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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배 교수의 미국일지] 전동휠체어에 날개를 달고 ⑤미국여행을 통한 장애의 이해 ⑤ 디케이터에서의 왕자를 위한 파티

작성자영버미|작성시간26.06.15|조회수43 목록 댓글 0

전문가 칼럼

[김종배 교수의 미국일지] 전동휠체어에 날개를 달고 ⑤미국여행을 통한 장애의 이해 ⑤ 디케이터에서의 왕자를 위한 파티

- 케이트 실만 교수가 알려준 장애의 의미와 디케이터에서 받은 뜻밖의 환대
- MARTA를 타고 찾아간 스승, 그리고 장애의 크기를 바꾸는 환경의 힘

  • 김종배 | 연세대 작업치료학과 교수
  • 입력 2026.06.13 14:57
  • 댓글 1

 

김종배 교수가 애틀랜타 디케이터에서 캐서린 실만 교수와 재회했다. 실만 교수는 김 교수에게 장애가 개인의 신체 조건과 사회적·물리적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된다는 장애 이해의 핵심을 일깨워준 스승이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애틀랜타에서의 세 번째 날, 드디어 캐서린 실만 교수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사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이 캐서린 실만 교수, 케이트를 만나는 것이었다.

주소를 입력하니 디케이터(Decatur) 지역이 나타났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MARTA(Metropolitan Atlanta Rapid Transit Authority, 광역 애틀랜타교통공사) 전철을 한 번 갈아타고 7개 역을 지나, 다시 도보로 17분 정도 이동해야 했다. 전체 소요 시간은 약 33분이었다.

오늘은 택시를 타보려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우버와 리프트도 찾아봤지만, 휠체어 택시 즉시 호출은 불가능했다. 호텔 콘시어지와 발레파킹 요원들의 도움도 받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MARTA 전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는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피치트리센터역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애틀랜타 MARTA 피치트리센터역 승강장 모습. 오래된 전철역임에도 플랫폼과 전동차 바닥 사이의 단차와 간격이 거의 없어 전동휠체어 이용자의 승하차 접근성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확보돼 있음을 보여준다. 자료사진=Google Maps 캡처

출근 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열차 안은 한가했다. 한 번 갈아탄 뒤 20분 정도 지나 디케이터역에 도착했다. 다운타운의 피치트리센터역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역 밖으로 나오자 오래된 듯한 가게들과 동네 사람들이 외식을 즐길 만한 괜찮은 레스토랑들이 보였다. 지도 앱을 따라가다 보니 한적한 주택지가 이어졌다. 깨끗한 교회 건물이 있었고, 자전거를 타고 여유를 즐기는 중년 여성들이 서너 명 지나갔다.

약속한 오후 1시가 될 즈음, 마침내 우리는 케이트가 알려준 주소 앞에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입구를 찾으며 두리번거리다가 케이트에게 전화를 거는데, 60~70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 한 분이 다가와 “닥터 킴이 아니냐?”고 물었다.

아니, 내가 이렇게 유명한가. 구만리 이국땅의 처음 보는 도시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그분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건물을 돌아가는 길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때 케이트에게서 전화가 왔다. “종배, 너 어디야?” 저편 건물 입구에 전화기를 귀에 대고 서 있는 케이트가 보였다.

할렐루야. 드디어 케이트 실만 교수의 집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는 나를 큰 포옹으로 맞아주었다.

장애의 크기는 환경이 결정한다

실만 교수는 특수 보청기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다. NYU, 뉴욕대에서 역사학과 공공정책을 공부했고, 박사학위로 과학기술 공공정책을 연구했다. 이후 매사추세츠 주정부와 연방정부에서 과학기술과 장애 정책 분야의 전문 행정가로 일했다. 국립장애재활연구원(NIDRR) 원장으로 8년간 재직한 뒤, 2001년부터 피츠버그대학교에서 재활보조기술학과 교수이자 보건재활과학대학원 부학장을 역임했다.

내가 미국에서 재활공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며 배운 것 중 딱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단연 실만 교수의 수업에서 얻은 ‘장애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들 것이다. 그녀의 ‘장애의 개인적·사회적 이해’ 수업을 통해 나는 장애의 개념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장애란 신체 기능이 제한된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적·물리적 환경에서 겪는 어려움과 곤란의 상태다. 그 크기는 개인의 신체 조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속한 물리적·사회적 환경이 그 사람의 필요를 얼마나 잘 제공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의학학술원(IoM)의 『인에이블링 아메리카(Enabling America)』 보고서가 제시한 장애 개념도 바로 이와 맞닿아 있다.

장애의 정의가 분명해지면 해결 방법도 분명해진다. 필요한 물리적 환경, 즉 교통·건물·통신·기술을 바꾸고, 사회적 환경인 법·제도·문화·정책을 바꾸면 된다. 나 같은 사지마비 장애인도 전동휠체어, 특수마우스, 특수차량, 턱 없는 출입구, 계단을 대체하는 엘리베이터, 활동지원인이 제공되면 그 환경에서 겪는 어려움, 곧 장애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1985년 대한민국이라는 환경에서, 아무런 지원 없이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던 내가 겪은 장애의 크기가 100이었다면, 2001년 대한민국에서는 전동휠체어와 컴퓨터, 인터넷을 사용하며 장애인 인터넷교육장과 척수장애인 사이버센터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때 장애의 크기는 70 정도로 줄어든 느낌이었다.

그런데 같은 2001년, 환경이 미국으로 바뀌자 모든 건물과 버스에는 턱이 없었고, 활동지원인이 직장과 집에서 도와주었으며, 집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환경이 개조되었다. 전동휠체어를 탄 채 운전할 수 있도록 차량을 개조해주고, 특수운전 교육까지 무료로 제공했다. 남들과 경쟁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것이다. 그때 내가 겪는 장애의 크기는 20 정도로 줄어든 느낌이었다.

개인이 겪는 장애의 크기는 신체 기능과 그 사람이 속한 사회적·물리적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된다. 이것을 실만 교수가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매년 학생들에게 ‘장애의 이해’ 수업을 꼭 가르치고 있다.

왕자를 위한 파티

캐서린 실만 교수가 김종배 교수를 위해 준비한 환대의 식탁. 케이트는 “왕자처럼 대접하겠다”고 말하며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 따뜻한 자리를 마련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나는 그동안 SNS를 통해 케이트와 계속 소통해왔다. 얼마 전 케이트는 자신이 은퇴 후 가족이 있는 애틀랜타 디케이터에 살고 있으며, 지금은 암으로 투병 중이라고 했다. 나이도 많고 암도 걸렸다는 말을 들으니, 혹시 이러다 케이트를 볼 기회를 잃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 애틀랜타 출장길에 꼭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내 케이트를 만난 순간, 얼마나 반가웠는지 울컥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억지로 참고 그녀와 진한 포옹을 나눈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급 타운하우스 같은 건물이었다. 카펫이 깔린 넓은 복도와 개인 주거 공간들이 띄엄띄엄 있었고, 실내는 깨끗하고 차분하게 꾸며져 있었다.

케이트는 자기 집을 잠깐 보여준 뒤, 건물 가운데 있는 커뮤니티룸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오늘 나를 위한 파티가 열릴 공간이었다. 넓고 편안한 소파와 엔틱한 의자들, 큰 식탁이 놓여 있었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유럽 저택의 응접실을 떠올리게 했다.

암 투병 중인 은퇴한 교수님이 자신이 사는 콘도의 커뮤니티룸을 예약하고, 뉴욕에 사는 아들 가족은 어린 손자를 데리고 달려와 주었다.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오랜 친구도 비행기를 타고 왔고, 이웃 친구들도 함께했다. 모두가 나를 위한 자리를 준비해준 것이다.

특히 케이트의 친자매이자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 겸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메릴린 실만 박사도 함께했다. 그가 일하는 곳이기도 하고, 의과대학으로 잘 알려진 에모리대학교가 가까운 이 쾌적한 디케이터가 케이트의 노년의 거처가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메릴린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도 직업적 카리스마와 함께 언니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식탁에는 이미 음식들이 정성껏 준비되어 있었다. 케이트가 메신저로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묻기에, 나는 미국식으로 맞춰 로스트 비프와 참치 샌드위치, 포테이토칩, 크랜베리 주스 등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빠짐없이 준비해두었다.

며칠 전 케이트는 메신저로 “We will treat you like a prince!”라고 말했다. “우리는 너를 왕자처럼 대할 거야!”라는 뜻이었다. 그리고는 “터키도 먹을 거야!”라고 덧붙였다.

너무나 송구했다. 나도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무엇을 사갈까 고민하다가 유과와 한국 과자들을 한 봉지 가득 사 갔다. 유과는 모두가 “와” 하며 좋아했지만, 초코파이와 오징어땅콩, 롯샌, 고소미, 엄마손파이 같은 한국 과자들에 대한 반응은 그럭저럭이었다. 본래 미국 사람들은 음식 종류가 단순하고 입맛도 조금 까다로운 편이니까.

우리는 양상추와 치즈, 슬라이스 햄과 터키를 빵에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고, 감자튀김과 감자칩을 곁들여 먹었다. 요즘 한국에서도 써브웨이나 퀴즈노 같은 미국식 샌드위치 가게를 쉽게 볼 수 있지만,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라 그런지 신선하고 감칠맛이 있었다. 정말 왕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환대와 다시 탄 MARTA

김종배 교수가 오랜 스승인 캐서린 실만 교수와 다시 만나 포옹하고 있다. 암 투병 중에도 케이트는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 김 교수를 위한 환대의 자리를 마련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어떻게 지내느냐”, “여행은 어땠느냐”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케이트는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며 내가 VR을 이용해 원격 접근성을 평가하던 프로젝트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내가 휠체어 택시를 잡기 어려워 전철을 타고 왔다고 하자, 케이트는 기특하다는 듯 친구들에게 “쟤들이 MARTA를 타고 왔대!”라고 말했다. 모두의 눈이 동그래지는 듯했다.

동양에서 온 손님을 정성껏 환대하는 그 모습에서 서양 문화 속 환대의 정신이 느껴졌다. 기독교 문화에서 낯선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은 오래된 덕목이다. 케이트의 선함과 가족, 친구들의 황송할 만큼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왔다. 우리는 여러 번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케이트의 집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MARTA를 타러 갔다.

전철 안에는 오래된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엔지니어링은 놀라웠다. 오래된 모든 기차역의 플랫폼과 차량 바닥 사이에는 단차가 거의 없었고, 틈도 일정하게 좁은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경이로웠다.

우리나라는 전철 안 냄새는 괜찮지만, 열차 바닥과 플랫폼 사이의 단차가 높고 틈이 넓어 전동휠체어를 타고 승하차할 때마다 목숨을 거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서로의 좋은 점은 받아들이고, 나쁜 점은 개선해야 한다. 그것은 한국과 미국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내일은 제2의 고향, 피츠버그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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