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정무총감(朝鮮總督府政務總監)

작성자우렁각시|작성시간13.03.09|조회수1,183 목록 댓글 0

 

          

        조선총독부 정무총감(朝鮮總督府政務總監)

             

 

 

정무총감 政務總監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의 총독에 버금가던 관리

 조선총독부의 직위로 조선 총독의 아래에서 군사통수권을 제외한 행정, 사법을 통괄하던 직책이다. 전신은 한국통감부의 부통감이다.

 

  ◈◈◈◈◈◈◈◈◈◈◈◈◈◈  역대 정무총감   政務總監  ◈◈◈◈◈◈◈◈◈◈◈◈◈◈
   제 1대    

  

   야마가타 이사부로

   山縣伊三郎  やまがた いさぶろう

  재임 기간 1910년 10월 1일∼ 1919년 8월 12일

 

  출생사망  일본 제국 1858년 2월 6일 ~ 1927년 9월 24일) 69세

     관료, 정치가 공작

  1910년에는 한국통감부 부통감이 되었고

   한일합 조약 이후에는 총독부 설치와 함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하세가와 요시미치

   [長谷川好道] 두 총독 밑에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되어 조선에 식민지 지배체제를 구축했다 

   중추원 의장도 역임하였다.

   제 2대   Mizuno Rentaro.jpg

   미즈노 렌타로

  水野 錬太郎 みずの れんたろう

  재임 기간 1919년 8월 12일∼1922년 6월 12일

 

   출생사망  일본 제국 1868년 2월 3일 ~ 1949년 11월 25일)

    정치가, 내무대신

  일본에서는 저작권법을 제정할 때 저작권 보호를 추진한

  인물로 유명한 반면, 한국에는 간토 대지진 당시 내무대신

  으로 조선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악감정을 조장해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1920년, 사이토 마코토 신임 총독과 함께 조선을 찾았는데,

  남대문역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가 강우규가 미즈노와

  사이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지만 미즈노가 다치는 데에서

  그쳤다.

   제 3대         

   아리요시 주이치

   有吉忠一  유길충일 ありよし ちゅういち

  재임 기간 1922년 6월 12일 ∼1924년 7월 4일

 

  출생사망  일본 제국 1873년 6월 2일 ~ 1947년 2월 10일

 

  1922년부터 1924년까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조선사

  편찬위원회의 위원장을 겸임하였다. 학부대신과

  총리대신을 지낸 중추원 부의장 이완용(李完用)을 

  고문으로 추대했다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의

  위원장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아리요시(有吉忠一)와

  시타오카(下岡忠治)였다

   제 4대      

   시모오카 주지

  下岡忠治  しもおか ちゅうじ

  재임 기간 1924년 7월 4일∼ 1925년 11월 22일

   

  출생사망  일본 제국 1870년 9월 29일 ~ 1925년 11월 22일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으로 취임하였으며 철도국장사무

  취급등을 겸직하였다.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의

  위원장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아리요시(有吉忠一)와

  시타오카(下岡忠治)였다 1925년 11월에 현직에서 사망

  하였다.

  제 5대           

  유아사 구라헤이

  湯浅 倉平  ゆあさ くらへい 유아사 쿠라헤이

 재임 기간 1925년 11월 22일 ∼1927년 12월 23일

 

   출생사망  일본 제국  1874년 2월 1일 ~ 1940년 12월 24일

    총독부 2인자 ·정치인· 남작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시절

   제 6대       

   이케가미 시로

   池上四郎  いけがみ しろう

  재임 기간 1927년 12월 23일 ∼1929년 4월 4일

 

   출생사망  일본 제국 1857년 5월 11일 ~ 1929년 4월 4일)

      제6대 오사카 시장

 

  형은 검사 이케가미 사부로(池上三郎)이며 사위는 내무성

  관료 이시가와 긴조(石川銀蔵)이고

  아키시노노미야 기코(文仁親王妃紀子)가 증손이다.

            아키시노노미야 기코

   제 7대    

  고다마 히데오

  兒玉 秀雄, こだま ひでお

  재임 기간 1929년 4월 4일 ∼ 1931년 6월 19일

   

   출생사망  일본 제국 1876년 7월 19일 ~ 1947년 4월 7일  

     정치인

 

  러일 전쟁에서 활약한 군인으로 유명한 고다마 겐타로의

  큰 아들이며, 그의 부인은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딸이었다.

   제 8대    

   이마이다 기요노리

  今井田清徳  いまいだ きよのり

  재임 기간 1931년 6월 19일 ∼ 1936년 8월 5일

   

   출생사망  일본 제국 1884년 2월 1일 ~ 1940년 5월 8일)

   정치인, 귀족원 의원

   제 9대    

   오노 로쿠이치로

   大野緑一郎  おおの ろくいちろう

  재임 기간 1936년 8월 5일 ∼1942년 5월 29일

 

   출생사망  일본 제국 1887년 10월 1일 ~ 1985년 9월 2일

  변호사

 

  제82대・제83대 내각총리대신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의 외조부이다.

   제10대     

   다나카 다케오

   田中武雄 たなか たけお

   재임 기간 1942년 5월 29일∼ 1944년 7월 24일

 

   출생사망  일본 제국 1891년 1월 17일 ~ 1966년 4월 30일

    정치가

    제11대      

  엔도 류사쿠

   遠藤柳作

  재임 기간 1944년 7월 24일∼ 1945년 10월 24일

 

 

   출생사망  일본 제국 1886년 3월 18일 ~ 1963년 9월 18일

    일본 무사시노 은행의 설립자  정치가, 변호사

 

 

 

 ◇ 조선총독부 정무총감(朝鮮總督府政務總監)의 전신은 한국통감부의 부통감이다.

   통감부(統監府) the Residency-General

일제가 조선통치를 위해서1905년 11월 제2차 한일협약( 을사조약 )에  따라1910년2월 1일 통감부설치하고 1910년 한일합병시까지 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행사했기  일제가 식민 지배를 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울에 두었던 기관이다

※통감부는 을사조약 이후 일본이 만든 기구,총독부의 전신

※총독부는 한일합병 후, 조선 통치를 위해 생긴 기구

통감부(統監府)는 일본 제국이 을사조약을 체결한 뒤 대한제국 한성부에 설치했던 관청이다. 한국통감부 또는 조선통감부라고도 한다.

       ◈◈◈◈◈◈◈◈◈◈◈◈◈◈◈◈    역대 조선통감(朝鮮監府)  ◈◈◈◈◈◈◈◈◈◈◈◈◈◈◈◈ 

     제1대 :이토 히로부미   ( 伊藤博文いとうひろぶみ) 

 

 통감 임기

  ;1906년 3월 3일 ~ 1909년 6월 14일

 

출생사망;1841년 10월 16일 ~ 1909년 10월 26일

    제2대 : 소네 아라스케    (曾禰荒助, そね あらすけ)

 

통감 임기

   ;1909년 6월 14일 ~ 1910년 5월 30일

 

출생사망;1849년 2월 20일 ~ 1910년 9월 13일

    제3대 : 데라우치 마사타케  (寺内 正毅 ,てらうち まさたけ, 사내정의)

 

통감 임기 (육군대신 겸임)

     ;1910년 5월 30일 ~ 1910년 8월 29일

 

출생사망;1852년 2월 24일 ~ 1919년 11월 3일)


“ 조선인은 일본통치에 복종하든지 죽든지 하나를 택해야 한다. ”

 — 총독 취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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