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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배 교수의 미국일지] 전동휠체어에 날개를 달고 ④미국여행을 통한 장애의 이해 ④

작성자영버미|작성시간26.06.08|조회수47 목록 댓글 0

[김종배 교수의 미국일지] 전동휠체어에 날개를 달고 ④미국여행을 통한 장애의 이해 ④

- 코카콜라의 북극곰, 그리고 산업공학의 메카 조지아텍
- 관광지에서 캠퍼스로, 유니버설디자인과 피지컬 AI를 생각하다

  • 김종배 | 연세대 작업치료학과 교수
  • 업데이트 2026.06.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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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배 교수가 애틀랜타의 대표 관광지인 월드 오브 코카콜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코카콜라 박물관 방문은 조지아텍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만난 첫 여정이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코카콜라의 도시에서 만난 북극곰

애틀랜타에서의 둘째 날. 오후에는 조지아텍 디자인대학 산업디자인학부장인 권은숙 교수님을 만나기로 했다. 호텔에서 구글맵으로 길찾기를 해보니 목적지까지 36분 거리였다. 그런데 경로 중간, 12분쯤 되는 지점에 애틀랜타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인 ‘월드 오브 코카콜라’가 있었다.

나는 미국 유학 시절, 학회 참석차 가족과 함께 애틀랜타를 찾으며 이곳을 이미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 함께한 이 선생과 권 연구원에게는 애틀랜타에서 빼놓기 어려운 관광 코스일 듯해 잠시 들렀다. 뮤지엄 앞은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처럼 보이는 방문객들로 붐볐다.

코카콜라 박물관은 코카콜라의 출발, 비밀 레시피가 보관된 금고, 그리고 세계적 상품으로 성장해온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코카콜라는 19세기 한 약사가 여러 약재와 식물 성분을 섞어 만든 강장제에서 출발했다. 이번에 새삼 알게 된 것은 ‘코카콜라’라는 이름이 코카 잎과 카페인이 풍부한 콜라넛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코카인이 지금처럼 금지된 마약으로 인식되지 않았으니, 강한 각성 효과를 가진 음료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 법하다. 이후 1903년경부터 코카인 성분은 제거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코카콜라는 세계 200여 개 국가에서 판매되고, 수많은 음료 브랜드와 제품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같은 브랜드라도 국가별 입맛에 맞게 맛을 조정하는 현지화 전략을 펼친다. 한국에서도 커피 음료와 ‘태양의 마테차’를 출시했고, 광주비엔날레 기념 디자인의 한정판 코카콜라를 선보인 적도 있다.

코카콜라는 현대 광고의 역사 자체를 만든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산타클로스 이미지를 대중화했고, 최근에는 북극곰을 전 세계인이 기억하는 마스코트로 만들었다. 투어의 마지막 코스에는 세계 각국의 코카콜라 음료를 시음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그 끝에는 어김없이 기프트숍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종배 교수가 월드 오브 코카콜라 기프트숍에서 구입한 북극곰 냉장고 자석. 아기 곰을 업은 북극곰의 모습은 전동휠체어 뒤에 딸아이를 태웠던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안 낚여야 해.’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결국 아기 곰을 등에 업은 북극곰 냉장고 자석 하나를 사고 말았다. 딸아이가 어릴 때 전동휠체어 뒤에 태워주던 기억, 침대에 누워 배 위에 아이를 올려놓고 심호흡으로 배를 오르내리게 하며 옛날 옛적 백호 이야기를 들려주던 기억이 백곰 부녀 마그넷에 비친 것일까.

사지마비로 가슴 아래 근육을 움직일 수 없어 물풍선처럼 처진 배를 안고 앉아서 살아온 시간들. 손을 제대로 못 쓰는 곰과 같이, 생선 한 마리를 입으로만 발라먹을 수 있는 기술을 갖게 된 나는, '내가 곰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계단 옆의 길, 유니버설디자인

조지아텍 캠퍼스 건물 입구에 설치된 자동문 스위치. 손가락 사용이 어려운 사람도 팔이나 손등으로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큼직하게 설치돼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권 교수님과의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코카콜라 투어를 서둘러 마치고, 북극곰 자석을 가슴에 품은 채 길을 재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지아텍 캠퍼스가 나타났다.

졸업 시즌이라 학위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학생들이 곳곳에 보였다. 나무와 잔디, 대학 건물 사이로 이어지는 캠퍼스 풍경이 아름다웠다. 조경으로는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도 자부심이 있지만, 조지아텍 캠퍼스의 녹지도 잘 조성되어 있었다.

지도를 따라가다 보니 갑자기 내리막과 함께 넓은 계단이 길게 이어졌다. 그런데 계단 옆에 엘리베이터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왼쪽 앞에 건물이 보였다. 건물 입구에는 큼지막한 장애인 마크와 자동문 스위치가 있었다.

미국의 공공건물에는 장애인을 위해 자동문을 설치하고, 스위치도 눈에 잘 띄고 조작하기 쉽게 크게 만들어 놓은 곳이 많다.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하는 나도 팔을 움직여 손등으로 툭 치면 문을 열 수 있다. 한국은? 노코멘트 하겠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이 건물 자체가 바깥 계단을 대신하는 접근 가능한 경로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두를 위한 디자인, 유니버설디자인이다.

‘No One Left Behind’,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 2000년 새천년을 맞으며 강조된 이 원칙은 이후 UN장애인권리협약(UNCRPD)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의 공공건물은 물론 식당, 편의점, 상점, 사무실 등 근린생활시설에서도 출입문과 보도 연석의 턱은 대부분 제거되어 있다. 접근성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일상의 기본 구조로 자리 잡고 있었다.

산업디자인의 현장에서 만난 권은숙 교수

조지아텍 산업디자인학부장 권은숙 교수와(오른쪽) 김종배 교수가 유니버설디자인과 피지컬AI 기반 돌봄 휴머노이드 연구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권 교수는 산업디자인과 보조공학, 환경접근성 연구 분야에서 활동해온 연구자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건물을 통해 언덕 아래로 내려가니 바로 앞에 목적지인 산업디자인대학 건물이 나왔다. 정확히 오후 4시였다. 전화를 드리려는 순간, 건물 옆에서 권은숙 교수님이 나오시며 처음 보는 우리를 알아보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2층 교수님 사무실 옆 회의 공간으로 가는 길 곳곳에는 산업디자인 스쿨답게 새로운 개념의 자전거, 다양한 형태의 인간공학 의자, 특수 키보드 등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은 전날 만났던 존 산포드 교수가 은퇴 전까지 유니버설디자인 연구를 이어가던 CATEA, 즉 보조공학 및 환경접근성 연구센터의 자리다. 산포드 교수의 은퇴 이후 CATEA는 권은숙 교수의 리더십 아래 연구와 현장 실무가 긴밀히 결합된 세계적 수준의 접근성 혁신센터, CIDI로 진화했다.

나와 같은 80학번 세대인 권 교수님은 서울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KAIST 교수로 재직한 뒤, 2003년 미국 휴스턴대학교로 옮겨 18년간 산업디자인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고 발전시켰다. 5년 전부터는 조지아텍 산업디자인학부 교수이자 학부장으로 활약하고 계신다. 말 그대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특히 권 교수님은 KAIST 재직 시절, 2015년 DARPA 로보틱스 챌린지 우승으로 유명한 오준호 교수님의 ‘휴보’ 초기 모델 디자인 개발에도 기여하셨다.

피지컬 AI와 돌봄 휴머노이드의 가능성

조지아텍 산업디자인학부 학생들의 작업 공간. 새로운 개념의 가구와 제품 디자인이 전시된 공간은 사용자의 몸과 환경을 고려하는 산업디자인 교육의 현장을 보여준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최근 피지컬 AI가 등장하면서 사람처럼 인지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개발과 적용이 전 세계 산업계와 인류의 삶에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나 역시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와 연세대학교에서 재활로봇과 돌봄로봇 연구에 주력해왔다. 그동안 기능별로 세분화되어 개발되던 로봇들이 이제는 피지컬 AI의 등장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안에서 통합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지난 1년여 동안 나는 돌봄과 재활 작업을 로봇에게 훈련시키는 피지컬 AI 기반 돌봄 휴머노이드 개발을 위해 다학제 연구회를 구성해 준비해왔다. 작업치료와 재활의학 등 임상 분야, 컴퓨터사이언스와 의공학, 데이터사이언스, 디지털헬스케어 등 공학 분야의 교수들이 매주 모여 서로의 학문을 이해하고 연구 방향을 탐색해왔다.

좋은 로봇 하드웨어 플랫폼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 대학, 공공기관과의 협력도 모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휴보 개발에 참여한 권 교수님께 로봇 디자인 분야의 도움을 부탁드리고자 협력을 요청하게 되었다.

권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며, 세계적인 대학의 학부장이자 존경받는 연구자와 한국어로 편하게 협업을 논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꼈다. 더구나 앞으로 우리의 연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뜻까지 전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회의를 마친 뒤 교수님은 불향이 밴 고기에 바비큐 소스를 듬뿍 얹고 버거 빵 사이에 끼운 미국식 바비큐 버거를 맛보게 해주셨다. 감자튀김을 곁들인 그 식사는 애틀랜타에서의 하루를 따뜻하게 마무리해주었다.

휠체어 경사로가 잘 갖춰진 스쿨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마음은 오래도록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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