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里仁편 제1장 해설 수정보완]
공자는 크게 지혜롭고(大知), 크게 효성스러움(大孝)으로 인해 요임금으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은 순임금을 仁者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고 있다. 순임금은 천리(天理)에 순응하고 지혜로워서 왕이 되기 전에 그가 거주한 곳이 3년이면 都會地를 이루었기 때문에 都君(도군)이라고 불렸다.
이렇듯 한 마을이 어진 위정자를 만나면 번영과 평안을 다 누릴 수 있기에, 위정자는 반드시 仁政을 택하여야 한다. 이것이 군자의 擇處仁이고, 『주역』 乾卦 文言傳에서 말하는 “寬以居之 仁以行之”이며, 다음 장에서 말하는 “仁者는 安仁하고 知者는 利仁이라”는 의미이다. 水生木의 이치가 있듯이 지혜로운 자라면 仁政을 펴야 하는데, 백성들을 사랑하여[愛民] 기르며[養民], 백성들을 위하는[爲民] 善政이다. 이렇게 하면 匹夫匹婦 또한 거처할 곳을 택할 때에 거필택린(居必擇隣)이라고, 반드시 어진 위정자가 다스리는 땅을 택할 것이며, 그 나라는 더욱 풍요롭게 될 것이다.
한편 위 문장과 관련한 해석은 孟子가 탁월하다. 맹자는 『맹자』 공손추上편 제7장에서 공자의 위 말씀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孟子曰矢人이 豈不仁於函人哉리오마는 矢人은 惟恐不傷人하고 函人은 惟恐傷人하나니 巫匠도 亦然하니 故로 術不可不愼也니라 孔子曰里仁이 爲美하니 擇不處仁이면 焉得智리오하시니 夫仁은 天之尊爵也며 人之安宅也어늘 莫之禦而不仁하니 是는 不智也니라 不仁不智라 無禮無義면 人役也니 人役而恥爲役하는지 由弓人而恥爲弓하며 矢人而恥爲矢也니라 如恥之인댄 莫如爲仁이니라 仁者는 如射하니 射者는 正己而後에 發하여 發而不中이라도 不怨勝己者요 反求諸己而已矣니라(맹자 가라사대,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갑옷을 만드는 사람보다 불인하리오만은 화살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할까를 두려워하고, 갑옷을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상하게 할까를 두려워하나니, 무당과 널 짜는 장인도 또한 그러하니, 그러므로 방법을 삼가지 아니할 수 없느니라. 공자께서 ‘마을사람들의 仁함이 아름다움이 되니, 가려서 仁한 데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라 하리오.’라고 하셨으니, 무릇 인은 하늘의 높은 벼슬이며 사람에게는 편안한 집이거늘, 막는 이가 없는데도 불인하니 이는 지혜롭지 못함이라. 어질지 아니하여 지혜롭지 못한지라. 예도 없고 의도 없으면 다른 사람이 부리니, 부림당하는 일꾼이면서 부림당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나 하는지! 궁인이면서 활 만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시인이면서 화살 만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과 같으니라. 부끄러워할진댄 인을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인은 활을 쏘는 것과 같으니 활을 쏘는 자는 몸을 바로 한 뒤에 쏘아서, 쏘아 맞추지 못하더라도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 저 몸에서 구할 따름이라.”- 자세한 해설은 拙著 『맹자易解』)”
사람이 살 집을 구하는 데 습기 찬 하류(下流)를 택하거나 불선(不善)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택할 사람은 없다. 어리석지 않은 이상 오두막을 짓더라도 양지바른 쪽을 택할 것이고, 되도록이면 좋은 이웃이 있는 곳을 가리게 된다. 왜냐하면 이런 곳이 살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밝은 쪽을 가려서 택하듯 지혜로운 위정자라면 밝음을 향한 정치 곧 어진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술이편 제6장에서 말하는 군자의 "據於德 依於仁"이기도 하다.
[里仁편 제6장 해설 보충]
『논어』의 편집자는 里仁편 제1장에서 仁政의 효력으로 ‘사람들이 아름답게 되고(爲美)’, 이어서 그러한 어진 정치를 베풀 수 있는 사람만이 ‘久處約, 長處樂’하고, ‘能好人, 能惡人’하며, ‘無惡’하고, ‘成名’할 수 있음을, 공자의 말씀을 들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제5장의 끝에서 군자라고 자처하는 위정자라면 仁에 대해 ‘造次必於是’하고 ‘顚沛必於是’해야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春秋 말기에서 戰國 시대로 접어 들어가는 어지러운 시기에 더 이상 어진 정치를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제6장에 ‘나는 아직 위정자 가운데 ~한 자를 보지 못했다’는 뜻으로 “我未見好仁者惡不仁者”하고 “我未見力不足者”라고 하신 말씀을 두었고, 혹시라도 위정자 가운데 그러한 사람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執語矣’를 넣어 “蓋有之矣(아마도 ‘꼭’ 있을 것이라)”라고 하면서 ‘그런데, 아니다. 있다면 내가 보았을 텐데, 없기에 나는 아직도 보지 못했도다.’는 강한 뜻을 ‘語助辭 之’와 ‘決定辭 也’에 담아 “我未之見也”라고 끝을 맺은 공자의 말씀을 두었다.
위의 내용은 정치에서 ‘仁’만큼 중요한 것이 없음을 거듭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仁을 좋아하는 자는 더할 것이 없고, 不仁을 미워하는 자는 곧 그 仁이 된다(其爲仁矣)고 꼭 집어 말씀하셨다. ‘爲仁’과 관련해서는 顔淵편 제1장, 憲問편 제1장, 衛靈公편 제9장, 陽貨편 제6장에서 다뤄지고 있는데, 위 문장의 ‘其爲仁矣’와 가장 가까운 내용은 안연편 제1장의 안연의 물음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이다. “克己復禮爲仁이니 一日克己復禮면天下歸仁焉하나니 爲仁이 由己니 而由人乎哉아(나를 이기고 예를 회복함이 인이 되니, 하루라도 나를 이기고 예를 회복하면 천하가 인에 돌아가니, 인을 함이 나로 말미암나니 다른 사람에게서 말미암으랴?)” 당시 朝廷과 在野를 막론하고 공자는 유일하게 제자인 안연을 仁者로 許與하였는데, “回也는 其心이 三月不違仁이오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니라(회는 그 마음이 석 달이나 인을 어기지 않았고, 그 나머지는 하루나 한 달에 이를 뿐이니라.)”고 한 데서 잘 알 수 있다.
반면에 공자의 제자로 정치 일선에 나섰던 冉求의 경우 “非不說子之道언마는 力不足也로이다(선생님의 도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부족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공자는 “力不足者는 中道而廢하나니 今女는 畫이로다(힘이 부족한 자는 중도에서 그만두나니, 지금 너는 선을 긋는구나.)”라고 하며 염구를 나무랐다. 당시에 천하를 다스린다는 위정자들이 道를 따를 듯이 했으나 끝내는 저버리고 仁을 행하지 않는 것을 보며 공자는 이렇게 탄식하셨다. “君子遵道而行하다가 半塗而廢하나니 吾弗能已矣노라(군자가 도를 따라 가다가 중도에서 그만 두나니 나는 능히 그만두지 못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