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을 넘어 무지에 가까운 언론인 한문실력(3)
說難(세난)과 舌禍(설화)
우리사회가 해방이후 격동과 파란의 세월을 겪다 보니 혼돈과 혼미 속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이비(似而非)가 올바른 것인 양 판을 치거나, 거짓된 말이나 위세를 등에 업고는 사람들을 농단(壟斷 또는 龍斷)하거나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건들이 많다.
사건 자체도 문제지만 여기에는 정론직필(正論直筆)로 시시비비를 가려 주어야 할 지식인이나 언론인이 곡학아세(曲學阿世)하여 바로 잡지 못한 책임도 크다.
2007년 정해(丁亥)년이 ‘황금돼지 해’라며 온 사회가 떠들썩한 경우나(편집자주:2012년 壬辰년은 흑룡의 해라고 야단법석이다), 2007년 1월 문화일보 ‘오후여담’의 ‘설난(說難:세난)’이란 제목의 칼럼도 그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어느 왕이 특정 정책을 선호한다고 하자. 만일 한 신하가 그 정책을 비판한다면 그 신하는 당장 미운털이 박힐 수밖에 없다. 왕이 그런 정책을 싫어하고 신하가 비판한 경우는 어떨까?
..... 중국 법가사상가인 한비(韓非)는 이처럼 말하기의 어려움을 주목해 ‘난언(難言)’이나 ‘설난(說難)’이라는 글을 남겼다. ....... 최근 몇년간 한국 경제가 부진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누구 탓인가.
..... 노 대통령은 과거와 달리 요즘 공무원들이 무능하다고 비난을 퍼부었던 셈이다.
..... 이용훈 대법원장도 얼마전 변호사 시절의 세금 탈루가 언론에 보도되자 이에 대해 ‘신앙인으로서 돈을 어떻게 관리해 왔는지 이해해 달라. 속인 일 없다’고 주장했다.
..... 아니면 신앙인의 탈을 쓴 채 안심하고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거나...... ”
여기서 ‘說難’의 발음은 ‘설난’이 아니라 ‘세난’이다. ‘설난’이라 읽은 것도 잘못이지만 필자의 원래 의도로 보면 제목은 ‘舌禍(설화)’이어야 한다.
‘說’이란 글자는 ‘말씀 설’ ‘달랠 세’ ‘기쁠 열’ ‘벗을 탈’로 읽히고 쓰이는 한자이다. 2,200년전 한비자가 살았던 전국(戰國)시대에는 대표적 지식인층인 유세객(遊說客)들이 제후들을 찾아가 유세(遊說)를 통해 벼슬자리를 얻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기에서 연유하여 선거철에 후보들이 표를 얻기 위해 유권자를 상대로 연설하는 것을 ‘유세’라고 한다. 전국시대에는 유세를 통해 벼슬자리도 얻지만 잘못하면 목숨의 위협도 감수하여야 하기 때문에 한비자는 ‘說難(세난)’이란 글을 통해 당시 지식인 유세객들이 제후들을 설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우쳐 주고자 했다.
신문 칼럼의 필자는 입만 열었다 하면 구설수에 오르는 대통령의 발언이나 문제의 대법원장의 발언을 비판하고자 한비자의 ‘세난’이란 단어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필자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내용을 나타내려 했던 것 같다.
《말이란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이해시켜 설득하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치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해서는 곤란하다.
심하면 상대방의 반발을 넘어 舌禍(설화)’에 휩쓸리게 된다. 또한 ‘구설수(口舌數)’에 오른다.
의도치 않더라도 설화나 구설수에 휩쓸리면 양치기 소년이 되고 만다. 이로 인한 불신 풍토는 우리사회에 혼란과 혼돈만 일으킬 뿐이다. 이는 서로에게 불행이다.》
문제는 위 필자의 글이 내용상 한비자의 ‘遊說(유세)’라는 단어와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한자의 정확한 뜻도 모르고 있다. 다만 필자는 ‘說難(세난)’이란 뜻 그대로 ‘말로 설득하기의 어려움’을 유식한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필자는 유명한 사상가인 한비자를 인용하여 자신이 현학적임을 자랑하고자 하다가 글의 본 뜻마저 훼손하고 정당성도 잃고 말았다.
「교수신문」이 2006년 말에 한 해를 규정짓는 단어로 선정한 ‘密雲不雨(밀운불우)’란 사자성어의 쓰임도 왜곡 사례이다. 원 출처인 주역에 나오는 역사와 배경을 고려치 않고는 단순히 낱글자의 뜻만을 차용해 뜻을 전달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유교문화 전통으로 인해 정치권이나 언론 지식인들이 고사성어나 유학 경전을 즐겨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함부로 또는 자의적으로 사용하다보니 뜻을 풍부하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과 혼선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유학경전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고 여기 저기서 번역본으로 습득한 쪼가리 지식이거나 전공자라 하더라도 엉터리로 공부하였기 때문이다.
<출처 : 「왜 한자이고 유학경전인가」 2012년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