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09-01 통감부(統監府)에서 신한국보(新韓國報) (미주美洲 포와布哇 발행發行) 제(第107·108 호(號)와 포와한인교보(布哇韓人敎報)

작성시간19.09.30|조회수9 목록 댓글 0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1권 > 1910년 9월 1일 > 統監府에서 新韓國報(美洲布哇發行)


   연월일      1910년 09월 01일

   주제분류    문화,학술 > 언론,출판 > 검열,탄압 > 기타검열탄압

   출전          朝鮮總督府官報 1910.9.6 每日申報 1910.9.3


統監府에서 新韓國報(美洲 布哇 發行) 第107·108號와 布哇韓人敎(美洲 布哇 發行) 第5卷 第7號를 치안 방해 이유로 발매 분포를 금지하고 압수하다.


          朝鮮總督府官報 1910.9.6

      每日申報 1910.9.3


통감부(統監府)에서 신한국보(新韓國報) (미주美洲 포와布哇 발행發行) 제(第107·108 호(號)와 포와한인교보(布哇韓人敎報) (미주美洲 포와布哇 발행發行) 제5권(第5卷) 제7권(第7號)를 치안 방해 이유로 발매 분포를 금지하고 압수하다.



포와(布哇) 

*원어 항목명 / 영문 ; Hawaii (하와이)

*지역 ; 미국 하와이주


■ 포와(布哇)

개항기 미국령 하와이를 한자어로 표기하여 사용한 지명.


개설

포와(布哇)는 근대 개화기 중국과 일본이 미국령 하와이(Hawaii)를 표기한 한자어다. 포와는 대한 제국기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광복 이후 1960년대까지 공식 문서에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예를 들어 1904년 11월부터 하와이 감리교 선교부와 하와이 한인감리교회가 하와이 한인들의 교회 소식지를 『포와한인교보』라는 월간 교회 소식지[등사판]로 발간하여 각 농장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대한 제국기 공문서에서도 하와이를 포와로 표기하였다. 2016년에는 인천의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한국의 공식 이민의 출발지였던 인천 개항장을 도보로 답사하는 프로그램 ‘포와로 가는 길’을 운영하면서, 하와이의 옛 지명인 포와를 사용하였다.


명칭 유래

포와(布哇)는 근대 개화기 중국과 일본이 미국령 하와이를 표기한 한자어에서 유래하였으며, 대한 제국기에 널리 사용하였다.



형성 및 변천

하와이는 왕국(王国), 공화국(共和国)을 거쳐서, 1898년 아메리카합중국으로 합병되었고, 1959년 8월 21일 알래스카에 이어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하와이[포와]주는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한다. 하와이섬 남단의 사우스케이프[南串]는 북위 19°에 위치한다. 주도(州都)는 오아후섬의 호놀룰루이다. 북태평양의 동쪽에 있는 하와이 제도[별칭 샌드위치 제도]는 니하우·카우아이·오아후·몰로카이·라나이·마우이·카호올라웨·하와이 등 8개 섬과 100개가 넘는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 포와한인교보

*한자 ; 布哇韓人敎報

*원어 항목명 ; The Hawaiian Korean Advocate

*영문 ; The Hawaiian Korean Advocate

*분야 ; 종교/기독교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 미국 하와이주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정의

1904년 11월부터 하와이 감리교 선교부와 한인감리교회가 간행한 교회보로 『한인교회보』의 전신.


개설

『포와한인교보』의 시작은 1904년 11월 하와이 감리교 선교부와 한인감리교회가 발행한 월간 교회 소식지였다. 1905년 11월부터 주간으로 발행되었고 성경 지식과 신앙적 내용은 물론 각종 지식과 다양한 한인 소식을 담아 각지의 한인 교회로 발송되었다. 1914년부터 제호가 『한인교회보』로 변경되었고, 1929년부터 1945년 1월까지 한·영 이중 언어로 발행되었다.


창간 경위

『포와한인교보』의 전신은 정확한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1904년 11월부터 하와이 감리교 선교부와 한인감리교회가 간행한 월간 교회 소식지다. 이 월간 소식지는 등사판으로 발간되어 각 한인 교회로 발송되었고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판매되었다. 1905년 11월부터 『포와한인교보』를 등사판 인쇄로 매주 발행하였으며, 1906년 5월에는 한국에서 식자기를 들여와 좀 더 향상된 품질의 교회보를 발행하였다.


형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포와한인교보』는 1907년 9월호로, 표지에 태극기 문양 4개와 성조기와 태극기가 두 쌍씩 그려져 있다. 『포와한인교보』는 교회 소식지로 논설, 주일 성경 공과, 교회 소식, 한국 소식, 호놀룰루 소식 등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였다. 하와이 한인들에게 성경 지식과 신앙적 내용은 물론 각종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용 매체로 활용되었다.


변천과 현황

『포와한인교보』는 1913년 재정 문제로 폐간될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고, 이후 감리교 선교부가 출판 비용을 담당하고 성경 공과만 실어 배포하였다. 그 외 논설, 하와이 교회 소식, 일반 소식이나 독자들의 기고문 등은 『태평양주보』에 실리게 되었다. 1914년 4월부터는 제호를 『한인교회보』로 바꾸었다.


의의와 평가

『포와한인교보』는 하와이 감리교의 교회보로서 가장 오래 독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민찬호선생 징집카드 '한국국적' 표기, '일본국적' 이승만과 대조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미국 체류시절 국적을 일본으로 표기한 것과는 달리 동시대 절대 다수의 미주한인들은 국적을

  한국(Korea)으로 표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국가기록원과 고문서보관 사이트 엔시스트리닷컴(Ancestry.

  com)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독립운동가 박용만 선생과 민찬호 선생을 비롯, 하와이와 LA 지역의 한인들이 제출한

  1차세계대전 징집카드 중 90%가 국적란에 'Korea'로 표기했고 나머지는 'China', 드물게 'Japan'으로 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국적을 한국으로 표기한 민찬호 선생의 징집카드. 직업은 목사(Minister), 주소지를 LA에

  주소지를 둔 한국선교회 소속으로 기재했다

  민찬호선생은 일제 강점기 미국 하와이주에서 민족 교육과 독립을 위해 활동한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이시다.



1910년 10월 17일 (月 음력,1910.9.15)

경무총감부(警務總監部)에서는 신한민보(新韓民報) 第198號(美國 샌프란시스코우 사아크라멘호 가(街) 최정익(崔正益) 발행) 및 신한국보(新韓國報) 第114號(美國 하와이 노재호(盧在浩) 발행)를 치안 방해를 이유로 발매 반포를 금지하고 압수하다.


1910년 10월 27일 (木) 음력,1910.9.25

신한국보(新韓國報) 第115.116號와 大道 第2卷 第2號 발매 반포금비,압수됨


1910년 11월 2일 (水) 음력,1910.10.1

경무총감부(警務總監部)에서는 신한민보(新韓民報) 第200號 신한민보(新韓民報) 第117號는 치안방해(治安妨害)를 이유로 발매 반포를 금지하고 압수하는 한편 잡지 조선(朝鮮) 第33號도 치안방해 이유로 발매분포를 금지하고 차압함과 동시에 발행 정지하다.


1910년 11월 22일 (火 음력,1910.10.21)

경무총감부(警務總監部)에서는 신한민보(新韓民報) (10월 26일 발행) 제203호와 신한국보(新韓國報) (11월 8일) 제120호를 치안 방해를 이유로 발매 반포를 금지하고 압수하다


1910년 12월 15일 (木 음력,1910.11.14)

경무총감부(警務總監部)에서는 신한국보(新韓國報) 제121호, 제122호, 제123호를 치안 방해를 이유로 발매 분포를 금지시키고 이를 압수하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