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바알세불(누가복음 11장 14~26절) - 강한 자와 더 강한 자
율법이라는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교회를 치료해서
구원해 주시려고 예수님은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싸매고 그를 주막으로 데려가 보호받게 하셨습니다.
이 모습은 복음을 알지 못해 다른복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에게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복음을 전해서 구원해 주실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전해주시는 복음을
마리아처럼 가만히 듣고 있어야 강도 만나
죽어가는 자가 상처를 치료받아 생명을 얻게 되는데
들은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보내주셔서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들은 복음을 깨달아 믿게 되어
구원받게 된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의 말씀만 들음으로
성령이 오셔서 믿음의 용사로 거듭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예수님을 주라 입으로 시인하는 자가 된다는 뜻으로
본문 14절은
귀신을 쫓아내는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는 것인데 ....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먼저 보면 ....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이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어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입으로 주라
시인할 수 없다는 말씀과 같이 성령이 들은 복음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되므로 구원받게 됨을 말합니다.
또 갈라디아서 3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3: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율법의 행위라는 것은
다른복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하는데
누룩과 꿀이 들어간 다른복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성령이 오시지 않아 진리의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이며
오직 누룩이 없는 복음의 말씀만 듣고 따르며
하나님을 섬길 때 성령이 오셔서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어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에 속해 있을 때는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해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없었지만
복음을 상징하는 여호수아에게 속하므로
마음의 할례를 받고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는 모습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 말씀과 같이 예수님이 전해주시는 복음의 말씀만
가만히 듣고 있던 교회에게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을 입으로 주라 시인하게 하셨다는 뜻으로
말씀하고 있는 본문 14절을 봅니다.
눅11:14 <예수와 바알세불>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어떤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가 말 못하는 자가 되었는데
예수님이 그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말미암아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모든 인류가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귀신 들려
복음이라는 말을 못하는 자가 되었다는 뜻인데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고 성령이 오셔서
깨달아 믿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알고
전하는 자가 되었다는 뜻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처럼 예수님이 오셔서 말 못하는 자를 고쳐주실 것을
이사야 35장은 말씀하고 있었는데 1~6절을 보면 ....
사35:1 <거룩한 길>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즐거워한다는 것은
복음을 알지 못해 목말라하는 하나님 백성의
마음 밭을 말하는 것인데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백성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목말랐던 하나님 백성이 즐거워하는 이유를
2절부터 말씀하고 있는데 ....
사35: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여호와의 영광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을 말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사35: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사35: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하나님이 포로로 끌고 간 원수들에게
보복해 주시고 갚아 주신다는 것으로
자신의 백성을 포로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사탄의 노예로 살아가는 자신의 백성을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사탄의(뱀의) 머리를 밟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이어지는 5~6절을 보면 ....
사35: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사35: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십자가를 바라보지 못했던 맹인이 성경의 말씀속에서
십자가를 발견하게 되고 복음을 배척한 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게 되며
진리를 알지 못해 진리의 길을 걷지 못하던 사람이
진리의 길을 걷게 되고
말 못하는 사람이 진리의 말씀을 알게 되어
예수님을 입으로 주라 시인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샘물과 시냇물이 흐른다는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
요한복음 7장 37~39절을 보면 ....
요7:37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광야와 사막과 같은 마음 밭에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
샘물과 시내가 흐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눈과 귀가 열리게 되고 복음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므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이 늘 목이 말라 야곱의 우물을 찾았다가
예수님을 만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먹게 되어
물동이를 버리고 기뻐하며 마을로 내려가
복음을 전하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요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물은 조상들이 마시던 율법의 물을 말하는데
율법의 물은 복음의 모형과 그림자이므로 목마른다는 것이며
예수님이 율법을 복음으로 바꾸어 주신 물은
영원히 목 마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마라의 쓴 물과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목 말라하는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 가셔서
예수님을 눈으로 보게 하시고 자신이 메시아임을
전할 때에 들을 수 있는 귀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바리새인들과 달리
예수님이 자신이 기다리고 있던 메시아임을
알게 되어 기뻐하며 즐거워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마리아 여자의 모습과 같은 의미가
말 못하던 자를 예수님이 고쳐주셔서
말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는 것이며
문맥의 흐름으로 보면 누룩이 없는 복음의 말씀을 들으며
아버지께 들은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해달라고 간청하므로
성령이 오셔서 들은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함으로 성령이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들이므로 성령을 보내서 기도하게 하시고
들은 복음의 말씀을 깨달아 믿게 하신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과 로마서 8장 26절을 보면 ....
갈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저와 여러분의 간구로 말미암아
복음을 깨달아 믿는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이 아들이므로 성령을 보내서
친히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심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깨달아 알게 하여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본문 15~19절을 보면 ....
눅11: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눅11: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눅11:17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눅11: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눅11: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바알세불의 바알은 주인, 왕을 뜻하고
세불은 왕이 사는 궁전을 뜻하는 것으로
가나안 백성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높여 부르는 말이 바알세불이라는 단어입니다.
참고로 가나안 백성들은
자신이 섬기는 신을 바알세불이라 불렀는데
유대인들은 이들이 섬기는 신을 조롱하는 말로
바알세붑이라 칭한 것입니다.
바알세붑의 세붑은 파리라는 뜻으로
가나안 백성들이 섬기는 신을 파리의 왕이라 부르며
그들이 섬기는 신을 조롱하는 단어인데
이 말씀은 왕하 1장에 나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말을 못하는 귀신들린 자를 고쳐서
말을 하게 하시자 그 모습을 보고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악의적으로 왜곡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것은
귀신을 쫓아낸 증거를 또 다른 표적으로 증거하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는 망하고 그 집은 무너진다는 것으로
사탄도 자기편끼리 싸우면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으로 돌아오게 해서 구원해 주시려고
표적을 행하셨는데 그 모습을 보고 분쟁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20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권능을 말하는데
권능은 (에츠마)라는 히브리어로 잡는다는 의미에서
손가락, 발가락의 뜻인데 하나님의 권능을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은
하나님이 친히 귀신을 쫓아내셨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장면을 말씀을 하고 있는
태복음 12장 27~28절을 보면
하나님의 손을 성령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2: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마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이처럼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은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것이 아니라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귀신은 사탄을 말하는데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가
사탄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으며
복음을 알고 깨달아 믿음의 용사가 되면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귀신을 쫓아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눈과 귀를 열어 주셔서
복음의 말씀을 알고 깨닫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믿음에
이르게 되어 귀신을 쫓아내게 되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복음을 알고 깨닫게 되었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럼 서두에서 말씀드렸지만
문맥의 흐름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다른복음을 상징하는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강도 만나 죽어가는 자라는 뜻이며
그런 자를 구원해 주시려고 예수님이 기름과 포도주가
상징하는 복음을 전해서 구원해 주시고 계시는데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복음의 말씀만 가만히 듣고
있어도 스스로는 믿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은 복음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해달라고
평안한 마음으로 아버지께 간청하면 성령을 보내주셔서
들은 복음을 깨달아 알게 하여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자를 고쳐주셨다는 말씀을 통해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21~22절을 보면 ....
눅11: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눅11:22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강한 자는 사탄을 말하는데
사람의 열심히는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되지 못한다는 뜻인데
그런 자를 구원해 주시려고 더 강한 하나님이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밟은 그 노략물인 복음의 말씀을
나누어 먹고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고 있는 이사야 49장 24~25절을 보면 ....
사49:24 용사가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
바벨론 포로에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포로에서 해방시켜
돌아오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벨론의(강한 자인 사탄) 머리를 밟고
자신의 백성을 구원해 주신다고 말합니다.
사49:25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
여기서 말하는 용사나 강한 자는
당시의 강한 나라였던 바벨론을 말하지만
사탄을 상징하는 말씀으로 사탄의 포로에 있는 자신의 백성을
하나님이 사탄의 머리를 밟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밟으시고
승리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복음으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은 배척하지 말라고
이어지는 본문 23절은 말합니다.
눅11:23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잃어버린 양을 찾고 계신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요
예수님처럼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잃어버린 양들을
모으지 않고 헤치는 자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기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며
잃어버린 양을 복음으로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들이라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본문 24~26절을 보면 ....
눅11: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눅11:25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눅11: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귀신이 물이 없는 곳으로 다닌다는 것은
예수님이 전해주시는 복음을 물에 비유해서 말씀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해 귀신을 쫓아 주셨기 때문에
그 복음이 있는 곳을 피해서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배척하면
귀신이 다시 들어와 살게 된다는 것으로
그 후에는 배척한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받기
더 어렵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을 배척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구원받게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의 말씀은 복음을 알지 못하고
다른복음을 따르는 강도 만나 죽어가는 자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복음을 전해주시며 구원받는 방법을
귀신을 쫓아내는 말씀을 통해서 말씀해 주고 있는데
하나님께 잘 보이려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으려 하지 말고
전해주시는 복음의 말씀만 가만히 들으며
성령을 보내주셔서 믿음의 용사로 거듭나게 해달라고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하는 것처럼
반드시 성령을 보내주셔서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해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는
말씀을 통하여 모형으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잊지 마시고 누룩이 없는
복음의 말씀만 듣고 따르며
아버지께 간구하는 분들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