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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經 講解

商頌-① 那一章(나1장)

작성자法故創新|작성시간16.01.03|조회수266 목록 댓글 0

-3. 商頌

契爲舜司徒하여 而封於商이러니 傳十四世而湯有天下하시니라 其後三宗迭興이러니 及紂無道하여 爲武王所滅하고 封其庶兄微子啓於宋하여 修其禮樂하여 以奉商後하니 其地 在禹貢徐州泗濱하여 西及豫州盟猪之野하니라 其後政衰하여 商之禮樂日以放失이라 七世至戴公時하여 大夫正考甫得商頌十二篇於周大師하여 歸以祀其先王이러니 至孔子編詩하여 而又亡其七篇이라 이나 其存者 亦多闕文疑義하니 今不敢强通也로라 商都亳하고 宋都商丘하니 皆在今應天府亳州界하니라

설이 순임금의 사도가 되어 상나라에 봉해졌더니 14대를 전하고 탕임금이 천하를 두셨느니라. 그 후에 삼종(中宗 太戊, 武丁 高宗, 祖甲을 말함. 安成劉氏曰湯後九世至太戊하여 而商道興하여 廟號中宗이라하고 太戊後十三世至武丁하여 商道復興하여 廟號高宗이라하고 武丁再傳而至祖甲하니 所謂三宗迭興也蓋商人宗之皆爲百世不遷之廟周公作無逸歷擧言之但祖甲親盡之際러니 適以國亡이라 未有宗號也歟인저 : 안성유씨 가로대, “탕임금의 9세 후손인 태무에 이르러 상나라의 도가 일어나 묘호를 중종이라 하고, 태무의 10세 후손인 무정에 이르러 상도가 다시 부흥하여 묘호를 고종이라 하고, 무정의 2대 후손인 조갑에 이르렀으니 이른바 삼종이 차례로 일어났다는 것이라. 대개 상나라 사람들의 종이라는 것은 모두 백 세 동안 사당에서 옮기지 않는 不遷位廟로 삼았느니라. 그러므로 주공이 제사를 빠뜨리지 않도록 일렀음이라. 다만 조갑으로 제사지내는 대의 수가 다 되었는데 곧 나라가 망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종호, 곧 묘호가 있지 않도다.”)이 차례로 일어나더니, 걸이 무도함에 이르러 무왕이 멸하는 바가 되었고, 그 서형인 미자 계를 송나라에 봉하여 그 예악을 닦아서 상나라의 뒤를 받들게 하니, 그 땅이 (서경) 우공편 서주 사빈에 있어 서쪽으로는 예주 맹저의 들판에 닿았느니라. 그 후에 정치가 쇠하여 상나라의 예악이 날로 없어졌음이라. 7세인 대공 때에 이르러 대부인 정고보가 상송 12편을 주나라 태사에게서 얻어 돌아와 그 선왕에게 제사하였는데 공자가 시를 엮음에 이르러 또 그 7편을 잃어버렸음이라. 그러나 그 보존된 것도 또한 빠진 문장과 의심스러운 뜻이 많으니 이제 감히 억지로 통하게 할 수 없노라. 상나라는 박땅에 도읍하고, 송나라는 상구에 도읍하였으니, 모두가 지금의 응천부 박주의 경계에 있느니라.

親盡 : 제사 지내는 의 수가 다 됨. 代盡이라고도 함

 

 

 

-3-那一章(1)

 

猗與那與置我하여 奏鼓簡簡하니 衎我로다

(의여나여라 치아도고하여 주고간간하니 간아열조로다)

, 굉장한지라. 내 도고를 설치하여 북소리 둥둥 울리니 우리 열조를 즐겁게 하도다.

 

[참고] 商頌鞉鼓악학궤범(二冊 95)에서는 楹鼓, 建鼓로 해석했다(그림84 참조). 또한 악학궤범에서는 周頌 有瞽(-1--)편의 應田縣鼓와 관련해서는 주나라 제도에 應田縣鼓의 옆에 있지 建鼓의 옆에 있는 것은 아니라(詩曰應田縣鼓라하니 則周制應田在縣鼓之側이오 不在建鼓傍矣)고 했는데 이것은 建鼓란 이름은 魏晉 以後나라의 제도를 부활하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賦也歎詞陳也簡簡和大也樂也烈祖湯也記曰商人尙聲하여 臭味未成이어든 滌蕩其聲하여 樂三闋然後出迎牲이라하니 卽此是也舊說以此爲祀成湯之樂也라하니라

부라. 의는 탄사라. 나는 많음이고, 치는 진열함이라. 간간은 조화롭고 큼이라. 간은 즐거워함이라. 열조는 탕임금이라(毛氏有功烈之祖, 공이 있는 선조라 함). 예기상나라 사람들이 소리를 숭상하여 냄새와 맛(犧牲을 말함)이 이뤄지지 않았으면 그 소리를 진동시켜(禮記郊特牲註曰滌蕩猶搖動也: 예기교특생 주에 가로대, ”척탕은 요동함과 같음이.“) 음악을 세 번 연주하여 마친 뒤에 나가서 희생을 맞이했다.” 하니, 곧 이것이라(安成劉氏曰凡聲屬陽이라 曰樂由陽來商人祭祀尙聲所以先求諸陽者也 : 안성유씨 가로대, “무릇 소리는 양에 속하므로 음악은 양에서 말미암아 오는 것이라. 상나라 사람들이 제사를 지냄에 소리를 숭상함은 먼저 저 양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옛 설(毛詩)에 이로써 성탕을 제사하는 음악이라 하니라.

 

湯孫奏假하시니 綏我思이셨다 鞉鼓하며 嘒嘒管旣和且하여 依我磬하니 於赫湯이여 穆穆厥이셨다

(탕손주격하시니 유아사성이셨다 도고연연하며 혜혜관성이 기화차평하여 의아경성하니 오혁탕손이여 목목궐성이셨다)

탕임금의 후손이 연주하여 조고에게 이르시니 생각함이 이루어져 우리를 편안케 하셨다. 도고가 그윽이 울리며 부드러운 피리 소리가 이미 화하고 이미 고르게 우리 경쇠 소리를 도우니, , 빛나는 탕임금의 후손이여, 심원하신 그 소리였다.

於巾反 孫思倫反

湯孫主祀之時王也與格으로 이니 言奏樂以格于祖考也安也思成未詳이라 鄭氏曰安我以所思而成之人이니 謂神明來格也禮記曰齊之日思其居處하고 思其笑語하고 思其志意하고 思其所樂하고 思其所嗜하고 齊三日乃見其所爲齊者하며 祭之日入室하여 僾然必有見乎其位하고 周旋出戶肅然必有聞乎其容聲하고 出戶而聽愾然必有聞乎其歎息之聲이라하니 此之謂思成이라 蘇氏曰其所見聞本非有也生於思耳라하니 此二說近是蓋齊而思之하여 祭而如有見이면 則成此人矣鄭註頗有脫誤일새 今正之하노라 淵淵深遠也嘒嘒淸亮也玉磬也堂上升歌之樂이오 非石磬也穆穆美也

탕손은 제사를 주관할 때의 임금이라. 격은 이를 격과 같으니 음악을 연주하여 조고에게까지 이름을 말함이라. 유는 편안함이라. 사성은 자세하지 못하니라. 정씨(鄭玄)우리를 편안히 함에 생각한 바로써 하여 사람을 이루게 했으니, 신명이 와서 이른 것을 이름이라. 예기(祭義)재계하는 날에 그 거처하셨음을 생각하고, 그 웃으며 말씀하셨음을 생각하고, 그 뜻을 생각하고, 그 좋아하신 바를 생각하고, 그 즐기시던 것을 생각하고, 재계 삼일에는 이에 그 위하여 재계하는 바를 보며, 제삿날에 방에 들어가 어렴풋이 꼭 그 자리에서 보이는 것이 있고, 주선하고 방문을 나섬에 숙연하게 꼭 그 너그러운 소리를 들음이 있고, 방문을 나서서 들음에 탄식하듯 반드시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들음이 있다.’고 하니, 이것을 思成이라고 이른다.”고 하니라. 소씨는 그 보고 들은 바는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나왔을 뿐이라.”고 하니 이 두 가지 설이 옳음에 가까우니라. 대개 재계하고 생각하여 제사함에 보이고 들림이 있는 것 같다면 곧 이 사람을 이룸이라. 정현(鄭玄)의 주에 자못 빠지고 잘못된 것이 있기에 이제 바로 잡노라. 연연은 깊고 멂이고, 혜혜는 맑고 밝음이라. 경은 옥경이니 당에 올라가 노래하는 음악이고, 석경이 아니니라. 목목은 아름다움이라.

어렴풋할 애 탄식할 개

 

庸鼓有하며 萬舞有하니 我有亦不夷

(용고유역하며 만무유혁하니 아유가객이 역불이역아)

쇠북과 북이 성대히 울리며 만무가 아름다우니 우리 아름다운 손님이 또한 기뻐하지 아니하랴.

으로 이라 斁然盛也奕然有次序也蓋上文言鞉鼓管籥作於堂下하니 其聲依堂上之玉磬하여 無相奪倫者至於此則九獻之後鍾鼓交作하고 萬舞陳于庭하여 而祀事畢矣嘉客先代之後來助祭者也悅也亦不夷懌乎言皆悅懌也

용은 쇠북 용으로 통하니라. 역은 섞이듯 무성함이라. 혁은 아름다우면서도 순서가 있음이라. 대개 위 문장은 작은 북과 큰 북과 피리가 당 아래에서 일어나니 그 소리가 당 위의 옥경을 도와 서로 차례를 빼앗음이 없고, 이에 이르러서는 아홉 번 술잔을 올린 뒤에 쇠북과 북이 서로 일어나고 만무가 뜰에서 베풀어져 제사일이 끝난 것이라. 가객은 선대의 후손으로 와서 제사를 돕는 자들이라. 이는 기뻐함이니 또한 기뻐하지 아니하랴는 모두가 기뻐함을 말함이라.

 

自古在先民有하니 溫恭朝하여 執事有하니라

(자고재석에 선민유작하니 온공조석하여 집사유각하니라)

예로부터 옛날에 선민들이 지음이 있으니 아침저녁으로 온화하고 공경하여 일을 함에 정성스러웠느니라.

 

敬也言恭敬之道古人所行이니 不可忘也閔馬父曰先聖王之傳恭猶不敢專하여 稱曰自古라하고 古曰在昔이라하고 昔曰先民이라하니라

각은 공경함이니 공경의 도는 옛 사람들이 행한 바이니 가히 잊지 말아야 함을 말함이라. 민마보(國語魯語註馬父魯大夫: 국어노어 주에 마보는 노나라 대부라.”)옛 성왕이 전하신 공경을 오히려 감히 오로지 하지 못하여 예로부터라고 일컫고 옛날에라고 하고. 선민이라했다.”고 함이.

 

顧予인저 湯孫之이니라

(고여증상인저 탕손지장이니라 賦也)

내 증제와 상제를 돌아볼진저. 탕왕의 후손이 올리느니라.

奉也言湯其尙顧我烝嘗哉인저 此湯孫之所奉者 致其丁寧之意하니 庶幾其顧之也

장은 받들음이라. 말하기를, ‘탕임금이 그 바라건대 나의 증제와 상제를 돌아보리로다. 이 탕왕의 후손이 받드는 것이 그 정녕한 뜻이 지극하니 거의 그 돌아보리라.’고 함이라.

 

那一章二十二句

閔馬父曰正考甫 校商之名頌할새 以那爲首하고 其輯之亂曰云云卽此詩也

민마보가 정고보가 상나라의 이름난 송을 교정할 때에 나편으로 머리를 삼고 그 편집 끝에(亂辭, 시를 다 정리하고 난 뒤에 끝에 적는 한 편의 大意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운운했다는 것이 곧 이 시라.

 

[()-상송(商頌) 1편 나1(那一章) 경문 다시 읽기]

 

猗與那與置我鞉하여 奏鼓簡簡하니 衎我烈로다

湯孫奏假하시니 綏我思이셨다 鞉鼓淵淵하며 嘒嘒管旣和且하여 依我磬하니 於赫湯孫이여 穆穆厥이셨다

庸鼓有하며 萬舞有하니 我有嘉亦不夷

自古在先民有하니 溫恭朝하여 執事有하니라

顧予烝인저 湯孫之이니라 賦也

那一章이라

    

출처 : 詩經講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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