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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잡설

활과 노자의 만남 6장

작성자야초|작성시간14.02.07|조회수28 목록 댓글 0

곡신(谷神)은 죽지 않는다.

이것을 현빈(玄牝)이라 이른다.

현빈의 문, 이것을 천지의 뿌리라 이른다.

면면히 있는것 같아 써도 지치지 않는다.

 

곡신이라 함은 텅빈 골짜기의 신령스러움을 상징한 것이다.

그것을 다시 가물한 암컷이라 일컬었다.

그리고 그것을 천지의 뿌리(근본)이라 하였다.

실체를 잡으려 하면 검증할수 없으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존재하는듯 하므로

끝이없고 다함이 없어 마르거나 그치지 않는다.

 

활을 배움에 있어서도 크게 두가지 성향으로 나누어 볼수 있다.

그 하나는 뚜렷한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접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이렇다할 목적이나 목표등이 없이 다가서는 것이다.

과연 어느것이 오래가고 어느것이 영원할까?

노자는 두번째의 경우가 오래가고 영원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듯 비움의 철학 여백의 문화는 오랜동안 동양에 정신으로

계승되고 발전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골짜기의 본질은 텅빈 허공과도 같다.

땅이 비워진 곳이 골짜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있다고도 또는 없다고도 정의하기 어렵다.

 

쉽고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

'빈자리가 있다.' 라는 명제를 놓고 고찰해 보자.

그것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실제적으로 그것은 그자리에 있을수도 있는것이 없는것 뿐이다.

그런데도 상식적으로 우리는 그러한 것을 또다른 의미에서

있는것 으로 인식하고 간주한다.

그러기에 노자는 '마치 있는듯 하다.' 라고 기술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영원불멸하다.

설사 태양이 꺼지고 지구가 깨지더라도 텅빈 허공 만큼은 영원한 것처럼

여유와 여백이라는 것은 곧 우주로 통하는 것이며 그 존재를 가늠할수도 없으되

마치 있는듯 하여 천지자연의 근본 바탕이 되고 써도 써도 다함이 없는 것이다.

 

제로(0)라는 숫자 개념을 생각해 낸것은 인도인 들이다.

제로를 제외한 모든 숫자는 있음(有)의 개념이다.

그러나 제로 만큼은 없음(無)의 개념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치 있는듯 하며 모든 숫자의 근본 바탕이 된다.

그래서 그 제로의 증감에 따라 숫자는 십단위도 되고 백단위도 된다.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활터에서의 단위를 생각해 보자.

대한 궁도협회 에서는 5단부터 명궁의 자격을 부여한다.

그 5단(명궁)의 가치가 정의되는 것은 0단(미입단자)들이다.

즉.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5단(명궁)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5단은 오십단이 될수도 있고 오백단이 될수도 있으며

오천만단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활에 입문 하고서도 단위를 취득하지 못한 이들은 곧 무단이며

제로단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활을 접하지 못한 자연인들과도 통하는 것이다.

하여. 비록 이땅에 신궁 명궁이 사라지고 궁도의 명맥이 끊길지라도 그들 만큼은

영원할수 있는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이들이 활터의 근본바탕이 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활터에서 시도때도 없이 중뿔나게 나서서 들어나 보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있는듯 없는듯 그 존재감 마저도 느끼기 어려운 분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변치않고 그들은 영원하며 그들은 믿고 의지할만 하다.

게다가 그들은 아직 활을 접해보지도 못한 자연인들과도 통한다.

결코 죽지않으며 결코 마르지 않으며 결코 그치지 않으며 써도 모자라지 않으며

차도 넘치지 않는다. 이러한 것이 순후소박한 도인의 참모습이다.

 

가물하다(玄)

이 글자는 천현지황이라는 천자문의 영향으로 얼핏 하늘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우리말중에 '가물가물' 하다는 것은 '봄철의 아지랑이'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듯 멀고 높아서 가물가물 할때도 있는 것이고

비교적 가까우면서도 아른아른 하고 가물가물 할때도 있는 것이다.

 

공자는 '세사람이 동행하면 그중에 반드시 나에 스승이 있다.' 하였고

'눈밝은 이는 시장판에서도 도인을 찾을수 있다.' 하는 말도 있다.

그러니 활터에서도 이러한 가물한 인물들을 찾아 눈여겨 살펴보자.

아마도 반드시 배울바가 있을 것이다.

 

여기 어떤이가 활을 꾸준히 연마하고 있는데 그 목적이나 목표가

있는듯도 하고 없는듯도 하여 가늠하기 어렵다면? 그리고 평소

말수가 적고 표정이 온화 하다면? 누가 '왜? 활을 쏘십니까?'

물어도 빙긋이 웃고 답하지 않는 속내가 한가로와 보인다면?

그런이들은 믿고 따르며 의지할만 하다 하겠다.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西碧山)'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묻는가? 내게. 어찌하여 짙푸른 서산에 묻혀 사는가를

빙긋이 웃으며 답하지 않는 마음 스스로 한가로울 뿐...

복숭아 꽃잎은 물위에 떨어져 아득히 멀어져 가니

하늘과 땅을 벗어나 있고 인간세상도 아니라네.

 

필자또한 뭐 이러한 이유로 그러한 이들을 찾아본지 오래지만

그게 있는듯 하면서도 없어 그 실체가 가물하고 아른거릴뿐

아직도 세속에 찌든 눈동자는 탁하기만 하여서 끝끝내 찾아보고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하기사 찾아보려 하거나 헤량해 보고자

하는 마음 조차도 또한 욕심일 뿐이러니....... 아마도 그래서

보이지 않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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