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臧文仲 居蔡 山節藻棁 何如其知也
공자 가라사대 장문중이 거북이를 보관하는데, 기둥머리에 산을 그리고, 대공에 수초를 그렸으니,
어찌 그 (禮를) 안다(지혜롭다) 고 하리오.
<家苑 註>
당시 사람들이 앞세대 권세가 중의 하나인 장문중을 지혜롭다고 하니, 공자는 장문중이 결코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며 사례를 들고 있다. 천자만이 둘 수 있는 큰 거북이인 蔡를 자기 집의 점치는 사당에 둔 행위나, 귀신을 잘 섬긴답시고 점치는 사당에다 온갖 화려한 장식을 한 행태가 그것이다. 춘추좌전 문공 2년(기원전 625년)에는 장문중(臧文仲)의 三不仁과 三不知를 기록하고 있다.
① 유하혜(柳下惠)는 천하가 다 인정하는 어진 사람인데도 그를 업신여기고, ② 백성의 출입이 자유로왔던 여섯 관문을 폐지하며, ③ 자신의 처첩들에게 백성의 생업인 돗자리를 짜게 하여 이익을 취한 것이 세 가지 不仁이다.
또한 ① 점치는 거북이를 자기 집에 두는 등 신분과 지위를 넘는 행태를 저지르고 ② 노나라의 희공이 민공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종묘제사에 선대 군주인 민공보다 희공을 먼저 제사지내게 하였으며 ③ 노나라 국경에 원거(爰居)라는 바다 새가 나타나 3일을 머물렀다 하여('國語' 魯語편) 이를 신비하게 여겨 바다새를 섬기자고 하였으니, 이는 예를 알지 못하는 세 가지 不知이다.
공자는 또한 옹야편 20장에서 장문중의 사례를 염두에 두고 제자인 번지(樊遲)가 知에 대해 묻자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백성의 의리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여야 가히 知라 하니라)”고 하였다.
심지어 공자는 위령공편 13장에서 장문중을 ‘벼슬자리를 도둑질한 자(其竊位者與)’라고까지 혹평하고 있다. 이는 장문중이 권세가로서 천자의 예법을 넘보는 등 여러 문란한 사례를 남김으로써 후일 삼환씨를 비롯하여 많은 경대부 가신들이 거리낌 없이 전횡하는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① 朱子
臧文仲은 魯大夫臧孫氏니 名은 辰이라 居는 猶藏也오 蔡는 大龜也라 節은 柱頭斗栱也오 藻는 水草名이오 梲은 梁上短柱也라 蓋爲藏龜之室而刻山於節하고 畫藻於梲也라 當時에 以文仲으로 爲知어늘 孔子 言其不務民義하고 而諂瀆鬼神이 如此하니 安能爲知리오 하시니 春秋傳所謂作虛器가 卽此事也라
장문중은 노나라 대부 장손씨니 이름은 진(辰)이라. 거(居)는 보관함과 같고, 채(蔡)는 큰 거북이라. 절(節)은 기둥머리의 두공(枓槓 혹은 栱包)이오, 조(藻)는 수초 이름이오, 절(梲)은 대들보 위의 짧은 기둥(棟子臺工, 혹은 覆花盤으로 종도리 받침)이라. 대개 (점치기 위한) 거북을 보관하는 집이 되는데, 두공에는 산을 새기고, 대공에는 수초를 그림이라. 당시에 장문중으로써 지혜롭다고 하거늘, 공자가 ‘백성의 의로움에 힘쓰지 아니하고 귀신에게 아첨하여 더럽히는 것이 이와 같으니 어찌 능히 지혜롭다 하리오’ 하시니, 춘추좌전에 이른바 헛된 그릇을 만들었다고 이르는 것이 곧 이 일이라.
③ 張橫渠
山節藻梲하야 爲藏龜之室은 祀爰居之義니 同歸於不知가 宜矣로다
두공에 산을 새기고, 대공에 수초를 그려서 거북을 보관하는 집을 만드는 것은 바다새(爰居원거)에 제사지내자고 하는 (것과 같은) 뜻이니, 지혜롭지 못한 것에 한 가지로 돌아감이 마땅하도다(다 같이 지혜롭지 못하다).
출처 : 『논어 易解』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