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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離婁 上( 이루상)편 13장 해설

작성자法故創新|작성시간15.10.31|조회수259 목록 댓글 0

孟子 伯夷 하여 北海之濱이러니 文王作興하고 曰盍歸乎來리오 吾聞西伯養老者라하고 太公辟紂하여 居東海之濱이러니 聞文王作興하고 盍歸乎來리오 吾聞西伯善養老者라하니라 二老者天下之大老也而歸之하니 天下之父 歸之也天下之父 歸之어니 其子 焉往이리오 諸侯 有行文王之政者七年之內爲政於天下矣리라

<家苑 譯 >

맹자 가라사대, “백이가 주를 피해 북해의 물가에 거처하더니 문왕이 일어났음을 듣고 어찌 돌아가지 아니 하리오. 내 들으니 서백은 늙은이를 잘 봉양하는 자라.’ 했고, 태공이 주를 피해 동해의 물가에 거처하더니 문왕이 일어났음을 듣고 어찌 돌아가지 아니 하리오. 내 들으니 서백은 늙은이를 잘 봉양하는 자라.’고 했느니라. 두 늙은이는 천하의 대로인데 돌아갔으니 이는 천하의 아비가 돌아간 것이라. 천하의 아비가 돌아갔으니 그 자식이 어디를 가리오. 제후 가운데 문왕의 정사를 행하는 자가 있으면 칠 년의 안에 반드시 천하에 정사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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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苑 註>

* 太公 : 史記齊太公世家에 따르면, “태공망 여상은 동해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 선조는 일찍이 사악의 하나였는데 우를 도와 홍수를 다스림에 큰 공을 세워 순임금과 우임금 시절에 땅에 봉해졌다. 혹자는 땅에 봉해졌다고도 하는데 성은 강씨였다. 하나라와 상나라 때에 신땅과 여땅은 혹 여러 자손들에게 나누어져 봉해지고 혹자는 서인이 되기도 했으니 은 그 후예이다. 본성은 강씨이나 그 봉지를 따라 성을 쓰므로 여상이라고 한다.

 

여상은 대개 일찍이 곤궁하였고, 나이가 들어서는 고기를 낚으면서 주의 서백을 만날 계책을 구하였다. 서백이 사냥을 나갈 때에 점을 쳤더니, ‘잡은 것이 용도 아니고 이무기도 아니며 호랑이도 아니고 곰도 아니고 잡은 것은 패왕을 도울 자이라.’고 했다. 이에 주의 서백이 수렵을 나갔는데 과연 위수의 남쪽에서 태공을 만났다.

 

함께 말을 나누어 보고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우리 선군이신 태공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마도 성인이 주나라에 와서 주나라를 일으키리라고 하셨는데 당신이 진실로 이 분이신가? 우리 태공께서 그대를 오래도록 바라셨도다.’라고 하면서 태공망이라 부르고 함께 수레를 타고 돌아와 국사로 모셨다

(太公望呂尚者東海上人이라 其先祖嘗爲四嶽인데 佐禹平水土甚有功하여 虞夏之際封於呂或封於申이니 姜氏夏商之時申呂或封枝庶子 하고 或爲庶人하니 尚其後苗裔也本姓姜氏이나 從其封姓이라 故曰呂尚이라 呂尚蓋嘗窮困하고 年老矣하여는 以漁釣奸周西伯이라 西伯將出獵卜之曰所獲非龍非彲非虎非羆所獲霸王之輔於是周西伯獵한대 果遇太公於渭之陽이라 與語大說하고 曰自吾先君太公曰當有聖人適周하여 周以興이라하셨으니 子眞是邪吾太公望子久矣라하니라 號之曰太公望이라하고 載與俱歸하여 立爲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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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苑 說>

문왕이 서쪽의 으뜸 제후이던 시절 정치를 발함에 인을 베풀어(發政施仁) 사회적 약자인 鰥寡獨孤을 반드시 먼저 배려했기에(공손추하편 제5) 천하의 모든 이들이 존경하는 백이숙제와 강태공도 노후를 의지하기 위해 문왕에게 귀순했으니 나머지 사람들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앞서 제9장에서 말한 백성들이 인에 돌아감은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탕임금과 무왕을 위해 백성들을 몰아준 자는 였으니 문왕처럼 發政施仁을 한다면 칠 년 안에 천하의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다.

 

맹자는 지금의 제후들이 문왕을 본받는다면 틀림없이 7년 내에 천하에 정사를 하리라고 앞의 제7장에 이어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 내용은 일차적으로 공자가 말씀하신 善人敎民七年이면 亦可以卽戎矣니라에도 근거하지만 더 올라가면 주역에 근거한다. 졸저 논어역해3권 자로편 제29장 해설에서 설명한 내용을 보완하여 재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7小陽數이자 후천팔괘에서 (, )괘를 상징하는 것으로, 正西 방위이자 가을의 결실과 완성의 숫자를 나타낸다. 따라서 위 문장에서 말한 7은 교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단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7주역7번째 괘인 地水師(지수사, )괘에 해당하는 숫자로 는 무리, 군사를 뜻한다. 괘에 대해 공자는 단전(彖傳)에서 능히 무리를 바르게 하면 이로써 왕이 될 수 있으리라. 강한 것이 가운데 하여 응하고 험한 일을 행해도 순조로우니, 이로써 천하를 괴롭혀도 백성들이 따르나니 길하고 또한 무슨 허물이리오(能以衆正이면 可以王矣리라 剛中而應하고 行險而順하니 以此毒天下而民從之하나니 吉又何咎矣리오).”했고,

 

대상전(大象傳)에서는 이로써 백성들을 받아들여 무리를 기른다(容民畜衆)”고 하였다. 容民畜衆(용민휵중)하여 行險而順하니 以此毒天下而民從之한다는 것은 논어에서 말한 善人敎民七年이면 亦可以卽戎矣리라

에 해당하는 내용이자 맹자가 말한 七年之內必爲政於天下矣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주역의 괘 하나는 여섯 효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래로부터 올라가 여섯 효가 다하고 다시 초효로 돌아오기까지는 7단계를 거친다. 이것을 주역24번째 괘인 地雷復(지뢰복 )괘에서는 反復其道하여 七日來復하니 天行也(를 반복하여 7일 만에 돌아오니 하늘의 운행이라)라고 하였다. ‘7’에는 회복하여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다.

 

5는 중앙토의 숫자로 皇極(황극)의 자리에 해당한다. 맹자가 대국 5년이라고 한 것은 대국은 이미 정치적 영향력이 크기에 어진 정치를 행하기만 한다면 바로 모든 나라들이 따를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출처 : 孟子易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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