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살을 예방하자는 사람이 아니라 개인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권리는 그 누구도 아닌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종현의 죽음에 더 동요되고, 그를 이해하고, 그의 자살에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가볍게 말하는 ‘죽고 싶다’가 아니라, 조금 더 깊은 슬픔에 잠겨 나의 목숨에 대한 포기를 몇 날 며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자세한 방법은 적을 수 없지만 자살 시도도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종현의 유서가 공개된 날, 지난날의 내가 생각나 기숙사 침대에 가로누워 눈물을 한 움큼 쏟아냈다. 병원은 나에게 ‘조울증’이라 했다. 치료를 위해 상담도 받아보고, 나 자신을 아는 게 중요하다 하여 온갖 검사란 검사는 다 받아보았지만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모두는 나에게 ‘자살하지 말라’라고 하였지 왜 자살을 하면 안 되는지, 내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선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자살하지 말라’라는 말에 대한 반항심은 극에 달했다.
내 목숨은 나의 것이지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죽으면 다 끝이라는 오해와 함께 내가 편안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모든 일들이 바로 3년 전 이야기다. 나는 ‘조울증’에 대한 치료를 끝맺지 못한 채로 병원에서 도망치듯이 치료를 강제 중단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 교수님의 강의와 책을 접한 것은 내 대학생활 중의 큰 행운이 아니었을까.
종현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왜요? 난 왜 내 마음대로 끝도 못 맺게 해요?’. 아마 이 질문을 받은 정신과 의사는 여타 환자들에게 그렇듯 기계적으로, 이론에 근거한 반문을 했을 것이다. 그 반문을 들은 종현은 또 이렇게 적었다. ‘왜 아픈지를 찾으라 했다. 너무 잘 알고 있다, 난 나 때문에 아프다. 전부 다 내 탓이고 내가 못나서야.’ 안타깝게도 정신과 의사는 종현의 내면을 어루만져 주지 못했다. 내가 그의 유서를 보고 눈물을 쏟아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은 자살 문제를 관련 기관이나 정신건강과 상담 전문가에게만 맡겨두어서 예방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책의 내용이 잘 들어맞는 대목이다.
정부가 자살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고 타 기관에 맡기려는 의지적인 입장만 내보여 자살고위험자들에게 반항적인 생각만 안겨주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조금의 이해도 없이 ‘자살하지 말라’라는 세뇌적인 말만 주입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제도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왜 우리나라는 자살예방마저 주입 교육을 시키려 하는 것인가.
<자살예방 해법은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지개야 스님의 묵언마을이었다. 가방을 멘 40대 여인의 묵언마을 체험기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어주는 지개야 스님의 여유로움이 간접적으로 와 닿았다. 그가 표방하는 것은 바로 ‘경청’이다. 자살 시도자에게 사실 가장 필요한 것은 ‘자살하지 말라’라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경청하는 것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개야 스님은 안내한 방에서 쓰러져 우는 여인에게 실컷 울어 가슴속 작은 앙금 하나도 남기지 말라 했다. 종현이 죽기 전, 내가 자살시도를 하기 전 이곳에 들러 3일만 쉬어갔다면,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보기도 했다.
본문에는 ‘한국 사람들은 죽으면 다 끝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는 문장이 유난히 많다. 누군가를 인터뷰하는 동영상마다 한 번씩은 등장한 질문이다. 나 또한 죽으면 다 끝이고 편안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등장했을 때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책이 마지막 즈음에 나온 인터뷰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나서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죽으면 끝이 아니고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는 과정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본 것과 그에 대한 증언은 나를 설득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김영우 박사의 최면치료 장면을 글로 적어놓은 것이 인상 깊었다. 정신건강의학이 다 해결해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몸소 체험한 바 있기에 깊게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 교수님의 책에서 처음 접한 ‘최면치료’라는 것에 대해서 호기심을 자아내었다.
최면치료를 통해 과거의 나를 만나고, 그를 통해 현재의 나에 대한 삶의 반영이 이루어져 죽음 문제에 대한 보다 밀접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한국 사회에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독특한 치료방식을 처음에는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환자들의 다양한 치료 사례를 보며 보다 열린 시각으로 최면치료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삶이 현재의 삶으로 귀결되는 순간 환자들은 당면한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하나씩 풀어나갔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순간마다 자살을 돌파구로 생각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다.
오 교수님의 책을 읽기 전, 나는 자신의 목숨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육신은 잠시 우리가 머물다 가는 것이므로, 스스로 포기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종현과 나는, 자살에 있어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도움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나는 <자살예방 해법은 있다>를 읽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을 주고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나만 힘든 것은 아니라는 공감에서부터 종현의 죽음에 대한 의문점들까지 여러 가지를 얻은 좋은 기회였다. 가끔 마음에 요동이 친다면 난 주저 없이 책을 집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