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 글 읽어 보시고 가슴이 뭉~클 하지 않으시면 인간이 아닙니다. 꼭 읽어보세요⁉️
🍃 일편단심 민들레야 🎶💕
(심금을 울리는 사연)
🌻 팔 수 없는 꽃
꽃집에는 민들레꽃이 없습니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진정한 사랑과 다정함,
우정과 소중한 사람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민들레는 야생으로 자라나
한적한 곳에 조용히 꽃을 피우고,
마침내 자신을 향해
허리를 굽혀줄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민들레의 꽃말,
"내 사랑 그대에게"
"나의 사랑을 드려요"
그리고 — 일편단심(一片丹心)
🎶 노래가 된 사연
1981년, 가왕 조용필은
〈일편단심 민들레야〉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이 노래의 작사자는 이주현 여사.
당시 72세의 그녀가 신문에 투고한
한 편의 자전적 수기가 노래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조용필이 그 글을 읽고 감동하여
직접 가사로 만들어줄 것을 제안하였고,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애절한 노래 하나가 탄생했습니다.
🎄50년의 기다림
50여 년 전, 이주현 여사는
동아일보 총무국장이던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광풍 속에서
남편은 그만 납북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녀는 홀로 세 남매를 키우며
노점 좌판을 전전하는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평생 모은 돈을
남편이 몸담았던 동아일보에 기부하며
남편의 이름을 붙인
'수남(水南) 장학금' 을 만들었습니다.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1981년 4월 28일,
신문에 실린 기사 〈햇빛 본 할머니의 꿈〉은
이주현 여사의 일편단심 이야기를 이렇게 전합니다.
"수남(水南)! 이렇게 불러볼 날도 이제 오래지 않겠지요.
나도 고희(古稀)를 넘겼으니, 살아갈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당신과 헤어진 지도 어언 30년 성상이 넘어갔네요.
밟혀도 밟혀도 고개를 쳐드는 민들레같이 살아온 세월,
몇 번씩이나 인생을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당신을 생각하며 이겨왔답니다."
그리고 1천여 장의 원고 첫머리에는
이런 고백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끈질긴 생명력의 민들레라 해도
일편단심 붉은 정열이 없었다면 어린 자식들을 못 키웠을 것이고,
지아비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없었다면
붓을 들 용기조차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 노랫말 속에 담긴 뜻
"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
처음 만나 맺은 마음 — 일편단심 민들레야.
그 여름 어인 광풍, 낙엽 지듯 가시었나.
행복했던 장미 인생 비바람에 꺾이니
나는 한 떨기 슬픈 민들레야.
긴 세월 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니
그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까.
일편단심 민들레는 — 떠나지 않으리라."
이 노랫말 속에는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그 여름의 어인 광풍" — 1950년, 청천벽력 같은 6·25 전쟁.
"낙엽 지듯 가시었나" — 그해 가을, 납북된 남편.
"하늘만 쳐다보니" — 소식조차 알 수 없는 그이를 향한 그리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 —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말,
"걱정하지 마, 금방 돌아올게!"
그 목소리였습니다.
💔 스튜디오의 눈물
조용필은 녹음 당일,
이주현 여사를 스튜디오에 직접 초대했습니다.
한 맺힌 사연이 조용필 특유의
절규에 가까운 열창으로 울려 퍼지던 그 순간,
"나는 한 떨기 슬픈 민들레야.
긴 세월 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니
그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까 —"
이 대목에 이르자
이주현 여사의 주름진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스튜디오 안의 모든 사람들도
눈을 감은 채 숙연히 고개를 숙였다고 합니다.
🎄민들레처럼
모진 풍파에도 꺾이지 않고
밟혀도 밟혀도 다시 고개를 드는 민들레처럼,
이주현 여사는 평생을
일편단심 하나로 살아냈습니다.
사랑은 살 수 없습니다.
우정도, 그리움도, 기다림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렇게 꽃집 한켠이 아닌
우리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게 피어납니다.
- 받은 글 -
늘 민들레처럼,
꿋꿋하고 후회 없는 날들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