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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편린

동파와의 두 차례 조우

작성자약천|작성시간26.06.15|조회수30 목록 댓글 0


1. 첫 번째 만남    

최근 책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해묵은 짐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던 서예 작품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 작품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된 내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004년부터 두 해 동안 중국 북경에 거주하던 시절, 나는 주말이면 시내 남동부에 위치한 '반가원(潘家園)'이라는 골동품 시장을 찾곤 했습니다.

그곳은 옛 동전과 빛바랜 지폐, 아기자기한 장신구부터 도자기, 문방사우, 그리고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그림과 서예 작품까지 온갖 오래되고 낡은 잡동사니가 수많은 인파 속에 활기차게 거래되던 기묘하고도 매력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수많은 물건 속에서 유독 호방한 필체로 내 시선을 사로잡은 서예 작품이 하나 있었으니, 당시 약 10위안이라는 소소한 금액을 주고 설레는 마음으로 구입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벌써 2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랜 세월을 건너와 다시 마주한 글씨를 보니 문득 그 속에 담긴 뜻과 내력이 못 견디게 궁금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내친김에 작품의 행간을 틔우고 그 비밀을 하나씩 풀어보았습니다.    

멈춤의 미학을 노래한 소동파의 명구    

색이 바랜 화선지 위에 묵직하고 역동적인 초서와 행서의 필치로 당당하고 옹골차게 내려쓴 두 줄의 대구(對句)는 다름 아닌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자 북송 시대의 대문장가인 소동파(소식, 蘇軾, 1037-1101)가 남긴 시 〈등영롱산(登玲瓏山)〉의 마지막 구절이었습니다.    

脚力盡時山更好 (각력진시산경호)
莫將有限趁無窮 (막장유한진무궁)    

다리 힘이 다했을 때 산은 더욱 아름다우니,
유한한 정신과 육체를 가지고 무한한 풍경을 좇지 말라.    

산을 오르다 지쳐 발걸음을 멈추었을 때 비로소 그동안 보이지 않던 산의 참된 비경이 눈에 들어오는 법입니다. 서예가는 이 구절을 통해 우리의 인생과 학문 또한 맹목적으로 무한한 욕망이나 목적지만을 향해 달릴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가쁜 숨을 고르고 멈추어 서서 현재의 순간을 깊이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는 도가적(道家的)인 지혜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20년 전 북경의 골동품 시장 바닥에서 마음이 동하여 손에 넣었던 이 글씨에 담긴 이처럼 깊은 뜻을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발문과 낙관에 담긴 흥미로운 내력

작품의 좌우에 작게 쓰인 글귀들을 살펴보니 더욱 흥미로운 내력이 숨어 있었습니다.
우선 오른쪽의 작은 글씨(발문)에는 ‘이백의 등영롱산 시구를 써서 율동 학장에게 드린다(書李白登玲瓏山詩句以贈栗東學長)’라고 적혀 있습니다.      

문헌상 이 시는 분명 소동파의 시가 확실한데, 글을 쓴 서예가가 전해 내려오는 명구를 기억에 의존해 쓰다가 시인의 이름을 이백으로 착각하여 병기한 모양입니다. 고전 서예 작품에서 종종 발견되는 이 인간적인 실수가 오히려 작품에 묘한 옛 정취와 이야기성을 더해줍니다.    

한편, 왼쪽 아래에는 이 작품이 태어난 시기와 작가의 호가 선명하게 낙관되어 있습니다. ‘갑술년 단오절에 신희맹이 쓰다(甲戌端午節 辛希孟)’이라는 문구와 함께 붉은 인장이 찍혀 있는데, 이를 통해 신희맹이라는 서예가가 어느 갑술년 단오에 ‘율동’이라는 학원의 원장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 글을 정성스레 내려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갑술년'은 육십갑자에 따라 가장 가까운 시기로는 1994년 혹은 1934년 등 60년 주기로 돌아오는 해로, 그해 단오절인 음력 5월 5일에 쓴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글씨의 보존 상태와 서체 스타일로 보아 1994년쯤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책장 구석에서 발견한 오래된 서예 작품 한 장 덕분에, 나는 잠시 20여 년 전 북경 반가원 시장의 활기찬 풍경 속으로, 그리고 천 년 전 북송의 대문호가 거닐었을 공간으로 시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0위안이라는 가벼운 값으로 내 손에 들어왔던 이 한 폭의 글씨는, 긴 세월이 지난 지금 나에게 '유한함 속에서 머무름의 아름다움을 알라'는 인생의 묵직한 가르침을 건네고 있습니다.  
    
2. 두 번째 만남_ 탄천 인도교 갤러리(A footbridge gallery)    

집 부근 식당에서 두어 달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후 이번 주에 돌아갈 미국과 캐나다에 각각 거주하는 첫째, 둘째 처형들, 그리고 셋째부터 다섯째 막내 내외가 오찬을 함께 했습니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탄천의 '동방삭 인도교'를 지나다가 2026 성남예술문화제의 일환으로 다리 난간에 걸린 그림, 사진, 서화, 시 작품들이 눈에 띄어 하나하나 훑어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소동파 시'라는 서예 작품이 있어 사진에 담고 집에 들어와서 원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시는 북송(北宋)의 대문호 소동파가 여산(廬山)에 머물 때 깨달음을 얻고 지은 유명한 선시(禪詩)인 〈증동림총장로(贈東林總長老)〉의 구절이었습니다.    

쨍쨍하던 맑은 날이 갑자기 어둑해지며 천둥이 치고 비를 뿌리기 시작하네요. 오늘 저녁에는 초청 가수들의 공연 등 볼만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던데, 비가 문화제의 훼방꾼이 되지 않고 그치길 바라며, 소동파의 시를 아래 소개해 봅니다.    

溪聲便是廣長舌 (계성변시광장설)
山色豈非淸淨身 (산색기비청정신)
夜來八萬四千偈 (야래팔만사천게)
他日如何擧似人 (타일여하거사인)    

시냇물 소리가 바로 부처님의 드넓고 긴 혀(설법) 요,
푸른 산 빛이 어찌 부처님의 청정한 몸이 아니겠는가.
지난밤 동안 들려온 (자연의) 팔만사천 법문(偈頌)을,
훗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 들어 보일 수 있으랴.    

*주(註)
¹광장설(廣長舌): 불교에서 부처님의 32상 중 하나로, 거짓이 없고 진실한 설법을 베푸는 넓고 긴 혀를 뜻합니다. 즉, 소동파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곧 부처님의 위대한 설법이라고 느낀 것입니다.    

²청정신(淸淨身): 부처님의 진성(眞性)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말합니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 바로 부처님의 몸 그 자체라는 의미입니다. 26-06-14

중국 쓰촨성 메이산(眉山)시에 있는 소동파 석상
작품 속 각력(脚力)의 력(力)자는 얼핏 인(人) 자로 보인다.
청두 두보초당 앞 공원의 삼소(三蘇)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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