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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꾼대학 후원~!

“엄마는 양공주였지만 부끄럽지 않아…나한텐 영웅이니까” ▶미얀마 이야기~!

작성자황사 人-박준호|작성시간23.08.13|조회수128 목록 댓글 0

"우주창조(김성태)" 님이 올려준 글인데....

이 글을 읽다가 불현듯 내 고향 파주 봉일천(기지촌)이 생각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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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양공주였지만 부끄럽지 않아… 나한테는 영웅이니까”

“엄마는 양공주였지만 부끄럽지 않아… 나한테는 영웅이니까” (chosun.com)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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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부끄러운 우리 모두의 역사이죠~!

요즘 분들, 또한 기지촌 밖에서 사신 분들은 이해 못 하실 겁니다.

바로 난 옆에서 이 모든 과정을 봐온 증인입니다.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초까지...

내가 테어 난 곳도 청소년 시절을 보낸 곳도...

파주 봉일천이란 기지촌이었습니다.

정말 먹고 살게 없었던 시절~!.

강의 시간때 우스겟 소리로 “수방사(수도방위사령부)‘ 잘 아시죠~!

나는 군 복무를 "파방사(파주방위시령부/방위)"에서 했다하면서 한바탕 웃음을 드렸죠~!

1971년 하두 데모를 해서 그 것도 주동자로 찍혀...

군대에 보내면 주변을 물들게 한다하여 ‘파방사’로 보내버렸고...

국도 1호선 통일로를 타고 가다 고양시와 파주시 경계에 장곡 검문소에 탱크 저지선 있죠.

그곳에서 1971년 가을~1972년 가을까지 꼬박 1년을 당시는 검문소가 없었는데...

그곳에서 칼빈 소총 거꾸로 메고 있는 군인을 보셨으면...

그게 나 였습니다~!

어느날 하루는 마을 리장님께서 삽과 곡괭이 들고 봉일천지서로 나오라는 전갈~!

그 이유는 굶어 돌아가신 분을 공동묘지에 묻어야 하기에...

당시 굶어 죽는 분들이 흔하게 생기는 시절인데...

민주주의?

거 배부른 소리입니다.

요즘 시절을 거꾸로 생각하니 그런 얘기가 나오지만...

먹고 사는 게 우선인데 무슨 민주주의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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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양공주라 불리는 분들~!

원래 ‘동기‘라는 지명의 동네에 미군부대가 있었고 거기에는 약 40~50명의 양공주 분들이 계셨는데 그나마 적은 숫자이었죠.

혹시 얘기를 들으셨는지요?

용주골, 선유리, 법원리, 장마루 등에는 수백명씩의 양공주 분들이 있었죠~!

일주일에 한번은 1km 떨어진 면소재지인 봉일천으로 나와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면소재지 까지 나오시고 많이 나오는 그 날은 동네 장사도 좀 되었는데...

왜냐하면 저희도 가게를 했었거든요~!

각설하고...

지금은 잣대로는 왜 몸을 파는가 하실 테지만...

지금도 꼰데들의 푸념에서 당시 ‘춥고 배 고팠던 시절’이란 용어를 자주 쓰죠~!

현장에서 속속들이 겪어 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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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휴전후 6년이 지난 1959년 9월 봉일천 초등학교 다닐 때...

그 유명한 사라호 태풍 때문에 가뜩이나 모자랐던 교실이 날라가고...

교실이 없어진 우리들은 운동장 한편에서 공부를 했으며...

어느 때는 햇볕을 피해 학교 뒷편 동산(사실 우리 동네 ‘안산밑 입구)에 올라...

나무에 걸고 칠판 걸고 공부했습니다

그때, 다행이도 미군(당시 24사단)이 학교를 지워주어...

다음해에 다시 교실에서 공부했죠~!

그것이 인연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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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12년 5월...

미얀마 NLD(아웅산 수지여사 정당)의 초청을 받고 난생 처음 미얀마를 방문했었죠.

도착 다음날 NLD안내로 NLD당사를 방문했었고 그 다음 방문지는 라인다야(hlaingdaya)~!

양곤시 변방지역인 라인다야(hlaingdaya)지역은 미얀마 최초의 산업단지로 그 주변은 온통 일자리를 찾아 양곤으로 올라온 시골의 빈민 출신자가 거주하는 곳~!

60년대 우리나라 구로공단 주변의 가리봉동(현 가산동)과 비슷했죠~!

NLD에서 안내 한 곳은 라인다야 지역의 ‘mother home school’

2010년 10월 아웅산 수지여사가 가택연금에서 풀리면서...

그 다음 해인 2011년...

미얀마라는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신 교욱이 필요하다 하여 아웅산 수지여시가 세운 첫 학교가...

라인다야의 마더 홈 스쿨(mother home school)로...

캐나다 수상이나 외국 귀빈(VIP)가 방문하면 보여주든 “마더 홈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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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2012년 5월 우리 부부가 처음 방문한 mother home school-1호 학교...

이 학교를 보고 우리 부부는 통곡을 했죠~!

40평 정도의 학교에 약 1.200여명이 4부 제로 나눠 공부하고...

책상에는 몽땅 연필이 하나씩 올려져 있는데...

이는 다음 학생이 연필이 없기에 이를 배려한 것~!

바로 옆 나라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도 못 다니는 학생을 위한 대체 학교였죠~!

얘네들의 복장은...

집 사람 말처럼 입고 다니는 상의(런닝)는 집에서 걸레로 사용하라 해도...

더럽고 낡아 못 쓸 정도의 아주 극빈자의 마을입니다.

지금도 이 라인다야는 미얀마를 아시는 분들은 얘기하는 양곤시의 아주 극빈자 동네입니다.

하여...

그 다음해인 2013년에 mother home school-1호 학교를 까 부수고...

아래와 같은 2층 학교로 만들어 주고...

미얀마 최초 초등학교 과장에 컴퓨터 시설에 반까지 만들어 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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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유기(인터넷 선) 연결이 우리나라 돈 450만원인데...

이것까지 연결해 주었습니다.<당시 미얀마 보통 급여가 8~10만원>

이렇게 하여...

국민학교(봉일천 국민학교)시절 미군에게 도움받은 것을...

미얀마에서 갚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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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우리 "땅꾼대학"이 라인다야에 건축해준 학교(개교식) 전경입니다~!

라인다야 마더 홈 스쿨 개교식 전경(2013년 5월)

이후 우리 '땅꾼대학"은 당시 표민테인 양곤주지사의 배려로 토지사용권(약6천평)을 받아...

그곳에 직업학교를 건축해 놓고 2020년 6월경 개교식을 하려고 했으나<2020년 1월30일 최종방문>

이후 전세계에 불어닥친 코로나 팬데믹으로 개교식이 연기되었고...

2020년 6월에 컨테이너 한개 분량의 코로나 방역물품을 보내어...

표민테인 주지사에게 땅꾼대학을 대신하여 주 미얀마 한국 대사님께서 증정~!

이후...

쿠데타로 남다곤의 이 직업학교는 폐쇄되었으며...

미얀마가 안정되어 우리가 들어 오기를 기디리고 있다 합니다.

2020년 6월 막 건축한 직업학교에서 주 미얀마 한국대사님과 표민테인 양곤 주지사가 컨테이너 한대 분량의 코로나 방역물품을 증정하려 모인 사진... 섭섭하게도 우리는 코로나로 증정행사에 참석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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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주소는...

NO(1/A)Zayar Myine Road.

Word(54) South Dagon Township. Yangon. Myan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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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살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빠른 미얀마 민주주의가 찾아와...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이세상 떠났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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