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와 타이완 총독부

작성자우렁각시|작성시간13.03.09|조회수582 목록 댓글 0

                        

                           조선총독부와 타이완 총독부

                       

 

◈조선총독부(구자체: 朝鮮總督府, 신자체: 朝鮮総督府)

1910년 8월 29일 ~ 1945년 8월 15일

 

파일:Korean Government-General Office.JPG

↑경복궁 조선총독부 청사(현재 철거된 상태)

 

1910년 경술국치에서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제국주의에 바탕 한 일본이 패망하여 광복하기 까지 한반도에 대한 식민 통치를 위해 설치한 기관이다. 소재지는 당시 경기도 경성부(현재 서울특별시)에 있었다. 한국통감부(韓國統監府)를 전신으로 하여 1910년에 설치되었으며 초대 조선총독으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취임하였다. 1914년 3월 1일에 조선총독부령 제111호(1913년 12월 29일 공포)를 통하여 지방 행정 조직을 개편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45년에 38선 이남 지역을 미군정에게 인계할 때까지 한반도를 강압 통치한 후 해체되었다.

 

■조선총독부 조직

조선총독부는 1910년 10월 2일부로 조선 16도의 관찰사를 도장관으로 명칭을 바꿨다가 1912년부터 도지사로 바꾸었다. 또한 도지사 아래 부지사를 두어 도지사의 업무를 보좌하게 했고, 이방, 호방, 예방 등 각 방을 근대식 각 국과 과로 나누었다. 또한 규모가 큰 부에는 국장급을, 작은 부에는 과장급만을 두어 예하 행정체계를 구성하게 했다. 행정기관은 면리제와 동제, 오가작통법에 의한 통반제였던 것을 도시지역은 동(洞) 대신 일본식 행정구역 명칭인 정(町)을 쓰게 하였다. 또한 부 중에서도 규모가 큰 부는 다시 몇개의 동을 묶어 한개의 구(區)로 나누었다.

관료의 채용은 향리가 세습하던 것을 폐지하고 공개채용 시험과 고등관 시험, 판임관 시험 등의 채용시험으로 전환하였다. 관료들의 직위는 군속, 면속으로 칭하고, 기수(서기), 기사, 주사, 사무관, 서기관 등의 직위를 적용하고 차등으로 월급을 지급하였다. 또한 헌병과 경찰의 수사, 검열 등의 편의를 위해 조선인 출신의 순사보조원과 헌병보조원 등의 사무보조원을 채용해서 썼다.

 

 

                                  조선총독부 조직                            직제
    1910년 10월 1일 제정

   ▶ 총독관방 - 비서과, 무관실

   ▶ 장관관방 - 서무계,

                      회계계(會計係)   

   ▶ 내무부 - 지방계, 권업계,

                    학무계

           ▷서무과

           ▷지방국 - 지방과,

                            토목과,

                            위생과

           ▷ 학무국 - 학무과,

                             편집과

    ▶ 재무부 - 세무계, 이재계

    ▶ 총무부 - 외사국, 인사국,

                     회계국, 문서과

    ▶ 도지부

           ▷ 서무과

           ▷ 세관공사과

           ▷ 사세국 - 세무과,

                            관세과

           ▷ 사계국 - 예산결산과,

                             재무과

    ▶ 농상공부

           ▷ 서무과

           ▷ 식산국 - 농무과,

                            산림과,

                            수산과

           ▷ 상공국 - 광무과

                           (鑛務課),

                           상공과

    ▶ 사법부 - 서무과, 민사과,

                     형사과

         

      1919년 8월 20일 개정

  계(係)를 과(課)로 개정했다.

  지사관방(장관관방을 개정)

  제1부

  제2부

  제3부 - 경무과, 고등경찰과,

             보안과, 위생과

  종합

    ▶ 총독관방(総督官房)

    ▶ 총무부(総務部)

          ▷ 인사국(人事局)

          ▷ 외사국(外事局)

          ▷ 회계국(会計局)

                      - 경리과, 영선과

          ▷문서과(1910년 개정)

          ▷내무부(内務部)

          ▷서무과(1910년 개정)

          ▷지방국(地方局)

                   - 지방과, 토목과,

                  위생과(1910년 개정)

           ▷학무국(学務局)

                 - 학무과,

                  편집과(1910년 개정)

    ▶ 도지부(1910년 개정)

           ▷서무과

           ▷세관공사과

           ▷사세국 - 세무과,

                  관세과(1910년 개정)

           ▷사계국 - 예산결산과,

                  재무과(1910년 개정)

    ▶ 탁지부(度支部)

           ▷사세국(司税局),

           ▷ 사계국(司計局)

    ▶ 농상공부(農商工部)

           ▷서무과(1910년 개정)

           ▷식산국(殖産局)

              - 농무과, 산림과,

                수산과(1910년 개정)

            ▷상공국(商工局)

                 - 광무과(鑛務課),

                 상공과(1910년 개정)

    ▶사법부(司法部)

               - 서무과,민사과,

               형사과(1910년 개정)

   ▶ 중추원 - 서무과, 조사과,

                    편찬과

    ▶ 취조국(1910년 10월 설치,

     1912년 폐지, 참사관실 대치)

  

   ▼ 총독

   ▼ 정무총감

   ▼ 장관 : 각 부의 장

   ▼ 국장 : 각 국의 장

   ▼ 참사관 : 2명

   ▼ 비서관 : 2명

   ▼ 서기관 : 19명

   ▼ 사무관 : 19명

   ▼ 기사 : 30명

   ▼ 통역관 : 6명

   ▼ 기수 : 337명

   ▼ 통역생

   ▼ 총독부 무관  : 육해군

             소장 또는 좌관(영관급)

   ▼ 부속부관 : 육해군 좌관

 

3·1 운동의 불씨가 남아있던 1922년 순사직 경쟁률은 약 2.1대 1 수준에 불과했으나 문화정치가 본격화한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그 경쟁률이 10대 1을 웃돌았다. 1926년에는 856명 모집에 9천193명이 지원, 약 10.7대 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1932년에는 854명 모집에 1만6천193명이 지원해 19대 1로 경쟁률이 수직 상승했다.[4] 순사 등에 대한 19.6대 1로 정점을 찍은 1935년 이후 순사에 대한 선호는 1936년 14.1대 1, 1937년 10.9대 1로 내리막길을 걸었으나 1920년대 중반부터 태평양 전쟁 이전까지 경쟁률이 10∼20대 1에 이를 정도로 순사직이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4] 이를 두고 연세대학교의 장신은 "순사는 조선인 사회에서의 좋지 못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법률로 보장된 권한 탓에 해마다 높은 지원율을 보였다"고 지적하면서 "관리의 최말단인 까닭에 지원자의 학력 수준은 보통학교 졸업자가 80% 정도를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통감부(統監府)는 일본 제국이 을사조약을 체결한 뒤 대한제국 한성부에 설치했던 관청이다.

                              한국통감부 또는 조선통감부라고도 한다.

조선총독부 정무총감(朝鮮總督府政務總監)은 조선총독부의 직위로 조선 총독의 아래에서 군사

                   통수권을 제외한 행정, 사법을 통괄하던 직책이다. 전신은 한국통감부의 부통감이다.

 

◈타이완 총독부(台湾总督府) 1895년 5월 10일 ~ 1945년 10월 25일

(중국어: 臺灣總督府/台湾总督府, 일본어: 台湾総督府 (たいわんそうとくふ)) 또는 대만 총독부

청일 전쟁의 결과로 청나라로부터 할양된 타이완을 통치하기 위하여 설치된 일본 제국의 식민 통치 기관이다. 중앙 기관 소재지는 타이베이 시(臺北市)이며, 1895년 5월 10일에 설치되어 1945년 10월 25일에 폐지되었다. 타이완 총독부의 청사는 현재 중화민국 총통부로 사용되고 있다.

 

타이완 총독부는 1895년(메이지 28년)에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로부터 1945년(쇼와 20년)의 일본의 항복까지 타이완을 통치한 기관이다. 타이완 총독은 타이완의 행정·사법·입법·군사에 대한 모든 권한을 행사하였다. 이후에 군 지휘권이 타이완 군사령관에게 이관되어 문관 출신의 총독 취임이 가능해졌다. 타이완 총독은 내각총리대신의 지휘 감독을 받았으며, 이후에는 내무대신이나 탁무대신 등의 지휘 감독을 받게 되었다. 궁중 석차에서도 조선 총독은 제6위인데 비하여 타이완 총독은 친임관으로서 제11위로 육해군대장이나 추밀고문관보다도 지위가 낮았다.

 

초대 총독은 가바야마 스케노리이며 처음에는 육해군 장관급 출신의 무관이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제4대 총독 고다마 겐타로 아래에서 1898년에 민정장관으로 취임한 고토 신페이는 토지 개혁, 전기 수도 공급 시설·교통 시설·정보 시설의 정비, 아편 중독 환자의 박멸, 학교 교육의 보급, 제당업 등 산업의 육성 등을 통하여 타이완의 근대화를 추진하였고, 한편으로는 식민 통치에 대한 반역 행위자를 단속하면서 식민 통치 체제를 확립하였다.

 

파일:Government-general of Taiwan.jpg

↑타이완 총독부 청사 (현재 중화민국 총통부로 사용)

 

◇중화민국 총통부(中華民國 總統府, 중국어: 中華民國總統府/中华民国总统府)는 중화민국 (대만) 타이베이 시에 위치해 있는 총통의 관저이다.

 

타이완

 

타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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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명 : 대만台湾   영문국가명 : Taiwan타이완

공식명칭 :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
인구 : 22,815,000
면적 : 36,188
수도 : 타이베이
정체·의회형태 : 공화제, 다당제, 단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 : 총통/ 행정원장
공식 언어 : 중국어
독립년월일 : 1945. 10. 25
화폐단위 : 신타이완달러(New Taiwan dollar/NT$)
국가(國歌) : San Min Chu-I

 

중화민국(Republic fo China) 또는 타이완 국민정부가 통치하고 있는데, 그들은 중국 본토 전체에 대한 관할권도 주장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섬은 타이완 지역 혹은 타이완 지구가 된다. 반면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역시 타이완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다. 두 정부 모두 타이완이 중국의 1개 성(省)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타이완 섬은 태평양상의 북회귀선에 걸쳐 있다. 1949년 이래 타이베이[臺北]는 국민정부에 의해 임시수도로 지정되었다. 성도(省都)는 중싱신춘[中興新村]이다. 남북길이 약 395km, 동서길이 약 145km에 이르며, 북쪽은 동중국해, 동쪽은 태평양, 남쪽은 바시 해협, 서쪽은 타이완(포르모사 Formosa. 중국 본토의 남동 해안에서 160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 해협과 맞닿아 있다. 면적 36,188㎢, 인구 22,569,000(2003 추계).

 

                           조선총독부의 휘장                  타이완 총독부의 휘장

            

               

                     

 

                   

                               타이완 총독의 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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