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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자료

조선은행 보험회사 동양척식주식회사

작성자우렁각시|작성시간12.11.11|조회수239 댓글 0

 

조선은행과 보험회사

 

1911년 8월 15일 일제는 <한국은행>을 <조선은행>으로 고쳤다.

이로써 조선은 완전히 일본의 통화권 안에 포함되었다. <조선은행>은 조선의 산업을 예속시키기 위해 산업금융기관을 계통화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농공은행>과 <조선식산은행>등의 설립이다.

 

1909년 착공되어 1912년 완공된 <조선은행>은 총독부 직속 금융기관으로, 수탈경제의 최정점에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은행권은 1917년 이후 만주에서도 통용되었다.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킨 후 조선은행은 만주는 물론 몽고와 중국 화북지방에까지 영업망을 넓혔다. 제국주의 침략의 확대 과정에 발맞추어 성장해 간 전형적인 제국주의 금융기구였다.

 

우리 나라 최초의 보험회사 1908년 2월에 설립된 <동양화재보험주식회사>였다. 주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였다. 일제 강점 이후 일본의 보험업이 본격적으로 진출해오기 시작하였는데,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 보험회사는 1932년을 기준으로 생명보험회사 22개, 손해 보험회사 27개에 이르렀다.
조선에 들어온 일본보험업계는 악착같은 수법을 동원하여 조선금융에 대한 지배권을 확장하고자 하였다.

 

한국인 보험회사로는 1922년 10월에 설치된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가 있었다. 초대사장은 민병석(閔丙奭)이었다.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조선은행 발행 화폐

 

동일은행

 

1931년 <한일은행>과 <호서은행>을 합병하여 만든 “민족계 은행”이다.

운영에는 민대식(閔大植) 등 민씨들이 주로 참여하였다.

1943년 일제는 <한성은행>과 <동일은행>을 합병하여 “조흥은행”을 만들었다. 이로써 조선인 은행은 완전히 없어졌다.

▲조흥은행(朝興銀行) 의정부 중앙로에 있었던 의정부지점

 

농공은행 본점 영업실(1920년대)

 

일본생명보험회사 사옥(1922)

 

폭탄 세례를 받은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제의 대표적인 경제 수탈기구였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를 독점 착취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대부와 토지 약탈과정에서 민중의 원성 대상이 되었다.

 

1926년 12월 28일 의열단원 나석주(羅錫疇)는 <조선식산은행>에 폭탄 1개를 던졌으나 불발되자, 바로 큰길을 건너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로 들어가 일본인 직원 수 명을 사살하고 폭탄을 투척했다 그러나 이 폭탄 또한 불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경찰과 총격적인을 벌인 나석주는 최후의 순간 자신의 가슴에 세 발의 탄환을 쏘아 장렬하게 자결하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일본의 국책회사로 서울에 정식 설립된 것은 1908년 12월 30일이었다. 지금의 롯데백화점(〔구〕메트로 미도파 백화점)자리에서 조그맣게 본점을 차린 동양척식주식회사는 그 후 을지로 2가 지금의 외환은행 본점자리로 옮겼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본점이 새로 들어서면서 이 건물은 남산의 통감부 건물과 같은 구조, 같은 크기로 규모가 커졌다. 1917년 10월 본점을 동경으로 옮기고 서울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그 지점이 되었다.

조선식산은행

1918년 옛 농공은행을 흡수해 설립된 조선식산은행은 지금의 롯데백화점 자리에 있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현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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