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둘째주일(환경주일) / 주일예배 설교문
2026년 06월 07일(주일)
레위기 25:23-28
“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The earth belongs to God!")
연두색이 짙어가는 숲속에 들어가면 숨통이 트인다고 할까요, 일상의 답답한 마음이 조금씩 평온해짐을 느낍니다. 땅을 밟고 숲이 품어내는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숲속을 걷노라면 근심 걱정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주일 내내 일에 시달리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주변 숲속에 들어가면 받은 스트레스도, 가슴 조이던 긴장감도, 지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이 안식을 얻는 기분입니다.
우리 삶은 뭐가 그리 바쁘고 분주한지요. 뭔가 성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 관념은 마치 마구 쪼아대는 딱따구리와 같습니다. 한 걸음을 내디뎌도 생각이 있어야 하고, 일하는 동안에도 삶의 가치가 있어야 하고, 사는 동안 꿈이 있어야지요.
사람은 숨 쉴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지 않으면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살아있는 동안엔 가열 차게 살아야지요. 전 사람답게 생각하고 사람답게 고민하고 사람답게 자신을 살피고 사람답게 한 곳을 바라보며 사는 게 사람이 사는 모습임을 인지하며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한 곳’을 바라보며 삽니다. 우리는 빛과 어둠, 낮과 밤, 하늘과 바다와 땅, 인간과 동식물 등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피조물은 점점 파괴되어감에 따라 우리가 직면한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건 기후변화, 곧 기후 위기입니다. 세계적인 추세로 봤을 때 교회에서 선포하는 하나님과 더는 연결되어 있지 못한다고 느끼는 ‘가나안 성도’(226만 명)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삶과 경험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의문을 품는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기후 위기가 시시각각 피부로 와닿는 이 시점에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건 뭘까요?
그건 ‘인간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은 ‘소비를 희생으로, 탐욕을 관대함으로, 낭비를 나눔의 정신으로 대체하는’ 변화로 우리를 초청하신다는 거예요. 이를 단순히 아는 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내어주는 거지요.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게 뭔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는 거예요.
개발과 성장에 궤를 함께하는 교회가 요즈음 심각하게 요동치고 있는 현실에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창조 세계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파괴되어가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겁니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요 종교와 문화 비평가인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의 말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하나님은 터전이요, 우리에게 근거를 주는 터전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경험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땅은 거룩합니다. 물은 생명을 줍니다. 하늘은 상상력을 열어줍니다. 우리의 뿌리들이 중요합니다. 가정은 거룩한 장소요, 우리의 삶은 이웃들이나 지구상에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할 때입니다. 천국이 아니라 이 세상이 우리 시대의 거룩한 장소라는 것입니다.-(『땅의 터전 : 세계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영적 혁명』중에서)
그녀가 말하는 핵심은 거룩한 장소인 땅(지구)에 사는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며, 또 우리가 사람들과 연결된 사랑의 관계라는 겁니다. 이 사랑이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사랑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는 겁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과 연결된 우리는 어떻게 된 일인지 지구 환경과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고 가꿀 여지는 없이 자꾸만 개발과 성장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는 창조 섭리를 거부하고 인간의 탐욕만 쌓아가는데 골몰한 거지요. 단적인 예가 이미 한류가 된 이른바 ‘먹는 방송’, 곧 먹방이 그것입니다. 이는 먹는데 집착한 게 아닌가 싶어요. 또 TV 각종 방송의 요리 프로그램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입니다. 지역협의체로 묶어진 국제경제 협력포럼인 G20이 있습니다. 이는 세계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 그리고 주요 신흥국 12개국을 합쳐 총 20개 회원국이 있습니다. 한국도 국제경제 협력포럼인 G20 회원국입니다. 이를테면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잘 사는 부자국가들이지요.
이 부자국가들이 협력해서 기후변화에 힘쓴다면 아마도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는 어느 선까지 늦출 수 있을지 모릅니다. 현재 만성적 기아에 시달리는 세계 인구가 약 7억 3,500만 명에 달합니다. 만일 G20 국가들이 기아 극복에 힘쓴다면 어쩌면 굶주림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은 없을지 모릅니다.
지난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국제사회는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2도 아래에서 억제하고 1.5도를 넘지 않게 노력하자고 합의한 바 있습니다.
당시 참가국 195개국은 ‘파리기후협정’(Paris Climate Agreement)에 합의했습니다. 그 합의안은 전 지구적으로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거예요.
이 합의안이 무색하게도 2024년에 이미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이 1.5를 넘어섰습니다. 이는 2도 아래로 억제하자는 2100년 제한 목표와 0.05도 차이에 불과합니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계속해서 사용한다면 지구는 가까운 미래에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지난 60년간 인간은 지구를 파괴하는 속도와 규모가 더욱 빨라지고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산화 탄소 배출, 지구 온난화, 해양 산성화, 서식지 파괴, 동식물 멸종, 천연자원 추출 등은 모두 인간이 지구를 크게 변화시켰다는 신호입니다. 이런 지구 생태계의 변화로 인해 학자들은 지구의 지질연대표를 이미 홀로세가 끝나고 인류세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는 간단히 말하면 인간이 지구의 모든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탐욕이 지구의 시스템, 환경, 과정, 그리고 생물 다양성에 지속적이고 잠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미쳤다는 거지요. 특히 인류세 지질의 특징은 플루토늄, 탄소 입자, 고농도 납, 미세플라스틱 등이 급격히 늘었다는 점입니다.
기후변화의 주범은 화석연료입니다. 곧 석유, 석탄, 천연가스의 사용이 탄소배출을 늘리는 것입니다. 대기권에 머무는 탄소배출은 지구 온도를 계속해서 상승시키고 이로 인해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화석연료 중독’에 빠져 있는지 모릅니다. 이를테면 가정용 전자제품, 자동차, 핸드폰, 컴퓨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거주하는 집, 심지어 먹거리 등에 이르기까지 화석연료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화석연료는 탄소배출로 이어져 기후변화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폭염(暴炎)뿐만 아니라 이에 따른 가뭄, 홍수, 산불 등을 일으킵니다. 지구촌이 점점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지구의 온도가 더 뜨거워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남우주연상 받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수상소감이 흥미롭습니다.
“레버넌트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2015년은 역사상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됐으며, 우리는 촬영 당시 눈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남쪽 끝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기후변화는 현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전 인류와 동물이 직면한 가장 긴박한 위협이며, 더는 주저하지 말고 전 세계가 힘을 합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의 수상소감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경고한 셈입니다.
그러면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은 뭘까요?
그렇습니다. 사람입니다. 인간이 배출하는 이산화 탄소와 온실가스가 지구 온도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와 반면 현재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지칠 줄 모르고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성장 중인 중국은 현재 탄소배출 세계 1위입니다. 미국 역시 무시할 수 없지요.
특히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자”(Make Amerian Great Again), 곧 MAGA를 등에 업은 미국의 트럼프는 파리기후협정을 탈퇴하고 말았습니다. 이건 경제 성장주의를 포기하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망령(妄靈) 때문입니다.
『2050년 거주불능 지구』(데이비스 월러스 웰즈)란 책을 보면, 파리기후협정에서 합의한 대로 2100년 억제목표로 삼은 지구 온도 2도에서 1도씩 상승할 때마다 겪게 되는 지구의 기후변화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구 기온이 2도 이상 상승하면 빙상(氷上)이 붕괴하기 시작해요. 4억 명 이상이 물 부족을 겪어요. 적도 지방의 도시가 사람이 살 수 없게 됩니다. 위도 북쪽에 있는 지방조차 여름마다 폭염(暴炎)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어요. 인도는 극심한 폭염에 시달리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최상의 시나리오입니다.
기온이 3도 상승하면 남부 유럽은 영구적인 가뭄에 시달립니다. 중앙아시아와 카브리해 지역, 그리고 북부 아프리카는 건기(乾期)가 지금보다 각각 19개월, 21개월, 60개월 동안 계속되어요. 매년 들불과 산불로 불타는 지역이 증가해요.
기온이 4도 상승하면 식량 위기가 거의 매년 전 세계를 덮칩니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90% 증가해요. 폭염, 한파,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어요. 분쟁과 전쟁 역시 2배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구 기온이 5도를 넘어 6도 상승하면 빙하가 녹을 뿐만 아니라 극지방 영구 동토층에 묻힌 매탄가스가 뿜어져 나와 지구상의 동식물을 멸종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듯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요?
한국은 2023년 말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습니다. 특히 2024년에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오늘의 화석상’ 1위를 차지했습니다. 화석연료 확대, 손실과 피해 기금에 불참한 한국이 이른바 ‘기후 악당’ 국가가 된 거예요.
게다가 한국은 세계 두 번째 규모인 연간 100억 달러를 화석연료 공적 금융에 쏟아붓는 데다가 재생에너지 비율은 5%로 세계 평균 13%에 크게 못 미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이재명 정부는 탈원전 대신 기존 가동 중인 원전을 최대한 활용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택하고 있습니다. 곧 신규 대형 원전과 차세대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요. 이런 예를 볼 때 이재명 정부 역시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기후변화와 함께 거론되는 게 ‘탄소중립’입니다.
탄소중립(Net-Zero)은 기업이나 개인이 발생시킨 이산화 탄소 배출량만큼 이산화 탄소 흡수량도 늘려 실질적인 이산화 탄소 배출량을 ‘0(제로)’으로 만든다는 개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산화 탄소 총량을 중립상태로 만들자는 거예요. 이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나무를 심거나, 풍력, 태양력 발전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하는 거지요.
그럼 일상생활에서 탄소 중립을 실천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이는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 플러그 뽑기, 전원 끄기, 적정 실내 온도 유지, 일회용품 줄이기, 올바른 분리배출이 있습니다.
또 종이 영수증 대신 전자영수증 발급받기,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 타기, 이동 시 대중교통을 적극적 이용하기, 급가속/급제동 피하고 트렁크 가볍게 비우기 등등 작은 습관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구촌의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탄소배출이 지구 환경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기후변화의 위기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무분별한 개발과 성장주의가 빚어낸 탄소배출이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기후변화의 위기를 맞닥뜨린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게 뭘까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무분별한 개발과 성장주의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땅을 마치 자기 소유물처럼 마음대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후변화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첫걸음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자는 겁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함께 인정하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겁니다.
오늘 레위기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23절)
그렇습니다. 땅(에레츠/אֶרֶץ, Eretz='땅', '지구', '육지', '영토')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간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 창조주가 주인이란 얘기입니다. 땅과 같은 피조물인 인간은 땅을 소유할 권리도 능력도 없습니다. 만약 ‘땅은 하나님의 것’이란 선포가 인간의 역사를 이끌었다면 인간은 기후 위기를 겪지 않았겠지요.
그런 뜻에서 기후변화의 문제는 도덕적인 문제를 넘어서 신앙의 문제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기후 문제는 신앙의 문제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소유인 땅을 마음대로 착취한 죄이지요. 따지고 보면 기후변화의 위기는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한 결과인 셈이지요.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땅을 일시적으로 거래할 수 있고 그 경작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수 있지만, 땅의 소유권 자체는 사고팔 수 없게 했습니다. 이게 희년 법의 대원칙입니다.
이에 땅은 하나님의 것이니 사람은 그 누구도 땅을 마음대로 팔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이른바 영구히 땅을 빌려 쓰는 사람들일 뿐, 다만 함께 사는 거류민과 동거하는 사람과 같이 땅을 처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고파는 건 소유 관계의 일시적인 변화일 뿐이지요.
땅을 영구히 팔지 말아야 할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모든 토지 소유자가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땅을 이스라엘에 기업으로 주었을 뿐, 여전히 참 소유자는 하나님이시지요.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신분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 잠시 몸 붙여 사는 외국인과 머무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를테면 현재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신분과 같은 거예요. 이는 또한 이스라엘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 잠시 머무르는 존재라는 거예요. 그런 관계로 땅을 영구히 팔지 못한다고 했던 겁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외국인이자 일시적으로 머무는 자입니다. 여기서 어떤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이게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에요.
사실, 그들은 이집트에 있을 때 종이요, 나그네 신분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속량하시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땅의 참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은 거류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자유가 없는 거류민으로 살았고, 약속의 땅에서는 자유민으로 살았지요. 땅의 소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거류민입니다. 거류민은 그 땅을 마음대로 경작하고 가꿀 수 있어도 땅을 사고팔 수 없습니다.
희년이 강조하는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땅에 관한 거류민인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살아가지만, 희년(禧年)이 되면 반드시 모든 이에게 그 땅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여기서 희년이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다음 해인 50년째 되는 해를 말합니다. 핵심은 모든 게 제자리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팔렸던 땅이나 집도 원래 주인에게로 되돌아갑니다. 종속되었던 종도 자유를 얻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모든 빚도 탕감이 되지요. 땅도 경작하지 않고 묵힙니다. 쉬게 합니다.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지만, 인간은 잠시 빌려 쓰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땅에서 우리가 지닌 게 내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25절 이하에 땅 ‘무르기’도 무를 힘이 있든 없든 결국에 희년이 되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간다는 거예요. 여기서 ‘무르기’(게울라/Geulah, גאולה='구원', '구속', '무르기')는 원래 소유자가 언제든 자신의 땅을 회복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이는 곤경에 처한 친척을 대신해서 돈을 지불(支拂)하고 되사는 걸 말합니다.
이에 따라 “땅이 하나님의 것”이란 말은 희년 법의 핵심을 꿰뚫은 것입니다. 희년은 모든 게 원래대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토지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땅을 주셨다는 점을 인정하고 실천하는 삶이 희년을 바라는 삶의 근본임을 깨닫습니다.
세계 인구의 20%가 83%의 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건 뭔가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부자국가들이 내뿜는 탄소배출로 인해 제3세계 가난한 국가들이 매년 기후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땅을 골고루 주셨는데 부유한 나라는 땅을 마음대로 착취하고 사고팔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건 개발과 성장이란 환상에 빠진 인간의 탐욕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툰베리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 행동 정상회의(2019)에서 세계 지도자들의 책임을 추궁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대규모 멸종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들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젠 우린 기후 위기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경제성장에서 탈성장으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는 오늘 희년의 맥락에서 말하면 땅에 대한 새로운 관점입니다. 그게 바로 땅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땅은 누구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외칠지 모릅니다.
"땅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야!"
이에 이선관 시인은 벌떡 일어나 ”아니야“ 하고 사자후(獅子吼)를 토할지 몰라요.
"누가 / 지구촌의 주인이 / 사람이라 / 하였는가 / 창조주는 / 제일 마지막 날에 / 사람을 창조했다 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사고의 전환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인은 마냥 박수(拍手)만 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행동하는 사람입니다.
탈성장은 성장을 멈추라는 게 아녜요. 그보다 가난과 빈곤을 없애기 위해 가난한 나라에 투자하고 자원이 필요한 사람들과 공유하자는 데 그 뜻이 있습니다. 탈성장은 ‘땅은 하나님의 거라’는 희년 법의 원칙과 맥락이 닿아있습니다. 땅과 인간은 하나님의 것이란 희년 법의 대원칙을 오늘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작은 일상에서부터 탄소 중립을 위해 행동하고 실천할 수 있을 겁니다.
탈성장과 희년 법은 사회를 더욱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만들 수 있는 대안입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희년 법의 대전제가 오늘 우리 일상에서 더 큰 울림과 메아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개발과 성장이란 환상은 하나밖에 없는 지구촌을 파괴하는 악당입니다. 우리가 그 악당입니다.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망각한 채 기후 위기 시대를 불러왔습니다. 이는 우리의 죄입니다. 이 죄를 용서하소서. 죄를 돌이키는 방법은 오직 탈성장과 희년의 원칙밖에 없습니다. 탐욕을 내려놓고 희년의 영성을 회복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