458일 부처님오신날 아침이었다.

 

최초 불은 전날 燃燈行事(연등행사)후 일부 회수한 연등을 海雲樓(해운루) 지하 창고에 보관하던 중 아침공양을 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간 사이 해운루에서 발생한 것으로 사람들이 불길을 발견했을 때는 해운루가 벌겋게 불이 붙은 뒤라 初動鎭火(초동진화)에 실패했다고 한다. 燃燈(연등)종이에서 불이 붙었다면, 흙 한 덩어리 없는 수백 년 건조된 목조건물인 해운루에 거침없이 불이 붙었고 그 구조상 초기 진화에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燃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양초를 뽑고, 촛불을 꺼야 했지만, 누군가의 不注意(부주의)가 설명할 수도 없는 큰 災殃(재앙)을 가져온 것이었다.

 

海雲樓(해운루)에서 시작된 불길은 동쪽으로 嶺南第一講院(영남제일강원)倉庫(창고). 서쪽으로 宗務所(종무소)와 그위 普光明殿(보광명전), 凝香閣(응향각), 丹霞閣(단하각)으로 순식간에 번지고 말았다. 불길이 이처럼 거침없었던 것은 건물과 건물 사이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一觸卽發(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장전(보물 제145)을 지키기 위해 주지 스님과 용문면장 지휘 아래 소방대원들이 普光明殿(보광명전)의 불길이 凝香閣까지 한꺼번에 솟구치는 가운데에서도 大藏殿으로 옮겨붙는 것을 遮斷(차단)하기 위해서 大藏殿 사이에 있는 丹霞閣撤去(철거)하였다. 만약의 경우 大藏殿안의 輪藏臺(윤장대) 하나라도 保存하기 위해서 大藏殿 동쪽 문설주를 뜯고 輪藏臺를 뽑아내려고 하였으나 윤장대를 훼손하지 않고는 뽑을 방도가 없었다.

 

輪藏臺(윤장대)를 뽑아내는 것이 불가하자 최후로 大藏殿을 지켜내기 위하여 인력과 소방장비를 총동원하여 大藏殿의 서쪽벽에 물을 집중적으로 쏟아 부어보지만, 普光明殿(보광명전)이 불타면서 뿜는 열기에 불고기를 구울 때 고기에서 기름이 나오는 것처럼 수 백 년 동안 바짝 건조된 大藏殿 기둥과 지붕처마를 받친 拱包(공포)에서 송진이 줄줄 흘러내려 금방이라도 불이 옮겨 붙을 것 같은 危機(위기)의 순간이 수 없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모두가 합심하여 진화작업에 死力(사력)을 다한 결과 용문사 大藏殿大慘禍(대참화)에서 지켜낼 수 있었다.

 

復元佛事 과정에서 龍門寺를 찾은 文化財專門委員들이 大藏殿에는 拱包(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多包양식인데 건물의 모서리 부분 머리 외에 동쪽에는 연꽃 봉오리와 연잎 밑에 물고기 머리를, 서쪽에는 연꽃 봉오리와 연잎을 아주 精巧(정교)하게 彫刻(조각)해 놓았고 뒷면에는 동쪽 모서리에 물고기 한 마리가 거꾸로 조각되어 있다. 이것이󰡐불이 나지 않도록 防備(방비)하는 符籍(부적)󰡑이라고 하면서 󰡐龍門寺 大藏殿符籍彫刻해 놓은 國內唯一建築物󰡑이라는 것이었다.

 

비록 이 火魔(화마)普光明殿嶺南第一講院 7동의 건물을 瞬息間(순식간)에 삼켜 버렸지만 남아있는 大藏殿이 과연 符籍(부적) 때문에 火魔를 피할 수 있었을까만, 대장전을 비롯한 수많은 文化財를 모두 安全하게 保全할 수 있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열악한 消防環境(소방환경)에서 渾然一體(혼연일체)가 되어 진화작업을 수행하신 모든 분께 힘찬 박수를 보낸다.

 

화재 이후, 貧弱(빈약)한 사찰재정 여건에서도 천이백 년 고찰 용문사의 위상에 걸 맞는 신속한 복원을 위해 龍門寺 復元佛事 推進委員會를 구성하고 普光明殿, 極樂寶殿, 嶺南第一講院, 凝香閣, 寮舍, 海雲樓, 梵鐘閣 7동에 대한 설계도를 작성하여 847월 예천군과 경북도를 경유하여 文化財管理局(현재 文化財廳)에 용문사복원공사 허가신청서를 제출하였다. 住持(주지) 道覺(도각)스님이 문화재 관리국에 직접 올라가서 수시 협의하고 문화재관리국 담당관과 문화재 전문위원들이 몇 차례 현지를 調査 確認하였으나 許可遲延(지연)되고 있었다.

 

용문사에서는 1985釋迦誕辰日(석가탄신일)을 앞두고 건물이 세워지고 복원불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많은 신도들이 복원불사에 참여하고 동참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普光明殿寮舍부터 지을 목표로 보광명전 資材부터 준비하면서 지붕이 頹落(퇴락)하여 쓰러질 위기에 있는 杜雲庵(두운암)을 철거한 목재를 補修(보수)하여 寮舍의 기둥과 석가래 製作을 완료한 상태였다.

 

19852. 내가 醴泉郡廳 文化公報係長으로 보직을 받은 며칠 뒤 龍門寺復元工事 許可가 도착되어 龍門寺에 허가서를 전달하였는데, 허가된 도면을 확인한 道覺스님은 중이 밥을 해 먹어야 부처님을 모시면서 절도 짓고 하지 밥해 먹는 寮舍(요사)를 빼놓고 절을 지으라고 許可해주는 정신 빠진 공무원들이 어디 있느냐大怒(대노)하여 욕을 하는 것이었다. 복원공사신청에 대한 許可가 늦어지고 있어 주지스님과 신도들이 애를 태우며 기다리던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서류로 보내면 시일이 많이 걸리니까 내가 文化財管理局(문화재관리국)에 가서 고쳐오겠다고 하였다.

주지스님은 내가 8개월 동안 그렇게 설명을 하고 다니면서 빨리 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도 이 모양인데 공보계장 당신이 들고 간다고 바로 바꿔 줄 턱도 없고, 寮舍를 빨리 지어야 부처님 오신날 행사에 오신 신도님들 밥을 해먹일 수 있을 터이니 그냥 짓겠다고 하였다.

 

나는 이튿날 바로 용문사 설계도면을 가지고 서울 문화재관리국으로 갔다. 당시 용문사 복원공사를 담당하던 정 담당관을 찾으니 23일간 동원예비군 훈련을 갔다고 한다. 그 때 내 음성이 좀 컸고 또 경상도 특유의 억양이어서 뒷좌석에 있던 한 직원이 나와서 자기는 김 담당관이고 聞慶(문경)이 고향인데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향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기도 하여 인사부터 하고 결재를 맡을 수 있는 그 라인만 안내하여 달라고 했다.

김 담당관의 안내로 먼저 補修係長課長을 차례로 찾아 책상위에 圖面 보따리를 펼쳐놓고, 이번 許可된 도면에 寮舍가 빠졌다.

스님들이 밥을 해먹어야 절도 짓고 부처님도 모실 것 아니냐고 설명하면서, 용문사에서는 普光明殿寮舍부터 지으려고 木材를 다 준비했으니 바로 허가도면에 寮舍를 넣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담당 과장은 이 도면은 문화재 전문위원들이 오랫동안 심의를 해서 건물 間隔(간격)도 당초보다 많이 띠우기로 결정하였고, 文化財審議委員들의 임기가 지난 년 말에 끝났기 때문에 새로 委員委囑(위촉)되었으나, 아직 委員會開催(개최)되지 않은 상태여서 바로 고쳐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文化財 管理局에서 肯定的(긍정적)으로 검토해서 처리해 줄려고 한다면 왜 안되느냐고 하며 개별 건물에 대한 審議(심의)는 끝났으니 배치도면 서쪽에 있는 이 건물을 빼고 寮舍를 넣자고 하였더니, “여기가 어디 당신들 내무부 공무원들 같이 서류를 막 바꿔 넣고 그런 곳 인줄 아느냐?”고 하는 것이다. (내무부는 어디 경우도 없이 서류를 함부로 바꿔치기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아 욕이 목구멍까지 나오는데도 결재를 받아 가야 하였기에 꾹 참았다.)

 

課長(과장)과 함께 企劃管理室長(기획관리실장)을 찾아가서 책상 위에 배치도를 펼쳐놓고 똑같은 설명과 함께 절박한 상황을 이야기하였다.

 

용문사에는 1,500여 명의 열성신도가 있는데 사찰을 찾는 대부분이 여성이고 그중에도 할머니들이다. 施主(시주)도 현금보다는 대다수가 쌀을 들고 오는데 끼니때마다 쌀을 한 주먹씩 따로 덜어내어 施主단지에 모아두었던 것을 절에 가져와서 이 적은 사람은 기와 한 장, 조금 많은 사람은 석가래 한 개, 또 몇 사람이 모아서 기둥 한 개, 이렇게 해서 제일 먼저 普光明殿寮舍木材製作(제작)했고, 다른 건물은 준비하고 있다. 전문위원들이 개별 건물에 대한 심의를 마치고 議決書各自의 의견을 적고 捺印(날인)을 했지만, 설계도면에 間印(간인)은 하지 않았으니 배치도 서편에 있는 이 건물을 빼고 그 자리에 寮舍를 넣고. 배치도와 설계도를 바꿔 넣으면 된다. 지금 요사를 바로 짓도록 해주지 않으면 준비한 기둥과 서까래는 다른 건물에 안 맞으니 이 목재들을 어떻게 할 것이며 施主하신 할머니들이 그냥 가만히 있겠는가? 郡廳에 몰려와서 騷亂(소란)을 부린다면 에서는 文化財 管理局으로 보낼 수밖에 없으니 허가도면에 寮舍를 넣어 달라고 다시 부탁했다.

 

企劃室長은 끝까지 듣고 나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課長에게 배치도를 再作成해서 바꿔 넣고, 寮舍로 바꾸면 면적이 바뀌니 醴泉郡에서는 건축면적을 맞춰서 공문을 다시 만들어 오고, 複數意見(복수의견)으로 결정하는데 내가 내일 일본으로 10일간 출장을 가는데 김 위원에게 室長이 얘기했다고 하고 내가 없어도 意見(의견)을 써서 決裁(결재)해 주라指示(지시)했다. 이렇게 두 시간여 동안 도면 보따리를 책상마다 들고 다니면서 설명을 하여 결국은 도면을 바꾸도록 허락을 받아내었고, 건축 설계사무소에 배치도를 재작성해서 교체하도록 했다.

 

나는 출장목적을 달성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출장에서 돌아온 뒤 변경허가 신청서는 용문사 주지명의로 작성이 되어야 하므로 공문을 작성하여 용문사에 올라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住持 道覺스님이 벌써 대장전 앞마당에 寮舍(요사) 건축공사를 시작해 버렸다. 大藏殿(대장전)慈雲樓(자운루) 사이에 寮舍를 짓기 위해 기둥 밑에 냉장고만한 주춧돌을 받쳐놓고 커다란 기둥과 동바리를 한마당 세워 놓은 것이다.

 

현장 인부들에게 큰소리로 나는 군청 공보계장입니다. 작업을 중지하세요!”라고 하였으나 아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아 다시 큰 소리로 당신들 뭐 하는 거야! 작업 중지 소리가 안 들려?”라고 반말을 하며 다시 한번 크게 작업 중지!”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일꾼들이 웅성웅성하며 작업을 중지하였다.

 

그때 도각 스님이 달려 내려오면서 어떤 놈이 작업을 중지시켜! 작업은 내가 시켰는데 작업을 중지하면 오늘까지 품값은 하나도 못 줘!”하면서 내 등 뒤 허리춤을 잡아들고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다. 나도 키 173, 몸무게 74으로 적은 체구도 아닌데 도각 스님은 체격도 크고 힘이 얼마나 센지 나를 바짝 들고 가는 것이다.

 

나는 우리 직원에게 이런 行悖(행패)가 어디 있나, 빨리 내려가서 面長(면장)支署長(파출소장)을 모시고 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큰소리로 道覺스님에게 당신이 뭔데 나를 이렇게 허리춤을 잡아끌고 오느냐고 하였더니, “住持보고 뭐 당신이라고?” 하며 더 크게 고함 소리를 내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그냥 얼버무리고 수그러들면 마구 쥐어박을 氣勢(기세).

 

그래서 당신이 언제 住持?” 하였더니 住持 신분증을 내보이며 보라고 하였다. [화재가 발생한 이후 曹溪宗(조계종) 總務院(총무원)에서 용문사의 住持는 해임되어 空席(공석)이고 能虛(능허)스님이 財産管理人(재산관리인)으로 된 상태였다].

 

내가 받아들고 이 신분증을 왜 아직까지 들고 다녀요. 총무원에 반납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당신은 住持에서 해임됐고, 能虛스님이 財産管理人입니다!” 하면서 자리에 앉으니, 도각 스님이 좀 수그러지는 것 같았다 당신은 바랑을 짊어지고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고, 나는 늙어서도 龍門寺에 지팡이 짚고 다닐 사람이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려쳤더니 그때서야 분위기가 바로 잡혔다.

 

道覺스님도 자리에 앉고, 나는 조용하게 아무리 속이 상하셔도 大藏殿 앞에 이렇게 寮舍를 세워서야 되겠습니까?” 하면서 문화재관리국에서 실장님과 협의를 하여 허가도면에 요사를 넣도록 했고, 설계사무소에서 도면을 고치고 있으니 이 공문에 용문사 職印(직인)捺印(날인)해주면 내일 도청에 가서 도지사 공문을 만들고, 서울에 가니 오후에 문화재관리국에서 만나자하였다.

 

그러나 주지스님은 寮舍(요사) 기둥만 뽑아 옮기려고 하는 얘기로 알고 무슨 소리냐 당신이 금방 고쳐달란다고 도면을 바꿔주는가?” 하고 공문을 집어 던졌다. 나는 문화재관리국에서 심의를 마친 도면을 바꿀 수 있게 된 모든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설명을 다 듣고 나서 도각스님은 공보계장님, 참 수고 많이 하셨네하면서 내 손을 잡는데 주먹이 벌겋게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주먹으로 방바닥을 너무 세게 쳤던 모양이었다.

 

도각 스님은 내 손을 잡은 채 공보계장님이 ()를 너무 쓰셨군하며 웃었다. 나중에 보니, 함께 있던 공보실직원 군은 휴대한 녹음기로 그동안의 상황들을 모두 녹음하고 있었다.

 

공문서에 용문사의 직인을 찍고 차를 한잔 마시는 사이 공보실 차량으로 공보실장, 용문면장, 지서장이 주지스님 방으로 들어왔고, 모두가 겸연쩍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앉았다. 공보실장이 용문사에는 그래도 大藏殿輪藏臺가 가장 중심 寶物인데 윤장대 앞에 저렇게 건물을 세워서야 되겠어요? 공보계장이 내일 공문을 만들어 가면 文化財管理局에서 寮舍부터 건축을 할 수 있도록 정리를 해 놓았다하자, 도각 스님도 서울에 같이 다녀오기로 하였다.

 

이튿날 도청에 들러 도지사의 공문을 만들어 文化財管理局에 올라갔고 寮舍가 들어간 建物配置圖(건물배치도)로 바뀐 許可圖面(허가도면)이 발급되었다.

 

이렇게 하여 문화재관리국에서 審議委員會(심의위원회)審議(심의)議決(의결)된 예천龍門寺 복원공사의 許可圖面(허가도면)은 바꿔졌으며, 大藏殿 앞에 새워졌던 寮舍의 기둥들이 普光明殿 서편으로 옮겨져서 復元佛事가 원만하게 시작되었고, 1985년 부처님 오신 날 龍門寺를 찾은 신도들이 새로 지은 寮舍에서 供養(공양)을 할 수 있었다.

 

나는 龍門寺 復元佛事 推進委員選定된 것도 아니고 復元佛事에 많은 금액도 시주하지 못하여 碑石이나 주춧돌에 내 이름을 새겨놓지는 못했지만 예천군청에 근무하면서 처음 文化公報係長이 된 지 일주일 만에 가장 滔滔(도도)(?)하고 어쩜 고집스러운 중앙행정기관인 文化財管理局에서 전문위원회가 審議 許可한 내용을 용기 있게 밀어붙이고 說得하여 허가도면을 바꿔옴으로써 불도저 같은 道覺스님도 寮舍의 기둥을 모두 뽑아 옮기는 등 復元佛事圓滿(원만)(?) 추진을 위해 크게寄與(기여)했다는 自負心(자부심)을 가지고 지금도 흰 머리카락 흩날리며 正初, 釋誕日, 百中, 冬至 寺刹行事에 적지만 精誠(정성)을 담은 봉투를 들고 아내와 함께 꼭 龍門寺를 찾는다.

 

龍門寺 大藏殿彫刻火災防備符籍

대장전 앞면 동편의 연꽃봉오리, 연잎, 물고기 머리

 

대장전 앞면 서편의 연꽃봉오리, 연잎
대장전 뒷면 동편의 물고기

復元佛事가 끝날 때쯤인 98. 1. 15 住持 道覺스님은 入寂(입적)하셨고, 後任으로 建築工事에 남다른 慧眼(혜안)을 가지신 住持 淸眼스님 赴任

최신 消火栓(소화전) 설치로 방화시설 補强(보강).

동편에 철근콘크리트 2층 건물(1: 식당, 2: 종무소)신축.

요사를 헐고 그 자리에 聖寶博物館(성보박물관)을 건립.

毘盧遮那佛(비로자나불) 淨土(정토)인 연화장 세계를 視覺的(시각적)으로 形象化(상화)華藏刹海圖(화장찰해도) 제작.

 

***參考資料 : 醴泉郡廳 文化觀光課 

***狀況確認 : 能虛 스님(소실된 건물 등)

영남제일강원 곳곳에 瑕疵(하자)가 발생하자 몽땅 헐고 재건축.

탬플스테이를 위해 보경당과 샤워장을 갖춘 최신화장실 2동 건립.

서전 자리에 접빈객사 龍門如意軒(용문여의헌)을 건립하는 등 용문사 경내를 일신시킴.

 

參考資料 : 醴泉郡廳 文化觀光課

狀況確認 : 能虛 스님(소실된 건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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