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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滸誌 (373) ■ 제9권 (25) / 제9-9장 소주도 떨어지고 (1)

작성자정기진|작성시간26.06.23|조회수0 목록 댓글 0

 

 

수호지(水滸誌), 혼돈의 시대를 이끌다 (373)

■ 9권 피흘려 닦아가는 충의의 길 (25)

 

제9-9장 소주도 떨어지고 (1)

 

원래 동관이 몰래 사람을 부윤에게 보내 왕경의 죄를 찾아내 끝장을 내라고 분부했는데, 마침 그런 기이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개봉부 사람들은 왕경이 교수와 밀통한 일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들 수군거렸다.

“왕경이 이번에 죄를 얻었으니, 살아나기 힘들 것이다.”

그때 채경과 채윤은 왕경의 일을 듣고서, 부자가 상의했다.

만약 왕경을 죽여 버리면 그 일이 진실이 되어 추한 소문이 더욱 널리 퍼질 것 같으니 은밀히 심복 관원을 부윤에게 보내 왕경을 멀리 유배 보내게 함으로써 그 자취를 없애려고 하였다. 그리고 날을 택해 교수를 맞아들이면, 첫째는 동관의 수치도 덮고 둘째는 사람들의 쑥덕거림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채유의 아들은 좌우도 잘 모르는 바보인지라, 교수가 처녀인지 아닌지도 알지 못할 것이었다.

 

한편, 개봉부윤은 채태사가 보낸 심복을 통해 밀명을 받고, 즉시 대청에 올랐다.

그날은 신유일(辛酉日) 즉 닭의 날이었다.

부윤은 왕경을 감옥에서 끌어내, 칼을 벗기고 곤장 20대를 때린 다음 얼굴에 문신을 새겼다.

가장 먼 곳을 골라 서경 관할의 섬주 뇌성으로 유배 보내기로 하였다.

왕경에게 열 근 반짜리 쇠칼을 목에 씌우고 봉인을 한 다음, 손림과 하길이라는 두 압송관이 왕경을 압송하여 길을 떠났다.

세 사람이 개봉부를 나서자, 왕경의 장인 우대호가 맞이하여 세 사람을 관아 앞 남쪽 거리에 있는 주점으로 데리고 갔다.

우대호는 점원을 불러 술과 고기를 주문하였다.

술을 두세 잔 마신 후에, 우대호가 은자 한 보자기를 꺼내 왕경에게 주면서 말했다.

“백은 20냥이네. 도중에 사용하게.”

왕경이 은자가 든 보자기를 손으로 잡으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우대호는 왕경의 손을 밀치면서 말했다.

“쉽게 받으면 안 되지! 내가 이 은자를 자네에게 그냥 주는 게 아닐세. 자네가 지금 섬주로 유배 가는데, 그곳은 천 리가 넘는 먼 곳이니 자네가 언제 돌아올지 어찌 알겠는가?

게다가 자네가 남의 집 여인을 희롱하다가 제 아내 신세를 망쳐 놓았으니, 누가 그 애를 돌봐주겠는가? 자식도 없고 전답이나 가산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자네가 떠난 후 아내가 개가를 하더라도 따지지 않겠다는 이혼 증서를 한 장 써 주게. 그렇게 하면 이 은자를 자네에게 주겠네.”

 

왕경은 평소에 돈을 잘 썼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 주머니에는 지금 한 푼도 없으니, 섬주까지 어떻게 갈 수 있겠나?”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다가, 은자를 받기로 하고 탄식하며 말했다.

“할 수 없지! 이혼증서를 써 드리겠습니다.”

우대호는 이혼증서를 받고서, 은자를 건네준 다음 돌아갔다.

왕경은 두 공인과 함께 행낭을 수습하러 집으로 갔다.

아내는 이미 우대호가 데리고 가 버렸고, 대문은 잠겨 있었다.

왕경은 이웃집에서 도끼와 끌을 빌려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내가 입던 옷이나 머리장식 등은 모두 가져가 버리고 없었다.

왕경은 화가 나기도 하고 처참하기도 했다.

이웃의 주노파를 불러 술과 음식을 차리게 해서 두 공인을 대접하고, 은자 열 냥씩을 주며 말했다.

“소인이 곤장을 맞은 상처가 아파서 걷기가 어려우니, 며칠만 쉬었다가 떠나면

좋겠습니다.”

손림과 하길은 돈을 받았기 때문에 허락하려고 했는데, 채유가 심복을 보내 빨리 떠나라고 공인들을 재촉하였다.

왕경은 집안 살림살이를 팔고, 세를 얻어 살던 집도 호원외에게 돌려주었다.

 

그때 왕경의 부친 왕획은 아들 때문에 두 눈이 멀어 있었다.

왕획은 아들과 따로 살고 있었는데, 아들이 찾아와서 아비를 때리거나 욕을 하곤 했다.

그날 왕획은 아들이 유배 간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파서, 어린아이의 부축을 받으며 왕경의 집을 찾아가 울면서 말했다.

“얘야! 네가 내 말을 듣지 않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말을 마치자,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왕경은 어릴 때부터 한번도 왕획을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파산하고 이별하게 되자, 마음이 조금 괴로워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 아들이 오늘 억울한 형벌을 받았는데, 그놈의 우영감은 무례하게도 저를 핍박하여 이혼증서를 쓰게 하고는 은자를 조금 주더군요.”

왕획이 말했다.

“네가 평소에 아내를 사랑하고 장인에게 효도를 했더라면, 그가 오늘 너를 그렇게 대했겠느냐?”

왕경은 자신을 나무라는 말을 듣자, 다시 화를 내면서 아버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행낭을 수습하여 두 공인과 함께 떠나 버렸다.

 

왕획은 발을 구르고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저런 못된 놈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어!”

왕획은 어린아이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왕경은 손림·하길과 함께 동경을 떠나, 외지고 조용한 곳을 빌려 10여 일을 몸조리하였다.

곤장 맞은 상처가 좀 낫자, 공인들이 재촉하여 다시 섬주를 향하여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때는 6월 초순이라 날씨가 무더워 하루에 겨우 4~50리밖에 걸어가지 못했다.

때로는 죽은 사람이 쓰던 침상에서 자기도 하고, 끓이지 않은 물을 마시기도 했다.

 

세 사람은 15~6일을 걸어 숭산을 지나갔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손림이 서쪽에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산이 북망산인데, 서경 관할에 속하네.”

세 사람이 얘기를 나누며 선선한 아침 길을 20여 리 걸었을 때, 북망산 동쪽에 저자거리가 보이는데 사방에서 농부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었다.

저자거리 동쪽 인가가 드문 곳에 ‘丁’ 자로 큰 측백나무 세 그루가 서 있었다.

그 나무 그늘 아래에 사람들이 빽빽이 둘러서서, 한 사내가 웃통을 벗고 소리를 지르면서 봉을 휘두르고 있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세 사람도 나무 아래 가서 쉬었다.

왕경은 땀을 비 오듯 흘려 온몸이 젖은 상태로 목에 칼까지 쓰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까치발을 하고 사내가 봉을 휘두르는 것을 구경하였다.

 

잠시 구경하던 왕경이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사람이 휘두르고 있는 게 화봉(花棒)이구먼.”

한창 열을 내며 봉을 휘두르던 사내가 그 말을 듣고, 봉을 거두고서 말한 자를 보니 유배 가는 자였다.

사내는 크게 노하여 욕을 했다.

“유배 가는 도적놈아! 내 창봉술은 원근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데, 어디서 네놈이 감히 좆같은 입을 놀려 방귀 뀌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냐!”

사내는 봉을 집어던지고 주먹을 들어 왕경을 치려고 했다.

그때 사람들 틈에서 젊은 남자 둘이 나와 사내를 가로막고 말했다.

“멈추시오!”

그리고는 왕경에게 물었다.

“족하는 필시 고수겠소.”

왕경이 말했다.

“괜한 소리를 지껄여서 저 사내를 노하게 했지만, 소인도 창봉은 좀 쓸 줄 압니다.”

그러자 봉을 휘두르던 사내가 노하여 욕을 했다.

“유배 가는 도적놈아! 네놈은 감히 나와 겨루어 보겠느냐?”

두 젊은이가 왕경에게 말했다.

“당신이 저 사내와 봉을 겨루어 이기면, 저기 거둬 놓은 2관의 돈을 당신에게 주겠소.”

왕경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한번 겨뤄 보지요.”

 

왕경은 사람들을 헤치고 나와, 하길에게 봉을 빌렸다.

적삼을 벗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린 다음 손에 봉을 쥐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말했다.

“목에 칼을 차고서 어떻게 봉을 쓸 수 있겠소?”

왕경이 말했다.

“그래야 희한한 거죠. 칼을 쓰고도 이겨야, 진짜 실력이 있다는 말을 듣겠죠.”

사람들이 일제히 말했다.

“당신이 칼을 쓰고서도 이기면, 저 돈 2관을 모두 드리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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