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水滸誌), 혼돈의 시대를 이끌다 (366)
■ 9권 피흘려 닦아가는 충의의 길 (18)
제9-6장 동경으로 돌아간 호걸들 (3)
송강이 위승성에 머문 지 이틀 후, 탐마가 달려와 보고하였다.
“관승 등이 유사현에 당도하여 삭초·탕륭과 함께 안팎으로 협공하여 북군 장수 방학도를 죽였습니다. 북군 가운데 죽은 자가 5천여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투항하였습니다.”
송강은 크게 기뻐하면서 여러 장수들에게 말했다.
“형제들의 노력 덕분에 역적을 평정하는 공을 세울 수 있게 되었소.”
여러 장수들의 공로와, 장청과 경영이 수괴를 사로잡고 역적의 소굴을 쳐부순 큰 공을 자세히 기록하게 하였다.
사나흘이 지난 후, 관승의 병마가 당도하고, 또 진안무의 병마가 당도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송강은 장수들을 거느리고 성을 나가 영접하였다.
인사를 마치고, 진안무가 칭찬하며 말했다.
“장군들은 5개월 동안에 세상에 드문 공을 세웠습니다. 역적의 수괴를 사로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경성으로 표문을 올려 승전을 아뢰었습니다. 조정에서는 필시 무거운 관작을 내릴 것입니다.”
송강은 재배하고 감사하였다.
다음 날, 경영이 송강을 찾아와서, 태원의 석실산으로 가서 부모의 유해를 찾아 매장하고 싶다고 아뢰었다.
송강은 즉시 장청과 섭청도 함께 가라고 명하였다.
송강은 진안무에게 아뢴 뒤, 전호의 궁전과 호화로운 전각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또 창고를 열어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백성들을 구제하고, 숙태위에게 보내는 서신과 조정에 올리는 표문을 써서 대종으로 하여금 가지고 가게 하였다.
대종은 표문과 서신을 가지고, 진안무가 보내는 관원과 함께 동경으로 갔다. 대종은 먼저 숙태위의 부중으로 가서 양우후를 찾아 서신을 전달했다.
숙태위는 서신을 받아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다음 날 아침 조회 때 진안무가 보낸 표문을 올리면서 송강의 승전을 천자께 아뢰었다.
도군황제는 용안에 기쁜 빛을 띠면서 송강 등이 뒤처리를 마치고 동경으로 돌아오면 관작을 봉하겠다는 칙령을 내렸다.
대종은 그 소식을 듣고, 즉일로 숙태위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동경을 떠나 다음 날 위승성에 당도하여 진안무와 송선봉에게 보고하였다.
진관과 송강은 전호·전표·전표는 동경으로 압송하되, 그 외에 생포한 역도들은 모두 위승의 저자거리에서 참수하였다.
아직 수복하지 못한 곳이 진녕에 속한 포현과 해현이었는데, 그곳의 가짜 관원들이 전호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절반은 도망가고 절반은 자수해 왔다.
진안무는 자수한 자들은 모두 양민으로 돌아가게 하고, 방을 내붙여 백성들은 안무하였다.
역적을 따랐던 무리들 중에 남을 해치지 않은 자들은 자수나 투항을 허락하여 양민으로 돌아가게 하고 원래의 재산과 전답을 돌려주었다.
모든 고을들이 다 회복되자, 관군들을 보내 경계를 지키고 백성을 안정시켰다.
한편, 도군황제는 칙서를 하북의 진관에게 보냈다.
다음 날 조정에서 무학(武學)이 열려 백관이 모두 모였는데, 채경이 윗자리에 앉아 병법을 얘기했다.
백관이 모두 두 손을 맞잡고 듣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 관원이 얼굴을 들고 천장만 쳐다보면서 채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다.
채경이 크게 노하여 병법을 얘기하다가, 자신의 말은 듣지 않고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 관원에게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관원이 대답했다.
“저의 이름은 나전이며, 운남군 달주 사람입니다. 지금 무학유(武學諭)를 맡고 있습니다.”
채경이 노기가 치밀어 막 발작하려고 하는데, 천자의 어가가 당도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채경은 할 수 없이 나전을 내버려두고, 백관을 거느리고 어가를 영접하였다.
백관이 천자에게 절하고 만세를 세 번 부른 뒤, 도군황제가 병법을 강론하였다.
황제의 강론이 끝나자, 무학유 나전이, 채경이 말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무학유 소신 나전이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회서의 역적 왕경이 반역한 정황을 폐하께 아룁니다.
왕경이 회서에서 반란을 일으킨 지 5년이 되었는데, 관군은 그를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관과 채유가 성지를 받들어 역적을 토벌하러 회서에 갔다가 전군이 몰살당했는데, 죄가 두려워 은닉하고 있습니다. 군사들이 풍토를 이기지 못해 잠시 전쟁을 멈추었다고 폐하를 속임으로써, 큰 우환을 기르고 있습니다. 왕경의 세력은 더욱 창궐하여, 지난달에는 신의 고향인 운남군을 깨뜨리고 노략질과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데 그 참혹함을 차마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왕경은 8개의 군주(軍州)와 86개의 주현(州縣)을 점거하고 있습니다.
채경은, 그의 아들 채유가 군대를 잃고 나라를 욕되게 했는데도, 오늘 어가가 당도하기 전에 오히려 윗자리에 뻐기고 앉아 병법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큰소리를 치면서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니, 미친 것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폐하께서는 속히 채경 등 나라를 그르친 적신(賊臣)들을 죽이시고, 장수를 선발하고 군대를 일으켜 역적을 토벌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고 사직을 보전한다면, 신민들에게도 다행이요 천하도 다행일 것입니다.”
도군황제는 나전의 상주를 듣고 크게 노하여, 채경 등이 은닉한 죄를 크게 꾸짖었다. 하지만 채경 등은 교묘한 말로 둘러대, 천자는 벌을 내리지 않고 궁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박주태수 후몽이 동경에 와서, 동관과 채유가 군대를 잃고 나라를 욕되게 한 죄를 상주문으로 써서 올렸다. 그리고 송강을 천거하였다.
“송강 등은 재능과 도략이 남들보다 뛰어나 누차 대단한 공을 세웠습니다. 요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왔으며, 또 하북을 평정하여 지금 개선가를 부르며 회군하고 있습니다.
지금 왕경이 창궐하고 있으니, 폐하께서는 조칙을 내리셔서 송강 등의 지난 공을 포상하시고 회서를 토벌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필시 큰 공을 세울 것입니다.”
휘종황제는 즉시 성원(省院)에 명을 내려 송강 등에게 관작을 내릴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성원관은 채경 등과 상의한 다음 천자께 아뢰었다.
“왕경이 완주를 깨뜨려, 어제는 우주·재주·내현 세 곳에서 위급을 알리는 공문이 올라왔습니다. 이 세 곳은 동경에 속한 고을로서 동경과 가깝습니다.
폐하께서는 칙명을 내려, 진관과 송강 등은 동경으로 돌아오지 말고 군마를 거느리고 우주 등으로 가서 돕게 하십시오. 신들은 후몽을 행군참모로 천거합니다. 그리고 나전도 평소에 도략이 있으므로, 후몽과 함께 진관의 군대로 가서 명을 듣게 하십시오.
송강 등이 지금 정벌 중이기 때문에 관작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회서를 정벌하고 돌아오면 다시 의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래 채경은, 왕경의 병사들이 강하고 장수들이 용맹한 것을 알고서, 동관·양전·고구와 의논하여 일부러 후몽과 나전을 진관에게로 보낸 것이었다.
송강 등이 패전하게 되면 후몽과 나전도 도망칠 곳이 없을 것이므로, 그때 일망타진(一網打盡)할 생각이었다.
네 적신의 건의를 도군황제는 모두 승인하였다.
칙서를 내려 후몽과 나전으로 하여금 상으로 하사할 금은·비단·의복·갑옷·말·어주 등을 하북의 송강에게 가지고 가게 하였다. 또 하북에서 회복한 각 고을에 신임 관원들을 보내라는 칙명을 내렸다.
도군황제는 정무를 마치고 왕보과 채유의 권유로 간악(艮嶽)으로 유람을 떠났다.
한편, 후몽은 조칙과 수레 35대에 가득 실은 하사품을 가지고 동경을 떠나 하북으로 출발하였다.
며칠이 걸려 호관산과 소덕부를 지나 위승주로 갔는데, 성에서 20여 리 떨어진 곳에서 역적 수괴를 호송해 오는 송군을 만났다.
송강은 회군하라는 조칙을 먼저 받았는데, 마침 그때 경영이 부모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다.
송강은 경영 모녀의 정절과 효성 및 섭청의 절의, 역적의 수괴를 사로잡은 공, 도청과 손안 등이 조정에 귀순한 일, 그리고 여러 사람의 공 등을 자세히 아뢰는 표문을 썼다. 그리고 장청·경영·섭청으로 하여금 표문을 가지고 역적 수괴를 압송하여 먼저 가게 하였는데, 도중에 후몽을 만난 것이었다.
담회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