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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편린

올여름, 내 곁의 죽마고우(竹馬故友)

작성자약천|작성시간26.06.17|조회수28 목록 댓글 0

_묵향(墨香) 한 줄기, 바람 한 자락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왔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계절, 집 안의 에어컨은 일찌감치 필터를 갈고 청소를 마쳤으나 쉽게 리모컨에 손이 가지 않는다. 해마다 무섭게 치솟는 전기료 탓에, 에어컨을 켜는 일은 왠지 모를 큰 결심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참으로 편리해졌다. 집과 사무실은 물론, 출퇴근길에 몸을 싣는 지하철이나 주말에 찾는 백화점 등 공공시설치고 냉방시설이 완비되지 않은 곳이 없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얼음장 같은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 인류의 여름을 책임졌던 오랜 동반자들을 너무 쉽게 잊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름이면 사방탁자 옆을 지키던 죽부인, 살결에 닿는 촉감이 서늘하던 모시옷, 그리고 손때 묻은 부채 같은 것들 말이다.

​며칠 전부터 나는 출근길 접이식 부채를 하나 꺼내 손에 들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등 잠시라도 사무실 밖을 나설 때, 이 작은 부채 하나가 주는 위안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따가운 햇볕을 차단하는 가림막이 되어주기도 하고, 얼굴로 훅 끼쳐오는 후끈한 열기를 날려버리는 데에는 이만한 물건이 없다. 기계가 만들어내는 일률적인 찬 바람과 달리, 내 손목의 스냅을 따라 완급이 조절되는 부채의 바람은 어딘지 모르게 다정하고 자연스럽다.

​방 한구석, 깊숙이 넣어두었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특별한 추억이 깃든 또 하나의 부채를 발견했다. 서랍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던 그 녀석을 꺼내어 천천히 펼쳐보았다. 마른 대나무와 종이가 사락거리며 펼쳐지는 순간, 5년 전의 시간과 공간이 냄새처럼 밀려들었다.
​삼미서옥(三味書屋)에서 만난 한 줄기 바람​이 부채는 내가 상하이 주재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인 2021년 5월, 중국 소흥(샤오싱)을 방문했을 때 챙겨온 기념품이다.

소흥은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쉰(鲁迅)의 고향이다. 그곳에는 루쉰이 어린 시절 자라고 공부했던 생가, '루쉰 구거(鲁迅 故居)'가 보존되어 있다. 그 고풍스러운 생가에 딸린 '삼미서옥(三味書屋)'이라는 작은 기념품점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곳에서 나는 '루하이(汝海)'라는 노 서예가를 만났다. 그는 여행객들의 이름을 운자(韵字) 삼아 즉석에서 멋진 붓글씨 싯구를 지어 부채에 적어주는 예술가였다. 먼 이국땅에서 만난 서예가는 내 이름 석 자를 가만히 음미하더니, 이내 거침없는 필치로 부채의 코팅 처리한 직물제 선면 위에 묵향 가득한 글씨를 내려쓰기 시작했다.

​"张灯结彩 光灿烂 铉德高常 人钦偑"

​"등불을 밝히고 비단을 장식하니 그 빛이 찬란하고, 솥귀처럼 소중하고 높은 덕이 늘 함께하니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따르도다."

​자신의 이름이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되어 부채 위에서 피어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기묘하면서도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내 이름의 한자가 가진 뜻과 결을 살려, 앞날을 축복하고 덕을 기리는 문장을 즉흥으로 지어낸 그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채를 지탱하는 대나무 살에도 장인의 정성이 가득하다. 한쪽 대살에는 '루쉰 고리(鲁迅古里)'라는 문구와 함께 한 손에 시가를 든 루쉰의 모습이 정교하게 양각되어 있고, 반대편 대살에는 루쉰이 남긴 유명한 댓구(對句)가 새겨져 있다.

​"人生得一知己足矣, 斯世當以同懷視之"

​"인생에서 자신을 온전히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이 세상 사람들을 모두 같은 마음을 가진 이처럼 대하라."

​길이가 족히 30cm가 넘는, 묵직하고도 튼튼한 접부채이다. 검은 먹빛과 대나무의 은은한 향이 어우러진 그 부채는 단순한 피서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이자,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상하이 시절의 훈장 같았다.
아끼는 마음이 너무 과했던 탓일까. 나는 그동안 이 부채를 실생활에서 쓰지 못하고, 그저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었다. 오늘 다시 꺼내어 쥔 부채의 대살은 여전히 튼튼했고, 그 위에 적힌 글귀들은 여전히 노 서예가의 힘찬 필치가 꿈틀대고 있었다.

​옛사람들의 부채 사랑은 실로 유별났다. 옛 선현들이 부채를 사랑한 이유
​생각해보면 부채에 이토록 지극한 의미와 문학적 정취를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 부채는 단순히 땀을 식히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인품을 드러내는 장신구이자 마음을 전하는 가장 고결한 매개체였다.

​우리 선조들은 여름이 시작되는 단오(端午)가 되면 서로 부채를 선물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었다. '단오선(端午扇)'이라 불리는 이 풍습은 "여름 생색은 부채요, 겨울 생색은 달력이다(夏扇冬曆)"라는 속담에서 유래한다. 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에는 부채만큼 요긴하고 반가운 선물이 없다는 뜻이다. 임금은 신하들에게 장인이 정성껏 만든 부채를 하사했고, 양반과 서민을 막론하고 서로의 건강한 여름나기를 기원하며 부채를 주고받았다.

​특히 조선의 선비들에게 접이식 부채인 '접부채(절첩선)'는 의복의 완성치였다. 아무리 더운 여름날이라도 의관을 정제해야 했던 선비들은 손에서 부채를 놓지 않았다. 바람을 일으키기 위함도 있었지만, 부채를 쥐고 펴는 동작 하나하나에 선비로서의 기개와 여유를 담았기 때문이다.

​부채와 관련된 옛 고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중국 진(晉)나라의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 303~361)의 일화다. 왕희지 또한 샤오싱 출신으로 샤오싱의 서성고리(書聖古里)에 다음과 같은 일화를 알리는 조각상이 서있다.

어느 날 왕희지가 다리를 지나가는데, 한 노파가 대나무 부채를 잔뜩 벌려놓고 팔지 못해 울상을 짓고 있었다. 노파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왕희지는 붓을 들어 그 보잘것없는 대나무 부채마다 몇 글자씩 글씨를 써주었다.
노파는 "남의 귀한 부채에 낙서를 하면 어떡하느냐"며 화를 냈지만, 왕희지는 웃으며 "이 부채는 우군(왕희지의 관직명)이 글씨를 쓴 것이라 말하면 한 자루에 백 전을 받아도 팔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글씨가 적힌 부채라는 소문이 나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순식간에 부채가 동이 났다고 한다.

​또한, 고려 시대에 만들어져 중국으로 전파된 우리의 '고려선(高麗扇)'은 중국 상류층이 선호한 고급 공예품으로 대접받았다. 송나라의 학자 곽약허(郭若虛)의 《도화견문지(圖畫見聞志)》등 중국 문헌에는 고려 부채의 정교한 제작기술과 아름다운 장식이 언급되며, 고려선은 송대 상류층 사이에서 귀한 수입 공예품으로 인식되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전주와 남원 등지에서 만들어진 '합죽선(合竹扇)'은 대나무의 겉껍질 두 장을 맞붙여 만들어 튼튼하면서도 유연한 곡선미를 자랑했다. 선비들은 이 합죽선 위에 당대의 내로라하는 화가들에게 시를 받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 부채를 펼치는 순간, 손안에서 작은 산수화가 펼쳐지고 대나무 향과 묵향이 어우러진 바람이 불어왔으니, 이 얼마나 멋스러운 피서법인가.

​부채는 때로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이기도 했다. 성균관 유생들이나 은거하던 현인들은 마음에 미움이나 번뇌가 일어날 때, 부채를 천천히 저으며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혔다. 뜨거운 기운을 쫓아내는 부채의 기능이, 마음속의 뜨거운 번열(煩熱)을 쫓아내는 심상치(心象治)로 확장된 것이다.

부채를 들고 ​루쉰의 글귀를 다시금 들여다 본다. '인생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글귀. 세상을 다 가지려 버둥거릴 필요 없이, 내 마음을 온전히 알아주는 이 하나와, 나 또한 세상 사람들을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단단한 내면만 있다면 삶은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또한, 부채 위에 새겨진 루하이 선생의 즉석 시처럼, 내 안의 '높고 소중한 덕'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삶은 스스로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올여름은 기상청의 예보대로 유난히 무더위가 극성을 부릴 모양이다. 벌써부터 기세를 올리는 불볕더위에 지레 겁이 나기도 하지만, 올해만큼은 마냥 두렵지만은 않다. 서랍 속에서 오랜 잠을 깬 이 부채가 든든한 죽마고우(竹馬故友)처럼 내 옆을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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